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검찰의 수사가 위법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결과를 달성했다는 이유로 수사는 제어되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지경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검찰의 위법수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파헤쳐본다.
“무슨 일로 온 줄 알지?” 2013년 9월 4일 0시20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PC방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ㄱ씨에게 수갑을 채워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로 데려갔다. 임의동행 동의서에 서명하고 손도장도 찍었다. 임의동행이란 영장에 의한 체포가 아니라 자신이 오고 싶어 왔다는 뜻이다. 수갑을 찬 사람이 그런 서류에 사인을 했다. 어쩌면 ㄱ씨는 임의동행이 무슨 뜻인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ㄱ씨는 경찰의 요구대로 소변과 모발을 냈고, 소변·모발 채취 동의서에 서명하고 손도장을 찍었다. 간이시약 검사 결과 필로폰 양성반응이 나오자 검사 결과에도 서명하고 손도장을 찍게 했다. 경찰은 ㄱ씨를 긴급체포하고, 검찰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마약을 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ㄱ씨에 대한 수사가 위법하다며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형사절차 개선이 인권 발전의 역사
재판부는 “경찰관들이 ㄱ씨를 연행한 것은 형사소송법 절차를 무시한 위법한 체포이고, 위법한 체포상태에서 이루어진 소변·모발 채취도 위법하며, 그에 기초한 감정 결과 회보도 위법수집 증거다. 임의동행 동의서, 소변·모발 채취 동의서, 간이시약 검사 결과 시인서 모두 위법수집 증거라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왜일까. ‘미란다 고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떤 국가도 범죄의 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해 형벌을 가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수사과정이 가혹해지고 인권침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범죄를 찾아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국가가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는 셈이고, 오인까지 한 경우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된다. 구타 등 고문으로 수집한 명백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인류의 발전의 역사는 형사절차 강화의 역사”라고도 한다.
미란다 판결이 1963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나올 때도 시민들의 반발이 있었다. 당장 대법관들부터 반대했다. 당시 판결은 다수의견 5명에 반대의견이 4명이었다. 이들은 “점차 증가하는 범죄에 국민들의 우려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매우 위험한 사법실험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위대한 결정은 국가의 폭력을 제어하는 세계의 장치가 됐다.
최근 한국의 검찰 수사가 위법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검찰은 범죄현장의 경찰 수사를 감독하는 게 본래의 역할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수사에 직접 나서면서 위법에 노출돼 있다. 문제는 법원조차 위법수사를 모르는 체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도 다르지 않아 ‘우리편에게 불리하다’는 진영논리에 바탕한 비판을 하거나, 증거와 절차의 문제임에도 ‘판사들을 바꿔야 한다’는 정치적 구호만 외친다.
최근 수사현장과 형사재판에서 급격하게 불거진 문제는 ‘싹쓸이 압수수색’과 ‘끝없는 대면조사’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법원이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서 상황이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검찰의 과욕을 제어하지 않으면 조만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최근 가장 심각하게 지적되는 것은 디지털 정보 압수수색이다. 디지털 정보가 크게 늘어난 사회적 배경 이외에도 검찰 내부의 사정과도 관계가 깊다.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00년대 이전에는 구속영장을 청구만 하면 대부분 발부됐다. 구속되면 직장인은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장사하는 사람은 가게문을 닫았다. 상황이 이러니 검사가 요구하는대로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없는 혐의라도 만들어 자백하는 게 나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법원이 불구속 원칙을 내세우면서 구속률이 낮아졌다. 검찰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불법적 압수수색은 이 시점에서 시작됐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가 뭐라도 터는 것이다.”
디지털 정보 싹쓸이 압수수색
수원지검 강력부는 2011년 주식회사 종근당의 배임 혐의를 수사하겠다며 수원지법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 받았다. 영장의 범위는 이장한 회장의 배임 혐의에 관한 의심되는 기록이었다. 수원지검은 종근당 빌딩에서 저장매체를 좀 보다가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로 가져가는 게 낫겠다며 들고 나왔다. 하지만 수원지검은 이 저장매체를 이른바 ‘이미징 작업’을 통해 통째로 복제했다. 검사는 이후 자신의 외장하드에 다시 복제했다.
수사가 시작된 이유인 배임 혐의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실제로 검찰은 종근당 이 회장을 결국 배임 혐의로 기소했으나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났다. 당시 이 배임 수사가 진척되지 못하자 검찰은 약사법 위반이나 세금 문제 같은 것들을 들춰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정보들을 압수한 디지털 자료에서 불법적으로 출력했다. 또 이를 재판에서 쓰게 하려고, 같은 검찰청의 특수부 검사에게 이 출력물을 압수하라고 했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강력부 검사실의 자료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고, 수원지법은 관행대로 발부했다.
그러자 종근당 측은 영장 발부가 잘못된 것이라며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다른 회사 같으면 검찰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며 넘어갔을 일이다. 더구나 판사들도 그동안 영장을 내줘 왔던 일이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주심인 김소영 대법관은 사건의 심각성을 알아보고는 곧바로 전원합의체에 보냈다. 디지털 매체 압수수색에 대한 범위와 한계를 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부 대법관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검사 출신 박상옥 대법관이 수사 현실을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대의견을 냈다.
한명숙에 돈 준 한만호 73번 불러
결국 토론 끝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7월 16일 디지털포렌식센터로 옮겨진 이후의 모든 과정은 위법이고, 복제본은 모두 불법압수물이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전자정보는 복제가 용이해 저장매체 또는 복제본이 압수·수색과정에서 외부로 반출되면 압수·수색이 종료된 후에도 복제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가 수사기관에 의해 다른 범죄 수사의 단서 내지 증거로 위법하게 사용되는 등 새로운 법익 침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늦었지만 2008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가장 명쾌한 불법수사 제동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검사가 영장에 없는 혐의라는 이유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다. 검사실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시간이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데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무조건 보장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반응했다. 하지만 디지털포렌식에 정통한 한 수사 관계자는 “지금 디지털 정보검색이 얼마나 발전돼 있는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한다. 파일을 일일이 열어서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를 걸러낼 수 있다. 수사기관에서 이미징을 뜨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했다.
“법과 양심에 따라서 현명한 결정을 해준 사법부에 감사드리고 국민과 함께 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 2011년 10월 31일 민주당은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이렇게 밝혔다. 그러다가 지난 8월 20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수감되기 전에는 이렇게 말했다. “사법정의가 이 땅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 장례식을 가기 위해 상복을 입었다.” 처연해 보이는 백합도 들고 있었다. 민주당에서 이 사건에 관여했던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무슨 사법부가 유리하면 존경하고 불리하면 장례식장 보낼 곳이냐.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고도 이념으로 덮어씌운다. 자기만 옳다는 선민사상이다.” 그의 말대로 한 전 총리는 돈을 받았다는 증거에 따라 유죄를 선고받고 옥에 갇혔다.
대법원의 유죄 선고 직후 법원 내부 형사판사들 사이에서는 한 전 총리의 유죄는 별론으로 하고, 불법적인 수사에 경고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얘기가 강하게 나왔다. “한명숙 사건에서 검찰 수사가 명백히 불법인데 대법원이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주심인 이상훈 대법관이 2년 동안 사건을 붙잡고 재판을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대법원에 아는 사람이 있는 판사들은 알음알음 물어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어쨌든 돈을 받았다는 결과 앞에서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를 견뎌야 했다.
“기록을 보면 한명숙씨에게 정치자금을 줬다는 한만호씨가 7개월 동안 73번 검사에게 불려갔다. 사채업자도 이렇게는 사람을 안 찾는다. 남녀가 연애를 해도 이렇게 자주는 안 만난다. 더구나 조서나 자술서 같은 기록이라도 남긴 것은 5번에 불과하다. 나머지 68번은 검사와 주먹질을 했는지, 술을 마셨는지, 편하게 잠을 잤는지 기록이 없다. 이것이 불법이 아니면 무엇이 불법인가. 대법원은 2년 동안 무엇을 했기에 이 부분에 한마디도 않은 것인가.”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중견 법관들의 얘기다.
112에 전화를 해도 녹음이 되고, 파출소 화장실을 빌려 써도 폐쇄회로(CC)TV에 남는다. 수사기관은 그런 곳이다. 수사는 인권침해 요소를 내재하기 때문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 특히 검찰에 불려간 누군가의 진술조서로 다른 사람을 기소하고 벌주어 가두려면 문제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한만호씨는 재판에서 검찰청에 불려간 68번에 대해 변호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혹행위를 당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초밥도 사주고, 너무 잘해주셨다.” 그는 당시 자신의 유죄 때문에 형을 살고 있는데, 검사가 편한 곳에 불러 초밥을 사먹인 셈이다.
73번 부르고도 조서기록은 5번만 남겨
현행법에 비춰봐도 불법이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 4에는 ‘피의자가 아닌 자를 조사할 때 조사장소에 도착한 시각, 조사 시작과 종료 시각, 진행 경과 확인에 필요한 사항을 조서나 서면에 기록한 후 수사기록에 편철해야 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조사 조서를 남기지 않은 검찰의 68차례 조사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한 현직 판사는 “68번의 불법조사 때문에 나머지 5번의 조사에서 나온 조서까지 증거능력이 없어진다는 이론도 가능하다. 증거물은 각각 합법과 불법으로 나눠 독립적일 수 있지만 하나의 경험에서 나온 사람의 진술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소수의 의견이지만 한만호씨가 법정에서 한 진술보다 검찰에서 한 진술을 믿은 현재 대법원 판결은 전제부터 무너질 수도 있다. 검찰진술의 증거능력이 사라지면 재판에서 아예 쓰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한만호씨는 68차례 조사에 대해 법정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조사를 반복하면서 같은 내용을 질문하고 확인했다. 그러는 사이에 수표도 나오고 틀린 부분이 나오고 했다. 한동안은 특별히 하는 것은 없었다. 검찰에서는 심경에 변화를 일으킬까봐 체크하기 위해 부르지 않았나 싶다. (한명숙 재판이 임박한) 2010년 9월이 넘어서는 집중적으로 문답을 반복했다.” 한만호씨는 법정에 가서 돈을 주지 않았다고 진술을 뒤집었지만, 1억원 수표가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사용한 정황이 나오면서 9억원 전체가 유죄가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검사는 바보가 아니다. 진술이 핵심인 이런 사건에서 주요 참고인을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편의를 제공했다면 그것도 문제다. 검사는 참고인이 진술을 뒤집으면 그대로 존중해서 이유와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 유죄를 받겠다는 생각으로 진술이 바뀌지 않도록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사람을 부르고 새벽까지 함께 있는 것은 정당한 수사가 아니다.” 법조계 다른 관계자의 얘기다. “2009년 용산사건 재판 때 검찰 기록을 내지 않았다. 학계에서 대부분 위법하다고 봤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고 사람을 70번 가까이 부른다. 글이든 영상이든 기록되지 않는 곳에서 조사를 받다가 피의자가 맞아 죽었고, 재벌 회장과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것 아닌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