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역사왜곡’이다. 일본 교과서 얘기가 아니다. 한국 중학교 교과서를 놓고 벌이는 논쟁이다.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친일파 청산’ 문구가 삭제됐다. ‘박정희 독재’ ‘5·18 민주화’도 사라지게 됐다. 역사를 권력의 입맛대로 바꿀 수 있을까. 절대권력을 누렸던 ‘왕조시대’에도 함부로 선택하지 못할 무리수다. ‘거짓의 역사’를 강요하는 색깔론 중독자들이 바로 그 엄청난 행위를 저질렀다. / 편집자 주
“이제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중립성은 치명상을 입었다. 실무선에서 이를 미봉하려 하지만 정권에 의한 역사 농단의 과오를 덮을 순 없다.”
한겨레는 11월 15일자 <이주호 교과부 장관을 경질해야 하는 이유>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밝혔다. 자진 사퇴도 해법이 아니며 역사의 이름으로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13년 중학교에서 사용될 교과서 지침이 될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자 역사학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발칵 뒤집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한미 FTA 비준 논란 등에 여론 시선이 쏠려있는 동안 중학교 교과서 ‘역사왜곡’이라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친일파 청산’ 문구가 삭제됐고, ‘5·18 민주화’ ‘6월 민주항쟁’ ‘4·19 혁명’ ‘제주 4·3 항쟁’ 등에 대한 내용도 빠졌다.
한국 민주화의 대표적인 역사가 집필기준에서 빠진 셈이다. 더불어 ‘이승만 독재’ ‘박정희 중심 5·16 군사정변’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등 독재의 역사도 집필 기준에서 사라졌다. 역사학계는 ‘역사왜곡’에 깊은 우려를 전했다. 문제는 교과부의 이번 선택이 역사학계의 우려와 경고를 무시한 채 이뤄졌다는 점이다.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교과서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대원칙이 훼손됐다”면서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역사학계의 반발 속에 ‘뉴라이트’ 계열인 한국현대사학회 이명희 교과서 위원장은 “친일파 청산 관련 내용은 교과서에서 다뤄도 되고 안 다뤄도 된다”면서 “교과서에까지 다룰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사건은 진보 대 보수의 대결구도로 보기도 어렵다. 뉴라이트 계열 등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역사학계에서 깊은 우려를 전하는 것은 ‘사실 왜곡’ 시도 때문이다. 오죽하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위원장’까지 사퇴를 했겠느냐는 탄식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민주정부 수립 이후 지속돼 온 친일파 청산 노력을 중단시키고, 독재를 미화시키거나 감추고, 5·18 민주화 운동의 의미를 사장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세력들의 본질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목할 대목은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친일파 청산’ 문구가 삭제되고 ‘5·18 민주화 운동’이 사라지게 된다는 게 제대로 알려졌다면 여론의 반발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역사왜곡’을 시도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여론의 물줄기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게 된 이유는 보수언론이 집요하게 ‘색깔론 여론몰이’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개악’의 배후에는 언론의 역할이 있었다는 얘기다. 보수언론들은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개발위원회’가 북한을 대변하려 한다는 식의 여론몰이를 이어갔다.
조선일보는 10월 25일자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역사 왜 바꾸려 드나>라는 사설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쳐서는 안 되고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도 포함하는 ‘민족주의’를 가르치자고 주장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이념 투쟁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10월 25일자 <대한민국을 격하하는 역사 집필진의 정체 뭔가>라는 사설에서 “국사학계 인사들이 주축이 돼 이번에 내놓은 집필기준에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과 친북 편향성을 드러냈다. 교과서 좌편향의 근본 원인은 국사학계 내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10월 26일자 <‘자유’ 빼고 ‘유일’ 빼서 뭘 얻으려는 건가>라는 사설에서 “좌파 역사학자들은 이른바 학문적 엄밀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뿐 저변에 깔린 것은 이념적 편향성이고 친북 성향”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가르치자는 것’ ‘이념적 편향성과 친북 성향’ 등 보수층의 반발정서를 자극하면서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 논란이 좌우의 대결인 것처럼 몰아갔다. 심지어 문화일보는 10월 28일자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사회민주주의라는 궤변>이라는 사설에서 “정권들이 독재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부정했다는 말인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수언론들은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에 대해 꾸준히 보도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이념 대립 문제를 자극하는 내용이었고 심지어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것 같은 보도도 나왔다. 역사학계에서 ‘역사왜곡’을 우려하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내놓자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이를 옹호하는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1월 9일자 <바른 역사교육 이제 시작이다>라는 사설에서 “대한민국을 자학하고 종북주의까지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혼란은 1980년대 이후 자칭 진보 진영이라는 좌파세력의 역사 뒤집기 탓이 적지 않다. 새 역사 교과서에서는 이런 왜곡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은 이번 결과에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술단체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422개 시민사회단체는 14일 ‘친일·독재 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출범 기자회견에서 “수구세력의 역사왜곡이 상식을 넘어 거대한 범죄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이는 민주주의를 축소하고 친일·독재를 찬양해 기억의 공공화를 파괴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중립성은 치명상을 입었다. 실무선에서 이를 미봉하려 하지만 정권에 의한 역사 농단의 과오를 덮을 순 없다.”
한겨레는 11월 15일자 <이주호 교과부 장관을 경질해야 하는 이유>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밝혔다. 자진 사퇴도 해법이 아니며 역사의 이름으로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13년 중학교에서 사용될 교과서 지침이 될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자 역사학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발칵 뒤집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한미 FTA 비준 논란 등에 여론 시선이 쏠려있는 동안 중학교 교과서 ‘역사왜곡’이라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오전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교과서 개편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친일파 청산’ 문구가 삭제됐고, ‘5·18 민주화’ ‘6월 민주항쟁’ ‘4·19 혁명’ ‘제주 4·3 항쟁’ 등에 대한 내용도 빠졌다.
한국 민주화의 대표적인 역사가 집필기준에서 빠진 셈이다. 더불어 ‘이승만 독재’ ‘박정희 중심 5·16 군사정변’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등 독재의 역사도 집필 기준에서 사라졌다. 역사학계는 ‘역사왜곡’에 깊은 우려를 전했다. 문제는 교과부의 이번 선택이 역사학계의 우려와 경고를 무시한 채 이뤄졌다는 점이다.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교과서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대원칙이 훼손됐다”면서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역사학계의 반발 속에 ‘뉴라이트’ 계열인 한국현대사학회 이명희 교과서 위원장은 “친일파 청산 관련 내용은 교과서에서 다뤄도 되고 안 다뤄도 된다”면서 “교과서에까지 다룰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사건은 진보 대 보수의 대결구도로 보기도 어렵다. 뉴라이트 계열 등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역사학계에서 깊은 우려를 전하는 것은 ‘사실 왜곡’ 시도 때문이다. 오죽하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위원장’까지 사퇴를 했겠느냐는 탄식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민주정부 수립 이후 지속돼 온 친일파 청산 노력을 중단시키고, 독재를 미화시키거나 감추고, 5·18 민주화 운동의 의미를 사장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세력들의 본질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목할 대목은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친일파 청산’ 문구가 삭제되고 ‘5·18 민주화 운동’이 사라지게 된다는 게 제대로 알려졌다면 여론의 반발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역사왜곡’을 시도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여론의 물줄기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게 된 이유는 보수언론이 집요하게 ‘색깔론 여론몰이’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개악’의 배후에는 언론의 역할이 있었다는 얘기다. 보수언론들은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개발위원회’가 북한을 대변하려 한다는 식의 여론몰이를 이어갔다.
조선일보는 10월 25일자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역사 왜 바꾸려 드나>라는 사설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쳐서는 안 되고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도 포함하는 ‘민족주의’를 가르치자고 주장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이념 투쟁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10월 25일자 <대한민국을 격하하는 역사 집필진의 정체 뭔가>라는 사설에서 “국사학계 인사들이 주축이 돼 이번에 내놓은 집필기준에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과 친북 편향성을 드러냈다. 교과서 좌편향의 근본 원인은 국사학계 내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10월 26일자 <‘자유’ 빼고 ‘유일’ 빼서 뭘 얻으려는 건가>라는 사설에서 “좌파 역사학자들은 이른바 학문적 엄밀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뿐 저변에 깔린 것은 이념적 편향성이고 친북 성향”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가르치자는 것’ ‘이념적 편향성과 친북 성향’ 등 보수층의 반발정서를 자극하면서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 논란이 좌우의 대결인 것처럼 몰아갔다. 심지어 문화일보는 10월 28일자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사회민주주의라는 궤변>이라는 사설에서 “정권들이 독재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부정했다는 말인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수언론들은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에 대해 꾸준히 보도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이념 대립 문제를 자극하는 내용이었고 심지어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것 같은 보도도 나왔다. 역사학계에서 ‘역사왜곡’을 우려하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내놓자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이를 옹호하는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1월 9일자 <바른 역사교육 이제 시작이다>라는 사설에서 “대한민국을 자학하고 종북주의까지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혼란은 1980년대 이후 자칭 진보 진영이라는 좌파세력의 역사 뒤집기 탓이 적지 않다. 새 역사 교과서에서는 이런 왜곡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은 이번 결과에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술단체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422개 시민사회단체는 14일 ‘친일·독재 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출범 기자회견에서 “수구세력의 역사왜곡이 상식을 넘어 거대한 범죄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이는 민주주의를 축소하고 친일·독재를 찬양해 기억의 공공화를 파괴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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