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소액 연체채권 탕감때 상환능력 검증.."소멸시효 완성 채권 소각, 엄밀히 빚 탕감도 아냐"
정부가 연말까지 214만명이 진 26조원의 빚을 소각한다고 발표하면서 소멸시효가 지날 때까지 버티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빚 탕감은 10년 이상 연체된 1000만원 이하의 소액으로 제한되고 재산이 없어 상환능력이 없다는 점도 증명돼야 한다.
◇재산 있으면 장기·소액 연체 빚 있어도 탕감 못 받아=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취임 후 첫 간부회의에서 “장기·소액 연체채권 정리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8월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리 대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 장기·소액 연체채권이 유력하다.
금융위는 우선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장기·소액 연체채권부터 정리한다. 지난 3월말 기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 장기·소액 연체채권은 1조9000억원으로 40만3000명이 빚 탕감을 받게 된다. 여기에 예금보험공사와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장기·소액 연체채권까지 포함하면 빚 탕감 규모는 더 커진다.
다만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장기·소액 연체채권은 대부분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아 이미 민간 금융회사에서 연체가 발생해 넘어온 채권이다.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채권도 금융공공기관의 보증을 받아 은행 빚을 썼다 갚지 못한 것이다.
장기·소액 연체채권이라고 모두 탕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탕감 대상에서 제외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재산이 있어 갚을 능력이 있거나 빚을 갚지 않기 위해 일부러 피해 다니는 채무자의 빚까지 감면해 재기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빚 탕감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재산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민간 금융회사의 탕감 빚 금액은 더 적을 듯=정부는 장기간 연체된 소액의 탕감을 민간 금융회사로 확대할 방침이지만 민간의 빚 탕감 조건은 더 까다로울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은 원금 기준으로 200만원 이하를 소액으로 보고 있다. 금융공공기관이 지난달부터 200만원 이하 소액채권의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고 정리하는 것을 참고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권을 추심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추심 비용보다 높으면 빚을 받으려는 노력을 해야 배임 등의 소지가 없어진다”며 “은행별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소각 대상이 되는 채권금액을 획일화하긴 어렵지만 200만원이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부업체가 보유한 장기·소액 연체채권을 정리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부업체가 가진 부실채권은 대개 돈을 주고 사온 것이라 자율적으로 탕감할 가능성은 적다. 정부는 예산을 들여 대부업체의 장기·소액 연체채권을 사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채권 규모 등 실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미 올해말까지 214만명이 가지고 있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 26조원을 소각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소각이 결정된 26조원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은 법상 갚지 않아도 되는 ‘죽은 빚’이다. 상법은 상행위로 발생한 채권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채권에 대해 추심을 하다 빚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고 완성한다. 빚을 받는데 투입하는 노력 대비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월부터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매각도 할 수 없다. 주택담보대출처럼 담보가 있으면 담보권을 행사해 채권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대부분이 신용대출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멸시효 완성채권은 금융회사가 받기를 포기한 채권이기 때문에 이를 소각한다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진 않는다”며 “오히려 채무자는 연체 기록이 사라져 각종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학렬 기자 toot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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