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서 지자체 비판 기사 작성하며 여론에 개입
국가기관 산하 준정부기관 고위간부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인터넷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 온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드러났다.
관련법 의제 규정에 따라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준정부기관 소속 고위간부가 기관장 허가도 없이 기자로 활동하며 여론형성에 개입한 사례라 파문이 일고 있다.
◇ 농진청 산하기관 간부가 인터넷신문서 지자체 등 비판기사 작성
2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에 따르면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실장급 간부 A씨는 지난해부터 B 인터넷신문사 등에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은 농촌진흥청이 2009년 9월 설립한 준정부기관이다.
지난해 4월28일 오전 10시53분 이 B 인터넷신문사 홈페이지에 '쓰레기봉투 실명제? 황당무계한 수원 영통구'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이 기사는 3분 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도 표출됐다. 기사는 '생활쓰레기 봉투 실명제' 도입을 추진한 경기 수원시 영통구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A씨는 기사 본문에서 "경기도 수원이 일명 '생활쓰레기 봉투 실명제' 때문에 시끄럽다"고 전한 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영통구민의 반응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영통구민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수원시 영통 쓰레기에 상세 주소를 쓰라니요? 저는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에 4400명이 넘는 사람이 서명했다"며 "일부는 주민소환제를 연급했다"고 밝혔다.
A씨 자신도 수원 영통구 주민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퇴근 후 처음 아내에게서 쓰레기 봉투 실명제 소식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 했다"며 "그러나 다음날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안내문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미쳤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2016년 가장 황당한 사건으로 기록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고 썼다.
기사 말미에는 "영통구에서 생활쓰레기 실명제 도입을 위해 내건 당위는 전형적인 마른걸레 쥐어짜기 정책에 불과하다"며 "지자체에서는 쓰레기 처리의 편의성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이 질에 대해서도 한 번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의 페이스북 '좋아요' 수는 219건(8월1일 기준)을 기록했다.
같은해 6월7일에는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지어야지, 이젠 불가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민간 스타트업 기업을 비판했다. 이 기사 역시 B 인터넷신문사와 각 포털사이트를 통해 전파됐다.
카이스트 출신 공대생들이 설립한 농업회사법인 C사에 IT대기업인 다음카카오 측이 100억원을 투자해 지분 33%를 사들였다는 것을 비판하는 기사다.
A씨는 "많은 사람들이 C사가 시도하는 아쿠아포틱스 농법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 농법이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 관심을 가질만한 기술로 판단되지는 않았다"며 C사의 기술력을 평가 절하했다.
그러면서 C사가 카카오와 손을 잡게 될 경우를 가정해 "C사 자회사의 직영농장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농민이 아니라 노동자"라며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는 분야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A씨는 2015년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인터넷신문을 표방하는 또다른 매체에서 '스마트 농업, 먼저 온 미래', '농업용 드론, 어디까지 왔나' 등 9건의 기사를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 기자 활동 어떻게 가능했나?…공공기관 임‧직원 겸직금지 규정 위반 소지도
A씨가 기자 직함을 달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인터넷 신문사의 독특한 기자 운영 제도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매체는 직접 채용해 급여까지 주는 상근기자와 비상근기자인 시민기자로 나눠 운영하는데 A씨는 시민기자로 활동해왔다.
문제는 A씨가 기자로 활동한 것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37조의 겸직제한과 영리행위 금지 규정 위반 소지가 높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운영법은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상임임원과 직원은 그 직무 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영리 업무를 겸직 할 경우에는 반드시 기관장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A씨의 경우 기관장 허가 없이 기자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B 인터넷신문사 시민기자는 홈페이지에서 본인 인증을 하고 회원가입만 하면 누구나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시민기자가 쓴 기사를 채택하면 홈페이지에 배치면에 따라 '배치 원고료' 명목으로 최소 2000원에서 최대 6만원의 기본 원고료가 지급 된다"며 "'좋은기사 원고료주기'를 통해 독자에게서 후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A씨가 이 매체에서 작성해 홈페이지에 게재된 기사는 2015년 1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총 11건이다. 이 중 9건은 네이버에도 동시 표출됐다.
특히 A씨가 작성한 기사 중 'B급 사과도 그의 손 거치면 상품이 된다'와 '감자로 60억 매출 올린 두 청년' 등 2건의 기사는 지난해 9월 이 매체의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됐다. A씨는 이 매체로부터 '이달의 뉴스게릴라' 상금으로 20만원(사이버머니)을 수령했다.
A씨의 기자 페이지에서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실장급 간부로 재직하고 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A씨는 자신의 저서 '0000-0000000'의 저자라고 소개했다. 이 책은 온라인 도서구매 사이트 '예스24' 등에서 1만6000~1만8000원에 시판 중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준정부기관 임‧직원이 영리를 목적으로 신문기자로 활동할 경우 국가공무원법 64조 영리업무 금지 조항에 준용해 처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인사부서 관계자는 "기자로 활동한 것이 겸직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기사를 써서 매체에서 원고료를 정확히 얼마나 받았는지,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며 "(기자로 활동한 것이 사실이면) 보통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상근기자가 아니라 시민기자로 활동한 것"이라며 "기관장 허가는 받지 않았지만 기사를 쓴 것이 아니라 기고를 한 것이다. 이 매체에서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CBS노컷뉴스 전성무 기자] lenno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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