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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15, 2015

여론조사 가라사대, 믿쑵니까? [시시비비]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부 입장 확대 재생산

여론조사 쫓기 전에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부터 제공해야

어떤 정부도 국민 100%가 찬성하는 정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 구성원 개별이 처한 상황과 조건 그리고 이해와 요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많은 국민이 찬성해주길 원하기에 ‘개혁’, ‘선진화’, ‘성장’, ‘창출’, ‘개발’, ‘행복’, ‘동반’, ‘선진화’, ‘녹색’ 등 온갖 긍정적인 수사어로 포장을 한다. 이럴 때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언론이다. 모든 국민이 스스로 정부정책을 이해하고 유‧불리를 따져보기 어렵다. 따라서 언론은 정부 여당에서 쏟아내는 일방적인 자료뿐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정책을 꼼꼼히 점검하고 전망하며 이해당사자들과 전문가의 입장을 전해야 한다.

많은 정치인과 언론이 최근 금과옥조처럼 전하는 여론조사의 수치는 이런 언론의 공론장 역할이 활성화된 이후에야 의미가 있다. 국민이 정책이나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조차 제공받지 않은 상태에서 거두절미한 채 찬반만을 물어서 나온 수치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정부정책이 발표되면 여론조사 결과부터 들여다본다. 더구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수치만을 들이대며 노골적으로 정부 정책을 편들기에 급급한 보도도 있다.

"노동개혁 찬성 80% 국민여론" 강조했으나 실제 여론조사 질문을 보니

지난 9월 13일 노사정이 노동 부문 정책 방향에 합의한 이후 나온 중앙일보의 <‘노동개혁 찬성 80%’ 국민여론이 타협 이끌었다>(9/14, 3면)라는 기사는 어설프게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댄 기사이다. 중앙일보가 국민의 80%가 노동개혁에 찬성했다고 한 근거로 제시한 것은 "'노동개혁 찬성 80%' 국민여론"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이달 초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조사에선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 정치 현안으로 노동개혁을 첫손에 꼽았"고 △"여의도연구원 조사에선 10명 중 8명이 노동개혁에 찬성했"고 △"파업이 잦은 울산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울산방송)에선 80%가 넘는 시민이 노동개혁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보도에서 언급한 근거들은 타당한 근거일까? 그리고 적절하게 보도에서 묘사했을까?
  
▲ 중앙일보 9월14일 3면 <‘노동개혁 찬성 80%’ 국민여론이 타협 이끌었다>
 
먼저 중앙일보가 근거로 댄 울산방송 실시 조사는 한국갤럽이 8월21일부터 22일까지 울산거주 만 19세 이상 남녀 1,022명을 대상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여론’을 물은 것이다. 한국갤럽이 공개한 질문은 "정부는 현재 임금피크제, 성과 중심 임금 체계, 재량 근로/탄력 근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을 추진 중에 있는데요. ◯◯님께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혹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였다.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필요하다"가 53.1%, "매우 필요하다"가 25.1%가 나왔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담긴 노동개혁의 사례는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내용뿐이고, 논란이 되는 민감한 내용은 없다. 만약 설문 당시 "정부는 현재 ‘일반해고’ 신설, 특정 연령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통상임금 제외수당 법제화, 취업 규칙 개정 요건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을 추진 중에 있는데요. ◯◯님께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혹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면 과연 이처럼 매우 필요하다는 답변이 나왔을까?

기사에서 언급한 또 다른 여론조사는 리얼미터이다. 9월 진행될 정치 현안에 대한 국민 관심도를 물었다. 이 조사에서 국민은 ‘노동개혁’(20.5%)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고, ‘경제 활성화법 통과’(17.7%), ‘선거제도 개혁’(14.8%) 등의 순으로 관심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응답자가 노동개혁에 대해 관심이 높다고 응답한 것을 노동개혁에 찬성한다고 등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사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높다고 응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위인 경제 활성화법 통과도 17.6%로 노동개혁 20.5%와 오차범위 안(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4.4%p)에 있어서 '첫손에 꼽았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상세 조사내역도 공개 안 된 여론조사 결과 부각

가장 문제가 되는 여론의 출처는 여의도연구원 조사결과 인용이다. 통상적으로 언론에서 여의도연구원의 조사결과나 통계를 인용할 때는 대부분 ‘새누리당 싱크탱크’, ‘새누리당 정책연구기관’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그런 수식어가 없이 그냥 ‘여의도연구원’이라고만 언급해서 여당 소속 기관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슬쩍 숨겼다.

또한 기사는 "여의도연구원 조사에선 10명 중 8명이 노동개혁에 찬성했다"라고만 언급되어 있을 뿐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 어떤 조사였는지 여의도연구원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상세한 조사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3월과 4월에 노동개혁 관련 보고서가 있으나 두 보고서 모두 비공개로 되어있으며, 최근 노동개혁 관련 여론조사는 목차 어디에도 없었다. 이처럼 정확한 조사내용조차 공개되지 않는 내용을 근거로 10명 중 8명이 찬성한다고 보도해도 되는 것일까? 중앙일보는 8월 5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여의도연구원 조사라면서 "노동시장 선진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쪽이 80%에 달하고, 노동개혁 실행에 대한 지지가 71.5%"라고 말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이 발언할 때와 언론이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할 때와는 엄연히 태도가 달라야 한다. 특히 따옴표조차 쓰지 않고 단정적으로 <'노동개혁 찬성 80%‘ 국민여론이 타협 이끌었다>라는 제목을 뽑는 기사에 인용되려면 여론조사 내역이 공개된 조사이거나 아니면 기사에서 조사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있었어야 한다.
  
▲ 9월15일 노사정합의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조사 한계는 제쳐두고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부각하는 언론의 문제

노사정 합의 이후 나온 또 다른 두 가지 여론조사를 비교해보자. 한국갤럽이 9월 15~17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임의걸기 방식으로 조사한 내용(신뢰수준 95%, 표본오차±3.1%p)의 설문을 살펴보면 일반 해고의 우려 점을 제시해 주기는커녕 긍정적 요소를 부각시키거나, 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 확대를 선택지 형식으로 놓고 있다. 설문내용을 보자. "정년을 연장하는 것과 청년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요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결과는 청년 일자리 확대 73%, 정년 연장 15%, 모름 11%다. 이 질문은 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 확대를 대립항으로 놓은 부적합한 질문이다. ‘기업 경영 악화에 따른 정리해고 외에 업무 성과가 나쁘거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사람에 대한 일반해고 요건과 절차를 명확했다는 일반해고’의 찬반을 물은 결과 찬성 71%, 반대 18%였다. 이 질문만 놓고 보면 ‘일반해고 요건’에 대한 우려의 견해가 낄 틈이 없다.

이뿐이 아니다. ‘정규직 해고를 현재보다 쉽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으로 △기업이 유연하게 고용할 수 있어야 일자리가 늘어나므로 ‘찬성’ △좋은 일자리마저도 나쁘게 만들 수 있어 ‘반대’라는 예시를 들고 있다.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에 대한 설문 결과 찬성 46%, 반대 41%, 모름 12%로 찬성 의견이 오차범위 안에서 수치가 높은 편이다. 이 질문 예시에는 ‘정규직 해고가 쉬워진다->기업이 유연하게 고용한다->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자본 중심의 도식이 들어가 있다.
  
▲ 지난 7월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물풍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조사에서는 노사정 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 개선안 합의에 대해 물은 결과, 잘된 일 35%, 잘못된 일 20%, 모름 45%였다. 즉 노사정 합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의견이 45%로 높았다. 그리고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는 70% 찬성, 20% 반대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경제지를 중심으로 ‘노사정위 합의에 평가 유보가 45%’인 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노동개혁 정책에 여론이 긍정적이라고 해석한다든지 일반해고와 임금피크제에 대한 여론 결과를 부각시켰다.

매일경제는 <일반해고 도입 국민 70% 찬성>(9/18) 첫 문단부터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이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중 35%가 지난 13일 전격 이뤄진 노사정위원회 합의를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20%는 ‘잘못된 일’이라고 답했다. 응답자 중 45%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상당수 경제지들 역시 <임금피크제 국민 10명 중 7명이 '찬성'>(이투데이), <“일반해고 필요하다” 찬성 71% vs 반대 18%>(한국경제), <‘노동개혁 대타협’ 찬성 35%vs 반대 20%>(머니투데이), <임금피크제 “찬성” 70%-“반대” 20%>(문화일보), <국민, 노사정합의 긍정평가…임금피크제는 70%가 찬성>(서울경제)이란 제목을 달았다.

무엇을 묻는지, 어떻게 묻는지 잘 따져보고 정밀하게 보도해야

그렇다면 노사정 합의 이후 9월 24일 발표된 또 다른 여론조사를 보자. 조사는 민주노총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노사정 합의에 대한 임금 노동자 여론조사’(9월 19~23일 만 19세 이상 전국 남녀 803명, 임의걸기 유무선 전화 면접, 95% 신뢰수준±3.5%)이다. 조사는 합의에 누구의 입장이 가장 많이 반영됐느냐는 질문했다. 조사결과 기업가 29.3%, 정부와 청와대 32.0%, 노동자 11.8%, 기타 1.5%. 잘 모름 25.4%로 나왔다. 또 일반해고 도입으로 현장에 노동자의 해고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53.8%가 우려한다고 답변했고, 36.5%가 우려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또 노동자 동의 없이 사용자가 임의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81.2%가 우려하는 것으로 나왔고, 12%가 우려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이번 합의로 청년 실업 해결 도움 여부를 물은 결과 59.2%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29.3%가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 고용노동부 노동개혁 추진 계획 광고
 
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묻는지 등이 정확해야 하는 여론조사이기 때문에 여론조사에 대한 언론보도는 보다 정밀해야 한다. 단순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수치만을 부각해 거두절미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 개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그 여파는 어떠한지 따져보는 작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이다.

(미디어오늘이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콘텐츠 제휴를 시작했습니다.
이 칼럼은 민언련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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