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조윤선 등 블랙리스트 관련자 3일 구형]
김 '좌편향 정부 지원 전수조사' 지시로 리스트 시작
세월호 참사 뒤 청와대가 80명 추려 하달하며 본격화
국정농단 터지기 직전까지 1만여명으로 명단 불어나
중단 의견 낸 공무원에는 사진·좌천 등 불이익 줘
김 "좌편향 정부 지원 바로 잡은 것" 정책 집행 주장
특검 "편가르기..공무원에 의무 아닌 일 강요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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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 의견 낸 공무원에는 사진·좌천 등 불이익 줘
김 "좌편향 정부 지원 바로 잡은 것" 정책 집행 주장
특검 "편가르기..공무원에 의무 아닌 일 강요한 죄"
[한겨레]
2013년 말부터 3년간,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블랙리스트’라는 가욋일에 분주했다.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야당을 지지한 문화예술인들을 낙인찍고, 때론 정부 지원을 중단했다. 지난 4월6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 블랙리스트 관련 피고인들이 처음 법정에 선 이후 석 달 동안 달려왔던 재판은 3일 특검팀의 구형과 최후변론 등 마무리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지난 재판의 쟁점을 주요 증언과 증거를 바탕으로 톺아본다.
■ 김기춘과 함께 떠올랐다 블랙리스트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부임(2013년 8월)과 함께 잉태됐다. 그해 말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변호인> 등이 화제를 모으자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의 화두로 ‘비정상의 정상화’, ‘보수 가치의 확산’ 등이 떠올랐다. 박준우 전 정무수석의 업무수첩엔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정권 초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좌편향 문화예술계 문제” 등 김 전 실장의 주문이 빼곡했다.
정부의 좌편향 단체 지원 실태를 전수 조사하라는 김 전 실장 지시에 따라 이듬해 4월 정무수석실 주도로 ‘민간단체 보조금 티에프(TF)'가 꾸려진 게 블랙리스트 작성의 시작이었다. 블랙리스트가 본격 가동된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최규학 전 문체부 기조실장은 “세월호 때 문화예술인들이 치유 역할을 한 것을 위에서 비판적으로 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해 6월 김소영 당시 문화체육비서관으로부터 전해 받은 80명 명단이 최초의 블랙리스트였다고 했다. 명단은 한때 1만여명까지 늘었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를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의 이름을 주로 올린 것에 주목해 ‘편가르기’의 결과물로 본다. 반면 김 전 실장 쪽은 재판에서 ‘좌파 세력에 편향된 정부 지원의 균형을 맞춘 것’이라는 정책 집행 논리로 맞섰다. ‘블랙리스트’ 사안이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 범죄도 아니고,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예술활동을 못 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 직권남용 혐의 인정될까 특검팀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티에프에 관여한 신동철·정관주 전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 등을 기소하며 문체부 공무원 등과 공모해 문체부 산하기관 임직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강요)를 적용했다.
재판에선 당연히 ‘블랙리스트’ 작성·집행이 문체부 등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 범위에 속하는지가 주요 쟁점일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 실무를 맡은 공무원들은 일반적 직무가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우재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은 “정권에 비판적이더라도 범죄사실도 없는 이들의 명단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한 판사도 “국민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므로 작성 자체로도 혐의를 구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또다른 판사는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내부 명단을 작성하는 것은 통상적 업무로 볼 수 있다. 명단을 토대로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게 구체적으로 증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기춘·조윤선 어디까지 관여했나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집행과 관련이 없는데도 단순히 “선입관”, “오해”에 의해 기소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증거와 증언은 다른 곳을 가르키고 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2014년 10월 지원 배제는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김 전 실장이 ‘우리는 극보수다. 원칙대로 가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통령 다음으로 폭넓은 권한을 갖는 비서실장이 ‘보조금 지원이 편향되지 않게 하라’고 한 것은 비교적 구체적 지시”라고 짚었다.
조 전 장관의 관여 정도에 대해선 증언이 엇갈린다. 조 전 장관이 정무수석이던 시절 함께 일한 정관주 전 국민소통비서관은 “조 전 수석이 ‘건전콘텐츠 활성화 티에프’ 내용을 지시했는지 명확치 않다”고 했다. 다만 증인들은 조 전 장관이 문체부 장관(2016년 9월~2017년 1월) 재직 시절엔 ‘블랙리스트’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오진숙 문체부 서기관은 “조 전 장관이 ‘청와대와 온도 차가 있는 거 같다’며 블랙리스트 관련해 자세히 보고해달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실장 등은 블랙리스트가 문체부 독자 판단이란 주장도 내놓고 있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28일 피고인신문에서 “문체부 직원들이 (블랙리스트 업무로) 어려움을 겪었다면, 장관이 직원들 애로를 들었어야지 뭐한 건가”라고 역공을 폈다. 하지만 김종덕 전 장관은 재판에서 “문체부에서 명단이 올라가도 청와대에서 질책이 있었다. 문체부만 했으니 청와대는 무관하다는 건 정말 무책임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 ‘떠난 자’와 ‘쫓겨난 자’…누구 책임인가 문체부에 ‘영혼 있는 공무원’이 있었지만 오래 머물지 못했다. 블랙리스트 축소나 중단 요청은 좌천이나 사직 강요 같은 불이익으로 돌아왔다. 블랙리스트 명단을 줄였던 김상욱 전 문체부 콘텐츠정책관은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으로부터 “너 찍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다음날 그는 바로 대한민국예술원 사무국장으로 좌천됐다. 최규학 전 문체부 기획조정실장 등 3명은 블랙리스트 적용에 미온적이었다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체부 산하기관 임직원 역시 예산권을 가진 문체부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홍승욱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장은 “예술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별도) 재원이 없다 보니 문체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원배제 후 직원들이 예술가를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고 증언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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