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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23, 2011

천안함, 구조활동 ‘증언’에 분노한 이유



천안함, 구조활동 ‘증언’에 분노한 이유 억만금을 줘도 못 바꿀 우리 가족
(서프라이즈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1-08-24)


누구인가 당신에게 제안하여
가족 중 누구를, 억만금을 준다면 바꿀 수 있겠는가.
세상 민심이 제아무리 흉흉하고 가난하게 살지라도 피를 나눠 가진 가족을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금품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금수나 할 짓이지 차마 인간이 할 짓인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큰 권리이자 책임은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을 잘 지키는 일이다. 심지어 동물 사회(?)에서조차 이런 일은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게 아닌가.
부득이 가정을 잘 지키지 못할 사정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 구성원의 마음은 늘 가족과 함께 있을 것이며, 죽으나 사나 특정 가족의 일원으로 세상에 태어난 사실 등에 대해 영원히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또 그 가족을 품고 있는 국가는 정부를 두고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동시에 재산을 보호하고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복지혜택을 고루 나눠줘야 할 것이다. 그건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이나 미개한 나라라 해도 같은 생각을 품고 국정을 운영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어제 서울중앙지법 524호 법정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연인들은 천하를 다 줘도 바꾸지 않을 가족들을 정부가 함부로 방치하고 국민들을 속여온 사실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현장을 고발한다.

천안함 침몰사건 첫 공판 소식을 끄적이면서 새삼스럽게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한 ‘가족’ 이야기를 꺼내 든 건 다름이 아니다. 천안함 침몰사건 첫 공판에서 참 희한한 일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증인으로 출두한 한 증인의 어이없는 증언 때문에 대한민국이 어디로 표류하고 있는지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포스트를 천안함 사고로 실종되고 숨진 승조원들의 유가족이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게 될지 매우 궁금하기도 하다.
이미 천안함 사고는 이명박 정권이 친정부 합조단을 통해 침몰원인을 조사 발표하고 <천안함 피격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백서를 발간하는 한편, KBS가 앵벌이 모금에 나서 유사 이래 유례가 없는 거액의 보상금과 포상 등으로 유가족들을 위로한 바 있다. 보상금의 액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소한 10억 원 이상의 금액이 지급되었다고 하므로 실종·사망 승조원을 그 액수와 맞바꾼 것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까. 보상금 등 천안함 승조원들이나 유가족의 처우는 정부 차원에서 형평에 맞게 처리하면 될 것이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다 불의의 사고로 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가 ‘불의의 사고’를 조작질하는 등 사실과 다른 이유로 천안함 사고 유가족들을 포상하거나 국민들을 기망한 사실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제 글쓴이는 천안함 침몰사건 첫 공판을 방청석에서 지켜보며, 천안함의 선체인양·구조활동과 관련되어 증인으로 채택된 박규창 증인(당시 해군본부 군수참모부 수송과장)의 증언을 듣게 됐다. 그의 증언을 가만히 속기하며 듣자하니 글쓴이뿐만 아니라 방청석 곳곳에서 나직하게 빈정대는 소리가 들렸다. 변호인 측 심문에 대한 증인의 증언에 어이없어하는 표정들이었다. 글쓴이는 속으로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한 이유가 뭔가.

그 상황을 여러분들이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지난해 천안함이 침몰할 당시 언론에 보도되고 있던 천안함 침몰사고 소식을 들추어 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초대형 크레인의 모습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린다. 위 그림을 잘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 대형크레인이 태크보트에 이끌려 백령도 앞바다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멀리 우리 해군 광양함과 미군의 살보함이 보인다. 그 뒤로 백령도가 보인다.
위 그림은 대형크레인이 백령도 앞바다에 도착하여 천안함을 인양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크레인이 내린 대형 훅크 아래를 잘 살펴보면 빨간 부이(부표)가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 까만 점들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 해군(해병)의 잠수사 등 인양전문가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사고현장에 있는 모습이다. 곧 가라앉은 천안함이 인양될 시점의 모습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을 말씀드리면 우리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는 내용이다.
대형크레인이 거제도에서 급히(?) 출발한 이유는 천안함 승조원들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과 함체 인양 때문이었다. 천안함은 언론 보도와 달리 두 동강이 아니라 세 동강으로 쪼개졌지만, 함미 쪽 승조원들이 격실을 닫고 있으면 선실 내부의 공기로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신문과 방송들이 떠들고 있을 당시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승조원들이 제발 무사하기를 바랐다. 또 승조원 가족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시가 급하고 일각이 급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안함을 급히 인양해야 할 대형크레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군 당국(해군)이었다. 박규창 증인의 증언을 확인해 볼까. 박규창 증인의 증언은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의 ‘모두진술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이후 시작됐다. 그의 증언 등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천안함 침몰사건 첫 재판 ‘박규창 증언’ 스케치

박규창은 천안함 침몰 당시 해군본부 군수참모부 수송과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천안함이 침몰하는 시각 외부에 머물고 있었다. 그가 천안함 침몰소식을 알게 된 것은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30분경이었는데, 군 당국이 발송한 휴대폰의 ARS를 통해 비상소집 소식을 듣게 됐다. ARS 내용은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내용이다. 박규창의 보직은 수송과장이다. 수송과장이 하는 직무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니 군함을 인양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군용차량이 고장 나는 등 사고가 났을 때 사고처리나 견인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민간으로 치면 ‘애니콜서비스’ 같은 임무가 박규창의 직무였다. 차량관리가 주 임무였던 것이다. 변호인 측이나 방청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천안함을 인양해야 할 임무를 ‘애니콜’에 맡기다니 하는 표정들이며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방청석에서 비웃음이 들린 것도 이때부터다. 증인의 임무가 의심스러웠던 변호인 측의 질문이 점점 더 길어진 것도 이때부터이며, 증인이 진땀을 빼며 증언에 임하고 있었던 시점도 이때부터였다. 어쩌면 증인 박규창은 태어나서 생전 처음 겪는 수모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검찰이 나서서 “방청석의 비웃음을 저지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할 정도였겠는가. 그러나 증인의 증언을 청취하고 있자니 박규창 증인의 잘못도 잘못이거니와 군 당국이나 정부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게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백령도 앞바다에 천안함이 침몰해 있고 함미 속에는 46명의 승조원들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 때문에 한시가 급한 데, 정부와 군 당국이 인양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차량업무) 수송과장에게 크레인 수배 업무를 할당하며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옳은 일인가.
더 큰 문제는 딴 곳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증인 박규창이 수송과장이라는데 있는 게 아니었다. 군대는 ‘까라면 까야 하는 집단’ 아닌가. 누가 됐던 천안함 함미를 인양만 하면 되는 것인가. 박규창은 명령을 하달받고 즉각 행동에 돌입했다. 그가 비록 차량관리 전문이지만 나라와 군대의 명에 따라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는 크레인의 인양 목적조차 모른 채(?) 인터넷 앞에서 관련 검색어인 ‘크레인’을 두들겨 댔다. 그 결과 밤 11시경에 크레인 업체를 발견했다. 이게 인터넷 블로거나 할 짓(?)이지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상황에서 군대나 나라가 할 짓인가. 이들은 검색창을 두들겨 크레인 업체 찾아 수배하는 데 어느덧 ‘이틀’이라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규창은 3월 27일 오후 15시경부터 크레인 수배 관련 업무에 관여하며 동료 이현덕 소령에게 (부탁해) 업체와 계약체결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3월 28일 16시경 ‘삼아개발(주)’이라는 업체가 크레인 임대계약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초대형 크레인이 그런 과정을 거쳐 이동하게 됐는데, 어느덧 사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천안함의 실제 인양업체는 (마지막으로) 대우조선의 3천600톤급 해상크레인 ‘대우 3600호’가 결정됐었다. 설령 천안함 승조원들이 격실 내부에서 생존해 있다고 해도 산소 부족으로 다 숨졌을 시간 아닌가. 당시 승조원들의 생존 가능 시간은 약 69시간 정도로 알려졌기 때문에 설령 승조원들이 생존해 있었다고 쳐도 사흘이나 지난 시간이면 모두 숨졌을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크레인이 경남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출발하면 4~5일 후 천안함 사고 현장에 도착해 인양 작업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므로, 천안함 승조원들은 다시금 4~5일을 더 버티며 생존해 줘야(?) 했다. 자체 동력도 없는 대형크레인을 이끌고 백령도 앞바다까지 이동해야 하므로 천안함 승조원 46명은 그때까지 꾹 참고 생존해 있어야 할까. 비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황당한 시츄에이션 아닌가. 그래서 변호인 측은 증인에게 인양목적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박규창은 “인양목적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참 답답한 군인이자 군대며 대한민국의 현주소였다. 군 당국이나 정부가 박규창에게 지시한 명령 속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인양목적 등이 생략(?)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별로 바쁠 게 없는(?) 박규창 등은 크레인을 계약한 후 3월 29일 12시 45분경에 백령도로 크레인을 출발시켰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대형크레인이 백령도로 출발했으므로 승조원 구출에 대한 희망에 찬 기사질을 퍼붓고 있었다. (나라가 왜 이 모양들인지.)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볼까. 연합뉴스는 경남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출발한 크레인의 제원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해상크레인의 소유주인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대우 3600호’는 길이 110m, 폭 46m, 무게 1만 2천500t의 초대형 해상크레인이다. 2006년 4월15일 진수한 이 크레인은 약 1년6개월 동안 제작됐고 가격은 450억 원 정도다. 해상크레인의 선체는 우리 기술로 만들었고, 크레인의 팔부분은 일본에서 만들어져 국내 기술 자급률은 약 50%로 보면 된다. 대우 3600호는 평소에는 선체의 일부분을 바지선이나 도크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중략) …대우조선해양 측은 대우 3600호 한대가 하루에 2천200여t 상당의 선체를 옮길 수 있고, 하루 사용 비용은 인건비 등을 포함해서 1억 2천만 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중략)… 천안함 인양 작업을 지휘하는 대우조선해양 서용완 생산지원팀 부장은 “이번 작업이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있는 만큼 최단 시간 내에 안전하게 인양작업을 완료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번 천안함 인양 작업에는 대우 3600호 외에 길이 85m, 넓이 12m 규모에 최대 2천200t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삼아 2200호와 해양개발공사 소속 바지선 2척, 120t급 크레인 2척, 유성수중개발 소속 바지선 1척과 120t급 크레인 1척이 동원된다.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4/05/0200000000AKR20100405172300004.HTML?did=1179m>
또 하나의 관련 소식을 더 첨부하고 박규창 증인의 황당한 증언을 대략 마무리하기로 한다. 위 대우조선해양의 크레인의 제원 등에 따르면 이 크레인을 함부로(?) 옮길 수 없는 초대형 크레인이다. 또 이 크레인을 사용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최소한 하루에 1억 2천만 원이 소요된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침몰당해 백령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천안함 승조원들이 생존해 있다면, 생존 승조원의 구출에 드는 이런 비용 정도는 국가가 얼마든지 지출할 수 있고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 가며 4대강 죽이기 사업에 30조 원이나 퍼붓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수중에 갇혀 있는 승조원의 가족들이나 우리 국민들 모두는 한시라도 빨리 승조원들이 구조되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며, 크레인 관련 업체에게조차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증인 박규창이 소속돼 있었던 해군본부 군수참모부 수송과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된 군대가 전시 내지 위급상황에 대한 메뉴얼도 없이 천안함이 침몰한 직후 인터넷 검색창을 두들겨 크레인이나 찾고 자빠진 한심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건 나라도 아니고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기껏 수배해 둔 크레인은 박규창 증인이 ‘인양목적을 모른다’고 한 데에 따라서 천안함을 인양할 수 없는 장비였고, 다시 대우조선해양의 크레인을 수배하고 현장에 투입될 때까지 약 열흘간의 시간을 허비하는 황당한 사건을 자초하고 있었다. 이런 거 보면 누구라도 분노하지 않겠나. 만약 글쓴이가 유가족이 되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보상금이니 포상행위 다 접고, 관련 당사자의 처벌 요구 등을 통해 침몰원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숨져간 원혼을 달래는 노력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당시 승조원 가족들은 승조원들이 가라앉아 있는 백령도 앞바다까지 가서 능력이 부적절한 크레인과 해상의 날씨 등으로 지연되고 있었던 구조활동에 대해 한시라도 빨리 구조재개가 이루어지길 바랐을까.

관련 소식에 따르면 “(우리 해군)광양함에 승선한 실종자 가족들은 한주호 준위의 순직에 이어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저인망 어선까지 침몰하자 망연자실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 박정규(당시 실종자협회) 씨는 “자꾸 악재가 겹치니까 마음이 안 좋다. 실종자 수색과 침몰사고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해도 수색에 참여했던 어선이 사고를 당하니 안타깝다.”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분들은 비록 나중에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보상을 받긴 했지만, 당시 심정은 천하를 다 주고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 수중에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 매우 슬퍼하며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또 “가족들은 (백령도 앞바다 광양함의) 침실이 부족해 불편을 감수하고 식당 의자에서 쪽잠을 잤다.”고 전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처절할 정도 이상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관련 기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4/03/0200000000AKR20100403042500061.HTML>
따라서 사정이 이러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변호인 측은 박규창의 황당한 증언에 대해, 그가 왜 이렇듯 황당한 업무를 하게 되었는지 등을 되묻게 되면서 증인 심문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박규창 등 군 당국과 정부의 조치는 이랬다. 박규창은 변호인의 심문에 대해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 듯 앞뒤가 안 맞는 증언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인양목적도 모른 채 초대형 크레인을 수배하게 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해군에는 함정을 관리하고 인양 등 해난사고에 대처하는 <함정정비처>가 따로 있었다. 그런데 함정정비처가 크레인 수배업무를 전담하지 못한 이유는 예산 항목에 ‘크레인을 수배하고 계약할 비용’이 없었다는 이유다. 정말 짜증 나며 화난 증언 아닌가. 그래서 변호인 측이 구체적으로 따졌다. 그러자 박규창은 “비용이 12억 원이나 더 드는 문제가 생겨 논란이 있었다”고 했다. 함미에 갇힌 승조원들을 생각한다면 비용이 더 들어도 인양에 적합한 크레인을 재빨리 수배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 그래서 이거 미친넘들이나 미친 정부 내지 미친 군 당국이나 하는 짓 아닌가 싶은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박규창의 증언은 신 위원이 주장하고 있었던 것처럼 천안함이 폭침이 아니라는 사실주장에 비추어 보면 매우 실용적인 판단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가 맨 처음 ARS 등으로 확인한 바와 같이 천안함은 ‘침몰’되었으므로 (승조원들은 모두 숨진 상태로 판단하여) 천안함을 인양만 하면 그만이지, 해군의 부족한 예산을 함부로 낭비하여 ‘능력 없는 수송과장’으로 낙인 찍히면 안 될 이유도 없었던 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박규창 증인은 서서히 머리를 굴리는 데 한계에 직면하고 있었다.
비록 변호인 측 심문에 따라 “크레인 동원 지시만 받았다”고 말했지만, 박규창은 천안함 승조원들이 69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묻는 변호인 측의 심문 때문에 짧게 깎은 머리가 폭발에 이를 직전으로 변했다. 박규창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들었다. 뉴스와 회의 중에….” 그러나 박규창은 곧 말을 바꾸어 “69시간은 모른다. 크레인을 빨리 투입해야 된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 다수가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특히 박규창은 천안함 침몰사고 소식을 ARS 등을 통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천안함 인양을 위한) 크레인 동원 임무까지 맡고 있었는데 크레인의 인양목적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래도 되나. 그는 또 “크레인이 백령도 앞바다에 투입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로(좌표) 투입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하긴 수송과장이 그거 알아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박규창의 증언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던(?) 검찰 측의 반대심문은 마치 한나라당 사람들이 위장전입을 일삼은 한 장관 후보를 지원하는 듯했다. 검찰 측은 박규창에게 “자동 ARS로 천안함 침몰사고를 접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 않느냐”며 (박규창 ‘네’ 하고 대답하다.) 두둔하고 나섰다. 또 “전시가 아니라서 크레인의 강제동원 문제는 힘든 게 아닌가” 하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박규창은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다. 검찰의 반대 심문에 따르면 검찰은 피고와 북한을 매우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왜 그런가.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사고를 친정부 합조단 등을 통해 조작질한 결과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변질시키고 있었다. 북한의 잠수정에 의해 폭침되었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명박은 이에 그치지 않고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해 의혹을 가진 사람들을 ‘종북세력’으로 이간질하고 있었다. 대통령이란 인간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검찰의 반대 심문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박규창을 돕고자 한 발언 “전시(戰時)가 아니라서…” 운운하는 발언은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짓이자 검찰총장 한상대와 몸통을 이루고 있는 검찰이 할 발언으로는 부적절해 보였다. 이명박의 발언 등에 따르면 천안함 폭침은 전시 상황과 다름없는 매우 위험한 북한의 도발행위였기 때문이다. 우리 남북이 아직 휴전 중에 있다는 거 모르나. 오죽했으면 이명박이 천안함 침몰사고를 조작질하여 유엔안보리까지 가져가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겠나.
아울러 검찰의 이 같은 발언은 곧 포스팅 될 알파잠수함기술공사(대표 이종인)의 잠수장비와 무관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나라를 지키다 침몰한 천안함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고, 그 속에 생존 가능한 승조원들이 있다고 하는 데, 전시 내지 준전시 상황으로 판단하여 크레인 등 필요한 장비들을 긴급히 동원하는 등의 조치는 당연할 텐데 굼뜬 이유만 보면 천안함이 폭침이 안 됐다는 반증 아닌가. 만약 폭침이라 할지라도 알파잠수함기술공사에 비치하고 있었던 고급 잠수장비를 긴급동원해, 천안함의 함미에 갇혀 있던 승조원 등을 일찌감치 수색하고 구출할 수 있었지만 군 당국과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군 당국이나 정부는 천안함이 침몰한 직후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를 수색하거나 승조원의 구출작전을 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었던 게 아니라, 백령도 연화리 앞바다 제3부표가 있던 지점에서 미군 잠수함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 위치에 故 한주호 준위를 투입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 승조원들은 침몰 즉시 숨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니.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될 법한가.
천안함 구조활동 및 인양과 관련한 증인 박규창에게 변호인 측의 마지막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변호인 측은 박규창에게 다시 한 번 ARS의 통보사실을 되물었다. “부대에서 뭐라고 했나”라고 묻자 “배가 가라앉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인양목적을 몰랐을까. 변호인 측은 크레인 동원에 시간이 너무 소요된 내용 등 시종 황당한 답변으로 일관했던 박규창의 처신이 옳았는지 등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승조원 46명이 수장되었는데 그게(증인의 답변 내용) 잘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박규창은 “최선을 다했다. 크레인 동원시키는 일만 했다. 최대한 빨리한 게 그렇다.”고 말했다. 방청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박규창의 이 같은 증언 등은 비록 앞뒤가 잘 맞지 않고 황당함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초지일관 사실에 근거(?)한 증언이 아닌가 판단된다. 그가 침몰한 천안함의 인양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해군이 처한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연민이 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해군의 사정 등을 철저히 숨긴 채 가라앉은 함미 속의 승조원이 생존하고 있을 확률을 언론에 흘리는 연막작전을 통해, 제3부표 자리에서 故 한주호 준위를 동원하여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수색하는 시간을 벌고자, 군 당국과 정부가 대국민 기만극을 펼치며 승조원 가족들과 국민들을 애태우게 만든 일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천안함과 함께 충돌하며 침몰한 이스라엘 잠수함 속 ‘미군의 시신’를 건지고 있었다는 추측이 파다했는데, 정부는 천안함이 좌초 이후 잠수함과 충돌한 사실 등을 숨기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며 승조원 가족과 우리 국민들을 까마득히 속이며 북한에 의한 폭침으로 조작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바 천안함 사고로 숨진 승조원들의 유족들이 박규창의 증언 등 크레인이 늦게 투입된 사실을 접하게 된다면 얼마나 허탈해할까. 천하를 다 줘도 못 바꿀 가족들의 생명을 볼모로 한 조작질이었기 때문이다.
천안함은 박규창이나 군 당국과 정부의 늑장 대처에 힘 입어(?) 사고 17일 만인 지난해 4월 13일에 함미를 수면 위로 들어 올리는데 성공한 바 있다. 승조원들은 이미 모두 숨진 상태였다. 설령 살아있었을 승조원들이라 해도 굶주려 죽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억만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을 사랑하는 가족들은 정부의 황당한 늑장대처 때문에 승조원 46명 모두가 숨진 어이없는 일이자, 분노할 수밖에 없는 매우 위험한 처사가 아니었던가. 이날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은 모두진술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천안함 사건에 폭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은 북한에 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No Explosion! No Torpedo! That is my conclusion!”
위 포스트에 사용된 크레인과 독도함 등 자료사진 중 몇 개의 그림은 천안함 침몰사건에 자주 등장할 이미지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해군은 세계해전사에 길이 남을 충무공 이순신 제독 이래, 6·25 전쟁 이후 남과 북이 반목하고 있는 최근까지 북한에 패한 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군대이다. 휴전 이후 서해 최북단 백령도 포함하여 ‘서해 5도’가 남한의 섬으로 차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우리 해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명박 정권은 해군과 우리 군의 명예는 물론 나라의 명예와 국격을 심히 떨어뜨리는 사건 조작질과 국민들의 이간질을 통해 정권을 유지해 보려 안간힘을 다 쓰고 있다. 이게 제정신들인가.

특히 최근에는 오세훈과 이명박 등 정부와 여당의 수꼴들이 한 패거리가 되어 아이들의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시민들을 볼모로 주민투표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나랏돈 30조 원을 예산 날치기로 빼앗아 함부로 사용하고 국토를 황폐하게 만든 것도 부족하여, 부자감세를 통해 100조 원이나 되는 비용을 날아가게 만든 만행 등 부정부패를 주민투표나 천안함 침몰사건에 숨겨보고 싶었던 것일까. 공교롭게도 천안함 침몰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오세훈이 무릎을 꿇고 찌질거리는 등 천안함의 진실을 감추어보려고 안달을 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사실이 달라지겠는가. 천안함의 진실을 향한 포스팅은 계속 이어진다. 다음 편은 천안함이 침몰할 당시 맨 먼저 구조에 나선 해경 501함 유종철 부함장의 ‘좌초’가 언급된 증언 등을 실을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란다.

내가 꿈꾸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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