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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30, 2015

왕으로 변한 대통령 부녀, 더는 우리를 윽박지르지 말라

공포심과 하사품 두 가지를 가지고 통치했던
그 아빠의 웃는 사진을 본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
국가는 그의 것이며 우리는 신민이라고 학습당했다

그 아빠 시절이 요즘 그대로 재현된 것만 같다
신뢰가 깨지는 건 엉뚱한 걸 따르라고 윽박질러서다
우리는 명령을 따르고 하사품에 감격하는 존재가 아니다
[한겨레21] 한창훈의 산다이
지난 8월14일, 우리의 대통령께서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됐다. 공짜라니 공연히 돌아다닌 사람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또 있다. 추석을 맞아 56만 명의 부사관과 사병들에게 1박2일의 특별휴가증을 주고 멸치와 김가루, 약과 등으로 구성된 특별간식을 하사(下賜)했다. 아니, 되는 대로 내뱉다보니 불충스럽게 말을 하고 말았다. 바꾸겠다. ‘하사하시었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인간적인 화법은 안 되는 건가
건군 이래 처음이란다. 그나마 아랫것들 간식 사는 데 쓴 돈이 청와대 예산이 아니라 ‘군 소음피해 보상금’이었단다. 참 생색도 효과적으로 내신다. 네 돈으로 먹을 걸 사서 너에게 하사하신 것이니.
‘하사’는 임금이 신하에게 뭔가를 준다는 소리이다. 그동안 봐온 역사극에 의하면 이런 경우 신하들은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과장되게 외쳐왔다. 그런 왕조시대의 용어가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대통령을 뽑았는데 그가 왕으로 변해버린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나.
사실 단어 하나 가지고 시비 걸고 싶지는 않다. ‘하사’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준다는 뜻도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윗사람을 나이 든 사람으로, 아랫사람을 젊은이로 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영 찝찝하고 불편하다.
먼저, 대통령을 높은 사람 또는 윗사람으로 보는 것을 당연시하는 버릇이다. 지금은 계급사회도 아니고 봉건시대는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백성이 주인이라는 민주공화국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왕일 리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대통령이 추석을 맞아 군인들에게 1박2일의 휴가증과 특별간식을 선물했다’ 이렇게 인간적인 화법으로 하면 안 되는 건가? 그게 그렇게 하기 어려운가.
묻고 싶다. 대통령이란 직책이 ‘높은 계급’일까?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군 최고 지도자이며 국회의 동의를 받아 국무총리와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며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직책의 역할이다. 이렇게 한 나라를 대표하니까 아주 중요한 존재인 것은 백번 맞다.
이런 일 하라고 국민이 투표를 통해 뽑은 다음 권한의 행사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이중 삼중 경호를 해준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국민들 모두 나서서 할 수 없으므로 한 명을 대표로 뽑는 시스템이니까(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사회 쪽으로 화가 솟구치는 순간 다들 대통령이 돼버리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 권한을 옳고 맞게 행사하면 존경과 감사를 보내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판을 하고 나아가 그만두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아빠의 웃는 사진을 본 적이 없네
실제 대통령 선서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로 헌법 제69조에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굉장히 노력하고 애를 써야 하는 특별한 존재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높은 사람인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는 말이 진정 맞다면 국민이 높은 존재 아니겠는가(이 말은 여기저기서 필요할 때마다 자주 나오는데 어째, 공허하기만 하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여기는 마음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높은 사람이 생기면 발생하는 가장 큰 폐해가 낮은 사람이 생겨버린다는 것이다.
‘하사’하는 순간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군장병이 아랫사람인 게 확인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아들을 군대 보낸 엄마·아빠도, 애인을 보낸 처녀도, 예비군과 민방위까지 거쳐온 나도 낮은 사람인 것이다. 하인, 천민, 무지렁이 백성들, 뭐 그런 단어들이 뒤따라 떠오른다. 제기랄, 가만히 있었는데 하사품 하나에 ‘레벨’이 쑥 내려가버린 것이다.
꼭 높은 사람이 필요한가, 우리는 늘 지시나 시혜를 받고 살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명령 듣기를 더 원한다는 이론이 있다는 것부터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명천 이문구 선생께서 살아생전 자주 쓰셨던 ‘쇤네 근성’을 확인한 것 같아 입맛이 쓰다.
또 하나가 일반인을 하대하는 고위직들의 기본 인식이다. 특히 대통령이 평소 우리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데다, 거슬러 올라가 공포심과 하사품 두 가지를 가지고 통치했던 아빠 시절이 그대로 재현된 것만 같다. 그 아빠의 웃는 사진을 본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 아주 없기야 하겠는가만 오랜 대통령 재임 동안 엄격의 이미지만 만들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국가는 그의 것이며 우리는 단순한 신민이라고 학습당하고 체감해온 것이다. 그걸 거부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혔나.
나는 죽으면 대한민국과 아무 상관 없이 된다. 그런데 살아 있는 동안 이 나라 국민이라는 이유로 신분이 낮다면 속상할 일이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몇 분 계시는데 그분들이 나보다 높다고는 생각 안 한다. 나는 그분들의 품격과 지혜를 존중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쉬는 날 자전거 타고 마트에서 장 보는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난 대통령이 안 높으면 좋겠다. 대신 정직하고 공정하고 양심적인, 그런 존경스러운 사람이면 정말 좋겠다. 이를테면 1968년에 발표한 신동엽의 ‘산문시1’에 나오는 대통령처럼 말이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그 중립국에선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 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릿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부분 생략)”
이렇게까지 근사하지는 않더라도 쉬는 날이면 자전거도 타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람이면 좋겠다. 보여주는 게 아닌, 진짜 생활로, 지난번에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을 만나러 태평양을 건널 예정이라고 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공화국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원리로 움직이는 체계이다. 나는 대통령도 국민들 다수가 살아가는 방식 그대로 사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으니까.
이런 이야기 어떤가.
20대 후반 나는 대전에서 공사 현장 일을 다니고 있었다. 신시가지 쪽 빌라 공사장에 있을 때였는데 그 시절 어떤 신문사 하나가 창간 준비호를 냈다. 그게 우연히 내 손에 얻어걸렸고 거기에는 지금 <녹색평론> 발행인을 맡고 계신 김종철 선생의 칼럼이 있었다. 그 글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남대서양에는 트리스탄다쿠냐(Tristan da Cunha)라는 절해고도가 있다. 영국령이기는 한데 오랫동안 무인도였다. 국제 정세가 복잡해지자 영국에서 이곳으로 군인들을 보냈다. 하지만 화산섬의 거친 환경과 주변의 높은 파도로 생활이 용이치 않았다. 결국 철수하기로 했다. 그때 한 군인 가족이 남기를 희망했고 전역을 한 다음 그렇게 했다.
시간이 흐르자 풍랑을 피하기 위해서, 또 다른 이유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근처 원주민이 와서 살기도 하고 가족을 데려오기도 해서 10년쯤 지나다보니 마침내 마을이 만들어졌다. 사회가 만들어지면 법이 필요하다. 그들은 고민하다가 꼭 필요한 단 한 줄의 법을 만들었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맞추어 살았다. 기억나는 대로 해보면 ‘그 누구도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은 모든 면에서 평등하다고 간주된다’이다.
우리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만
어느 날 화산이 폭발했다. 주민들은 영국으로 이주해서 살았다. 각자 일을 하다가 주말이면 다들 만났다.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앉아 서로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게 휴식이었다. 3년 뒤 화산활동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회의를 했다. 세 명의 젊은 여자만 제외하고 모두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들이 겪은 영국은 너무 바쁘고 시끄럽고 이기적이고 야만적이었던 것이다. 세 명의 젊은 여자는 그사이 결혼을 했거나 연애 중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씨앗과 농기구를 장만하여 화산재가 뒤덮어버린 자신들의 섬으로 돌아갔다는 내용.
이 이야기가 너무 매력 있어서 나는 오랫동안 그 신문지 오린 것을 지니고 다니며 수시로 읽곤 했다. 그러나 잦은 이동 탓에 어느 순간 잃어버렸다. 신문지 쪼가리는 사라져버렸지만 그 속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내 마음을 붙잡고 있었고 요즘 이것을 기본으로 하는 우화풍의 작품집을 준비 중이다. 이 자식, 은근슬쩍 광고하는구나, 오해를 무릅쓰고 한마디 더 해보면, 나는 그 한 줄의 법을 이렇게 바꾸었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고위직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나보다 높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만약 그들이 똥을 싸지 않는다면 높은 사람으로 인정할 용의는 있다). 단지 생활에 필요한 양질의 규칙과 정책을 만들어 제시하면 우리는 그것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다. 신뢰가 깨지는 것은 그들이 잘못되거나 엉뚱한 것을 제시한 다음 따르라고 윽박지르기 때문이다. 질서는 윽박에서 오는 게 아니다. 윽박의 질서는 군대의 형식이다. 그나마 군대도 숱한 사고와 희생을 겪고 나서야 그게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높은 사람을 뽑으려고 선거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명령에 따라야 하고 하사품을 받고 감격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이다. 존 레넌은 이미 노래했다. ‘우리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만 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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