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코리아타임즈=오주르디] 줄기가 곁가지로, 곁가지가 줄기로 대체된다. ‘성완종 리스트’가 가리키는 것은 이완구나 홍준표, 김기춘이 아니다. 이들은 곁가지다. ‘리스트’가 가리키는 핵심은 2012년 대선 당시 친박 3인방(홍문종-유정복-유병수)이 ‘검은돈’을 받았다는 대선자금 의혹이다.
뒷전으로 밀려난 대선자금 의혹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이었던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7억원을, 2012년 대선 당시 홍문종 의원과 서병수 시장에게 각각 2억 원씩을, 유정복 시장에게 3억을 줬다는 망인의 폭로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폭탄의 ‘뇌관’이다. 불법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질 경우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친박 3인방 의혹’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이완구 3천만 원’과 ‘홍준표 1억 원’, ‘김기춘 10만 달러’가 대신한다. 언론들은 ‘이완구-홍준표-김기춘’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여당은 ‘성완종 특별사면 비리’가 노무현 정부의 소행이라며 맞불 작전에 나선다. 이러면서 본말 전도 현상이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곁가지가 줄기를 밀어내는 형국이다.
포털에 등장하는 기사 개수를 세어보면 ‘이완구-홍준표’ 관련 기사가 대선자금 의혹(홍문종-허태열 등)에 비해 수십 배나 많다.(뉴스타파 조사/4.9~4.20) 사안의 중요성이나 주고받은 액수에 비추어 봐도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비중이 커야 하건만, 며칠 사이에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신속한 본말전도… 곁가지가 줄기, 줄기가 곁가지
부여·청양 재선거에 출마한 이완구 총리에게 건넸다는 3천만 원,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지사에게 줬다는 1억 원, 2006년 박 대통령을 수행해 독일에 갈 때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여비조로 제공했다는 10만 달러, 이런 것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불법대선자금 의혹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지난 대선에서 ‘친박 3인방’의 역할은 컸다. 실질적으로 이들이 ‘박근혜 당선’을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문종 의원의 캠프 직책은 조직총괄본부장. 전국을 지역단위로 나눠 ‘중앙->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에 이르는 피라미드식 조직을 구성해 선거를 관리했다. 당시 언론들은 홍 의원이 주도한 조직총괄본부가 719개 단체를 영입했으며, 60만 명에 달하는 소속인원을 거느린 거대조직이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본부에는 상근직원만 200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정복 인천시장의 당시 직책은 직능총괄본부장. 전국단위의 노조, 운수조합, 버스조합, 택시조합, 비용사협회, 요식업 단체 등등 직업·업종별 조직을 활용해 박근혜 후보의 지지지층을 확보해 나가는 역할을 했다. 많은 돈을 뿌려야 하는 자리다. “직능 분야의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1,000억 원이 필요했다”는 얘기도 있다. 당시 박근혜 캠프 관계자가 언론에게 한 말이니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해도 좋을 듯하다.
많은 돈 필요했을 홍문종-유정복-서병수
서병수 부산시장의 당시 직책은 당무조정본부장. 선거자금과 보급품 조달 등 캠프 살림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었으니 당과 캠프의 살림을 모두 도맡아 관리한 셈이다. 선거자금에 대한 공식적 책임자이기도 했다.
선관위가 규정하는 선거운동 범위를 지키면서 대규모 조직을 동원·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선관위에 신고할 수 없는 지출이 많이 발생했을 거라는 얘기다. 회계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거액의 자금을 외부에서 당겨쓰지 않고는 대선 같은 큰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뉴스타파>가 당시 박근혜 캠프 출입기자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보통 먹으면 한 2만원 3만원 짜리 먹었으니까 100만 원은 최소 넘어갔을 것 같은데요. 그걸 거의 정기적으로 자주 했으니까 액수가 꽤 돼죠? 저희가 농담으로 이걸 어떻게 신고하냐고, 이거 걸리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하하하 웃고 대답 안 했던 것 같아요.”
치부 감추기 위해 동원되는 꼼수들
언론은 ‘이완구-홍준표-김기춘 의혹’에 집중하고, 새누리당은 ‘성완종 특별사면’을 노무현 정부가 주도했다며 비리 의혹을 제기한다. 대통령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이번 의혹을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확대함으로써 논지를 희석시키려 한다. 법무부장관은 전 정권 비리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검찰은 ‘이완구와 홍준표가 먼저 소환대상’이라고 말한다.
이러는 이유는 뻔하다. ‘성완종 리스트’가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 불법자금 의혹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일차 목표일 것이다. 또 불가피하게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질 경우 ‘우리만 당하지 않겠다’는 게 그 다음일 터, ‘야당도 불법자금 받았다’는 근거를 찾아내 맞불 작전을 펴서라도 최소한 ‘비기기 게임’으로 몰아가겠다는 꿍꿍이다.
조그만 꼬리로 큰 몸통을 가리려 하고, 작은 곁가지로 굵은 줄기를 대신하려 하고, 사소한 것으로 중요한 것을 덮으려 한다. 치부를 감추기 위한 다양한 꼼수가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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