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연합뉴스TV 경제포럼’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회 사진기자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연합뉴스TV 경제포럼’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회 사진기자단
성한용 선임기자의 현장칼럼 창
박 대통령이 과연 총선 공천권을 보장할까
김무성의 ‘국민공천제’가 유리한 건 아닐까
싸움의 바닥은 ‘대통령 1인통치 vs 의회 정치’
당 대표 흔들기, 정치인으로서 장래 허물수도
김무성 대표는 키가 180㎝가 넘는다. 몸무게는 90㎏을 오르내린다. 거구다. 그런데 요즘 표정이 무척 슬퍼 보인다. 지난 6월부터 도대체 되는 일이 별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찍어 숙청할 때 아무런 저항도 못했다. 오히려 앞장섰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선친을 애국자로 소개하는 책이 출판됐지만 친일 행적만 부각되고 있다. 사위의 마약 전과가 드러났다.
하락세를 반전시키려면 어떻게든 ‘오픈 프라이머리’를 사수해야 한다. 문재인 대표에게 매달렸다. 문재인 대표가 경남중 1년 후배다. 몇 가지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당직자들이 일제히 김무성 대표를 비난했다. 김무성 대표는 자기 식구들에게 매를 맞는 ‘불쌍한 가장’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자칫하면 정기국회가 끝나기도 전에 쫓겨나게 생겼다.
현직 대통령이 청와대 측근을 시켜서 정당의 공천 제도까지 간섭하고 나선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왜 그러는지 이해는 간다. 친박은 새누리당 안에서 ‘소수 정파’다. 대통령 취임 이후 국회의장 후보 경선, 전당대회 대표 선거, 원내대표 선거에서 모두 패했다. 이대로 가면 임기말 레임덕을 피하기 어렵다. 퇴임 이후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다. 내년 4·13 총선에서 지분을 대폭 늘려 당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지지율이 상한가다. 그러니 공천권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연고지인 대구·경북이 관심 지역이다. 힘이 있을 때 권력을 비축해 놓자는 계산이다. 어찌보면 매우 합리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서슬에 편승한 친박들의 완장질도 가관이다. 친박들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기류를 파악해서 선수를 치는 데 거의 귀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충성 경쟁을 벌이느라 서로 견제도 한다.
친박 최고의 실세가 누구일까.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첫손가락으로 꼽는 데 당내에 이견이 없다. 그는 머지않아 당으로 돌아온다. 내년 4월 총선을 위해서다. 김무성 대표의 대안으로도 거론된다. 막강한 힘의 원천이 뭘까.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정확하게 읽고 꼭 필요한 얘기를 할 줄 아는 그만의 비법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측근 3인방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서청원 의원은 ‘친박 좌장’으로 불린다. 2008년 ‘친박연대’라는 정당의 대표를 지냈고 그 덕분에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했으니 그럴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그리 두터운 것 같지는 않다.
윤상현 의원은 정무특보다. 청와대가 나서기 하루 전에 먼저 김무성 대표를 비판했다. 뛰어난 촉이다. 정치부 기자들은 윤상현 의원의 29일 발언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감을 잡았다. 그는 얼마전 ‘김무성 불가론’ 파장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박근혜-김무성 대치 전선에서 원내대표단이 박근혜 대통령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는 것도 주목할 현상이다. 유승민 의원이 쫓겨난 뒤 원내대표에 추대된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제 ‘신친박’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2008년 친박연대 공천을 받아 대구에서 당선된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위성도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위성도
대통령의 부하들이 완장을 차고 국회와 여당에서 설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유산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절뿐만 아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랬다. 다행히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거꾸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잘될까? 권력 연장과 수렴청정을 꿈꾸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들의 뜻이 이루어질까?
잘 안될 것이다. 첫째, 역풍의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경북에 자기 세력을 구축하려 들면 다른 지역에서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수도권에서 ‘정권 심판론’이 나올 수 있다.
둘째, 권력의 속성이다. 4·13 총선에서 혹시 성공한다고 해도 친박들이 임기말까지 박근혜 대통령 중심으로 결속할까? 그럴 리가 없다. 친박들도 새로 선출된 대선 후보에게 줄을 설 것이다. 본래 배신은 적이 아니라 측근이 하는 것이다.
친박들도 계산을 잘해야 한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4·13 총선에서 친박들의 공천을 모두 보장할까? 오히려 김무성 대표가 약속한 ‘국민공천제’가 친박들에게도 유리한 것은 아닐까?
이번 싸움의 바닥에는 ‘대통령 1인의 통치’ 대 ‘의회 중심의 정치’, ‘반정치주의’ 대 ‘정치의 복원’, ‘분노와 배제의 정치’ 대 ‘대화와 타협의 정치’ 등 우리 정치의 근본적 쟁점이 깔려 있다. 김무성 대표가 ‘적장’인 문재인 대표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가 뭘까. 대표직을 유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독주에 맞서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를 복원시키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친박들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 보여 권력을 유지하려고 김무성 대표를 흔들어대고 있다. 그런 행위가 결국은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장래를 무너뜨리는 것일 수 있다. 정치, 길게 봐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