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 orz]
2부 '샌드위치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① 물샐 틈 없는 노동 감시
좁은 자리엔 모니터와 전화기·헤드셋
관리자는 모니터에 눈 고정하고
누가 전화 덜 받는지 '전자 감시'
볼일 볼 때도, 물 마실 때도 보고받아
"화장실 순서 정해진 곳도 있어"
커피도 물도 끊고 최대한 참는 수밖에
2부 '샌드위치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① 물샐 틈 없는 노동 감시
좁은 자리엔 모니터와 전화기·헤드셋
관리자는 모니터에 눈 고정하고
누가 전화 덜 받는지 '전자 감시'
볼일 볼 때도, 물 마실 때도 보고받아
"화장실 순서 정해진 곳도 있어"
커피도 물도 끊고 최대한 참는 수밖에
[한겨레]
<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우리,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이 되어 낮밤을 바꿔가며 일하는 맞교대 노동자의 삶과 일터가 첫 번째 장면이었습니다.
이번엔 ‘사무직 공장’(White-collar Factory)이라 불리는 노동 현장, 콜센터입니다. 70~80㎝ 간격의 좁은 칸막이 사이에 앉아 종일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의 삶이, 밀려드는 부품을 꾸역꾸역 조립하는 공장 노동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기 너머 마주하게 되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서울 서남권의 한 홈쇼핑 콜센터가 두 번째 현장입니다.
콜센터 지원서를 쓰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원서는 간단했다. 이름과 성별, 생년월일, 휴대전화 번호, 주소, 고졸인지 대졸인지 기재하는 최종학력과 경력사항만 적으면 끝이었다. 회사는 지원자에게 왜 콜센터 상담원이 되려 하는지, 어떤 각오로 일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채용 안내문에 나온 “1분 안에 지원 가능”이란 문구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언제 어디서 무슨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좀 더 빨리 떠올렸더라면 정말로 1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써넣은 글자 수를 세어보니 합쳐도 200자가 되지 않았다. 혹시 항목을 빼먹은 건 아닐까 두세 번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지만 빠진 건 없었다. 회사가 지원자에게 궁금한 것은 더 없어 보였다. ‘제출’ 버튼을 눌렀다.
두 시간쯤 뒤 전화가 왔다. “서류전형에 합격했으니 내일 오후 면접 보러 오세요.” 다음날 면접이 끝나고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아 어제와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최종 합격했으니 월요일부터 출근하세요.” 그때가 지난 2월23일 오후 4시30분께였다. 기자는 약 48시간 만에 지원서 작성과 면접을 마치고 한 홈쇼핑 회사의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 상담원이 됐다.
콜센터는 서울 서남권에 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회사의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가 밀집했다. 기자가 취직한 콜센터 아래층에는 전자제품 판매회사의 콜센터가 있고, 건물을 나오면 저축은행 콜센터가 있다. 조금 더 걸으면 컴퓨터 제조회사의 콜센터가,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는 보험사 콜센터와 카드사 콜센터, 통신사 콜센터도 있었다. 콜센터 상담원을 했던 김진숙(가명·이하 모두 가명) 언니(동료를 부르는 일반적 호칭)에게 “왜 여기 콜센터가 몰려 있느냐”고 물어보니, 땅값이 비교적 싼 지역이라 그렇단다. 하긴 콜센터가 굳이 땅값 비싼 곳에 있을 이유는 전혀 없다. 부산이든 제주도든 전화와 인터넷이 되고 일할 사람만 있으면 된다. 2006년에 한국노동연구원이 낸 보고서를 보면, 10년도 더 전부터 기업들은 콜센터 상담원을 고용하는 대신 아웃소싱해 비용을 줄여왔다. 콜센터는 돈을 벌어오는 부서가 아니어서 늘 외주화의 1순위였다. 그래서 콜센터 상담원은 광화문이나 강남으로 출근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 내 직장은 닭장 업종은 다르지만 일이 같으니 콜센터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할 것이다. “닭장이지 닭장.” 출근 첫날 상담원 휴게실에서 한 언니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상담원의 유일한 쉼터인 휴게실에는 동그란 테이블 몇 개와 의자, 길쭉한 소파 하나, 냉장고, 전자레인지, 커피 자판기가 있다. 네모반듯하게 ‘깍둑썰기’ 하듯 규격화된 업무 공간 중 유일하게 자유로운 공간이다. 언니는 편의점에서 산 네모난 도시락을 펼쳐놓고 또 다른 인스턴트 도시락을 먹고 있는 동료 언니에게 작은 목소리로 푸념했다. “양계장에서 닭이 알 낳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어. 앉아서 종일 전화받는 거”.
닭장이란 단어는 이미 익숙했다. 콜센터 취업을 준비하며 포털사이트의 콜센터 상담원 카페에 들어갔을 때 ‘닭장’이란 단어를 종종 접했다. “몸에 딱 맞는 닭장에 갇혀 기계처럼 알만 낳는 느낌이었어요.” “화장실 가는 시간도 눈치 보이고 온종일 닭장에 갇혀 있다가 나오는 것 같아요.”
좁은 공간에 갇혀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같은 일만 반복하는 공간. 국외 연구자들은 콜센터를 ‘화이트칼라 공장’(White-collar Factory), ‘전자 착취 공장’(Electronic Sweatshop) 등의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 특성을 볼 때 콜센터와 컨베이어 벨트 공장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5일간의 교육을 받은 뒤 기자는 ‘닭장’에 투입됐다. 2월26일 첫 출근에서 마주한 콜센터의 모습에 기자는 주눅이 들었다. 200명은 돼 보이는 상담원이 쉴 새 없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통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센터 문을 열면 파란색 칸막이로 나뉜 콜센터의 워크스테이션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10명이 서로 마주 보면서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책상이 20개는 넘어 보였다. 문에서 가장 먼 안쪽 자리까지 가려면 못해도 오십 걸음은 걸어야 했다. 수많은 상담원을 지나쳐 한참을 걸어가야 해 어떤 언니들은 그 길을 ‘런웨이’라고 불렀다. 런웨이를 따라 걸으면 칸마다 통화 중인 상담원의 뒤통수만 보였다.
기자의 자리는 문에서 멀지 않았다. 파란색 칸막이로 앞면과 양옆, 삼면을 메운 200여개의 자리 중 한 곳이었다. 자리가 다들 똑같이 생겨서, 한동안 칸막이 위에 붙은 이름을 보고 자리를 찾아야 했다. 자리의 폭은 약 70~80㎝ 정도. 모니터 두 개가 에누리 없이 딱 들어가는 공간이었다. 왼쪽 모니터 앞에는 전화기가 있었고, 전화기에는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이 연결돼 있었다. 출근 첫날, 맞은편 상담원은 이미 출근해 전화를 받고 있었다.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상담원 언니는 이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바빠 보여 차마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정수리에 대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기자는 오전 11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하는 시간대를 배정받았다. 홈쇼핑은 365일 24시간 방송된다. 당연히 콜센터도 24시간 돌아가야 한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상담원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상담원은 제각기 다른 시간대에 근무했다. 오후 3시에 출근해 자정에 퇴근하는 팀도 있었다. 밤늦게까지 일해야 해서 다들 기피할 줄 알았는데, 야간수당이 붙고 ‘투잡’을 뛰기에 유리한 시간대라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고 했다.
자리에 앉아 칸막이에 걸려 있는 헤드셋을 쓰니 콜센터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앞으로 이곳에서 하루에 8시간 전화를 받을 것이다. 컴퓨터 바탕화면엔 직전 상담원이 적어놓은 듯한 메모가 빼곡했다. “전화 끊기 전에 꼭 ‘더 궁금하신 점 없습니까’ 물을 것!”, “해요체 ×”, “주문번호 □□□□□□ 다시 확인”, “기준 외 반품 처리법: △△△△△△△△△.” 메모로 볼 때 이 자리의 전 주인은 ‘다나까’로 끝나는 말투를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상표를 제거한 옷을 반품하겠다는 고객의 전화를 자주 받았을 것이다. 메모를 하나씩 읽다가 “전산(콜을 받고 주문 등을 입력하는 내부 시스템)에 빨리 로그인하라”는 관리자의 말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누가 전화 덜 받는지 실시간 체크…엉덩이 뗄 수 없었다
■ 화장실도 자유롭게 못 가는 곳 업무 자체는 단순했다. 콜센터로 오는 전화는 크게 ‘주문’과 ‘시에스’(CS, Customer Satisfaction)로 나뉜다. 주문은 말 그대로 방송에 나오는 상품을 주문한 고객의 집으로 배송해주는 것이고 시에스는 반품, 교환 등 주문 외 고객의 모든 요구사항을 뜻한다. 교육을 받을 때 주문, 반품, 취소, 교환, 포인트 적립, 에이에스(AS·애프터서비스) 신청, 상품 불만 접수, 회원가입 탈퇴 등 고객이 걸 수 있는 전화 유형에 어떻게 응대하면 되는지 적혀 있는 스크립트를 받았다. 매우 꼼꼼하게 적혀 있어 ‘이것만 있으면 걱정은 없겠다’ 싶었다. 오산이었다.
현장에는 교재에는 나오지 않는 언어들이 있었다. 3월5일, 신입사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리자가 신입들을 모아놓고 주의사항을 전했다. “화장실 갈 때는 꼭 메신저에 ‘화출’, ‘화착’이라고 남기세요.” 화출? 화착? 두 단어를 인터넷 국어사전에서 검색해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화출’은 화장실로 ‘출(出)’발한다, ‘화착’은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착(着)’석했다는 의미로 짐작됐다. 왜 이런 수수께끼 같은 단어를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생리 현상을 해결 중이라는 사실이 모두에게 공지돼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용기를 내어 엉거주춤 손을 들었다. “꼭 남겨야 하나요?” 관리자가 안경 너머로 물끄러미 쳐다봤다. “바쁠 때 우르르 화장실에 가면 안 되지 않겠어요?” 팀장은 한꺼번에 화장실을 가면 대기 콜이 쌓일 수 있어 꼭 보고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 있으면, 대기 콜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상담원은 화장실 가는 걸 눈치껏 자제하라는 뜻이었다.
화장실만 그런 게 아니었다. 물을 마시러 휴게실에 가거나 ‘진상 고객’ 때문에 열 받아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가더라도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일일이 메신저 채팅방에 보고해야 했다. 점점 화장실 가는 데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8시간 동안 한두 번 화장실에 가는 팀원도 있는데, 나만 한두 시간에 한 번씩 ‘화출’, ‘화착’을 남길 순 없었다. 커피를 끊고 최대한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참았다. 애연가인 팀장은 한 시간에 한 번씩 꼭 담배를 피우러 갔지만, 그는 관리자여서 메신저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3월7일, 기자와 입사 동기인 유정(27), 진숙 언니와 점심으로 불고기비빔밥을 먹던 중 유정이 말을 꺼냈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얘기하고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회복지사로 일했었고, 콜센터 근무는 처음이라는 유정도 콜센터의 ‘보고 문화’에 당혹해하는 눈치였다. 반면 콜센터 경험이 많은 진숙 언니는 생각이 달랐다. “한꺼번에 화장실에 가면 지장이 있긴 하지. 앉아 있는 사람이 전화를 당겨야 하고.” 진숙 언니는 언제부터 저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콜센터 상담원이 방광염과 치질을 직업병처럼 달고 사는 이유도 이런 화장실 통제에서 비롯된다. 부산여성회가 2015년 콜센터 노동자 10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상담원의 32.1%는 불면증 및 방광염을 앓고 있다고 했고 26.6%는 치질이 있다고 했다. 당시 조사에 응했던 한 상담원은 “정신없이 들어오는 콜을 당겨 받느라 화장실을 하루 두 번밖에 가지 못하는 일이 많다 보니 방광염이나 치질에 걸린 사람이 많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콜센터는 여전히 상담원이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시간을 아예 정해놓거나 순번제로 운영하는 등 더 심한 통제를 하는 게 현실이다. “전에 다니던 데는 화장실에 가는 시간이 아예 정해져 있었고 한 번에 한 사람씩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거든. 뒷사람한테 미안하니까 빨리빨리 다녀와야 했지.” 한 금융사 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조은혜 언니가 귀띔했다. 여긴 그 정도는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쓴웃음이 나왔다.
■ 나는 네가 8시간 동안 한 일을 알고 있다 회사는 굳이 보고하지 않아도 상담원이 자리를 비운 사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매니저와 팀장, 선임상담원 등 관리자급만 볼 수 있는 화면에는 모든 상담원의 현재 상태가 ‘통화 중’, ‘대기 중’, ‘후처리’, ‘휴식’ 등으로 뜬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고 있는지, 전화를 기다리는지, 전화를 끊고 사후처리를 하는 중인지, 그도 아니면 자리를 비웠는지 등을 100%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전화가 밀려들 때다. 기자가 일했던 아웃소싱 업체의 ‘고객사’였던 홈쇼핑 회사는 다이아몬드도 팔고 에어컨도 팔고 여행상품도 팔지만, 주문전화는 사과 9㎏에 2만9900원, 여성용 항공점퍼 두 종에 4만9800원, 블라우스 5종에 3만9800원 등의 상품이 방송될 때 밀려들었다. 이때 후처리를 하는 상담원이 있다 싶으면 매니저는 어김없이 단체 쪽지를 보냈다. “후처리 관리하세요.” “후처리 빨리 풀어주세요. 대기콜 올라옵니다.” “블라우스 방송 시간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때까지 최대한 콜 소화해주세요.”
맨 윗자리에 자리잡은 팀장은 언제나 상담원을 지켜봤다. 바쁜 시간이 아니더라도 팀장은 후처리 시간을 조금만 길게 잡는다 싶으면 어김없이 “뭐 하냐”고 물었다. 3월13일, 기자가 강성 고객의 항의 전화에 애를 먹던 짧은 순간, 팀장이 칸막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뭐 해?” 분명 일을 하고 있었지만 기자는 궁색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게요, 고객이 배송확인 요청을 해서 일단 택배 기사님한테 확인 전화를 했더니….” “후처리 너무 오래 잡는 거 좋지 않아. 알았지?” 팀장은 기자의 말을 자르고 칸막이 너머로 사라졌다. 화면을 보니 후처리 시간이 5분을 지나고 있었다. 팀장의 “뭐 해?” 앞에는 ‘전화 안 받고’라는 말이 생략돼 있었다는 걸 팀장이 사라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콜센터의 이런 행태를 모두 ‘전자감시’로 본다. 전자감시는 10년 전부터 콜센터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인권위가 2009년 진행한 콜센터 여성 상담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산을 이용해 상담원의 통화·대기·휴식 여부, 하루 누적 통화 수 및 통화 시간, 통화당 소요 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행위를 열거한 뒤 ‘전자감시’라고 규정했다. 당시 인권위는 “콜센터의 실시간 모니터링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며 “노동감시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고, 관련법은 여전히 없다.
그사이 전자감시의 영역은 점점 더 커졌다. 3월13일 저녁 8시, 퇴근 시간에 딱 맞춰 전산에서 로그아웃 했다가 꾸지람을 들었다. 로그아웃 하자마자 달려온 팀장은 “너무 정시에 퇴근하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다. 8시가 돼도 한두 콜 정도는 더 받고 퇴근하라”고 했다. 전산을 보던 팀장이 친히 “점심시간 끝났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밀려드는 전화를 받으라는 뜻이었다.
팀장은 상담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다. 업무 시간에는 팀 메신저에 팀원 각각이 지금까지 받은 콜 수를 올려놓고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기자의 콜 수는 대체로 팀에서 꼴찌이거나 꼴찌에서 바로 위였고, 센터 전체에선 맨 뒤에서 세 번째 정도였다. 팀장은 “첫 달이니까 아직 괜찮다”고 했지만, 중간중간 콜 수 통계를 보며 “오늘은 더 적네. 이유가 뭐야?” 같은 말을 했다.
사정이 이러니 점심시간 외에 잠시 쉬기도 쉽지 않다. 3월20일, 기자와 같은 팀 은혜 언니가 15분 정도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다른 팀 관리자가 전산 시스템을 보고 은혜 언니를 찾으러 자리에 왔다. 바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관리자는 상담원이 15분이나 자리를 비웠단 사실에 놀라 달려온 것이다. 나중에 은혜 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날 팀장한테 호되게 혼났어. 내 상태를 자기만 보는 게 아니라고 엄청 뭐라고 하더라고….”
정현철 사무금융노조 조직국장은 “콜센터 채용공고를 보면 잘 정비된 휴게실 사진 등을 함께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상담원들이 휴게실을 사용할 틈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라며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라고 말했다.
팀장이 고객과 대화까지 엿들어…내 통화 탈탈 털렸다
■ ‘콜 품질’을 빙자한 감청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순간은 회사가 내 통화 내용을 듣고 있을 때였다. 현업 배치 2주차였던 3월17일, 전화를 끊자마자 팀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불러드릴까요(×) 안내해드릴까요(○) / 안 나와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방금 통화에 대한 지적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품에 대해 꼼꼼히 묻는 고객에게 기자는 “안내서에 적힌 내용을 불러드릴까요?”, “죄송하게도 그 부분에 관해선 설명이 안 나와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팀장은 이런 표현이 상담 용어로 적절하지 않다고 질책한 것이다.
콜센터는 상담원의 통화 내용을 자주 듣는다. 상담원의 통화 내용을 직접 들어보고 ‘콜 품질’을 평가한다는 취지다. 대부분의 콜센터에는 큐에이(QA, Quality Assurance)라는 제도가 있다. 회사에 있는 큐에이 강사들은 상담원이 통화 중일 때 아무 전화나 임의로 들어보고 평가한다. 모든 상담원의 통화는 녹음되니, 녹음 파일을 들어보고 점수를 매기기도 한다. 큐에이 강사들은 콜 품질 평가의 기준이 되는 수십 개의 항목을 놓고, 상담원이 이에 맞게 말하고 있는지 점수를 매긴다. 이 점수는 성과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담원들은 평가에 민감하다.
업무 시작 10일째였던 3월14일, 기자에게 큐에이 강사의 메시지가 왔다. 큐에이 강사는 “‘호응어’를 더 써달라”고 했다. 호응어란 쉽게 말해 맞장구다. 고객이 한 말에 상담원은 적절히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고객이 “제가 물건을 샀는데 반품하려고요”라고 하면, 상담원은 “네”가 아니고 “아, 그러십니까”라고 호응해줘야 한다. 고객이 뭔가 확인하기 위해 상담원에게 “잠시만요”라고 말하면, 상담원은 “네”라고 하면 안 되고 “네,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콜센터 교육 때 받은 ‘상담 품질 모니터링 평가표’를 보면, 단조로운 표현은 상담원의 ‘공감 점수’에 마이너스가 된다. 호응어가 입에 잘 붙지 않았던 기자는 줄곧 “네”라고 답했고, 큐에이 강사가 이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큐에이 강사가 기자의 통화를 듣고 있다는 표시는 따로 전산 시스템에 뜨지 않았다. 강사는 상담원이 모르는 새에 전화를 듣고 평가했을 것이다. 보통의 노동자들은 결과물에 대해 평가받지만, 콜센터 상담원은 콜 수 같은 노동의 결과뿐 아니라 노동 과정까지도 매 순간이 평가를 받는다. 감시 노동의 다른 이름은 ‘상시화된 성과 평가’였다.
비용절감을 추구하는 콜센터의 논리 앞에서 상담원 개인의 불쾌함이나 불안함은 별다른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회사 입장에서 ‘감청’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상담원의 상담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장치였다. 콜센터는 최저임금을 주면서 저숙련 초보 상담원을 고용한다. 이직이 잦은 콜센터 상담원이 숙련도를 높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업체는 일정 수준의 콜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상담원을 늘 감시한다. 감시당하는 노동자의 감정과 인권은 고려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다.
상담원들이 목소리를 내면 바뀔 수 있을지 모른다. 은혜 언니는 “회사의 감시 노동이 심각하다”는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연 언니는 한술 더 떴다. “큐에이 그거 고객 입장에서도 되게 불쾌한 일 아니야? 상담원이랑 둘이 통화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삼자가 몰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는 거잖아. 개인정보인데 고객한테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언니들은 회사를 욕하는 것 말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2006년 발간된 논문 ‘콜센터의 고용관계와 노동문제’를 보면, 상담원들은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화장실에 몇 번 갔는지 기록에 남는다” “어느 순간에 내 목소리를 누군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콜센터 노동에 대한 잇단 문제 제기에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조사와 인권위 권고 등도 이어졌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콜센터의 감시 노동을 제재할 법과 제도는 2006년에도 지금도 없다.
답답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2ℓ 생수통을 사 들고 참았던 물을 꿀꺽꿀꺽 마시며 본 스마트폰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발달로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큰 직업으로 콜센터 상담원이 꼽혔다’란 뉴스가 떠 있었다. ‘전자감시도 모자라 이젠 인공지능이구나.’ 아득한 퇴근길, 물맛이 썼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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