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양영권 기자] [베이징모터쇼를 통해 본 중국의 자동차 산업…"5년 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과 경쟁" ]
지난 25일 중국 베이징 국제전람센터에서 개막한 베이징모터쇼에서는 페라리를 연상시키는 흰색 스포츠카 한 대가 주목을 받았다. 잠자리 모양의 로고를 사용하는 전도기차(前途汽车)가 내놓은 K50이라는 자동차다. 2인승 유선형 차체에 차 뚜껑이 개폐도 가능하다. 자체 프레임은 알루미늄과 탄소섬유로 이뤄졌다.
K50은 앞 뒤 차축에 1개씩 장착된 모터로 움직이는 전기차다. 최대출력 408마력(hp), 토크 61kgf·m의 힘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6초 이하에 주파한다. 한번 충전으로 300km 이상을 달릴 수 있으며, 배터리의 80%를 충전하는 데 45분이 소요된다.
2014년 콘셉트카로 한차례 공개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공개된 것은 거의 양산형에 가까운 모델이다. 전도기차는 장수성 쑤저우에 연간 5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연말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가격은 70만위안(1억2304만원)부터 시작한다. 성능도 그렇지만, 가격도 중국에서 67만3000위안부터 팔리는 테슬라 모델S에 전혀 뒤지지 않게 내놓는 것이다.
외관이나 공개된 제원만 보자면 K50은 '중국 로컬 브랜드 자동차 = 싸구려 저급 차'라는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중국 토종브랜드, SUV 시장 확대 힘입어 고속주행= 중국 내수 시장에서 로컬 브랜드들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다. 지난해 중국 내 승용차 판매는 전년도보다 7.3% 증가한 2115만대였다. 이 가운데 로컬 브랜드의 점유율은 약 3%포인트 상승한 41% 기록했다. 토종 브랜드의 판매 증가율은 15.3%로, 전체 평균의 2배에 달한다.
이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중저가 SUV(스포츠유틸리티자동차)에 집중한 전략이 있다. 중서부 개발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중서부 소비자들이 소득과 도로여건상 저가형 SUV 구매를 선호했고, 중국 자동차 브랜드들이 여기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올해 1분기의 경우 중국 전체 승용차 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2% 성장했는데, SUV 판매량이 42.1% 증가한 반면 세단은 10.5% 감소했다. 세단 판매량이 전체 승용차 시장의 53%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현재의 추세라면 조만간 SUV·MPV의 점유율에 밀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최근 베이징모터쇼를 둘러본 국내 자동차업계 고위 관계자는 "세단에 비해 SUV는 소비자들이 정숙성이나 소음 등 품질에 덜 까다로운 경향이 있다"며 "중국 토종업체들이 이런 소비자 특성을 감안해 세단보다 SUV에 집중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SUV 전면에 내세운 로컬 업체들= 이번 베이징 모터쇼에서도 중국 로컬 브랜드들은 SUV를 전면에 내세웠다. 북경현대와 함께 'E4'건물에 전시장을 마련한 BAIC(북경기차)는 SUV와 크로스오버 차량 20여대를 전시하면서 세단은 한 대도 내세우지 않았다.
장성기차의 SUV 브랜드 하발(HAVAL)은 물론이고, 대우자동차의 '마티즈'를 모방한 'QQ'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체리자동차는 3분기 출시 예정인 중형 SUV '티고(Tiggo) 7' 등 SUV를 전면에 내세웠다. BYD도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4.9초가 걸리는 SUV '원'(元)을 포함해 전시관이 SUV 일색이었다.
로컬 브랜드 자동차의 외부 디자인은 글로벌 브랜드 자동차를 모방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나름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상이었다. 반면 내장은 아직 우드 트림으로 보이기 위해 나무 색깔의 필름을 사용하는 등 아직 조잡한 티를 떨쳐내지 못한 모델이 많았다. 체리 자동차 전시관에서 만난 소속 연구원은 "아직 일반 중국 소비자들은 내장보다 외장에 더 신경을 쓴 차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BAIC가 2017년 양산을 목표로 내놓은 대형 SUV '세노바(Senova) 오프스페이스'처럼 외관이나 내장 모두 당장 선진국 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갖춘 모델도 눈에 띄었다.
또하나의 '선택과 집중'은 모터쇼에 참가한 로컬업체의 수가 줄어든 대신 참가한 업체들의 품질력은 크게 좋아졌다는 점이다. 중국 브랜드들 사이에서도 본격적인 차별화와 구조조정이 일어난 것이다.
올해 베이징모터쇼에 참가한 로컬 브랜드는 약 25개로, 2년 전에 비해 10여개 줄었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이사는 "2년마다 열리는 베이징모터쇼를 매번 다녀오는데, 올해에는 모터쇼에 출품한 업체들의 확연히 줄어든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신 이사는 "SUV의 경우 이미 토종업체들의 기술력이 현대차의 2세대 전 모델 정도까지 쫓아올 정도로 상품성을 확보했다"며 "과거에 중국 내수 자동차 시장은 글로벌 브랜드 소비자와 로컬 브랜드 소비자로 확연히 나뉘어 있었는데, 이제 글로벌 브랜드 소비자들한테도 로컬 브랜드 자동차가 고려 대상에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박동훈 르노삼성 사장도 이번 모터쇼에 전시된 중국 로컬 브랜드 자동차에 대해 "아직은 '짝퉁' 냄새를 모두 빼진 못했지만 외장이나 인테리어의 품질이 모두 좋아졌다"며 "무엇보다 가격이 글로벌 브랜드의 반 밖에 안된다는 점이 경쟁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빠르면 5년 내 글로벌 시장에서도 현대·기아차와 경쟁"= 중국 토종 브랜드의 성장은 현대·기아차의 경쟁력과 직접 연결된다. 지난 1분기 현대·기아차는 중국에서 36만9000여 대를 팔아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이 16.2% 줄었다. 시장 점유율은 2.3%포인트 낮아졌다. SUV 위주의 중국 업체의 공략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중국 내수 시장은 물론, 중동과 러시아, 미국, 유럽 시장에서까지 빠르면 5년 뒤에는 중국 업체들이 현지생산체계, 딜러망 등을 갖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대·기아차로서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테슬라' 성공 벤치마킹하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 이번 모터쇼에서는 테슬라를 염두에 둔 스포츠카 형태의 전기자들이 많이 전시됐다. 전도기차의 K50 말고도 BAIC가 올해 말 양산을 목표로 내놓은 콘셉트카 ARCFOX-7도 획기적인 디자인과 성능으로 주목을 받았다. ARCFOX-7은 603bhp(제동마력)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를 3초에 돌파한다고 소개돼 있다. 1번 충전에 300km를 주행이 가능하다.
체리는 역시 전기차 콘셉트카 'FV2030'를 내놨다. 3인승 스포츠카로 성능 등 세부사양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자율주행차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중국 업체들의 고성능 전기차에 눈을 돌린 것은 보조금으로 유지되는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2017~2018년 2년 동안 기존보다 20% 축소하고 △2019~2020년은 40% 낮추고 △2021년 이후에는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신정관 이사는 "4년 내에 가격을 낮추고 주행 거리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이상 전기차가 보조금 없이도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라며 "따라서 보조금 없이도 자생 가능성이 있는 고성능 스포츠 전기차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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