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사법기관 인권실태 (4)법원] 사법부 신뢰도 OECD 42개국 중 39위.."전과자에게 무죄추정•증거재판주의는 남의 나라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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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국정운영의 기본방침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인권 경시 태도와 결별해 국가의 인권 경시 및 침해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바로 잡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위축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다시 제고할 방침이다. 각 국가기관들이 인권위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사정•사법기관이다. 시사저널은 검찰•경찰 등에서 현재도 반복되고 있는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네덜란드의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가 1498년에 그린 ‘캄비세스 왕의 심판’이라는 그림이 있다. 고대 페르시아의 전제군주 캄비세스가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판결을 내린 재판관 시삼네스에게 살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내린 이야기를 옮긴 작품이다. 캄비세스는 벗겨낸 살가죽을 재판관의 의자에 씌우고, 후임 재판관으로 시삼네스의 아들을 임명하면서 “어떤 의자에 앉아 판결하고 하고 있는지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재판관의 책무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다.
2015년 OECD에서 발표한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42개국 중 39위(27%)를 차지했다. 우리보다 신뢰도가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26%), 칠레(19%), 우크라이나(12%) 정도이며, OECD 국가 평균은 54%로 우리나라의 두 배에 이른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주관해 매년 실시하고 있는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법원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7.9%, ‘법원을 신뢰한다’는 비율은 29.8%에 그쳤다.
이를 보여주듯 최근 법원의 판결에 집단 반발하며 항의하는 사례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적장애 여중생을 성매매 시키고 나체 영상까지 찍은 혐의로 구속기소 된 10대들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자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을 비판했고, 개 30마리를 묶어 놓고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로 도살한 혐의로 기소된 농장주가 무죄를 선고받자 동물보호단체들은 무죄 파기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반대로 대한의사협회는 부주의로 분만 중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유죄를 선고받자 ‘전국 산부인과 의사 긴급 궐기대회’를 열고 8000여명의 탄원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법원 신뢰도 30%에도 못 미쳐
특히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한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년 간의 복역을 마치고 지난 8월23일 출소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 전 총리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면서 “기소도 재판도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2015년 8월 한 전 총리에 대한 유죄가 선고되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조인 출신인 문 대통령과 추 대표가 사법부의 권위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13명의 대법관은 한 전 총리에 대한 3억원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 만장일치로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다른 6억원 부분은 유죄 8명, 무죄 5명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등 대법관 8명은 상고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한 전 총리에 대한 징역 2년•추징금 8억8000만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6억원 뇌물수수 혐의에 소수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들(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김소영)은 이 판결이 “형사재판 기본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6억원 뇌물 수수 혐의는 돈을 건넸다는 공여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공여자는 재판 도중 진술을 뒤집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재판은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1심은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1심을 뒤엎고 유죄를 내렸다. 이 때 항소심은 공여자를 법정에 부르지도, 직접 심문도 하지 않았다.
“한명숙 재판, 무죄추정·증거재판주의에 어긋나”
5명의 대법관들은 이 부분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이들은 “한 사람의 검찰진술과 법정진술이 정반대의 내용인 경우, 검찰진술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증인의 법정진술을 믿을 것인지가 핵심쟁점이다. 다수의견은 법정진술보다 검찰진술에 우월한 증명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이어서 이에 동의할 수 없다”며 “검찰 수사과정에서 작성한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없다. 수사기관이 조사과정을 기록하지 않아 형사소송법(제244조의4 제3항, 제1항)에서 정한 절차를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검찰 진술조서가 작성되는 증거수집 과정에 허위가 개입될 여지가 있음에도, 대법원이 제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사과정에서의 진실 왜곡의 위험성을 공판절차에서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고 덧붙였다.
소수의견은 형사소송법 307조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5명의 대법관들은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308조가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하도록 규정한 것은,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을 허용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도처에 허점이 보이는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장부를 끌어다 검찰진술을 통째로 믿은 원심의 판단이 옳다는 다수의견은, 기록에 나타난 증거들을 깊이 분석해 따져보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에 반하는 재판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A씨의 재판은 수사과정에서 진실 왜곡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 유일한 증거가 증언뿐이라는 점, 증언의 신빙성이 낮다는 점, 그럼에도 유죄가 선고됐다는 점에서 한 전 총리의 경우와 판박이라 할 수 있다.
“유일한 증거인 증언으로만 유죄 판결”
A씨는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탔다가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었다. A씨는 “택시기사가 손을 밀어 손등에 상처를 입었다”고, 택시기사는 “A씨가 뺨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 도중 A씨와 택시기사는 화해했고, 쌍방 폭행 혐의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되는 듯 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난 후 A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택시기사가 2개월이 지난 뒤 처음 진술을 뒤집고 운전 중 폭행당했다고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A씨에 대한 재조사는 없었다. A씨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면서 “사소한 시비였기 때문에 화해하고 헤어졌다. 경찰이 운전기사에게 ‘폭행당했다고 진술하라’고 종용했다고 알고 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라고 분개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문 아무개씨는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문씨는 “우연히 사건을 접하고, 일반적인 정의관념과 상식적인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 점들이 있다고 생각돼 탄원서를 작성하게 됐다”면서“조사를 마친 후 A씨는 담당 경찰로부터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택시기사가 일방적으로 진술을 번복함에 따라 처벌을 원하는 의사가 없으면 처벌받지 않는 범죄(쌍방폭행)에서 그렇지 않은 범죄(특가법상 운전자 폭행)로 변경됐고, 그 이후 A씨는 별도의 조사를 받지 못하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는 적정한 수사 절차가 아니며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A씨의 폭행 증거는 택시기사의 증언이 유일했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공교롭게도 택시 블랙박스는 고장인 상태였고, 상해진단서 역시 없었다.
택시기사의 증언도 오락가락했다. 택시기사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경찰 조사에서 구체적 진술 없이 추상적으로 “뺨을 한 대 맞았다”고 말했다. 두 달 뒤 검찰에 제출한 탄원서에서는 “주먹으로 뺨을 두 대 맞았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는 “차를 세운 상태에서 맞았다”고 했다가 탄원서에서는 “운전 중에 맞았다”로 바꿨다. A씨는 “운전 중 주먹으로 얼굴을 두 번이나 맞으면 충격 때문이라도 운전을 계속 할 수 있겠나”면서“전부 다 날조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과자라는 주홍글씨로 유죄 판결 받았다”
법정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해진단서도 없고 얼굴에 폭행당한 흔적도 없자 검사는 “주먹으로 운전 중인 피해자를 2회 폭행했다”는 공소사실을 “손으로 폭행했다”는 식으로 구술(口述)에 의한 공소장변경을 신청했다. 피고인 A씨의 동의는 물론 없었다. 공소장변경 신청은 ‘서면’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며, 형사소송규칙에 따라 피고인의 동의가 있거나 피고인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구두신청’을 허용하고 있다. A씨는 폭행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의 이익에 부합되는 경우도 아니었다.
그러나 법정은 이를 받아들였다. 공소장이 변경되자 택시기사는 “주먹으로 맞았다”는 진술을 번복하며 “어떻게 맞았는지 모르겠다”는 애매한 진술을 반복했다.
유일한 증거인 택시기사의 진술이 흔들렸지만 1심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2심 역시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307조에 의거한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명제와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그저 헛된 구호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진범이 처벌을 면하더라도, 적어도 무고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이고 법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한 전 총리의 재판에서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 5명의 판단이다. 이밖에도 증언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A씨와 같은 판결은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전 총리의 판결은 세상의 주목을 받았지만 일반 국민의 경우 억울함을 느껴도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사법부의 판결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정의사법구현단, 사법정의국민연대, 관청피해자모임, 좋은사법세상 등 사법피해자단체들은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부패하고 썩은 집단이 검사와 판사”라면서 “법원장으로 퇴임한 한 변호사는 판사근무 당시에는 오심이 5%쯤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변호사로 사건을 상담하다보니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30%에 이른다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피고가 ‘전과자’일 경우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을지라도 같은 유형의 범죄 경력이 있을 경우 전과 기록이 유일한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경찰의 조사, 검찰의 기소, 법원의 판결은 모두 상식 밖이다. 내가 전과자이기 때문이다. 주홍글씨와 다름없다”면서 “법원은 ‘니가 니 죄를 알렸다’는 식의 ‘원님 재판’을 하고 있다. 법원은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 국민의 비판을 ‘법원의 독립을 위협하는 부당한 시도’라고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스스로 법과 원칙을 짓밟고 있다. 법 위에 판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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