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종교인 과세 유예 법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 김 의원,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 | |
ⓒ 남소연 |
종교인과세 유예 법안을 대표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김 의원은 지난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교인 소득 과세 시행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금년 내에 마련될 수 있다면 내년부터 시행해도 좋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김 의원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교회·성당·사찰 등 종교기관에 대해선 탈세가 의심되더라도 세무당국이 세무조사를 하지 않고 종단을 통해 조사를 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담은 새 법안을 내놓겠다고 한 것이다.
그간 보수 개신교계와 연합체들은 종교인과세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김 의원이 새로 발의할 법안은 보수 개신교계로서는 나쁘지 않다. 사실, 종교인과세를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계의 진짜 노림수는 김 의원이 새로 발의하겠다고 밝힌 법안에 담겨져 있다.
또 <오마이뉴스>의 취재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장로로 있던 소망교회의 경우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헌금으로 총 762억여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비하면 종교인과세 시행으로 확보하게 될 100억원의 세수는 그야말로 '코끼리 비스켓'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교회 헌금은 거의 현금으로 들어온다. 따라서 직원을 상주시켜 감시하지 않는 한 과세당국이 매주 교회의 헌금 수입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교회 재정담당 직원과 담임목사가 짜고 총수입을 조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김 의원은 "종교인의 99.9%가 탈세 가능성이 없다. 현재도 과세 대상이 아닌데 자진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 같은 가능성을 부정하지만 말이다.
보수 대형교회, 재정 공개가 두려운가?
종교인과세 논란의 본질은 교회 재정의 투명성이다. 종교인과세를 시행하게 되면 교회는 어떤 식으로든 과세당국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교회의 현실에 눈을 돌려 보자. 교회 크기를 막론하고, 교회 살림은 담임목사와 재정담당 장로 등 극소수만이 안다. 더구나 담임목사가 헌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게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고, 그래서 종종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성락교회 김기동 원로 목사는 강단에서는 버젓이 한 푼의 사례비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SBS TV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취재 결과, 김 목사는 매월 5400만원의 사례비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교회 공금을 월 7.2%의 이자율로 굴려 매월 3600만원의 수익을 거둬들이는가 하면, 아들 목사와 며느리 명의로 수십억 대의 부동산도 사들였다.
한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기독교계 언론으로부터 800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와 관련 올해 1월 법원은 "명성교회 측이 12년간 800억원 상당의 적립금을 관리하면서도 일반 성도들에게 비밀로 했던 점,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돈을 별다른 재정관리시스템 없이 재정 담당 장로 1인에게 관리하게 한 점"을 들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즉, 명성교회의 비자금 의혹이 사실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법원 판결에서 드러났듯 명성교회가 800억 대의 거금을 비밀리에 관리했고 더구나 재정담당 장로 한 사람에게 교회 재정 전반을 맡겨왔다는 점은 놀랍지만, 이것도 엄연한 한국교회의 한 단면이다. 이러니 그간 헌금을 주머니돈처럼 사용했던 보수 대형교회 목사들로서는 종교인과세가 반가울 리 없다. 따라서 이들이 종교인과세에 앞장서 반대하는 건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한편 김 의원이 한 발 빼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2년 추가 유예' 법안은 철회하지 않고 있다. 만약 김 의원의 의도가 모두 국회 문턱을 넘는다면, 보수 개신교계로서는 종교인과세도 미루고 세무당국의 세무 조사까지 피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게 된다.
국민의 뜻을 대표해야 할 국회의원이 특정 종교, 그중에서도 소수 기득권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모습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명분에도 종교인 과세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OECD 회원국 중 종교인에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또 개신교계에만 시야를 한정해 보자. 앞서 지적했듯 많은 교회에서 재정운영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더구나 재정운영은 불투명하기 이를 데 없고, 이런 불투명성은 곧장 비리로 이어졌다. 저간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종교인 과세는 이런 후진적인 교회의 관행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제 남은 건 과세당국의 의지다. 마침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7일 예장합동, 예장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등 6개 주요 교단 대표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종교인 과세를 예정대로 시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미 종교인 과세에 대해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필요성도 분명하다. 마침 21일 개신교계 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논평을 통해 종교인과세 시행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에 "개정세법 규정을 교회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세부 적용지침을 마련해 주고, 목회자들이 세금을 신고하고 납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야 한다. 또한 납세를 통한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안내해 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디 정부가 김진표 의원처럼 특정 종교 기득권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에게 흔들리지 않기 바란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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