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하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이 글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으로 인해 음식점이 매출 감소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경제적 손실을 입은 일부 음식점과 특정 업종의 사례를 부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김영란법으로 인한 매출 손실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울 뿐, 그 손실 자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법 시행 전에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 그것은 지금 보면 많이 부풀려진 '과장된 공포'였다는 것을 짚어보기 위한 기사입니다. 대표적인 공포 가운데 하나는 음식업종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다 망할 것이란 내용이었습니다.
● "김영란법 시행되면 음식업 8.5조 원 피해"
지난해 6월 20일 이런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라고, 전경련 유관 기관에서 낸 것입니다. 음식업에서 8조5천억원 피해가 난다는 것은, 법이 시행되면 향후 1년간 매출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금액이냐 하면,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전체 음식점 매출이 2015년 기준으로 89조원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1년에 8조5천억원 매출이 준다는 건 우리나라 모든 음식점의 매출이 10% 가까이 줄어들 것이란 뜻입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니까, 음식점 하는 분들은 가슴이 덜컥 할 만한 기사였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이 자료를 인용한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기사 제목은 골프장과 선물 업계의 추정 손실액을 합쳐 1년에 11조6천억원이 손해라는 식이었습니다. 연구원은 ‘2016 시장경제연구백서’에서 이 자료가 여러 매체에서 132번 인용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의성 있는 연구와 스테디셀러를 배출"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8조5천억이란 금액은 당시 청탁금지법을 반대하는 주요 근거가 됐습니다. 하지만 계산 방식은 사실, 주먹구구식이었습니다. 당시 ‘한겨레’가 이 부분을 잘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3만원 넘는 음식은 매출이 다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 것은 황당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 지금은 인터넷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 홈페이지에도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보고서 작성자는 지금 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물어보니 당시 보도자료만 내고 보고서는 출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보고서를 내린 것이 아니라, 보고서를 처음부터 올리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보고서는 공식적으로 완성된 적이 없지만, 수많은 언론에 인용된 아주 특별한 보고서였던 셈입니다. 보고서를 쓴 사람은 당시 보고서를 급하게 쓴 데다 외부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다 보니, 내부 논의 끝에 보고서를 출판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 매출 10% 줄 거라더니…실제로는 1.3% 줄었다
과거 전망이 현실과 맞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건 대개 덧없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국내 모든 음식점 매출이 10%는 줄 것이다, 이게 3만원 넘는 음식은 매출이 다 사라질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였다는 것은 말씀 드렸는데, 실제로 3만원 넘는 음식을 찾던 사람들은 당연한 얘기지만 절식하지 않았으며, 약간 저렴한 음식을 찾았습니다. 일반 음식점 2,037곳 주인들은 평균적으로 매출이 1.3% 줄었다고 답했습니다. 법이 지난해 9월 말 시행됐으니까,10월 매출이 지난 1~9월보다 얼마나 줄었느냐고 물어본 결과입니다.
매출이 1.3% 줄었다는 것은, 농촌경제연구원이 한국외식업중앙회와 함께 조사한 ‘2016 외식업 경영실태 조사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현재까지는 이 보고서가 가장 신뢰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조사 대상 음식점이 수천 곳으로 많고, 식당 주인들을 직접 만나 대면 조사했으며, 음식점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외식업중앙회가 조사 과정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를 쓴 사람은 “김영란법이 음식업계 전반에 미친 쇼크가 클 줄 알았는데, 실제로 조사를 해보니 영향은 미미했다”고 말했습니다.
● "내 주변 식당은 다 죽겠다는데, 무슨 소리야?"
8뉴스에 기사가 나갔는데, 이런 댓글이 많았습니다. 저도 주변에서 들었습니다. 실제 매출 손실로 식당들이 힘들어한다는 보도도 한편에선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매출이 1.3% 줄었다는 건 일반 음식점 2,037곳의 '평균'일 뿐이니까요. 특히 접대 장소로 많이 찾는 한식당의 경우엔 상권에 따라 매출 감소가 두드러졌습니다. 음식점 2,037곳 가운데 한식당은 1,239곳이었는데, 그 가운데 ‘유흥상업지’에 있는 한식당 34곳(조사 대상의 2.7%)은 매출이 12.8% 줄었다고 답했습니다. ‘오피스’ 지역의 한식당 17곳(조사 대상의 1.4%)은 6% 떨어졌습니다. “내 주변 식당 다 죽겠다는데”는 이런 지역의 음식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상권의 한식당 매출은 하락폭이 크지 않았습니다. ‘저밀도 주거지’의 한식당 508곳(조사 대상의 41%)은 2.3% 떨어졌다고 했고, ‘일반상업지’의 한식당 446곳(조사 대상의 36.0%)은 청탁금지법 시행 뒤 10월 매출에 변화가 없다고 했습니다. ‘고밀도 주거지’ 139곳(조사 대상의 11.2%)은 1.3%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한식당 전체 1,239곳의 평균을 내면 -1.5%로 나오는데, 일부 상권의 한식당은 실제로 매출에 타격이 왔지만, 한식당 업계 전체가 흔들린다는 표현은 실제 데이터와 다릅니다. 이 데이터는 식당 주인들의 ‘응답’을 기초로 한 것이고, 매출을 증빙하는 서류를 냈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 "김영란법 시행 두 달, 한정식 일식당은 폐업하는가"
법 시행 뒤에도 식당의 위기를 강조하는 기사는 꾸준히 나왔습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외식업중앙회의 부설 기관)의 2016.11.29 보도자료 제목입니다. 조사한 한식당의 숫자는 279곳입니다. 매출이 줄었다고 응답한 곳이 169곳, 60%에 달합니다. 매출이 얼마나 줄었느냐고 물었더니 평균적으로 31%,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한정식 폐업하는가”라는 제목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상권에 따른 데이터는 없습니다. “31% 매출 감소”, 이것 역시 식당 주인들의 ‘응답’을 기초로 한 것인데, 앞서 ‘외식업 경영실태 조사보고서’가 식당 주인들을 직접 만나 조사했다면, 이 외식산업연구원의 조사는 인터넷과 전화를 통한 자체 조사였습니다. 참고로, 외식업중앙회가 음식점들의 실제 매출 감소액을 집계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 "매출 31% 줄었다"는데…법인카드 결제액은 2.3% 증가
“매출이 31% 줄었다”는 것과 공존하기 힘든 데이터를 소개해 드립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농식품 분야 영향과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냅니다. 보고서는 법 시행 전후 한식당에 대한 영향을 보기 위해 법인카드 사용 실적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조사 대상은 승인실적 규모를 기준으로 한 상위 3사(비씨카드, 신한카드, 삼성카드)입니다. 접대에 주로 쓰이는 법인카드 승인실적을 모두 받아서, 청탁금지법이 실제로 한식당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추정한 겁니다. 모든 카드사 데이터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법 시행이 2016년 9월 말. 그래서 2016.10~2017.5 한식당 법인카드 승인금액을 전년도 같은 기간인 2015.10~2016.5과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법인카드 승인금액이 전년도보다 2.3% 늘어난 걸로 나왔습니다. 한식당 주인들은 매출이 31% 줄었다는데, 법인카드 사용액은 오히려 늘어난 걸로 나온 겁니다. 보고서는 “법 시행 이후 한식당의 법인카드 사용액은 시행 이전에 비해 3% 포인트 감소했다”고 표현했는데, 잘못된 표현입니다. 법인카드 사용액은 증가한 것이 사실이고, 그 사용액의 증가폭(그래프의 상승 기울기)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 좀 더 보듬어야 하는 업종들
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는 올해 1월 설 선물세트 판매액도 집계했습니다. 지난해 설보다 판매액이 1,242억원(25.8%) 감소한 걸로 나왔습니다. 한우는 2016.10~2017.3 도매거래량이 전년 동기보다 줄었는데도 가격은 9.5% 하락했다고 했습니다. 공급량이 줄었는데도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수요가 더 줄어든 것 같다고, 보고서는 진단했습니다. 법 시행으로 사과는 2017.1~4에 12.2% 가격 하락, 배는 16.0% 가격이 떨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화훼, 특히 ‘난’도 2016.9.28~2017.5.19 기간에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14% 하락했습니다. 통계는 없지만, 동네에서 떡집하는 분들도 선물떡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음식점과 별도로, 피해가 비교적 또렷하게 나타나는 업종들입니다. 국민권익위는 이런 경제적 효과를 종합해서 올해 안에 대안을 마련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세용 기자psy05@sbs.co.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