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얼마를 집어넣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부실의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돈을 집어넣으면 한계산업이 과연 살아날 수 있는지, 부실을 키운 당사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명확히 전제돼야 한다. 지금처럼 두루뭉술 넘어가려 하다간 IMF사태때처럼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IMF사태 당시 한은 고위직에 재직했던 금융인의 지적이다.
"IMF사태는 1997년 1월23일 한보그룹 부도로 시작됐다. 당시 은감원 등 정부는 한은에 2조원만 도와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몇달 뒤 4조원으로 늘어나더니 최종적으로는 한보 부채가 8조원까지 늘어났다. 부실 규모를 쉬쉬 은폐하려다가 결국 국가부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가 연일 한은에 구조조정 자금 조달을 압박하고 있다. 한은은 처음엔 편법을 쓰지말고 추경이나 공적자금으로 조달하라고 반발하다가 이주열 한은총재가 "적극 협조" 방침을 밝히면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여론의 냉소를 받고 있다.
우선 관심은 한은이 윤전기를 돌려 얼마나 쏟아부어야 하느냐로 쏠리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일(현지시간) 야당이 법인세 인상으로 구조조정 자금 5조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에 대해 "5조원 갖고 될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5조원 갖고는 택도 없다는 얘기다. 정부 일각에서는 10조원은 필요하다는 얘기를 언론에 슬슬 흘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그러나 최소한 이보다 몇배, 최악의 경우에는 몇십배의 총알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MB-박근혜 정권이 구조조정을 계속 미루면서 산은, 수출입은행에게 부담을 떠넘긴 결과 천문학적 잠재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만 해도 지난달말 보고서에서 "조선-해운 두 업종에 대한 전체 은행권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88조원 규모로 추정된다"며 "이중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70~75% 정도"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말 현재 산은과 수은의 부채비율(부채 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은 각각 811%와 644%에 달한다. 정부가 부채를 전액 책임지는 국책은행만 아니었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판이다.
특히 산은의 연결 재무제표를 보면 부채는 박근혜 정권 출범 첫해인 2013년 말 148조9437억원이던 것이 2014년 말 247조42억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폭증하더니, 2015년말 275조5494억원으로 말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산은과 수출입은의 자본금 증액으로 부채비율을 낮추는 편법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 눈앞의 위기를 피하려는 전형적인 눈가림이다.
왜 이럴까. 쉽게 말해 현정권 하에서는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더 적나라하게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얘기다. 조선산업의 최대 부실덩어리인 대우조선해양만 해도 지난해말 부채비율이 7300%를 넘는다. 대우조선은 15년째 정부 산하기업이었다. 이렇게 골병이 들기 전에 일찌감치 정리를 했어야 할 기업이었다. 그랬다면 대우조선이 촉발시키면서 다른 조선사들도 동반 몰락의 위기로 몰아넣은 '출혈 덤핑수주' 같은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정경 유착' 때문이었다. MB 정권때부터 대우조선은 권력의 최대 젖줄이었다. 모 정권실세가 인사권을 쥐고 좌지우지했다는 얘기가 파다했고, 대우조선을 관리해야 할 산은 최고위층도 강만수 등 정권실세들이 맡았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친박인사가 산은 수장을 맡으면서 더이상 견딜 수 없어 곪아터지기 전까지 방치하고 은폐했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IMF외환위기와 지금을 비교한다. 저는 IMF위기보다 지금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1998년에 13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정도로 IMF사태가 가공스러웠음을 상기시키면서도 "인체에 비유하자면 IMF위기는 외상(外傷)이었다. 외상은 무섭지만, 그래도 치료법이 단순하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하지만 이어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우리 경제는 몸 안의 여러 핵심 장기(臟器)에 오랜 기간에 걸쳐 암이 자란 것과 같다. 그래서 단순하게 치료하기 어렵다"면서 "조선과 해운 등의 문제는 1997년에 IMF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97년 이전부터 20년 이상 우리는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20년 이상을 허송했다. 그래서 암은 여러 곳으로 전이됐다. 1997년에 우리는 충격적 외상을 일거에 당했지만, 지금 우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장기에 전이된 복합적 암을 앓고 있다"고 탄식했다.
이 지사는 목포 등의 중견 조선소 등이 폐업할 경우 전남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위기감에서 이같은 지적을 했으나, 지금 한국경제가 직면한 상황을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주력산업들의 연쇄사양화"로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나 중앙정부보다 백배 탁월하다.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3일 "필승 전략만 마련하면 국민의당 단독 대권쟁취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호언했다. 그는 단독집권이 가능한 '필승전략'으로 "온 국민의 관심사이자 열망은 현재의 극심한 경제난을 제발 극복해 달라는 것이다. 경제난을 극복할 경제정책만 발굴해 제시한다면 대선승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경제난을 극복할 경제정책'을 꼽았다. 지난 총선때 "문제는 경제"라던 더불어민주당을 힐난하면서 "문제는 정치"라던 국민의당이 슬그머니 "문제는 경제"로 합류한 모양새다.
맞는 말이다. 어느 정당이든 이같은 '획기적 돌파구'를 제시한다면 폭발적 국민지지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주력산업의 연쇄사양화'라는 구조적 위기를 돌파할 해법이 그렇게 쉽게 뚝딱 나올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일 "산업은행의 계열사가 된 수백 개의 부실기업들이 구조조정 되지 않고 연명하는 것은 수많은 금융관료와 낙하산들의 밥줄 때문이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며 "정부가 국민에게 손을 벌리려면 제대로 된 청구서를 내놓아야 한다. 현재 부실의 규모가 얼마만 한지, 또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재정투입 내용과 규모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 대표 지적대로 구조조정의 시작은 '제대로 된 청구서' 제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국민이 분노 속에서도 고통의 행군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IMF사태 당시 한은 고위직에 재직했던 금융인의 지적이다.
"IMF사태는 1997년 1월23일 한보그룹 부도로 시작됐다. 당시 은감원 등 정부는 한은에 2조원만 도와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몇달 뒤 4조원으로 늘어나더니 최종적으로는 한보 부채가 8조원까지 늘어났다. 부실 규모를 쉬쉬 은폐하려다가 결국 국가부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가 연일 한은에 구조조정 자금 조달을 압박하고 있다. 한은은 처음엔 편법을 쓰지말고 추경이나 공적자금으로 조달하라고 반발하다가 이주열 한은총재가 "적극 협조" 방침을 밝히면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여론의 냉소를 받고 있다.
우선 관심은 한은이 윤전기를 돌려 얼마나 쏟아부어야 하느냐로 쏠리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일(현지시간) 야당이 법인세 인상으로 구조조정 자금 5조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에 대해 "5조원 갖고 될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5조원 갖고는 택도 없다는 얘기다. 정부 일각에서는 10조원은 필요하다는 얘기를 언론에 슬슬 흘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그러나 최소한 이보다 몇배, 최악의 경우에는 몇십배의 총알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MB-박근혜 정권이 구조조정을 계속 미루면서 산은, 수출입은행에게 부담을 떠넘긴 결과 천문학적 잠재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만 해도 지난달말 보고서에서 "조선-해운 두 업종에 대한 전체 은행권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88조원 규모로 추정된다"며 "이중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70~75% 정도"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말 현재 산은과 수은의 부채비율(부채 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은 각각 811%와 644%에 달한다. 정부가 부채를 전액 책임지는 국책은행만 아니었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판이다.
특히 산은의 연결 재무제표를 보면 부채는 박근혜 정권 출범 첫해인 2013년 말 148조9437억원이던 것이 2014년 말 247조42억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폭증하더니, 2015년말 275조5494억원으로 말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산은과 수출입은의 자본금 증액으로 부채비율을 낮추는 편법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 눈앞의 위기를 피하려는 전형적인 눈가림이다.
왜 이럴까. 쉽게 말해 현정권 하에서는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더 적나라하게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얘기다. 조선산업의 최대 부실덩어리인 대우조선해양만 해도 지난해말 부채비율이 7300%를 넘는다. 대우조선은 15년째 정부 산하기업이었다. 이렇게 골병이 들기 전에 일찌감치 정리를 했어야 할 기업이었다. 그랬다면 대우조선이 촉발시키면서 다른 조선사들도 동반 몰락의 위기로 몰아넣은 '출혈 덤핑수주' 같은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정경 유착' 때문이었다. MB 정권때부터 대우조선은 권력의 최대 젖줄이었다. 모 정권실세가 인사권을 쥐고 좌지우지했다는 얘기가 파다했고, 대우조선을 관리해야 할 산은 최고위층도 강만수 등 정권실세들이 맡았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친박인사가 산은 수장을 맡으면서 더이상 견딜 수 없어 곪아터지기 전까지 방치하고 은폐했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IMF외환위기와 지금을 비교한다. 저는 IMF위기보다 지금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1998년에 13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정도로 IMF사태가 가공스러웠음을 상기시키면서도 "인체에 비유하자면 IMF위기는 외상(外傷)이었다. 외상은 무섭지만, 그래도 치료법이 단순하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하지만 이어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우리 경제는 몸 안의 여러 핵심 장기(臟器)에 오랜 기간에 걸쳐 암이 자란 것과 같다. 그래서 단순하게 치료하기 어렵다"면서 "조선과 해운 등의 문제는 1997년에 IMF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97년 이전부터 20년 이상 우리는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20년 이상을 허송했다. 그래서 암은 여러 곳으로 전이됐다. 1997년에 우리는 충격적 외상을 일거에 당했지만, 지금 우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장기에 전이된 복합적 암을 앓고 있다"고 탄식했다.
이 지사는 목포 등의 중견 조선소 등이 폐업할 경우 전남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위기감에서 이같은 지적을 했으나, 지금 한국경제가 직면한 상황을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주력산업들의 연쇄사양화"로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나 중앙정부보다 백배 탁월하다.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3일 "필승 전략만 마련하면 국민의당 단독 대권쟁취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호언했다. 그는 단독집권이 가능한 '필승전략'으로 "온 국민의 관심사이자 열망은 현재의 극심한 경제난을 제발 극복해 달라는 것이다. 경제난을 극복할 경제정책만 발굴해 제시한다면 대선승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경제난을 극복할 경제정책'을 꼽았다. 지난 총선때 "문제는 경제"라던 더불어민주당을 힐난하면서 "문제는 정치"라던 국민의당이 슬그머니 "문제는 경제"로 합류한 모양새다.
맞는 말이다. 어느 정당이든 이같은 '획기적 돌파구'를 제시한다면 폭발적 국민지지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주력산업의 연쇄사양화'라는 구조적 위기를 돌파할 해법이 그렇게 쉽게 뚝딱 나올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일 "산업은행의 계열사가 된 수백 개의 부실기업들이 구조조정 되지 않고 연명하는 것은 수많은 금융관료와 낙하산들의 밥줄 때문이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며 "정부가 국민에게 손을 벌리려면 제대로 된 청구서를 내놓아야 한다. 현재 부실의 규모가 얼마만 한지, 또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재정투입 내용과 규모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 대표 지적대로 구조조정의 시작은 '제대로 된 청구서' 제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국민이 분노 속에서도 고통의 행군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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