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뇌졸중 투병 중 본처 가족과 재산분쟁
상속포기 대신 받은 위자료 '비과세' 판정
"그때까지 아이들은 전혀 몰랐어요. 아빠에게 다른 가족이 있다는 사실 말이죠. 저는 두 아들을 끌어안고 그저 울기만 했어요."
30년간 사모님으로 살아온 그녀에겐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중견기업 오너의 아내이자 두 아들을 둔 엄마였지만 사실 그녀는 본처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이미 법률적으로 본처와 아들·딸을 둔 유부남이었죠.
그녀는 혼인신고도 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두 아들을 꿋꿋하게 키우며 남편을 뒷바라지했습니다. 남편도 본처보다는 그녀에게 더 애정을 쏟았고 30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죠.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임직원들은 당연히 그녀가 사모님인 줄 알았습니다.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
◇ 남편의 뇌졸중, 상속재산 포기
그녀의 비밀은 자녀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갑자기 뇌줄중으로 쓰러지면서부터 상황이 틀어졌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남편은 의사소통이 아예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였는데요.
그녀가 남편을 돌본 지 1년이 지날 무렵 본처 가족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남편을 데려갔습니다. 이 때부터 남편의 재산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고 두 아들에게도 더 이상 비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본처는 그녀와 두 아들이 남편의 재산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회사까지 장악해 그녀에게 지급되던 배당금도 끊어버렸습니다. 수입이 완전히 봉쇄된 그녀는 결국 본처 가족에게 상속재산 포기 각서를 쓰는 대신 합의금 수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남편과의 30년 인연을 정리했는데요. 재산권 다툼이 끝난 지 2년 후 남편이 사망했고 그녀와 두 아들은 상속재산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 국세청 "합의금에 증여세 내라"
아픔을 잊고 살아가던 그녀에게 한 통의 과세 통지서가 도착한 건 남편이 사망한 지 8년 만이었습니다. 지난해 3월 국세청은 그녀에게 증여세를 납부하라고 통보했는데요. 국세청이 본처 가족에 대한 상속세 세무조사에 나섰다가 그녀가 10년 전 합의금을 받은 걸 알고 증여세를 부과한 겁니다.
그녀는 사실혼 관계를 청산하는 대가로 받은 위자료 명목이어서 증여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국세청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국세청은 그녀가 재산상 권리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합의금을 받았기 때문에 증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배우자로부터 받은 위자료가 아니라 그냥 타인한테 받은 포괄적 금전의 대가라고 해석한 거죠.
그녀는 지난해 5월 국세청의 과세 처분에 불복해 심판청구를 제기했고 최근 조세심판원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심판원은 그녀가 받은 합의금이 사실혼 관계를 종료한 데 따른 위자료 명목이 맞다고 해석했는데요. 국세청이 그녀에게 부과한 증여세를 취소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심판원은 "1971년 사실혼 관계를 시작한 이후에 획득한 자산에 대해서는 동등하게 배분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확인된다"며 "사실혼 청산에 대한 위자료 성격이므로 증여세를 과세한 처분은 잘못"이라고 밝혔습니다.
*비과세 증여재산
배우자와 이혼할 때 받는 위자료는 증여세 과세 대상이 아니다. 세법에서 비과세로 규정한 위자료에는 사회통념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부양가족의 생활비, 학자금, 혼수용품 등이 포함된다. 다만 혼수용품은 가사용품에 한하며 호화사치용품이나 주택, 차량 등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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