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
지난해 나온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잘 살지는 못해도 쪽팔리게 살지 말자”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인공 형사 서도철의 아내는 뇌물로 가져온 5만 원 지폐가 가득 든 루이비통 가방을 과감하게 거절하고, 잠시 그 돈에 흔들렸다는 사실조차 쪽팔려합니다. ‘베테랑’을 본 사람은 모두 1340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영화 역사에서 세 번째로 많은 사람이 보았다. “쪽 팔리지 않게” 살고 싶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철면피’
중국에 왕광원이라는 진사가 있었습니다. 삶의 목표가 출세 하나였습니다. 권력가에게 줄을 대기 위해 집을 찾아갔다가 채찍으로 맞고 쫓겨나도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광원의 낯가죽은 열 겹의 쇠 갑옷처럼 두껍다(光遠顔厚如十重鐵甲)’라고 놀렸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을 일컫는 철면피(鐵面皮)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총선 이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여당보다 야당에 더 많은 표를 줬습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봉사해야 하는 국민은 띄엄띄엄 생각하는 ‘직업 정치인’들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습니다. 투표 결과가 나온 뒤 잠깐 반성하는 척 하던 여야는 다시 완장을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경원, 유기준, 정진석 당선인이 나왔습니다. 나경원 후보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경원과 ‘미모’
나경원 의원은 스페셜올림픽코리아 회장입니다. 2011년부터 맡고 있습니다. 딸이 장애인입니다. 여성입니다. 그리고 미인입니다. ‘미인’이라는 이야기를 굳이 한 까닭은 ‘뉴스타파’가 딸의 성신여대 부정입학과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메신저 한국대표 특혜선정 의혹을 보도한 후에도 일부 언론들이 의혹이 사실인지 캐기 보다는 30년이 더 된 나의원의 대학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미모’를 들먹였기 때문입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만 중요하고, 나경원을 볼 때는 ‘미모’만 보는 짓을 언론이 합니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의혹 두 가지
지난 3월17일 뉴스타파는 "‘공짜 점심은 없다’… 나경원 딸 성신여대 부정입학"이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냈습니다. 딸이 2012년도 성신여대 실용음악과 장애인 특별전형에서 1등으로 뽑혔는데 그 과정에 수상한 구석이 많다는 기사였습니다. 나경원은 반박문을 냈는데 뉴스타파가 지적한 의혹이 터무니없다면서 ‘특혜’는 ‘배려’와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은 밝히지 않고 감정에 호소했습니다. 한 네티즌은 “우연히 성신여대에 ‘장애인 특별전형’이 생기고, 나경원의 딸이 실수로 면접에서 엄마의 이름을 밝히고, 실기 준비도 우연히 잘못했는데, 우연히 면접관이 도와주고, 우연히 최고점수로 합격하고, 그 해 이후 성신여대에 ‘장애인 특별전형 합격자’가 전혀 없다”고 정리했습니다.
뉴스타파는 또 3월 28일 스페셜올림픽코리아가 공모를 거치지 않고 나경원 딸을 ‘글로벌 메신저’로 추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확인하러 간 뉴스타파 기자에게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송동근 사무총장은 자격기준에 맞는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나경원 딸 한 사람밖에 없어서 공모할 필요가 없었다고 대답합니다. 증거라며 내놓은 공문을 살펴본 기자가 그 조건은 글로벌 메신저가 아니고 파트너 조건이라고 지적하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합니다.
나경원과 ‘합리적인 이야기’
직접 나경원의 말을 듣기 위해 선거사무실로 찾아간 취재기자를 지지자들이 몸으로 막습니다. 대신 카메라기자가 “글로벌 메신저 모집 공고 내셨나요?”라고 묻습니다. 나경원은 한참을 그냥 가다 대답합니다. “합리적인 이야기들을 해야 대답을 합니다. 합리적인 이야기를 해야지...” 나경원에게 ‘합리’는 ‘나한테 유리한’의 뜻인 것 같습니다. 나경원은 뉴스타파 황일송 기자를 검찰에 고소하고, 김용진 대표와 황일송 기자에 대해 1억 원 손해배상을 하라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쪽팔리지 않게
대부분의 이른바 주요 언론사들이 뉴스타파가 제기한 나경원 딸 의혹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고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30년 넘게 기자로 산 저는 쪽팔립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뜨거웠습니다. 특히 장애인 가족들의 관심이 컸습니다. 부정입학 의혹 보도에 대한 나경원 의원의 반박문이 나온 다음날 ‘장애인의 주홍글씨, BeMinor’란 사이트에 한 편지가 실렸습니다. <나경원 의원님께 보내는 편지/속상하시죠? 저희도 속상합니다>란 제목의 글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장애인 딸을 둔 나경원 의원은 여러 장애인관련 단체의 주요한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에 올라온 글을 살펴보면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심하게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딸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슬프고 쪽팔리는 일입니다. 저는 나경원 의원의 미모가 진실과 욕망을 감추는 철면피가 아니길 바랍니다.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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