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준이 부결된 이후의 후폭풍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발언들이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회의 부결사태만 해도 국민의당에게 비난이 집중되던 판에 안철수 대표의 “우리가 결정권을 가졌다”는 발언으로 비난 여론의 불길에 기름을 쏟아붓는 판이 된 참이었다. 이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우리는 부결될 지 몰랐다”는 발언까지 더해졌다.
안 대표는 지난 13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하면서 지역언론의 김이수 후보 부결 책임론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면서 “우리도 부결될 지는 몰랐다. 전혀 의도한 건 아니었다”라는 기상천외한 발언을 쏟아내었다. 이틀 전에는 결정권을 가졌다는 정당이 그 결정권을 행사하면서 그렇게 결정될 줄은 몰랐다는 말이다.
김이수 후보의 인준부결과 관련하여 여론의 움직임은 국민의당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국가의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장의 자리를 계속 공석으로 비워두는 정치적 무책임성에 대한 비판이 드높은 가운데, 결국 인준투표 부결이 아무런 명분없이 이루어 진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정치적 책임을 져야할 사안이었다. 인준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국민의당의 반대표 때문에 부결이 되자, 비난은 국민의당에게 집중되었고, 당의 발언들은 정제되지 못한 채 쏟아져 나왔다.
국민의당이 내놓은 발언들은 중구난방이었지만, 뚜렷한 정치적 목표가 깔려있었다. 바로 변명과 책임회피이다. 부결사태에 대해 자기들은 책임이 없고, 자기들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모든 발언들을 꿰뚫는 단 하나의 맥락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모든 발언들이 서로 모순되고 부딪치는 현상이 발생해 버렸다.
정치적 욕망은 ‘욕먹기 싫다’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정치적 현실은 ‘욕먹어 마땅한 처신’이었고, 결국 발언이 중첩될수록 국민의당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어진다. 13일 안철수 대표의 발언은 그 정점에 서 있었다.
국민의당도 부결될 지 몰랐다는 발언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이 발언에 대한 어떤 정치적 해석이나 맥락분석은 전혀 의미가 없다. 간단히 평가하여,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공당의 국회의원들이 찬반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장난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찬성의 결과를 만들기 위한 것이며,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반대의 결과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은 부결표를 던졌지만, 부결의 결과를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변명을 할 때에나 하는 소리이다. 국민의당은 초등학생들의 집단이 아니다. 국민의당은 부결의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다면 왜 부결표를 던졌는가?
이런 횡설수설한 발언이 나오는 것은 결국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가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기껏 내세운 원칙이 극단적 중립주의이다. 원칙없이 부유하는 정치집단을 조롱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것의 정확한 연장선이다. 국민의당은 스스로를 조롱의 거리로 전락시키는 일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해치우고 있다.
폭락하는 지지율 속에서 국민의당 의원들은 “어차피 낮을대로 낮은 지지율이니 우리 마음대로 하자”는 식이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구 내지르는 모양인데, 더 내려갈 지지율이 없다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과 혐오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원내 지지율 최하를 계속 기록하면서, 안철수 대표의 심정은 안절부절일 것이다. 그 초조한 심정에서 정치적 원칙없이 떠다니는 극중주의자답게 횡설수설이 이어진다. 자신들은 부결표를 던졌지만 부결의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최악의 비겁함을 드러냈다. 부결표를 던졌으면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어떻게 정당한 지를 답해야 한다. 그런데 부결이 된 것은 부결표를 던진 국민의당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때문이라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 사오정이라는 놀림감으로 소비될 정도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이다. 정치 사오정들이 활개를 치면, 국민들의 의사는 의미를 잃게 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된다.
국민이 “왜 부결시켰냐?”고 물었다면, “이래서 부결시켰다”고 답하라. “부결시키려고 한게 아니었고, 부결 책임은 부결시킨 우리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라”고 답하는 것이 극중주의자들의 답변이라면, 이 정치 사오정들은 정치의 장에 존재할 자격이 없다.
하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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