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검사장급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검찰 고위직 39명이 한꺼번에 자리를 옮겼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된 이창수 지검장은 ‘친윤’으로 꼽히는 인사다.
검찰 고위직 간부가 잇따라 줄사표를 냈다. 5월13일 오전 법무부에 사의를 표명한 검찰 고위직은 서울·대구·부산고검장 등 총 7명이다. 기수 중심 수직적 문화가 뿌리 깊은 검찰에서는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하는 선배 검사가 후배를 위해 사직서를 내고 ‘용퇴’하는 관행이 있다. 이번 고위직 간부의 릴레이 사직은 바꿔 말하면 물갈이 수준의 대규모 검찰 인사가 임박했다는 뜻이 된다.
같은 날 오후, 법무부가 검사장급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인사 소식과 내용은 곧바로 검찰 안팎과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뒤흔들었다. 검찰 수뇌부 전면 교체가 이뤄져서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직 39명이 승진·전보로 한꺼번에 자리를 옮겼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상당 기간 공석으로 있던 고검장·검사장 자리를 채워 법무·검찰의 안정적 운영을 꾀했다. 업무 능력, 전문성을 고려해 인사가 이뤄졌다”라고 설명했다. 법무부 설명에 대한 검찰 안팎의 표면적인 해석은 이렇다. 지난 2월 박성재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이례적으로 고위직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원석 검찰총장 임기는 9월까지라 차기 총장 인사를 마친 뒤 고위급 간부 인사를 실시하면 너무 늦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사 단행 시점과 내용 모두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사 배경의 맥락을 파악하려면 시간을 올해 초로 되돌려야 한다. 당시부터 최근까지 불쑥 고개를 든 여러 변수와 상황, 그 속에 담긴 주변 역학관계 등을 모두 종합해야 한다.
지난해 12월28일 국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이하 특검법)이 통과됐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 방침을 명확히 했고, 2년 넘게 김건희 여사에 대한 처분을 미루던 검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검찰 사이 물밑 분위기는 긴박했다.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무렵,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건희 여사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 사이 ‘갈등설’이 외부로 흘러나왔다. 당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실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 김건희 여사 소환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 과정에서 도이치모터스 수사팀 의견(김 여사 소환조사)에 힘을 실어줬던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 ‘숙청’이 계획됐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이를 반대하고 나서면서 상황이 더욱 긴박해졌으며, 대통령실과 검찰을 중재하려던 이노공 법무부 장관 권한대행(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을 옮기면서 대행 업무 수행)이 ‘수습 불가’로 판단하고 사퇴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검찰 갈등설’은 지난 2월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진화됐다. 총선 전 장관은 검찰 인사를 하지 않고, 검찰도 김건희 여사를 소환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교통정리’가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법무부도, 검찰도 우선 선거를 의식해 대통령실 의중에 보폭을 맞췄다는 뜻이다.
‘대통령실-검찰 갈등설’의 연장선
문제는 총선 결과였다. 야당 압승으로 선거가 마무리되면서 제22대 국회에서 특검법 재추진은 기정사실이 됐다. 대통령실은 총선 전보다 거센 야권 중심의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됐고, 검찰도 김건희 여사의 조사를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어졌다. 이 시점에 검찰 내부에서 돌발 변수가 고개를 들었다. 이원석 검찰총장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수사 지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5월2일, 송경호 중앙지검장에게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전담팀을 꾸려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기존 수사팀인 형사1부에 검사 3명을 추가 투입했다. 특별수사를 주로 담당하는 중앙지검 4차장 산하의 반부패수사3부 검사 한 명, 공정거래조사부 검사 한 명, 범죄수익환수부 검사 한 명이다. 사실상 특수부에 준하는 수사팀이 구성되었다.
야당은 검찰이 대통령실과 협의해 사건을 서둘러 종결한 뒤 특검법 추진을 막으려 한다고 의심했다. 검찰 안팎 해석은 달랐다. 이원석 총장의 지시가 총선이 끝나고 3주 뒤에서야 나온 것이나, 수사 지휘 내용을 ‘굳이’ 언론을 통해 외부에 공개한 일은 ‘대통령실-검찰 갈등설’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거 이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중앙지검 수사팀은, 김 여사에 대한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는 방침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송경호 중앙지검장은 수사팀 의견에 여전히 힘을 싣고 있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자신의 임기 내에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주변에 알려왔다.
구체적인 수사 타임라인도 나왔다. 명품백 수수 의혹 수사는 5월 내에 마무리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위한 김건희 여사의 소환조사는 공범들의 항소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7~8월께로 전망됐다. 이를 종합해 조직을 우선하는 검찰이, 김건희 여사 수사 필요성에 대한 여론과 형평성 논란 등을 앞세워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리고 5월7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년 만에 민정수석실 복원을 공식화했다. 과거 ‘사정기관의 사정기관’으로 검찰 인사에 깊숙이 관여해왔다는 평가를 받던 민정수석실의 갑작스러운 부활은 검찰이 반기를 들어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해석에 오히려 힘을 더 실었다. 대통령실은 “그럴 일 없다”라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지만, 검찰 안팎에선 새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검심(檢心) 청취’를 넘어서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대통령실이 인사를 통해 김건희 여사 보호, 검찰 통제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5월13일 검찰 고위직 인사는 시점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검찰을 향한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인사는 이원석 총장의 수사 지시 후 11일(5월2일), 민정수석실 복원(5월7일) 후 6일 만에 단행됐다. 실제 대통령실과 검찰 안팎에서는 김주현 민정수석 임명 직후 검찰 수뇌부 인사 작업이 급물살을 탔다는 전언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은 아직 조직개편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인데, 검찰 인사부터 챙겼다는 것은 윤 대통령이 검찰에 확실한 메시지를 줬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검찰 고위직 인사의 핵심은 ‘특수 수사 1번지’로 꼽히는 서울 중앙지검장에 이창수 전주지검장을 임명한 것이다. 전주지검장에서 중앙지검장으로 직행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이 지검장은 ‘친윤’ 인사로 꼽힌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지낼 때 ‘총장의 입’으로 불리는 대검찰청 대변인(2020년 8월)으로 일했다.
이창수 지검장은 과거 대검 대변인으로 임명될 당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가까운 이성윤 당시 중앙지검장 휘하에서 형사2부장을 맡아왔던 만큼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2020년 11월 추미애 전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직무집행을 정지하자 ‘대검 중간 간부들의 입장’이라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추 전 장관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윤석열 당시 총장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이 좌천될 당시, 그 명단에 이 지검장도 포함됐다.
이창수 지검장이 수도권으로 돌아온 건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 뒤인 2022년 7월이다.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으로 부임했고, 이 자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루된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해 이 대표를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9월엔 전주지검장으로 임명됐다. 전주지검은 서울 중앙지검(특수 수사), 서울 남부지검(금융·재계 수사), 수원지검(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지검장 인사를 각별히 챙기는 것으로 알려진 네 곳 중 한 곳이다. 전주지검은 문재인 전 대통령 전 사위가 연루된 타이이스타젯 채용 비리 의혹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송경호 중앙지검장은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다. 다만 송 지검장 승진 앞에는 검찰 안팎에서만 통용되는 ‘좌천성’이라는 모순적 단어가 붙는다. 부산고검장은 비수사 보직이라, 수사 지휘 업무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송 지검장 휘하에서 중앙지검 수사 실무를 관장해온 1~4차장검사 전원도 ‘좌천성 승진’ 형식으로 교체됐다. 김창진 1차장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박현철 2차장은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이동했다. 김태은 3차장과 고형곤 4차장은 각각 대검 공공수사부장, 수원고검 차장검사에 임명됐다. 모두 검사장급으로 승진하며 교체된 것이지만, 김태은 3차장을 제외하고 전원이 ‘비수사’ 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은 김창진 1차장 산하인 형사1부가 담당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고형곤 4차장 산하 반부패수사2부가 수사 중이다. 두 사건 수사 책임자가 모두 수사 지휘 라인에서 배제됐다. 법무부는 5월13일 인사에서 기존 중앙지검 1~4차장을 대신할 후임 인사를 단행하지 않았다. 후임자 선정이 이뤄지는 동안 이들 자리는 공석이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검찰이 김 여사 연루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자, 윤석열 대통령이 제동을 걸기 위해 중앙지검 수장과 실무진을 서둘러 전부 교체하는 카드를 뽑아 들었다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원석 총장의 ‘손과 발’인 대검찰청 참모진도 대거 교체됐다. 대검 부장 총 8명 가운데 반부패부장·감찰부장을 제외한 6명이 새로 보임됐다. 감찰부장의 경우 외부 인사 중 공모하는 개방직이다. 결국 양석조 반부패부장을 빼고 전원이 교체된 셈이다. 검찰총장의 임기가 불과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참모진 물갈이는 이례적이다. 이원석 총장 입지가 매우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이 이 총장에 대한 견제와 함께 차기 검찰총장 인사까지 고려한 결과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권력과의 충돌로 급격히 힘이 빠진 검찰총장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윤석열 대통령이 총장 시절 직접 보여준 바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검찰 고위직 인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이른바 검찰 내 ‘윤석열 라인’의 분화다. 검찰 안팎에선 그동안 내부에서 거론되던 이른바 ‘윤가근한가원(尹可近韓可遠, 윤석열 대통령과 가깝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거리가 먼)’을 기준으로 인사가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최소 두 차례 갈등을 빚었다. 이른바 윤-한 갈등이다.
검찰총장은 ‘인사 늦춰달라’ 요청했지만
갈등 원인의 한 축이 올해 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이 시점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이 김 여사 소환조사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하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검찰 수뇌부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함께 대통령실에 반기를 들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때 거론된 검찰 수뇌부가 이원석 검찰총장, 송경호 중앙지검장, 김창진 중앙지검 1차장, 고형곤 중앙지검 4차장 등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원석 총장을 제외한 3명이 모두 좌천성 승진 인사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김창진 1차장이 이동하는 법무연수원은 과거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도 “문재인 정부 시절 좌천당해 발령됐다”라고 스스로 언급했던 곳으로, 검찰 내에선 ‘유배지’로 통한다. 그 밖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 중용한 서울남부지검장, 수원지검장 등도 모두 교체됐다. 그 자리는 한 전 장관과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서 윤석열 대통령과는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검사들이 대신하게 됐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고위직 인사를 이틀 앞둔 5월11일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서울 모처에서 만나 인사 관련 협의를 했다. 이원석 총장은 이 자리에서 ‘인사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하고, 김건희 여사 수사 지휘 라인인 대검 형사부장과 반부패부장은 교체하지 말아달라고도 덧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반부패부장만 유임되고 나머지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또 5월12일 밤 일선 검사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고생했다’는 취지로 인사말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고위직 간부들이 줄사표를 던진 배경이다.
이원석 총장은 5월13일 예정되었던 춘천지검 영월지청과 원주지청 등 지방 일정에 나섰다. 총장이 인사 당일 대검 청사를 비운 것을 두고 ‘항의 메시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이 총장도 인사 시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게 검찰 내 중론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이 이 총장을 사실상 ‘패싱’하면서 불신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총장은 5월14일 출근길에서는 인사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답변 대신 7초간 침묵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인사라는, 불편한 심정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성재 장관은 검찰 고위직 인사 직후 법무부 참모들과 만나 “검찰총장과 협의하에 내가 주도해서 인사를 했다”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법무부와 검찰 안팎에선 박 장관의 설명은 ‘검찰총장과 협의‘가 아니라 민정수석실 등 용산 ’대통령실의 개입설 차단’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해석한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5월16일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총장과 인사 협의가 제대로 안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시기를 늦춰달라고 하면 그 내용대로 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인사를 대통령실이 주도했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장관을 너무 무시하는 말씀이다”라고 답했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에 첫 출근한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인사와 관계없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권에서 나오는 친윤 비판에 관해선 “정치권 용어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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