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粉飾會計). 기업이 회계장부를 작성할 때 자산이나 이익을 실제보다 부풀려 수치를 고의로 왜곡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분식에서 분(粉)이라는 한자는 ‘화장할 때 쓰는 가루’를 뜻한다. 그리고 식(飾)이라는 한자는 ‘곱게 칠한다’는 뜻이다. 분식은 엉망진창인 회사 장부를 화장을 하듯 예쁘게 꾸미는 행위를 칭한다.
삼성그룹의 제약 계열사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논란에 빠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회계장부를 꾸며 분식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내용이다.
만약 이 사건이 분식회계로 확정된다면 이는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분식 규모가 무려 4조 원이 넘는다. 분식회계의 상징으로 불리는 미국 엔론의 분식회계 규모(1조 4000억 원)를 훌쩍 뛰어넘다. 심지어 엔론의 분식회계는 5년에 걸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엔론 분식규모의 3배를 한 해에 뚝딱 해치운 셈이다.
물론 이는 금감원의 발표이므로 아직까지는 혐의일 뿐이다. 삼성은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 사건은 감리위원회→증권선물위원회→금융위원회 등 세 번의 심리 절차를 거쳐 분식회계 여부가 확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도 이 사건이 분식회계에 가깝다는 추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장부는 분칠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회계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삼성이 이런 일을 벌인 동기가 무엇이냐다. 얼핏 보기에 삼성의 범행 동기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의 증시 상장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회계장부를 분식한 혐의가 있고, 그 장부를 기반으로 2016년 증시에 상장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분석이다.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왜 삼성이 무리하게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2016년에 상장하려고 했느냐?”가 보다 본질적인 질문이다. 삼성은 일개 계열사 상장을 위해 4조 원 규모의 분식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그룹이 아니다. 이 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일개 계열사’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분식임이 분명해 보이는 장부
우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부부터 살펴보자. 다시 상기하자면 삼성바이로직스는 2016년 11월에 증시에 상장해 2조 원이 넘는 거금을 증시로부터 조달했다. 문제는 상장심사를 통과하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실적이 너무 엉망이었다는 데 있었다. 아래 숫자를 살펴보자.
<창사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 순이익>
2011년:79억 원 순손실
2012년:734억 원 순순실
2013년:1407억 원 순손실
2014년:840억 원 순손실
2012년:734억 원 순순실
2013년:1407억 원 순손실
2014년:840억 원 순손실
2011년 4월에 설립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년 내내 손실을 입었다. 손실 총액도 3000억 원이 넘는다. 문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 상태에서 상장을 하려고 했다는 데 있다. 이 정도 성적표를 거래소에 들이밀면 “어서 오세요. 상장 시켜드리겠습니다!”라는 환영이 아니라 “어디서 이런 개뼈다귀 같은 실적으로 상장을 도전하세요?”라는 핀잔만 듣는다. 그런데 상장을 한 해 앞둔 2015년 기적이 벌어졌다. 다음 수치를 살펴보자.
<창사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 순이익>
2011년:79억 원 순손실
2012년:734억 원 순순실
2013년:1407억 원 순손실
2014년:840억 원 순손실
2015년:1조 9000억 원 순이익
2012년:734억 원 순순실
2013년:1407억 원 순손실
2014년:840억 원 순손실
2015년:1조 9000억 원 순이익
4년 동안 3000억 원 손실을 보던 회사가 2015년 환골탈태했다. 이 해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무려 1조 9000억 원의 순이익을 낸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가 마침내 이 해부터 대망의 돈벌이를 시작한 것일까? 다음해 성적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상장 전후 삼성바이오로직스 순이익>
2013년:1407억 원 순손실
2014년:840억 원 순손실
2015년:1조 9000억 원 순이익
2016년: 1786억 원 순손실
2017년: 970억 원 순손실
2014년:840억 원 순손실
2015년:1조 9000억 원 순이익
2016년: 1786억 원 순손실
2017년: 970억 원 순손실
이렇게 보면 2015년 실적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상장심사의 기준이 되는 해 성적만 반짝 좋아졌다가 이듬해부터 다시 거짓말처럼 한 해에 1000억 원씩 까먹는 회사로 돌아왔다.
2015년 이 회사가 거둔 눈부신 순이익은 회계장부를 기록하는 기준을 딱 하나 바꾸면서 벌어졌다. 전문적인 회계 영역이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핵심은 그 회계기준 변경이 정당했느냐, 아니면 의도적인 분식이었느냐에 있다.
삼성은 회계법인의 권고로 합법적으로 회계기준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감원은 상장을 앞둔 해에 이례적으로 회계기준을 바꾼 것이 곧 의도적 분식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여부는 앞으로 심리에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상식의 눈을 가지고 볼 때, 2015년 2조 원에 이르는 뜬금없는 흑자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삼성 일이라면 양말 벗고 뛰어나서는 <조선일보>조차도 2016년 4월 계열사 <인베스트 조선>의 보도를 통해 이런 회계를 비판했다. 당시 <인베스트 조선>의 기사 제목은 이랬다.
‘회계 마술’로 만든 2兆 순익은 상장 대비용?
바이오는 이재용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바로미터
삼성이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삼성그룹에서 이재용의 3세 승계는 당면과제가 됐다. 그리고 2015년은 삼성은 그 유명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밀어붙였다. 이듬해인 2016년은 이재용이 박근혜를 등에 업고 3세 승계를 완성하려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2010년 5월 비자금 사건으로 퇴진했던 총수 이건희가 이명박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복귀하면서 복귀 작품으로 ‘5대 신수종 사업’이라는 것을 발표한 일이었다.
이건희는 야심차게 삼성의 미래 5대 사업을 발표했는데 그것이 바로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였다. 이건희는 이 다섯 가지 신수종 사업으로 2020년까지 50조 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큰소리쳤다.
이 5대 신수종은 이재용의 시대를 열기 위한 사업 제안이었다. 그리고 이 중 바이오와 의료기기는 ‘이재용의 꿈’이었다. 아버지 이건희가 자동차에 로망을 갖고 있었다면 아들 이재용이 바이오에 그룹의 미래를 걸었다.
문제는 5대 신수종 대부분이 박살이 나는 중이었다는 데 있었다. 태양전지 분야에서 삼성은 사업을 정리하고 사실상 철수했다. 자동차용 전지에서도 절대강자 파나소닉에 한참 밀려났다. LED 분야도 중국산 저가제품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며 사업을 축소 중이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삼성은 야심차게 메디슨이라는 벤처기업을 인수했으나 매년 실적이 박살이 났다.
이 말은 이재용의 미래 가도를 닦기 위해 삼성이 벌인 다섯 가지 사업 중 바이오 하나만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바이오는 이재용 스스로가 승부를 걸었던 분야다. 그래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절대 삼성의 ‘일개 계열사’가 아니었다. 이재용이 경영권 승계를 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할 유력한 무기였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삼성은 반드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성공시켜야 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성패는 상장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었다. 5년 연속 적자가 분명한 회사의 숨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상장으로 2조 원의 자금을 조달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범행의 동기도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회계장부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거래소와 금감원은 저 이상한 회계장부를 보고도 아무 시비 없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을 허락했다. 이게 더 수상하다. 박근혜와 이재용의 검은 거래에 대한 대가가 아닌지 충분히 살펴봐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분식회계 논란만으로 이미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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