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으로 풀어본 삼성 지배구조
삼성생명, 삼성전자 지분 8.23%
이재용 부회장 지분의 14배
생명 전체 자산의 10% 해당
전자 흔들릴 땐 생명도 타격
정부 '지배구조 개선' 압박 거세
삼성은 오너 지배력 약화 우려
생명, 13곳 계열사 지분 34조 보유
보험업법 개정 3% 룰 적용땐
전자 지분 최소 19조원어치 팔아야
삼성생명, 삼성전자 지분 8.23%
이재용 부회장 지분의 14배
생명 전체 자산의 10% 해당
전자 흔들릴 땐 생명도 타격
정부 '지배구조 개선' 압박 거세
삼성은 오너 지배력 약화 우려
생명, 13곳 계열사 지분 34조 보유
보험업법 개정 3% 룰 적용땐
전자 지분 최소 19조원어치 팔아야
[한겨레] 총자산 283조원, 사망보험 가입자 수 1301만1247명, 총 보험계약 금액 640조원….
국내 1위 생명보험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는 금융위원장을 필두로 법 개정 전이라도 매각 등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은 ‘사업하기도 바쁜데, 왜 하필 지금이냐’며 딴청을 핀다. 복잡한 지배구조와 생소한 법안 등만 보면 무엇이 옳은지 분간하기 어렵다. 한발 물러나 전체 판도와 맥락을 살피는 까닭이다. 도대체 왜, 정부는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팔라고 하는 것일까? 삼성은 왜 이를 받아들이지 않나? 삼성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 금융위원장은 왜 간부회의에서 삼성을 겨냥했나?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삼성을 콕 집어 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달 20일 금융위 간부회의에서 “금융회사의 대기업 계열사 주식소유 문제”에 대해 발언하면서,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해당 금융사가 아무런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 개정 전이라도 금융회사가 단계적, 자발적 개선 조치를 실행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을 지명하진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금융사가 삼성생명이고, 법률은 보험업법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시장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그동안 ’법이 바뀔 때까지 지켜보자’는 쪽이었던 금융위가 태도를 바꾼 탓이다.
그러나 최 위원장이 돌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금산분리와 재벌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바로잡겠다는 경제공약을 내걸고 출범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는 이 두 사안을 모두 거스르는 행위다. 최 위원장 발언 전인 지난달 10일 재벌개혁의 또다른 축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삼성그룹의 핵심문제는 삼성생명, 즉 보험 계열사의 고객 돈을 이용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사흘 뒤 문재인 대통령은 “(금융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라고 못 박았다. 최근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낙마한 상황에서, 최 위원장이 정부 기조에 충실한 메시지를 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정부·여당은 왜, 보험업법을 개정하려 하는가?
2014년 4월 이종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 낸 보험업법 개정안이 삼성을 발칵 뒤집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보험사의 주식 보유 제한 기준을 은행이나 증권사 등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공정가액(시장가)’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금융업종은 분산투자를 위해 같은 계열사 주식을 총 자산의 일정 비율(3%)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데, 은행과 증권사 등은 ’공정가액’이 적용되고, 보험사만 ’취득 당시 가격’이 적용되던 참이었다. 이에 반해 분모인 총자산은 현재의 시장가격으로 평가한다. 시간이 흘러 주가가 오를 경우 이 비율은 작아지게 마련이고, 3% 아래로 쉽게 낮아질 수 있다. 규제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종걸 의원 법안은 보험사 중 삼성생명에만 혜택을 주는 제도를 고치자는 것이어서 ’삼성특혜 방지법’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삼성과 당시 여당 등의 반대로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고, 20대 때인 2016년 6월 재발의됐다. 이종걸 의원은 대표 발의한 법 개정안을 통해 “자산운용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여소야대 상황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텐데, 다른 방법은 없나?
이 내용은 보험업 감독규정 <별표11> 제3호에 들어있다. 감독규정은 보험업법의 규제 취지를 잘 반영하기 위해 금융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정하는 '고시'다.? ?굳이 법 개정을 하지 않고 금융위의 고시 개정만으로도 바꿀 수 있다. 이 때문에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는 주장이 나온다.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보험업 감독규정을 고치는 주체는 금융위원장”이라며 “법률로 해결하라는 건 책임 떠넘기기”라고 비판했다.
■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나?
삼성생명은 지난해 말 기준, 삼성 계열사 13곳 주식을 34조7천억원어치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지분(8.23%)만 27조원에 이른다. 삼성생명은 보험 계약자들이 낸 돈으로 이 지분을 취득했고, 이를 굴려 보험금을 지급한다. 은행이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삼성 계열사 지분은 삼성생명 총자산 283조원의 3%인 8조5000억원을 넘지만, 취득 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보유가 가능하다. 삼성전자 지분은 취득 당시 가격인 주당 5만여원을 기준으로 하면, 총 5천여억원에 불과하다. 보험업법이 바뀌면 삼성생명은 삼성 계열사 주식 약 26조원어치, 삼성전자만 최소 19조원 어치를 팔아야 한다.
를 팔아야 한다.
■ 삼성에게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8.23%가 얼마나 중요한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핵심 회사인 삼성전자 지분이 0.57%에 불과하다. 이건희 회장 등 일가 전체를 합쳐도 5%에 그친다. 계열사 등 우호세력을 총 동원해야 삼성에 대한 지배가 가능하다. 삼성생명은 오너 일가와 삼성물산, 삼성전자 등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에서 핵심 고리 역할을 한다.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외부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분이다. 결국 내부에서 사고파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 역시 각종 변수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어떤 방법이 있나?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 역할론이 제기된다.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이 실탄을 마련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이다. 종잣돈으로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43.44%) 등이 거론된다. 10조원이 훌쩍 넘는 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팔고, 그 돈으로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 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이다.
삼성도 이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변수가 많다. 특히 지난 1일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는데, 최종 확정될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폐지될 수도 있다.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보유지분이 총자산의 50%가 넘으면 강제로 지주회사로 전환된다는 점도 문제다. 총자산 42조원인 삼성물산은 이미 삼성전자 지분(4.63%)을 15조원 가량 갖고 있다. 삼성전자 지분이 추가될 경우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해, 삼성물산이 다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주식을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도록 샛길을 터주자는 방안도 있다. 지난해 8월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담겼다. 이른바 삼성생명 퇴로법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상장법인은 거래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만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다. 모든 주주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회 통과가 쉽지 않다.
■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분산투자 원칙에 어긋난다. 보험회사는 고객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다 약속대로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리스크가 한 곳에 몰리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27조원으로 전체 자산의 10%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흔들릴 경우 삼성생명도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금산분리 원칙에도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 금융업법 및 감독규정은 계열사의 지분 확보를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한다. 금융사가 재벌의 지배구조에 활용될 가능성을 제한하려는 의도다. 이런 ‘금산분리 원칙’은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의 공약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공약집에서 “금융회사의 고객 자산이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배구조에 활용될 경우 고객 이익 보호 원칙과 상충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밝혔다.
■ ‘치열한 글로벌 경쟁 중인데, 삼성이 이 문제에 자원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반도체 호황 때문에 삼성전자가 최대 실적을 내고 있긴 하지만 내년쯤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 때문에 오히려 삼성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재는 삼성전자 실적이 나빠지면 삼성생명 역시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다. 이를 최소화해야 1000만명 넘는 가입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그동안 문제 해결을 미뤄온만큼 이번에는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보험업법이 문제로 불거진 게 2014년부터다. 삼성은 준비 시간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또 사업 타령을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급격한 변화로 인한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험업법 개정안은 7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있다.
■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때 가장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 어려움이 생기는 근본 이유는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문제를 풀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지만, 이렇게 하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흔들리게 된다. 현재 법 개정이 추진되는 변수 등까지 고려하다 보니 결국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이익이 아닌 삼성생명 고객 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영학부)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사실상 고객 돈이다. 이 돈을 법적 특혜를 주면서까지 이재용 일가의 지배력 유지에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보험업법 개정은 삼성만 문제를 삼는 게 아니라 거꾸로다. 삼성에만 주어진 특혜를 없애고, 보험사 고객을 보호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은 앞으로 어떻게 할까?
삼성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언론이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사지 않겠다고 금융위와 공정위에 통보했다”고 보도했지만, 삼성·금융위·공정위는 모두 부인했다. 삼성은 당분간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의견이나 답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고, 특히 이 부회장의 3심 재판이 남아 있어 법적 쟁점이기도 한 ’지배구조’ 문제를 꺼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학자 시절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며 삼성과 긴밀히 소통했던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삼성이 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이 되는 포인트에 대한 결단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부분이 확정되면 삼성그룹도 비가역적인 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도 이런 해석을 부인하지 않는다. 한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 재판 등이 남아있어, 우리가 당분간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 입장이나 답을 내놓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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