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정호성 '휴대전화 녹음파일' 11건 공개
재임 기간 녹음파일은 9건..모두 합쳐 30분 분량
최순실, 정호성에게 정홍원 국무총리 압박도 지시했다
재임 기간 녹음파일은 9건..모두 합쳐 30분 분량
최순실, 정호성에게 정홍원 국무총리 압박도 지시했다
(시사저널=특별취재팀: 구민주·김종일·김지영·오종탁·유지만 기자)
시사저널은 지난 5월17일 '박근혜-최순실-정호성 90분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를 작성하는 현장에서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녹음한 파일이었다. '비(非)공직자' 최순실씨가 얼마나 깊숙이 국정에 개입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파일이었다. 파장은 컸다. 말로만 듣고 짐작만 했던 최씨의 국정농단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90분 파일' 공개 후 논란은 뜨거웠다. '국정농단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최순실이 대통령 같다'는 등 대부분 놀람과 분노 섞인 반응이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박 전 대통령 사면론'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선 '녹음파일 조작'과 '대통령 취임 전이라 문제 될 것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심지어 '현 정부의 공작(工作) 아니냐'는 억측까지 있었다.
이에 본지는 이번 호에서 단독 입수한 정호성 휴대전화 녹음파일을 추가로 공개한다. 몇몇 음모론과 억측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다. 추가로 공개하는 파일 역시 검찰이 압수했던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 녹음됐던 것이다. 시점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다. '90분 파일'이 서울 모처에서 녹음된 것이라면, 이 파일은 '최순실-정호성' '박근혜-정호성' 간 전화통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순실, 휴대전화·이메일 통해 국정 주물러
시사저널이 추가로 공개하는 녹음파일은 11건. 전화통화 내용으로 볼 때 이 가운데 9건은 2013년 10~11월 사이 이뤄진 녹음들로 추정된다. 나머지 2건은 2012년 대선후보 시절로 보인다. 녹음 시간을 모두 합하면 30여 분이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 박 전 대통령 등과의 전화통화를 수시로 녹음했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국정농단을 자행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업무 지시'를 내렸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 취임사 문구 작성을 진두지휘한 이후 단순한 '스피치 라이터'에 머무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말과 글을 주무르며 국정에 쉴 새 없이 관여했다. 대통령 메시지와 정책은 물론 정무, 일정 등 전방위로 개입했다. 해외에 나가서도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정도였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보다 최씨와 통화할 때 더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최순실씨의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를 보면, 최씨는 당초 "컴퓨터를 못 다룬다"며 박 전 대통령 연설문을 이메일로 받은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다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말을 바꿨다. 정 전 비서관은 이메일을 통해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자료를 최씨에게 보낸 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자료 송부 사실을 알려줬다. 최씨는 자료를 검토·수정하고 다시 이메일로 정 전 비서관에게 수정본을 송부한 다음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 11월22일 저녁 정호성 전 비서관의 전화 녹음파일에서 이같은 정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최순실씨(이하 최): 대수비(대통령 주재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때 각 분야에서 체크하고 이런 걸 소상히 문제점들을 올려 주셔가지고 적극 대비하고 내가 이렇게 해 준 거에 대해서 여러분이 그동안에 한 해를 넘기면서 노고가 많았다.(중략) 그렇게 슬쩍 넘기고요….
정호성 전 비서관(이하 정): 예 예.
최: (대통령 연설문 자료가 첨부된) 메일이 잘 안 열려. 그거 넣고….
같은 날 녹음된 또 다른 파일엔 최씨가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안 통과와 예산안 반영을 챙기는 모습도 담겼다. 최씨는 마치 본인이 대통령인 양 감정을 이입해 가며 외촉법 이슈에 집착했다.
최: 여야가 합의해서 해 달라고 내가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렇게 예산을 묶어둔 채 정쟁을 하는 거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고 국민한테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고 보는데…. 계속 1년 동안 이렇게 하는 것이 야당한테, 이게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의도가 뭔지. 이런 식으로 한 번 하고요. 그다음에 지금 12월2일로 예산이 풀리지 않으면 지금부터 해 가지고 하지 않으면 이 예산이 지금 작년 예산으로 돼서 특히 새로운 투자법(외촉법)이나 국민 그거를 못 하게 되는데, 이거를 본인들 요구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을 볼모로 잡고 이렇게 하는 거는 국회의원이나 정치권에 무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고 책임져야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좀 하세요.
정: 근데 선생님 한 가지…. 원래 12월2일까지 하도록 돼 있는데요. 지금 권고기일 12월2일까지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12월30일 됐었는데요.
최: 아니, 그렇더라도, 그렇더라도…. 12월까지 안 하면 우리가 외국인투자법이나…. (중략) 맨날 야당에서는 여기서 그런 걸….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안 고쳐진다고 이렇게 하면서도 전혀 협조를 안 해 주니까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이보다 닷새 전인 2013년 11월17일 최씨가 정 전 비서관에게 "외촉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어느 정도의 일자리와 경제 이득이 생기는지 자료를 뽑아 달라"고 주문한 것도 고스란히 녹음됐다. 그다음 날인 2013년 11월18일,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외촉법이 통과되면 1만4000여 명의 일자리와 약 2조3000억원 규모 투자가 창출된다고 언급했다. 당시 외촉법 개정안은 여야 간 대립 끝에 2014년 1월1일 통과됐다.
최씨는 정 전 비서관에게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를 압박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최: 그리고 그 저거 있잖아. 관련 그거 안 된 거. 몇 가지만 고쳐서 써요.
정: 근데 선생님, 그 정홍원 총리한테 다 얘기를 해서…. 그게 또 똑같은 거….
최: 아니, 그래서…. 그건 꼭 해 줘야 된다고, 그거는…. 그래서 중요한 거기 때문에 또 얘기드린다고….
정: 예, 알겠습니다.
녹음파일에는 유민봉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등장한다.
최: 그 목요일 거 다 마무리해 갖고 하면 써 주세요.
정: 예 예, 알겠습니다. 그 ○요일은 일단 또 유민봉 수석한테 한 번 좀 준비를 하라고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최: 예. 그렇게 해 보라 그래야지. 안 되고 있는 거 해야 될 거.
검찰이 확보한 다른 '정호성 녹음파일' 중엔 최순실씨가 정홍원 총리의 대국민 담화 시간을 결정하는 부분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일정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녹음파일을 계속 들어보자.
최: 그럼 그건 안 가는 걸로 하면 되지? OO은?
정: 쓰읍…. 지금 안 가시는 걸로 되어 있고요. 가시는 걸로 지금 변경하시는 건데요.
최: 한 번 얘기해 보라고.
정: 아…. (난감해하며) 지금 안 가셔도 됩니다. 안 가셔도 되는데…. 지금 (청와대) 경제수석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계속 꼭 좀 가셨으면 하는 요청들을…. 재고해 주셨으면 하는 요청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략)
정: 선생님, 그러면 다시 한번 좀 상의를 해 보고 전화 올릴까요?
최: 예 예, 상의해 보고.
"저것들 또 난리" 야당 동향에 민감
"대통령님은 오랫동안 옆을 지켜줬던 저를 통해서 민심을 듣기를 원했기 때문에 정호성 비서관은 중간에서 저를 통해 민심을 최대한 대통령님께 잘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최순실씨가 2016년 11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 했던 말이다. 본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오랜 지인이자 사인(私人)으로서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에 그쳤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진술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야당 동향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으로 녹음파일에서 드러났다.
최: 가치를 생각하고 지향해 왔단 얘기를 하면 저것들(야당으로 추정)이 또 난리 날까?
정: 음…. 아니 뭐, 그…. 민주적인….
최: 늘어지는 걸 좀 빼고 민주적인 걸 지향해 왔고 정치에 들어서서 그렇게 했고…. 당시에도 그렇게 했다는 얘기를 좀 넣어요, 그러면.
정: 그런 것 넣겠습니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에게 나름대로 파악한 '민심'을 전달했다.
최: 아니 근데, 이쪽(야당)에서 또 (박 대통령이 해외에) 나갔다고 난리야.
정: 하하…. 근데요, 그게…. 인터넷에 이렇게 좀 보면 민주당, 그런데, 크게 거기에 대해서 호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 ….
정: (심기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다급하게) 서, 선생님 목요일에 하는 거 잘 결정해 주셔서, 그거 안 했으면 너무…. 국내에는 좀 너무 입 다문 것 아니냐 이런 얘기 있었을 텐데. 그런 거 해서 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해외서도 "몇 시쯤 올리냐" 닦달
최순실씨는 개인적인 일로 해외에 나가서도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업무 지시를 내렸다. 한밤중에도 정 전 비서관은 최씨로부터 온 국제전화를 받아야 했다.
정: 예, 선생님.
최: 그거 대충 했어요?
정: 어, 아직 안 했는데…. 선생님 내일…. 지금 오늘 아직 금요일이라서요. 아직 올라오지 않아….
최: 여기 2시거든요? 여기 2시니까. 내일 그러면 언제쯤 올릴 수 있지, 몇 시쯤에? 어떻게 되는 거야….
정: 지금 여기는 밤 10시 반인데요.
최: 내일 몇 시쯤 올릴 수 있어요?
정: 내일 낮에…. 아니면….
최: 한 3시나 돼야 3~4시가 돼야 여기가 오전일걸?
정: 아 그러시면…. 지금 거기 몇 시라고요?
최: 여기 2시. 2시, 잠깐만요. 2시26분이야.
검찰 조사에서 최씨는 '어떤 경위로 대통령의 연설문 및 말씀자료에 의견을 주게 된 것이냐'는 물음에 "정호성 비서관이 반듯하고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다 보니까 잘하려고 제 의견을 구해서 수정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며 "외국에 있을 때는 (정 전 비서관과 국정 관련 전화통화를) 잘 못 했다"고 진술했다.
최씨에게 부하 직원 취급을 받았던 정 전 비서관은 본인이 납득하지 못한 지시에도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6월 중국 방문 당시 칭화대(淸華大)에서 연설한 적이 있다. 사전에 이와 관련한 최순실-정호성 통화 내용은 이렇다.
정: 네, 선생님.
최: (칭화대 연설) 맨 마지막에 중국어로 하나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정: 맨 마지막에요? 근데 그…. 저기 뭐야, 제갈량 있잖습니까. 제갈량 그 구절을 그냥…. 그 부분을 중국어로 말씀하시면 어떨까 싶은데요. 쭉 가다가 갑자기 맨 마지막에 중국말로 하면 좀…. 하하.
최: 아니, 마지막으로….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래를 끌고 갈 젊은이들이…. 앞으로 문화와 인적교류…. 문화와 인문교류를 통해서 더 넓은 확대와 가까워진 나라로 발전하길 바란다. 여러분의 미래가 밝아지길 기원한다. 그러고 감사한다, 이렇게 해서….
정: 지금 선생님 말씀하신 그걸 마지막으로 하신다고요?
최: 응.
정: 알겠습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6월29일 칭화대에서 첫 인사말과 마무리 등 5분 정도를 직접 중국어로 연설했다. 최순실씨가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지시'한 내용 그대로였다. 최순실씨의 파워는 막강했다.
'정호성 전화 녹음파일'은 '시사저널 인터넷 홈페이지'나 '유튜브 시사저널TV'를 통해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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