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비망록 전문 입수
2014년 12월17일 김 실장 의미 ‘장’ 아래
‘정당 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
지역구 의원 상실 이견-소장 의견 조율중(금일)’

이틀 뒤 12월19일 헌재 선고 결과와 일치
청와대-헌재 ‘사전 교감’ 의혹 깊어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사건 선고 이틀 전에 정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의 재판 결과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실장은 당시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여부를 두고 헌재 재판관들 간에 이견이 있다는 사실 등 평의 내용도 상세하게 언급했다. 통진당 사건 ‘연내 선고 방침’에 이어 재판 결과까지 청와대에 미리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 박한철 헌재소장 체제의 헌재의 정치적 독립성과 삼권분립 침해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가 5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유족의 동의를 받아 확보한 비망록(업무수첩) 전문을 보면, 2014년 12월17일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뜻하는 ‘長’(장)이란 글자 아래 ‘정당 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이라고 적혀 있다. 헌재는 이날 오전 11시40분께 선고 기일을 공개했고, 이틀 뒤인 12월19일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특히 김 전 수석의 당시 메모에는 정당 해산 결정뿐 아니라 ‘지역구 의원 상실 이견-소장 의견 조율중(今日·금일). 조정 끝나면 19일, 22일 초반’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헌재 재판관들 사이에서 통진당 소속 지역구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을 둘러싼 이견이 있고, 박 헌재소장이 이를 최종 조율하고 있으며, 조정이 끝나면 19일이나 22일에 선고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헌재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역구 의원직 상실 여부를 두고 선고일 전날까지 일부 재판관들이 의견을 확정하지 못했고, 박 헌재소장이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헌재는 통진당 재판 결론은 그해 12월19일 오전 10시 선고 직전에 최종 결정됐다고 밝혀왔다. 김 전 수석의 메모는 헌재의 이런 설명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의 헌재 재판 결과 언급은, 앞서 박 헌재소장의 공식 발언 전에 ‘통진당 사건 연내 선고’ 방침을 청와대 회의에서 언급(<한겨레> 3일치 1면)한 것과 맞물려 청와대와 헌재 간의 ‘부적절한 접촉’ 의혹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김 전 수석의 메모에는 김 전 실장이 선고 전날인 12월18일에 ‘국고보조금 환수’ 등 통진당 해산에 따른 후속 조처를 지시한 내용도 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헌재소장을 비롯하여 9명의 재판관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모든 사건들에 있어서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외부와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