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더니 이 말을 또 한 번 증명하는 커플이 탄생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74) 전 독일 총리와 통역사 김소연(49) 씨다. 두 사람은 2015년 열린 국제경영자회의에서 처음 만났다. 전문 통역사이자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경제개발공사 한국대표부 대표를 맡고 있는 김 씨가 슈뢰더 전 총리의 통역을 맡으며 인연을 키웠다.
처음에는 업무 외에 만나는 일이 없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대화와 생각이 잘 통했다. 하지만 8000㎞라는 거리에, 25살이라는 나이 차,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배우자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기에 사랑의 결실을 맺기까지는 고민이 상당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 결혼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 여겼다”며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이방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우리가 학문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그것은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은 것이다.’ 저는 이번 결정을 그렇게 운명처럼 받아들입니다.”
1)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슈뢰더 김소연 커플.
2) 독일 연예지 〈분테(Bunte)〉의 표지를 장식한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 씨. 창덕궁에서 편안한 복장을 하고 포옹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네, 사랑입니다(Ja, es ist Liebe!)”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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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발표하며 끊이지 않은 웃음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 씨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혼을 발표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요청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 마련한 자리였다.
김소연 씨는 슈뢰더 전 총리를 “인간미 넘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고, 슈뢰더는 김 씨를 “지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김소연 씨는 사랑스럽게 팔짱을 끼었고, 슈뢰더 전 총리는 연인을 위해 의자를 빼주었다. 두 사람은 기자회견 내내 서로 눈을 맞추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김소연 씨와 연락하기 위해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두 사람은 무료 전화 앱을 이용해 매일 통화하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 더 애틋해 보이기도 했다.
“양가 가족이 상견례를 마쳤습니다. 대략 가을쯤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정확한 장소와 시기는 앞으로 결정할 예정입니다.”
서로를 어떻게 부르냐는 질문에 슈뢰더 전 총리는 “공식석상에서는 슈뢰더 총리라고 하는데 둘만 있을 때는 김소연 씨가 나를 게르하르트라고 부르고, 나는 소연이라고 부른다”며 “부부싸움을 하면 풀어주어야 할 때 한국말로 ‘자기야’라고 해야 하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기자회견 중간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연인의 나라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소연 씨에게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하다가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 감동을 주기도 했단다.
슈뢰더 전 총리는 다섯 번째 결혼
각자의 아이들은?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슈뢰더 전 총리와 이혼 소송 중인 도리스 슈뢰더 쾨프 사회민주당(SPD) 의원의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2015년 3월부터 슈뢰더 전 총리와 별거한 도리스 의원은 “(2016년) 슈뢰더와 헤어졌다. 이유 중 하나는 프라우 킴(김소연 씨)이었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 씨는 독일 언론을 통해 연인 관계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슈뢰더 전 총리는 불륜으로 시작된 관계가 아니며 자신의 이혼과 김소연 씨는 관계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별거한 후 2016년 여름에 아내가 자신의 연인을 공개했고, 그해 9월 법원에 이혼 및 별거 합의 계약서를 제출했다”며 “아내가 주의회 선거에 출마하면서 이혼 공개를 미뤄달라고 해서 뒤늦게 알려진 것”이라 말했다. 이어 “다른 문제가 있어 이혼 소송을 한 게 아니라 독일에서는 이혼을 하려면 소송을 거쳐야 하고, 아내의 이혼 요구에 따라 절차를 밟은 것”이라며 “별거 당시 김소연 씨를 알지도 못했으니 이혼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 두 사람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없냐는 질문에는 “없다. 존중해주는 것 같다”며 “아내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새로운 연인을 밝혔는데, 나도 오늘 이렇게 공개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지금까지 네 번 결혼하고 이혼한 경력이 있다.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한 도리스 의원과 사이에 직계 자녀는 없지만 2명의 입양 자녀가 있다고 알려졌다. 김소연 씨 역시 이혼한 전 남편과 사이에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자녀 양육과 관련해 슈뢰더 전 총리는 “내 큰딸은 장성해 독립했고 미성년자인 아들과 딸은 엄마와 함께 살기로 합의했다. 가끔 함께 시간을 보낸다”며 “김소연 씨 딸은 우리가 결혼하면 같이 살 것”이라고 밝혔다.
슈뢰더 전 총리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의 자서전 한글 번역판을 선물하는 모습. 김소연 씨가 이 책의 번역과 감수를 맡았다. |
김소연 씨가 지난해 국회를 예방한 슈뢰더 전 총리의 통역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 |
한국서 여생의 반을 보내기로
“이웃집 아저씨처럼 살아갈 것”
기자회견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슈뢰더 전 총리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의 동반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소연 씨는 “저희가 계속 외부에서 분주하게 이동하는 일정이 많아 인터뷰가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린다”며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두 사람은 서울 대한극장에서 영화 〈1987〉을 함께 관람하고, 주한독일대사 부부,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부부와 함께 판문점을 방문했다. 지난해 9월 방한 당시 양기대 광명시장의 안내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머무는 광주나눔의집을 찾았던 것을 인연으로 양 시장과 개성 방문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번 방한의 주요 일정이던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고,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응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앞으로 계획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라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 생활, 예술을 알아가게 될 것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양국을 오가며 살기로 결정했다. 슈뢰더 전 총리의 집이 있는 독일 베를린과 하노버 그리고 서울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계획이다.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 씨를 가까이서 지켜본 지인은 “정치인과 통역사로 각각 오랜 커리어를 쌓은 두 사람이기에 일할 때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살뜰하게 챙긴다”며 “각자 일을 존중해 독일과 한국 양국에서 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여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며 “김소연 씨는 두 나라를 잘 알고 언어에도 능통하지만 나는 배울 것이 많다. 다른 평범한 부부 같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삶을 한국에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슈뢰더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 총리를 지냈다. 슈뢰더가 취임했을 당시 독일은 갑작스러운 통일에 따른 혼란과 경제성장 둔화, 500만 명이 넘는 기록적인 실업자, 50년간 한 번도 손보지 않은 사회복지제도 등으로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았다. 슈뢰더는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 독일 경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으며 지금도 독일에서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김소연은…
전문 통역사. 독일 마르부르크대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한국 대통령들과 슈뢰던 전 총리,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등 독일 지도자들의 통역을 맡았다. 독일 최다 인구가 거주하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경제개발공사 한국대표로, 한국 기업의 독일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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