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 |
ⓒ 이희훈 |
"지진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고 교육할 것인가는 거의 (보도) 안 하고, 광고하는 것만 집중하고 있어. 언론 전체가 광고 장사야. 지진이나 재난, 부정적인 것도 광고로 돈만 만들면 된다는 것 같아."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기자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한국 언론에 대해 성토했다. 지난 15일 포항 지진을 포함한 재난은 물론 수많은 이슈에 대해 속보 경쟁과 '검색어 장사'에 치중하는 언론들을 꼬집는 말이었다. 그는 한때 언론인이기도 했다. 중앙방송국(KBS 전신)의 공채 1기 연출직으로 입사했지만, 박정희 미화 드라마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지자 3개월 만에 방송국을 떠났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15일부터 자신의 이름을 건 자선 전시회 <쓴맛이 사는 맛 그림전: 건달 할배 채현국과 함께 하는 예술가들>을 열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시대의 어른'으로 불리는 채 이사장은 사회 각 분야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모임인 '더불어포럼'의 상임고문이기도 했던 그에게 지금 정부의 성공 가능성을 묻자 "촛불이 만든 기회, 촛불을 못 이어받으면 실패고, 촛불이 다음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촛불 시민의 힘 없이는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시민들이 적폐청산을 돕고 각계각층에서 '문제 제기'를 해야 함을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현 수능 체제는 사람 '길들이는' 지옥"
- 지진이 일어나자 정부가 수능을 연기시켰습니다. 학교를 운영하시는 이사장으로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불안한 상태에서 모험을 할 이유가 없지요."
-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구조와 비교하는 시민들도 있어요.
"지난 정권과 비교하는 게 이번 정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에요. 다만 안전을 위해서라면 잘한 일이죠. 정부도 오랜만에 기민하게 대처했고요. 미국에선 뉴욕 근처 허드슨강에 비행기 불시착 사고가 일어났을 때 아주 대처를 잘 했거든요. 그걸 보면 거기는 사회 전체가 (안전 문제에 대해선) 교육을 위시한 모든 삶의 패턴이 잘 만들어져 있다는 거고요. 우리나라랑 다른 거죠.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사람들이 침착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 설마 수능까지 연기될 줄은 몰랐다고들 하던데요.
"보통 사람들은 그랬을 수도... 나는 수능 자체가 사람들이나 학교에서 '토픽'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수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은 안 좋아요. 그러한 시험을 계속하고 있는데 요란 떠는 것부터 자본주의 광고가 만들어내는 날조라고 봐요. 일부러 토픽으로 만드는 수작은 교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지금은 수능 끝나면 학교가 끝나버리잖아요. 이런 부분을 고치지 못하면 실패라고 봐요.
실제로 학교 선생님들이 '한 달 남았다' 같은 말 쓰잖아요. 애들이 긴장해서 공부하라고. '시험지옥'이에요. 사람을 길들이면 그렇게 걸려들어요. 그 말이 전달이 될는지 모르는데, 길들이는 자가 길들이면 길들기 마련이에요. 좀 힘들게 길드느냐, 쉽게 길드느냐의 차이만 있지. 그런데 지금도 수능 연기함으로써 '공연히 수능 치는 사람들이나 가족들 긴장하는 시간만 늘렸다' 이따위 소리도 나올 거라고 봅니다."
- 실제로 그런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오죠? 그래서 이게 인기를 끌 만한 결정은 아니에요. 물론 전체를 책임지는 모습으로선 잘한 일이죠."
"탄핵 대통령 만든 책임자들 뻔뻔해... 언론은 왜 비판 안 하나"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 |
ⓒ 도서출판 피플파워 |
- 아까 만나자마자 언론들을 비판하셨잖아요. 요즘 언론 보면 어떤 생각 드세요?"
"모든 이슈를 다룰 때 언론기관이라는 명분으로 광고장사를 하는 게 실상입니다. 이걸 아무도 전면적으로 인식하질 못해. 압도적인 광고에 의해서만 자기네 조직을 유지할 수 있으니, 그 광고를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싶어요.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나는 30대부터 언론이 끝났구나 느꼈어요. 1980년에 남민전 사건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데 그걸 끝까지 보도를 안 해요. 그걸 보고 나는 '신문잡지 보면 안 된다, 사실이 나오는 게 없다' 느꼈어요. 그나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경항신문>, <한겨레> 정도만 언론 지키는 거고..."
- 언론이 가장 시급하게 보도하고 문제삼아야 할 이슈가 무엇일까요?
"탄핵 받은 대통령을 추대한 사람들이 전혀 책임도 안 지고, 남의 잘못 따지고 있어요. 그 정당(자유한국당)은 해산되고, 국회의원 선거도 다시 해야 하지 않나요? 혁명한다 생각하고 탄핵할 때 법을 다시 만들었어야죠. 지금은 탄핵에 책임 있는 자들이 뻔뻔한 짓을 하는 걸 간 크게도 텔레비전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책임을 물어야 할 거 아닙니까?
어느 신문이 그들이 '윤리' 따지는 상황을 보고 통탄한 적이 있습니까? 그 꼴을 보면서도 화를 내거나, 탄핵 대통령을 만든 그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글이 제가 보기에는 하나도 안 나왔어요."
- 적폐 청산이 조금 더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시는 거죠?
"'적폐'라는 개념의 범위와 종목을 좁게 이야기해서는 안 돼요. 교육부터 바꿔야죠. 이 나라는 '윤리'라는 과목을 '반공'이라는 과목으로 바꿨던 나라예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국가의 행동'으로 받아들였잖아요. 그래서 제가 볼 땐 문 대통령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우리들이 나서야 하는데, 우리들이 준비되어있느냐가 저는 의문이에요."
-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부터가 잘못됐다.
"교육을 이따위로 하니까 기껏 평생을 살면서 태극기 부대나 되는 거잖아요. 반공 교육하니까 그따위로 되는 거죠. 태극기를 왜 들고 나옵니까. 우리 분단의 과오가 있는 미국의 깃발을 왜 들고 나와요? 그게 실제로 우리의 군중이에요. 아무리 소수라도. 사실 교육만이 아니라 우리 통념 전부가 잘못된 거죠."
-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그래도 '민도'(民度)가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그런 말도 있지요. 하지만 나는 촛불은 믿지만 촛불 뒤에 보이지 않는 인간은 군중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요. 시민도 아니고 군중. 군중은 언제든지 변해요. 믿을 것은 촛불이지. 그 뒤에 있는 군중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군중이 안 되도록 정신 차리자'는 경고도 없었잖아요. 그 말이 꼭 나와야 돼요. 촛불 때문에 군중이 현명한 판단은 하긴 한 거야. 어떻게 군중이 군중으로 전락하지 않고 촛불의 마음으로 살 거냐, 그건 우리들에게 달려 있지 문재인 정부에게 달려 있지 않죠."
- 적폐청산이든, 교육 개혁이든 국민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거죠.
"촛불의 힘 없이는 그들(문재인 정부)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 새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 출발이 괜찮아 보이나요?
"촛불이 뽑은 것부터가 좋은 시작이죠. 촛불이 아니었으면 못 뽑힐 사람이니까. 문 대통령은 원래 선출직에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분명하게 촛불이 만든 기회지요. 촛불을 못 살리면 실패예요. 촛불이 다음 정권 만들어야 하고요."
- 흔히 '헬조선'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구호였는데, 어떻게 시민들이 힘을 보태야 할까요?
"모든 전반적인 국가의 모순에 대해서 각 분야별로 '문제제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입시 문제에서부터 뻔한 소리, 전혀 능력과 무관한 것만 물어요. 그건 안다는 것과 기억하는 것조차 구분하는 질문지가 아니에요. 안다는 거랑 기억하는 거랑 구분할 줄 알아요?
얼개 전체와 그 이유와 까닭 등 소이연(所以然) 전부를 이해해야 '앎'이고, '~이 ~다'는 '기억'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안다는 과거형이고, '알지 못한다'만 현재형인 거예요. 이미 알았다는 것을 옳게 알았든 어쨌든 과거 시제야. 우리가 아는 것 모두가 고정관념인 거예요. 그러니까 쉽게 틀릴 수밖에 없지요.
심지어 우리는 '기억'을 '안다'로 대치해요. 나도 기억을 안다로 자꾸 착각한다고. 그리고 '안다'가 과거시제이고 '알지 못한다'가 현재인 걸 잊어버려요. 그래서 알지 못하는 걸, 이미 기억 속에 있는 것도 지금 시제로 바꿔서 문제제기 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문제 제시를 더 넓게 해야 해요."
"나를 귀엽게 보는 사람들이라도 연대했으면"
- 채 선생님이 바라는 '변화된 모습'이 있을까요?
"제가 무슨 말 한마디 한다고 세상 좋아진다고 안 봐요. 단지 나는 나를 귀엽게 보는 사람들이라도 연대하기만 바라요. 연대해서 힘을 내고,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그 수밖에 없다고 봐요.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법 없으니까."
- 정부나 시민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너무 모난 소리 하는 거는 그만 삼가야 할 것 같아요. 아무리 맑은 정신이라도... 시절도 다르고 형편도 다르잖아요. 알지 못하는 게 많으니까 될 수 있으면, 듣기나 하고 살피기나 해야지. 옳다고 생각할수록 위험한 상태죠."
- 선생님의 말조차 가려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럼요. 아주 위험한 말들이 많아요. 나는 얼마나 또 많은 길들임 속에서 살았는데. 일제의 나쁜 길들임, 해방 후의 그 혼란, 6.25 사변중에 살기만 위해서 인간이 동물적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런 세계에서 그렇게 살아남아서, 돈까지 벌고 운 좋게 (독재에서) 죽지 않고 피해 살아남았고. 다 그랬으니까.
내가 내 말 듣고 내버리라는 하는 이유가 분명히 들을만한 말이 있으면 거기에 또 위험은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제 말이지 당신 말은 아니다. 정말 누구의 말이 내 말이 되려면 참 깊이 생각하고, 또 깊이 생각해서 바닥에서조차도 그것이 불행이 안 되는 말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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