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최측근 비서실장에 ‘직보’ 드러나…권재진·박범훈 수석도 보고 받아
ㆍ이명박 전 대통령 개입 의혹 증폭
ㆍ이명박 전 대통령 개입 의혹 증폭
‘MB맨’으로 불린 임태희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장(61·사진)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연예인들을 불법사찰한 문건을 직접 보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64)과 박범훈 교육문화수석(69)도 해당 문건을 보고받았다. 국정원의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이명박 전 대통령(75) 최측근 인사까지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수사 가능성과 함께 이 전 대통령의 개입 의혹도 더욱 짙어지고 있다. | 관련기사 3면
14일 경향신문이 확인한 2011년 7월 무렵 국정원이 작성한 ‘등록금 집회 참가 연예인 신원사항’ ‘좌파 연예인들의 등록금 불법시위 참여 제어’ ‘MBC 좌편향 출연자 조기 퇴출 확행’ 등의 문건을 보면 이 같은 내용이 적시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66·구속)은 ‘반값 등록금 실현 요구’를 비롯한 정부 비판적 사회 활동을 해오던 배우 김여진·김규리씨, 방송인 김미화씨, 가수 고 신해철·윤도현씨 등 연예인들을 ‘강경 좌파’로 분류하고 직원들을 통해 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어 국정원은 이들 연예인을 출연 중이거나 출연이 예정된 방송에서 하차시키는 등의 공작을 했다.
해당 문건들은 원 전 원장 등 국정원 지휘부뿐만 아니라 당시 임태희 실장, 권재진 수석, 박범훈 수석 등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국정원 문건은 통상 국정원 차장, 원장을 거쳐 유관 부처 및 수석실에 배포되는 구조”라며 “그러나 연예인 사찰 문건을 비롯한 일부 문건은 수석실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직접 보고가 올라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이 불법사찰한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하거나 먼저 청와대에서 요청이 오면 국정원이 작성해 보고가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실행을 보고받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전 대통령이 이 같은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조사 결과에 따르면 권 전 수석은 2010년 8월 ‘좌편향 연예인의 활동 실태 및 고려 사항 파악’, 2011년 12월 ‘마약류 프로포폴 유통 실태, 일부 연예인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소문 확인’을 국정원에 각각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가 2010년 1월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 스님을 사찰하고 비위 사실 및 좌파 활동 경력을 인터넷에 확산할 것을 국정원에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 문건에 적시된 계획대로 연예인들에 대한 공작은 실행됐다. 2011년 무렵 활발한 사회 참여 활동을 하던 김여진씨는 그해 7월부터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고정 출연하게 돼 있었으나 국정원과 김재철 당시 사장(64) 등 MBC 경영진의 방해로 출연이 좌절됐다.
그해 5월 말 국정원 심리전단 팀장 유모씨(57) 등은 원 전 원장 지시에 따라 김씨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배우 문성근씨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듯한 합성사진을 제작해 인터넷에 게재하기도 했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유씨는 “상사의 부적절한 지시를 거부하거나 차단하지 못하고 실행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야기하고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울먹였다.
<정대연·유희곤·이혜리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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