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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November 19, 2011

토머스 게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미국이라는 이름의 후진국>(사회평론 펴냄)의 저자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라는 책에 대해 어떤 종류의 서평을 쓸 수 있을까. "당근이지!"라는 말 말고 또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까. 사실 책을 받아 단숨에 읽어버리고 지난 보름 동안의 고민은 동종(同種) 패착(敗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것이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에 박수를 보낸다는 평가 말고 어떤 찬사를 더할 수 있을까.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 사회 체험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저자 토머스 게이건은 유럽의 복지 사회가 미국의 일중독 사회보다 훨씬 살기 좋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유럽이 미국보다 선진적인 이유를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뛰어난 유머 감각으로 재미있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그는 독일에서 한 미국 노동법 강의를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소개한다.

첫 번째 강의에서 나는 미국에서는 노동자가 언제든지,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해고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사장이고 나는 여러분 회사에서 29년간 근무했다고 합시다. 1년 후면 퇴직입니다. 어느 날 내가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어요. 여러분은 '당신 넥타이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당장 해고야'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유럽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이런 고용주의 횡포에 학생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항의하자, 게이건은 분명히 이 같은 해고가 미국에서 존재하지만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선다. 이런 에피소드가 특별히 감동적이고 신뢰감을 주는 이유는 저자가 다름 아닌 미국의 노동 전문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이 천지차인 경우는 해고 방면뿐이 아니다. 삶의 질이라는 차원에서 미국과 유럽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게이건에 의하면 미국인이 연간 2300시간을 일할 때 유럽 사람은 1600시간만 일한다. 따라서 "유럽인은 연간 700시간 이상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언어를 하나 더 익히거나 스리랑카를 여행할 수도 있고 독서를 할 수도 있다." 2000년 통계를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의 빈곤선 이하의 노인 비중(24.7퍼센트)은 독일(10.1퍼센트)이나 프랑스(9.8퍼센트)보다 높고, 빈곤한 미국 아동의 비율(21.9퍼센트)도 유럽의 독일(9.0퍼센트)이나 프랑스(7.9퍼센트)보다 높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복지 국가가 후퇴하고 있다고? 어림없는 말이라고 게이건은 주장한다.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서 일부 복지 혜택이 축소되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제도들도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출산을 하면 엄마는 물론 아빠에게도 유급 출산 휴가가 주어진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통해 휴일은 확대되었고 노동 시간은 줄었으며, 노인을 부양하면 이에 대한 수당이 생겼다. 이상의 제도는 유럽의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주요 국가에 모두 도입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어떤가? 위의 제도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2010년 시작된 유럽의 재정 위기는 바로 복지 지출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닌가? 아니다. 게이건은 "유럽의 몇몇 나라가 겪는 위기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신용 사기극에 말려든 '사회민주주의자 유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리스를 제외한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은 복지 지출보다는 과도한 금융 부문의 확대와 세계화를 따른 결과라는 설명이다.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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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논리적 힘은 유럽의 전형적인 모델로 독일을 내세운다는 데 있다. "독일인으로 대표되는 유럽인은 고임금과 복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노동 시간이 가장 적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제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수출 성장 모델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보다 낮은 실업률을 보유한다.

게이건은 독일 성공의 비법으로 금융보다는 제조업을 중시하는 문화와 대학 교육보다는 기술 교육을 강조하는 전통, 그리고 기업을 운영하는데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 등을 들고 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인재들이 제조업으로 진출하고, 확실한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며, 노동조합이 주주와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할 때 효율적인 기업이 만들어 진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인 독자를 타깃으로 삼는다. 선민사상으로 똘똘 뭉친 미국인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제도 아래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굳건하게 갖고 있는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는 지적은 약간의 충격과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저자는 수많은 이야기와 통계, 경험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대중 교육의 중요한 수단이다.

미국인 중에 여권을 소유한 사람은 2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외국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미국인에게 유럽은 선조들이 자유를 갈망하며 도망쳐 나온 구시대의 봉건주의가 지배하는 후진적 사회라는 생각뿐이다. 그런데 게이건은 유럽에서 태어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주장하니 과연 이런 종류의 진리가 미국인에게 통할지 궁금하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와 <자본주의 : 러브 스토리> 역시 이 책과 같은 맥락에서 미국 모델의 황당함에 대한 대중적 교육을 목표로 한다. 글로벌 위기 이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와 같은 운동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일종의 자각이 시작되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자각에서 변화까지는 먼 길이 있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은 미국인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고 존경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다. 대부분의 경우 뭐 딱히 미국이 좋아서 그런다기보다는 미국을 밑천으로 삼아야 자신이 한국에서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미국에 유학 보내지만 치과 치료는 국민 건강 보험이 되는 한국에서 받도록 하는 부모들 말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하여 장기간 미국에 대한 환상과 착각의 성(城)을 쌓았다. 게이건의 책은 이 신기루를 붕괴시키는데 한 몫을 담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인이 쓴 책이니까….

한국에서도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창비 펴냄)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창비 펴냄) 등의 책이 유럽, 특히 프랑스 모델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잘 설명해 왔다. 게이건이 상세하게 묘사하는 독일 모델과 홍세화의 프랑스 모델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미국이나 유럽 모델의 역사적인 배경과 사회적 뿌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는 제레미 리프킨이 2004년에 펴낸 <유러피언 드림>(이원기 옮김, 민음사 펴냄)의 일독을 권한다. 부제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는 인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리프킨 역시 게이건과 마찬가지로 미국인이다!

유럽 모델에 대한 더 철학적이고 학술적인 소개와 분석을 희망하는 독자는 <위험 사회>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시리즈를 찾아보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세계화 시대의 권력>, <코스모폴리탄 비전>, <코스모폴리탄 유럽> 등의 3부작은 왜 21세기의 세계가 유럽이 만들어 온 코스모폴리탄 성격의 모델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규범적으로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성을 가치로 부각시키는 정치 제도로 유럽 통합은 조명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후발 주자로서 한국이 갖는 특혜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서 어느 모델이 우수한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앞으로 유럽 모델의 단점과 폐해를 보완하고 향상할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이런 특혜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대중적 교육 프로그램이라도 개발하고, 사회 제도 체험 관광(?)을 장려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조홍식 숭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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