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종' 취급 당하는 공관兵의 눈물.. "이런게 국방의무인가요"]
- 국방부, 민간인으로 대체 추진
손톱 줍고 속옷 빨래까지 시켜.. '가족 갑질' 육군대장 전역 신청
- 국방부, 민간인으로 대체 추진
손톱 줍고 속옷 빨래까지 시켜.. '가족 갑질' 육군대장 전역 신청
군(軍)에는 지휘관 관사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있다.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영내(營內)에서 머물러야 하는 지휘관들이 원활히 임무를 수행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지휘관과 가족들이 이들을 개인 비서처럼 부리는 경우가 일상처럼 일어난다. 이번엔 이런 일이 폭로되면서 4성 장군이 군복을 벗게 됐다.
군인권센터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초까지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대장) 가족이 관사의 공관병과 조리병에게 온갖 잡일을 시켰다는 제보를 그곳에서 근무했던 복수의 사람들로부터 받았다"고 지난 31일 밝혔다. 병사들이 400㎡(약 120평)에 이르는 공관 청소는 물론 안방 블라인드 치기, 성경책 가져오기, 텃밭 손질 등 온갖 잡무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사령관 가족이 새벽 기도를 가는 오전 6시부터 잠자리에 드는 오후 10시까지 상시 대기하는 생활을 했다는 내용도 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박 사령관 부인은 명절 선물로 들어온 과일 중 썩은 것을 집어던지고, 미나리를 다듬던 조리병의 칼을 빼앗아 휘두르며 "너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고함을 쳤다고 한다. 소파에 떨어진 각질과 손톱을 줍게 하고 아들의 야식 준비, 공군에 복무 중인 둘째 아들의 속옷 세탁과 휴가 후 부대 복귀 등 각종 뒷바라지를 시켰다는 제보도 있었다. 센터 측은 "박 사령관 가족이 공관 밖 외출을 철저히 관리해, 병사들이 피해를 신고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해 박 사령관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박 사령관은 이날 오후 육군본부에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박 사령관은 "지난 40년간 몸담아왔던 군에 누를 끼치고 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자책감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모든 책임은 제게 있으며 국방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휘관 공관에 근무하는 병력을 철수하고, 이를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현재 군 지휘관 관사 또는 공관에는 근무병, 조리병, 운전 부사관 등 2~3명이 근무한다. 대장급 공관에는 4명가량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 장관은 우선 서울 한남동 국방장관 공관 근무 병력부터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관사 근무는 본래 지휘관 등 군 간부의 업무를 보조하고 관사를 관리하는 것이 임무다. 하지만 이 보직으로 군복무를 한 사람 중 상당수는 자신의 군 시절을 '지휘관의 심부름꾼 노릇만 하다가 전역했다'고 회상했다. 강원도에서 당번병으로 근무했던 이모(26)씨는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부대에서 500m 떨어진 관사로 가야 했다. 대대장이 키우는 진돗개 3마리에게 밥을 먹이고, 관사 내 화분에 물을 줬다. 이씨는 "대대장으로부터 '군인들이 먹다 남은 밥·반찬을 커다란 대야에 담고 국물을 부어 개가 먹기 편하게 하라'는 특별 지시가 있었다"며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 음식물을 들고 가다 넘어져 다쳤는데도 대대장은 '개밥도 제대로 못 주냐'며 핀잔만 줬다"고 말했다. 이씨는 군 생활 내내 동료들로부터 '개밥병'이란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당번병으로 복무했던 조모(24)씨는 취침 시간인 오후 10시 이후에도 거의 매일 대대장 자녀의 숙제를 대신해야 했다. 숙제의 대부분은 영어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대대장은 조씨가 명문대에 재학 중인 것을 알고 "실력 발휘 좀 해보라"며 영어 일기장을 내밀었다. 조씨 이전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병사가 그 일을 했다. 조씨는 "중령이 병사에게 '잘 부탁한다'며 지시를 하는데 따르지 않을 병사가 어디 있겠냐"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절할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휘관의 가족들이 병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김모(27)씨는 대대장실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당시 대대장 부인으로부터 "아무도 모르게 잠시 찾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대대장 부인은 김씨에게 초코파이를 하나 건네주며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으니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김씨는 "군인이 아니라 흥신소 직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난처한 상황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김씨는 대대장 부인에게 "안심하셔도 좋다"고 말했으나 추궁은 몇 차례 더 이어졌다고 한다.
군에선 "지휘관이 병사를 하인 부리듯 하는 악습은 군 특유의 계급 중심 문화와 폐쇄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이들을 민간인으로 교체할 때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지, 영내 지휘관 관사에 민간인을 두는 것이 합당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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