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한국 기독교 대표 단체는 한교총…
한기총은 4대 교단 집단 탈퇴로 대표성 상실
한기총은 4대 교단 집단 탈퇴로 대표성 상실
‘문재인 대통령 하야’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전광훈 대표회장) 탓에 한동안 정국이 들끓었다. 한기총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법원·국가정보원·검찰 등을 점령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문 대통령은 연말까지 하야해야 한다고 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낯 뜨거운 시국선언문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언론들은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기총이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한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사실 한기총은 개신교계에서 대표성을 상실한 지 오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교계를 대표하는 연합 기구로 통한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되면 한기총을 내방하고, 새로 부임한 장차관들도 통과의례처럼 한기총을 찾는다.
한기총의 시국선언문과 관련해 민주당은 6월6일 논평에서 “우리나라 최대 개신교 단체의 대표가 한 발언이 맞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라고 비판했다. 한기총을 ‘국내 최대 개신교 단체’로 본 것인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명확히 말하자면, ‘그때는 맞는데 지금은 아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낯 뜨거운 시국선언문
한기총은 1989년 한경직·강원용·정진경 목사 등 당시 교계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세운 개신교 연합 기구다. 기존까지만 해도 진보 성향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교계를 대표해왔다.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NCCK와 달리 한기총은 안보와 보수를 우선했다. 대형 교단들이 한기총에 대거 참여하면서 출범과 동시에 교계 대표 연합 기구로 우뚝 섰다. 한기총은 사분오열된 개신교계를 하나로 연합하고,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적으로 굵직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한기총은 보수와 교계를 대변했다. 1992년 대선 당시 장로 출신 김영삼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여러 차례 정부에 맞서기도 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주한미군 철수 반대 운동이 대표적이다. 한기총은 필요에 따라 극우 단체들과 손잡고 대규모 집회도 열었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대정부 활동을 자제하고,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교계를 대표해온 한기총은 2011년 대표회장 금권선거 의혹이 제기되며 휘청거렸다. 대표회장을 지낸 이광선 목사(신일교회)가 금권선거를 치러 당선됐다고 고백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당시 대표회장이던 길자연 목사(왕성교회)가 선거를 치를 때 돈을 뿌렸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분열 조짐을 보였다.
금권선거 의혹과 함께 정관 개정 작업도 내부적으로 논란이 됐다. 대표회장 임기를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고, 회원 교단이 돌아가면서 맡아온 대표회장 순번제도 폐지했다. 이에 반발한 회원 단체 30여 곳은 2012년 3월 한기총을 탈퇴해,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라는 또 다른 보수 연합 기구를 만들었다.
이후 한기총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국 개신교계에서 가장 몸집이 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이 소속됐지만, 얼마 안 가 한기총을 탈퇴했다. 주요 교단이 이단·사이비로 규정한 단체들을 한기총이 임의로 해제하고 받아줬기 때문이다. 한기총은 ‘이단 집합소’라는 불명예까지 떠안았다.
현재 한기총에는 63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 다른 연합 기구보다 참여 교단이 많은 편이지만, 개신교인조차 잘 모르는 군소 교단이 대부분이다. 영향력 또한 갈수록 미미해졌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보겠다며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한교연과 통합해 옛 명성을 되찾고, 이단·사이비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중도 하차했다.
올해 초 전 목사 대표회장 당선
이런 가운데 대형 교단들은 한기총을 ‘손절’하고, 따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라는 연합 기구를 만들었다. 한국 교회에서 규모 1~4위를 차지하는 예장합동·예장통합·예장백석대신·기독교대한감리회가 가입했다. 4개 교단의 교세를 합치면 한국 교회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 20개 넘는 교단이 함께하고 있다. 규모로 따지면 한교총이야말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연합 기구라 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계가 한교총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 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정치 목사’로 불리는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가 올해 초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전 목사는 한기총에 ‘1200만 성도, 30만 목회자, 25만 장로’가 속했다고 홍보하며 대표성과 정통성을 강조한다. ‘1200만 성도’라는 수치부터가 잘못(통계청 기준 967만 명)됐지만,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언론과 비기독교인은 한기총이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다.
‘과대 포장’은 전광훈 목사의 특기이기도 하다. 제19대 대선을 앞둔 2017년 5월2일, 전 목사는 기자회견에서 “기독자유당과 ‘범기독교계’는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다. 1200만 기독교인, 30만 목회자, 25만 장로가 함께한다”고 선언했다. 한기총과 한교연도 뜻을 같이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준표 후보는 “기억하기로 대선에서 기독교계가 지지 선언을 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저희 당을 지지해주면 반드시 친북 좌파 정권을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한기총이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건 ‘가짜뉴스’
‘범기독교계’ 타이틀을 내건 기자회견으로 교계는 떠들썩했다. 한기총과 한교연은 특정 후보를 지지한 적 없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특히 한교연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기독교계는 현실정치에서 엄정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전광훈 목사를 비판했다.
느닷없는 시국선언문 발표로 한기총과 전광훈 목사는 한국 교회 안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비롯한 여러 교계 단체는 “한기총은 한국 교회 안에서 정치적으로 치우친 소수집단에 불과하다. 개신교계에는 한국 교회를 상당 정도 포괄하는 연합 조직도 있고, 예수 정신으로 우리 사회 곳곳의 어둠을 밝히며 사랑·정의·평화를 실천하는 단체도 많이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조직들”이라고 지적했다.
한기총이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주장은 ‘가짜뉴스’다. 어디까지나 전광훈 목사와 그를 추종하는 소수의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이번 시국선언문의 긍정적(?) 효과도 있어 보인다. 덕분에 한기총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전광훈 목사는 누구
‘빤스’ 발언으로 유명한 부흥사 출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한 데는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의 공(?)이 크다. 논란의 시국선언문 발표를 주도하고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릴레이 금식 기도회까지 하고 있다. 한기총은 전 목사가 합류한 이후 극우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장을 한 전 목사는 개신교계에서는 유명 인사다. ‘부흥사’로 수십 년간 청교도영성훈련원을 이끌면서 목회자와 교인을 대상으로 정기 집회를 해왔다. 거침없는 발언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다른 목사들과 달리 설교 도중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정치적 발언도 스스럼없이 한다.
전 목사는 2005년 1월 집회에서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팬티)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라고 말해 ‘빤스 목사’라는 오명을 입었다. 2007년 4월 집회에선 “올해 12월 대선에서는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 만약 이명박 안 찍는 사람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목회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자신을 ‘보수 우파’로 규정한 전 목사는 기독 정당을 창당해 국회 진출을 노려왔다. 2004년부터 총선에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가오는 2020년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을 국회에 입성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전 목사는 “기독자유당만이 동성애·이슬람·차별금지법을 막을 수 있고 주사파를 물리칠 수 있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이용필 <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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