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미치광이 이론' 한국에 우선 적용 지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을 한국에 우선 적용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임하라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 백악관에서 라이트하이저 대표 등이 참석한 각료급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미 FTA를 즉각 폐기하겠다고 한국 측에 통보하라고 지시했다고 미국의 언론 매체 악시오스(Axios)가 2일(현지시간) 단독으로 보도했다. 미치광이 이론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전략으로 대통령이 미치광이여서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이미지를 상대국에 심어줘 상대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이 회의에서 한·미 FTA 폐기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 회의에는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함께 렉스 틸러슨 국무, 제임스 매티스 국방, 소니 퍼듀 농무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이 ‘미치광이’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한·미 FTA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국 측에 통보하라고 라이트하이저 대표에게 구체적인 지침을 하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협상 전략으로 한·미 FTA를 폐기 압박을 가할 뿐 아니라 실제로 이를 폐기할 수 있다고 각료들에게 강조했다고 이 매체가 이날 회의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백악관 한·미 FTA 대책 회의록

△트럼프:(라이트하이저 대표에게) 당신에게 30일의 시간을 주겠소. 당신이 만약 그사이에 한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면 나는 협정을 폐기할 것이오.

△라이트하이저: 잘 알겠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들에게 30일의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겠습니다. (트럼프가 그의 말을 끊으며)

△트럼프: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협상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오. 당신이 한국 사람들에게 30일의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면 절대 안 돼요. 한국 사람들에게 가서 말씀하시오. 그 사람(트럼프 대통령)이 진짜로 미쳐서(so crazy) 당장 협정을 폐기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오. 당신은 그런 식으로 말을 해야 해요. 그런데 말이오. 내가 진짜로 그렇게(한·미 FTA 폐기) 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 모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30일 얘기는 꺼내지도 마시오. 그런 말을 하면 한국 사람들은 그 시간을 연장하려고 들 것이 아니겠소.

◆대북 정책에도 미치광이 이론

트럼프 대통령은 1일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문제에도 ‘미치광이 이론’을 동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틸러슨 국무부 장관이 북한과 2∼3개의 직접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있는 사실을 공개하자 즉각 트위터를 통해 틸러슨 장관에게 면박을 주었다. 트럼프는 트위터 글에서 “훌륭한 국무부 장관인 틸러슨에게 ‘리틀 로켓맨’(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렉스, 당신의 기운을 아껴라.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WP) 등 주요 언론은 북한과 대화를 하려다가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틸러슨 장관이 사임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 장관을 공박한 것은 미치광이 이론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악시오스는 “많은 세계 지도자들은 트럼프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트럼프 자신은 이런 평판을 자신의 자산(asset)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동맹국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고, 적성국은 불필요한 자극으로 의도하지 않은 전쟁이 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미치광이 이론 효과 논란

트럼프 대통령 측근은 그의 미치광이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북한에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시사 종합지 뉴 리퍼브릭(New Republic)은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인 북한에 미치광이 이론이 먹힐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뉴 리버브릭은 “트럼프의 말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가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 수백만 명의 죽음을 감수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가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인물이지만 대북 핵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릴 조짐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악시오스의 보도 등을 읽을 수 있어 트럼프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뉴 리퍼브릭은 “미치광이 전략은 미국 지도부의 무기력증과 무책임성을 배가할 뿐이고, 협상에서 지렛대가 전혀 되지 못한다”면서 “그것은 그냥 미친 짓일 뿐이다”고 평가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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