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가진 고리1호기 핵발전소 영구정지 기념사에서 “고리 1호기의 가동 영구정지는 탈핵국가로 가는 출발,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대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핵발전에서 탈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값싼 발전단가를 최고로 여겼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였다”며 기존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했다.
한전의 시나리오1, 2는 배제하고 계산
문 대통령의 선언 이후 야당을 비롯한 사회 각층에서는 탈핵이 ‘전기요금 폭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뉴스 댓글란에도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 경험담을 들며 탈핵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황주호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추가 원전 건설 등을 하지 않고 (부족분을)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때 전기요금이 79% 상승할 것”이라는 언론 인터뷰를 했고, 국책기관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30년 발전비용이 약 21% 증가할 것이며. 전기요금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GDP는 감소할 것”이라는 취지의 자료를 발표했다.
‘전기요금 폭탄’ 논리에 가장 앞장선 것은 6월 21일 발표된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정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산업자원부와 한전에 문의한 결과 문 대통령이 공약대로 탈핵·탈석탄을 실시할 경우 2030년에 가구당 31만4000원의 전기료(연간)가 추가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 의원은 문 대통령의 공약과 기존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참고해 발전 설비용량 기준으로 2030년 석탄 19.5%, 핵발전 10.6%, LNG 20.2%, 신재생 39.9% 순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발전량 기준으로는 석탄 35.5%, 핵발전 18.4%, LNG 17.3%, 신재생 20.0% 순이었다.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20%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정 의원은 이 시나리오를 근거로 2030년 한전의 전력 구입단가는 102.72원/㎾h로, 2016년의 82.76원/㎾h보다 17.9% 인상된다고 밝혔다. 인상된 금액을 가구별로 나눠 계산하면 가구당 31만3803원이 인상된다는 것이 정 의원의 주장이다.
정 의원의 시나리오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7월 수립된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유사하다. 당시 산자부는 설비용량 기준으로 2029년 석탄 26.5%, 핵발전 23.4%, LNG 20.6%, 신재생 20.1%의 비중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탈핵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처럼 전기요금이 큰 폭으로 오르게 될까. 민간단체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권승문 상임연구원은 “전기요금 폭탄 주장은 가짜뉴스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선 한국전력에서 정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전은 박재호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정유섭 의원의 요청에 따라 시나리오별 전력구입비 변동 단가를 3개 시나리오로 나눠 제출했으며, 정 의원실에서 시나리오 3을 기준으로 보도자료를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전은 애초에 정 의원실에 세 가지의 시나리오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한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시나리오 1과 2의 전력구입비 단가는 ㎾h당 각각 80.23원과 86.09원으로, 지난해 한전의 전력구입비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 정 의원실에서 무슨 이유인지 시나리오 1·2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한전은 2030년 전기요금이 ‘가구당’ 인상되는 게 아니라 ‘계약 호당’ 인상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택용 따로 나눠 계산하면 훨씬 낮아
정 의원의 자료만 봐도 ‘연간 전기요금 31만원 인상’이라는 말은 과장이다. ‘31만원’은 산업용, 상업용, 주택용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용도별로 나눠보면 산업용 전기료는 1320만7000원가량 인상된다. 하지만 주택용 전기료의 인상폭은 연간 6만2000원, 월간 5200원에 불과하다.
권승문 연구원은 정 의원과는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정 의원의 시나리오는 탈핵·탈석탄 발전으로 인한 전기 부족분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권 연구원은 LNG가 기존의 기저발전에 해당하는 핵발전과 화력발전을 대체하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를 늘려가는 방식이다. 그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전력 발전량도 부족하지 않으면서 문 대통령의 목표치와 근접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가능하다.
권 연구원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2030년 전력 발전량 비중 추정치는 석탄 23.9%, 핵발전 13.8%, LNG 44%, 신재생 17%다. 권 연구원은 “이 시나리오에서도 발전단가는 96.2원/㎾h로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환경오염 등 여러 가지 외부비용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 쪽 시나리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과거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비해 1028만3000톤(CO2eq)이 낮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 쪽 시나리오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전에 LNG 발전 비중을 먼저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6월 20일 한국투자증권 강승균 연구원은 ‘탈원전의 반사이익은 LNG 발전이 누릴 전망’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 강 연구원은 “신재생 발전은 아직 현실적이지 못해 LNG 발전이 중단기적인 대안”이라며 “LNG 수요가 (매년 줄어들던 것에서) 2031년까지 연평균 2.6% 늘어나는 것으로 정부 전망의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 연구원은 이에 앞선 4월에 발표한 또 다른 보고서에서 LNG 발전이 석탄발전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선 그는 석탄발전소 공급이 포화상태에 달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올해 신규 도입될 발전설비 용량 중 절반이 석탄발전소였고, 석탄발전의 비중이 내려가지 않음에 따라 민간 LNG 발전사들의 발전 가동률은 2013년보다 절반 이하로 낮아진 상태다. 즉, 화력발전은 정점을 찍고 내려올 수밖에 없는 반면, LNG 발전은 최저점에서 비중을 늘려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강 연구원은 석탄발전이 LNG발전보다 싸다는 통념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 그는 “환경비용, 사후처리비용, 탄소배출권 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LNG 발전단가가 그리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국제 석탄가격이 6년간의 하락세를 멈추고 지난해부터 급등하기 시작했며, 올해 발전용 석탄 단가는 전년 대비 30%가량 오른 12만5000원이 될 것으로 봤다. 강 연구원은 LNG 발전소인 광양복합발전소의 사례를 들었다. LNG를 직수입해 생산단가가 낮은 광양복합발전소의 발전단가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석탄발전소 중 가장 효율이 떨어지는 호남석탄발전소보다 낮아졌을 것으로 봤다. LNG 발전이 석탄발전보다 가격이 낮아진 드문 사례인 셈이다. 강 연구원은 “2017년부터는 석탄발전이 LNG발전보다 항상 싸다는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발전소 해체 비용은 1기당 최소 6000억
권승문 연구원이 언급한 ‘외부비용’을 감안하면 지금처럼 핵발전, 석탄발전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비경제적일 수도 있다. 국책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2013년과 2014년 ‘화석연료 대체에너지원의 환경, 경제성 평가’라는 제목으로 여러 에너지원의 사회적 비용을 추산했다.
사회적 비용은 크게 사적 비용과 외부비용으로 나뉜다. 사적 비용은 해당 에너지원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전력 거래가격에 대부분 포함돼 있다. 반면 외부비용은 전력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비용이다. 정부보조금이나 원자로 해체비용,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한 비용이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핵발전의 외부비용에서 ㎾h당 적게는 54원, 많게는 205원가량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며 “원자력 발전의 외부비용을 반영할 경우 경제적으로 저렴하다고 생각됐던 원자력의 장점이 희석되며, 타 에너지원의 발전단가에 근접해간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7월 3일 발표된 ‘녹색당 대안전력 시나리오 2030’(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작성)도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의 연구를 토대로 각 에너지원별 외부비용을 추정했다. 녹색당은 핵발전의 외부비용을 102원/㎾h, 석탄발전은 88원/㎾h, LNG는 35원/㎾h로 분석했다. 2016년 한국전력통계 발전원별 구입단가에 따르면 핵발전은 68원/㎾h, 석탄은 74원/㎾h, LNG는 121원/㎾h였다. 외부비용을 감안한다면 핵발전과 석탄발전은 통념과 반대로 가장 비싼 에너지원인 셈이다.
설사 전기요금이 오른다 할지라도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에는 ‘폭탄’이라고 할 만한 추가 인상 요인은 없다. 화력발전의 경우, 이미 지난해 7월 박근혜 정부에서 발표한 ‘석탄발전 미세먼지 대책’에서 10기의 노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사안이다. 당시 산자부는 발전소 10기를 폐기함과 동시에 건설 중인 발전소 외에는 신규 화력발전소는 원칙적으로 짓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서천 1·2호기 발전소를 시작으로 2025년 12월 보령 1·2호기 화력발전소까지 10기가 순차적으로 없어질 예정이다.
핵발전소의 경우 이번에 가동이 중단된 고리1호기와 내년에 중단될 예정인 월성2호기를 제외하면 모두 사용연한이 남은 핵발전소다. 2023년 4월 8일 수명이 만료되는 고리2호기부터 매년 1·2기의 핵발전소가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핵발전소의 해체 비용은 1기당 최소 6000억원대로 추산된다. 하지만 가동 중단된 핵발전소에 5년의 냉각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핵발전소 해체작업은 빠르면 2022년에 시작될 예정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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