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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February 6, 2012

“개와 기자는 출입금지? 부끄러웠습니다… MBC-KBS 후배님, ‘분노의 화살’ 되어야”


“개와 기자는 출입금지? 부끄러웠습니다… MBC-KBS 후배님, ‘분노의 화살’ 되어야” [정연주의 증언73] 자유언론을 위한 싸움 벌이는 후배들에게
(오마이뉴스 / 정연주 / 2012-02-07)

▲ 폭설 이후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친 가운데 1일 오후 김재철 MBC사장의 연례 업무보고가 예정된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앞에서 총파업 중인 MBC노조원이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김재철 퇴진!” 구호가 적힌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지금부터 40년 전, 이 땅에 ‘10월 유신’이라는 괴물이 등장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유신헌법’을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죽음’이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가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어용기관에 의한 간선제로 바뀌었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4년에서 6년으로 연장되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은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되었습니다. ‘유신정우회’라는 이름의 국회의원들이었습니다.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사라지고, 지방의회도 폐지되었습니다. 암흑천지가 되었습니다.

그 칠흑 같은 암흑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유신체제는 철옹성처럼 강고해 보였습니다. 그 암흑의 시대인 1973년 10월 젊은 대학생들이 온몸으로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계란 같은 자신들의 여린 몸을 유신이라는 바위 덩어리에 던졌습니다. 깨어지고, 부서졌습니다. 학교에서 제적되고, 강제 징집되어 끌려가고, 고문당하고,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철저하게 침묵했습니다. 요즘이라면 트위터나 인터넷을 통해 소식이 전달되겠지만, 그때는 제도권 언론이 입을 다물면 뉴스가 전달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침묵과 굴종의 늪에 빠진 언론에 대한 질책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사건기자로 대학 데모를 ‘취재’했습니다. 말이 ‘취재’지 기사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크낙새 한 마리 나타났다고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데모 기사나 억울하게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신문사 앞으로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와 ‘잠에서 깨어나라”고 외치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모교에서 데모가 있었습니다. 좀 늦게 현장에 갔더니 데모는 이미 끝나고 학생들은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농성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성명서도 얻고, 이야기도 좀 들어보려고 농성장에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농성장 입구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개와 기자는 접근 금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 하늘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부끄럽고, 기자라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분노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게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낀 것은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동료·선배들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 부끄러움과 분노가 쌓여 마침내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 피디, 아나운서들이 자유언론의 횃불을 들게 되었습니다. 자유언론을 되찾아 오기 위해, 아니 그 이전에 무엇보다, 다 망가져 버린 우리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일매일이 전쟁터 같았지만, 환희였습니다

▲ 1975년 3월 17일 새벽 사주측이 동원한 술 취한 폭도들에게 강제 축출되기 직전 동아일보사 편집국에서 마지막 ‘자유언론 만세’를 외치는 기자들과 사원들.ⓒ 동아투위 
그리고 우리는 매일매일 힘겹게 싸우면서 잃어버린 자유언론, 잃어버린 자긍심을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매일매일이 전쟁터와 같았지만, 그 매일매일은 환희였습니다.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사실보도’를 하는 것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이듬해 봄, 결국 우리는 모두 쫓겨났습니다. 박정희 유신정권, 그리고 그 정권에 굴복하고 유착한 <동아일보> 경영진이 우리의 손에서 펜과 마이크를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들판에서 살았습니다.

들판에서 살면서 때로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하고, 수배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떳떳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역사 앞에 떳떳했습니다. 지금 이 나이 되어 40년 전의 일을 되돌아보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아도, 후회는 없습니다. 다시 그런 일이 온대도 그 길을 다시 가게 될 겁니다. 그게 옳은 일이니까요. 그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길이니까요.

당신들이 다시 힘든 싸움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으면,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작거부’라는 힘든 선택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MBC 노조원들은 지난달 30일 제작거부에 들어가면서 “국민에게 석고대죄 드린다”고 했습니다. “공영방송 MBC는 MB방송 MBC가 되었으며, 국민의 방송 MBC는 정권의 방송 MBC가 되었”기에, “더 이상, 뉴스데스크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진실을 전할 수 없으며 더 이상, PD수첩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격자로 역할 할 수 없기에 국민여러분 앞에 석고대죄 드린다”고 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부터 닷새 동안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를 이끌어 온 박성호 MBC 기자회장은 “현재의 뉴스는 아마도 군사정권 때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싸움을 “뉴스의 기본을 하고, 정상화하기 위한 조건을 위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6일 자 <한겨레> 1면에 실린 익명의 MBC 기자가 쓴 글을 보면 MBC 안에 어떤 일이 벌어져 왔는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저항하면 해고와 징계를 받고, ‘강경분자’로 낙인찍히면 한직을 떠돈다고 했습니다. “아무개는 강경파라 민감한 자리에 둘 수 없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기자들이 어떤 식으로 취재를 해오든 결국 결과물은 윗선의 의도대로 짜 맞춰진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부와 경제부 기사에서는 일선 기자가 쓴 원본을 따로 보관하지도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그 이유가 참으로 어이없게도 ‘번거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을 할 때 <워싱턴 포스트>에서 목격했던 일입니다. 기자가 원래 쓴 기사를 부장이 손질할 때 그 흔적이 반드시 남도록 했습니다. 그냥 원고를 지워 버리는 게 아니고 원래 쓴 기사를 가운데 줄로 지우고, 그다음 고친 부분을 기록하고 그 원본을 보관했습니다. 나중 책임 소재를 따질 때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MBC에서는 그 흔적을 다 지운다니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가려고 그러는 모양입니다. 참으로 용렬하고도 비겁한 짓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중간 간부로 있으면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한미FTA처럼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기사는 ‘다른 기사가 많아 들어갈 자리가 없다’, ‘어제와 크게 달라진 것 없지 않으냐’며 주요 시간대에 다루지 못하게 하였고,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처럼 차마 내칠 수 없는 큰 논란들은 ‘콤팩트하게’ 청와대와 여권 해명을 위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공영방송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



MBC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KBS에서도 비슷한 일은 반복되어왔지요. 그래서 KBS의 젊은 기자, 피디들이 견디다 못해 2010년 7월에 한 달 가까이 파업을 했습니다. 그때 파업을 주도했던 새 노조 집행부 등 13명에 대해 KBS 경영진은 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인 지난달 30일 ‘느닷없이’ 중징계의 칼을 휘둘렀습니다.

엄경철 전 새노조위원장과 이내규 전 부위원장에게 정직 6개월을, 성재호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정직 5개월의 중징계를 내리는 등 모두 13명에게 무거운 징벌을 가했습니다. 그러자 징계를 받은 13명은 2월 1일, ‘김인규 심판의 화살이 되리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10년 7월, 우리는 MBC 동지들처럼 차마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부끄러움에 우리 일천여 조합원은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파업이 한 달이 되리라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 특보사장 무리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파업에 불법이라는 ‘딱지’를 제멋대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징계를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 흐르는 이 무도한 시대에 ‘징계’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초조함과 두려움에 떠는 자들은 징계받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징계를 내린 저 특보사장 무리들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MBC 동지들이 배수진을 치고 관제 사장 김재철 퇴진을 위한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모든 언론사 동지들이 어깨를 걸고 MB정권의 방송장악을 깨뜨리고 하수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에 나설 때입니다. 우리 13명은 특보사장 김인규를 심판하기 위한 화살이 돼 날아갈 것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KBS 보도본부의 31기(2005년 1월 입사) 기자 21명이 MBC 기자회가 제작거부 투쟁에 들어가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MBC 기자회가 그제부터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했습니다. 달랑 15분짜리 MBC ‘뉴스데스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복잡합니다. 더 이상 창피해서 뉴스를 만들 수 없다는 그들의 염치와 분노는 사실 우리가 느껴왔던 감정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마땅히 보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뉴스가 단지 권력자들에게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축소되거나 아예 취급되지 않습니다. 수준 높은 탐사 보도는 언감생심입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는 언론 본연의 기본적 역할마저 멸종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기자들은 지치다 못해 무감각해졌습니다. 문제의식조차 증발했습니다. 우리에겐 냉소와 환멸, 자기 검열만 남았습니다.”


31기 기자들의 성명 발표가 있고, 그 뒤 새 노조 집행부 13명에 대한 중징계가 내려지자 2월 6일 33기(2007년 1월 입사) 기자 23명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들불이 번지는 양상입니다.
33기 기자들은 새 노조 집행부 13명의 징계에 대해 “1년이 훌쩍 넘은 합법 파업을 징계하는 그 집요함, 참 징그럽다”고 비꼬았고, 이화섭 신임 보도본부장에 대해서는 “대놓고 MB 편드는 뉴스만은 하지 말자며 보도본부장 바꾸자 했더니, 전임자를 묵묵히 뒤따르신 분을 찍어 보내는 무식함, 참 대단하다”고 야유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 사유도, 절차도, 수위도 비상식적인 징계는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 ▲ 권력의 눈치만 보는 인물의 본부장 임명은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 ▲ 취재 현장의 후배들이 돌이나 맞게 만든 인물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밝히고, “기자협회와 노동조합, 동료와 선후배들의 확고한 대응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나꼼수’와 ‘뉴스타파’가 사랑을 받는 현실은…
▲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MBC노조원들과 시민들이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며 영정사진을 들고 노제를 지내고 있다. MBC노조원들은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제작거부 파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MBC와 KBS에서 나오는 저항의 소리를 모아보면 지금 방송의 현실이 어떠한지가 너무나 분명하게 보입니다. 비정상입니다. 도무지 언론이라 칭하기도 힘든 일들이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언론사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나는 꼼수다>와 <뉴스타파>와 같은 ‘장외 방송들’이 많은 국민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방송이 제 구실을 했다면 이런 방송들이 왜 생겨났겠습니까.

이렇게 방송과 언론 상황을 참담하게 만든 무리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납니다. 참 어리석은 무리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저들의 세상이 천년만년 가는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인사들이 그렇듯 저들도 오만과 독선에 눈이 멀어 세상 일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똑히 보십시오. 이명박 정권을 떠받들어온 핵심 인사들이 지금 어떤 처참한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권력을 탐하면서, 국민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오만과 독선의 끝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MBC와 KBS의 지금 지도부에게 이명박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맞고 있는 추한 모습과 처참한 말로는 엄중한 경고가 될 것입니다. 세상을 참으로 호락호락하게 보는, 그래서 국민을 참으로 우습게 아는 그들의 행태는 꼭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그것을 무섭게 가르쳐왔습니다.

‘자유언론’의 선한 싸움에 나선 젊은 후배들



감봉, 정직, 해직 그런 것들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런 악행들을 통해 가해자들의 야만성과 폭력, 무지와 오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고, 그것을 통해 가해자들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4년이 그것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통해 역사는 진보하게 됩니다. 불가에서 역행보살(逆行菩薩)이라고 하지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글머리에 40년 전의 이야기를 시작한 연유는 간단하답니다. 지금의 세월이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많이도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젊은 후배들이 '우리들의 젊은 시절'처럼 당당하게 권력과 그 권력의 앞잡이들에 맞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든든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바깥에서 주어지는 자유언론이 아닌, 스스로 싸워서 쟁취하는 자유언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꼭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날씨가 차갑습니다. 그러나 선한 싸움에 나선 젊은 후배들의 동지애는 여름 뜨거운 열기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보내면서, 그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고은 시인이 절규하면서 썼던 ‘화살’을 적어 보냅니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십 년 동안 가진 것
몇십 년 동안 누린 것
몇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정연주 / 전 KBS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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