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발목 잡혀선 안돼" 국무회의 최장 모두발언 생중계
또 문 정부 탓하며 "한일관계 파국 일보 직전 방치" 주장
"일본 수십 차례 사과" "일본에 당당하게 대하라"
"정부 이미 충분히 보상했어"…강제동원 해법 강행 의지
민주 "대통령 제정신 아냐…일본 우익 주장인 줄 알았다"
대일 굴종 외교라 평가되는 3·16 한일 정상회담 뒤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또다시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 내 우익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했다"며 일본 측에 면죄부를 주는 한편, 한일 관계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또 강제동원 피해자 등 정부의 대일 외교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시민 사회를 지칭하 듯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일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게 커다란 혜택으로 보답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미래세대 청년들에게 큰 희망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2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이 주재한 제12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생중계했다. 이날 발언은 통상적인 국무회의 모두발언보다 긴 22분 50초 동안 이뤄졌다. 형식은 국무회의였지만 실질은 대국민 연설에 가까웠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긴 시간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한 것은 대일 굴종 외교에 대한 국내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작심 발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발언 초반부터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면서 "그동안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양국 정부 간 대화가 단절됐고, 한일관계는 파국 일보 직전에서 방치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 그 여파로 양국 국민과 재일 동포들이 피해를 입고 양국의 경제와 안보는 깊은 반목에 빠지고 말았다"며 전임 정부에 모든 책임을 돌렸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피해자 의견은 묵살한 채 밀실에서 졸속으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와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보복 조치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발언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도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적으로 맞서다가 전후에 전격적으로 화해하고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이웃이 됐다"며 "한일 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랜 기간 이뤄진 독일의 철저한 과거사 청산과 배상, 나치 전범 처리 과정은 외면한 채 과거사 청산 노력을 하지 않은 일본에 일방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발언에 불과하다.
아베 재집권 이후 일본 각료들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수차례 자행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군함도와 더불어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는 사도광산에서도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주장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비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정권의 대일 외교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겨냥하는 듯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정부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들과 시민사회를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으로 폄훼한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면서 일본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특히 이는 일본 자민당 내 우익 세력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일본 우익 세력들은 일본이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해 더 이상 사죄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마쓰가와 루이 일본 참의원은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이미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의 최종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 역시 이와 같은 입장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일본의 사과 근거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를 예로 들었지만, 2012년 아베 재집권 이후 이뤄진 역사 왜곡과 과거 부정에 대한 또 한차례의 사과는 반드시 필요하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역대 내각 입장 계승'을 일본의 입장이라 밝힌 것을 대통령실은 "충분하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이는 2010년 이전의 일이다. 그 뒤로 일본 정부는 수 차례 과거사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일련의 조치들을 취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군사대국화, 군국주의 회귀 움직임까지 보이는 만큼, 한국 정부가 사과한 것이라고 눙치고 넘어가는 것은 일본에 대한 견제를 포기하고 또 하나의 면죄부를 줄 뿐이다.
윤 대통령은 또한 강제동원 해법과 관련해서도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한일 청구권 협정을 언급하며 "이 같은 기조 아래 역대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합당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고 했다.
이어 "1974년 특별법을 제정해서 8만 3519건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 3억 달러의 9.7%에 해당하는 92억 원을, 2007년 또다시 특별법을 제정해서 7만 8000여 명에 대해 약 6500억 원을 각각 정부가 재정으로 보상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의 소송이 아직도 진행 중인 상황임에도 그동안 정부에서 피해자에 대해 충분히 보상을 했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면서 "정부는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합의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으로 제3자 변제안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앞으로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과 유족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법조인 출신이라는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을 또다시 스스로 부정하며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삼권 분립을 훼손한 것은 물론,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2차 가해'를 한 것이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국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은 3·1절 기념사와 3·6 강제동원 굴욕 해법, 3·16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대일 굴종 외교 사태에 대해 자화자찬하며, 국민들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담은 발언들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게 커다란 혜택으로 보답할 것"이라며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세대 청년들에게 큰 희망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이번 굴종 외교가 대단한 결단인 것 마냥 "저는 작년 5월 대통령 취임 이후 존재마저 불투명해진 한일 관계의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왔다"고 말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 한다"면서 마치 한국 국민이 일본에 자신 없는 것처럼 비하성 발언까지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은 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입니까?'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윤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맹폭했다.
안 수석대변인은 "일본이 수십 차례에 걸쳐 반성과 사과를 표했다",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 등의 발언에 대해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할 소리냐"며 "일본 우익의 주장을 듣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는 우리인데 왜 우리가 가해자를 위한 면죄부를 만들어주냐"면서,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우리가 일본에 당당하지 못하고 자신 없게 대했다는 말이냐"고 따졌다.
그는 "배타적 민족주의, 반일 외치며 정치 이득 취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국민과 야당을 파시스트로 매도한 것"이라며 "아무리 자신의 방일외교가 비판받는다고 국민과 야당을 파시스트로 매도하는 대통령이 어디 있냐"고 했다.
그러면서 "제발 정신 차리시라. 잘못된 외교에 대한 비판에 아무리 억지를 부려본들 잘못된 외교가 성공한 외교가 될 수는 없다"며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제3자 배상안을 철회하고 국민께 굴종적 대일외교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경고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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