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댓글 공작, 공영방송 장악, 다스 투자금 회수 정부 개입…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가는 검찰 수사의 쟁점과 전망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가는 검찰 수사의 쟁점과 전망
이명박(76)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가 정점으로 빠르게 치닫고 있다. 2007년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등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단편적인 수사들이 ‘종합판’으로 진화하고 있다. 군·국정원의 댓글 공작, 공영방송 장악 시도, 다스(DAS)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정부기관 개입 등 굵직한 의혹들이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제기된 상태다.
MB, 군 사이버사 댓글 활동 지시했나
초기엔 “대통령 연내 소환” 얘기를 꺼내면 손사래부터 쳤던 검찰 간부들도 지금은 이 대통령 소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수사팀도 과거 수사 때와 달리 적당히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수사팀 핵심 관계자는 “국정원이든 어디든 불법을 직접 저지른 사람들만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기획하고 결정한 사람들을 찾아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사 진도가 가장 빠른 사건은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이다. 나라 밖의 적군과 싸워야 할 군인들이 나라 안의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여론 조작을 통한 선거 개입에 동원됐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조항(제5조 2항)을 유린한 심각한 사건이다. 지난 11월11일 김관진(68) 전 국방장관이 군형법상 정치 관여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군 사이버사령부를 동원해 여권을 옹호하고 야권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김 전 장관의 주요 혐의다.
군형법 제94조는 “군인이 특정 정당 정치인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견을 유포하면 5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혐의의 일반 공무원을 3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는 국가공무원법(제65조)보다 처벌 수위가 높다. 정치군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했던 어두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군인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더욱 엄격하게 규정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 원칙을 과감하게 깨버렸다. 사이버사 요원들은 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야당 후보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8일에 올린 “문재인 선거홍보물에는 천안함 폭침이 침몰로 나와 있네. 이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등 다양한 글을 올렸다.
김 전 장관이 구속되며 그동안 이 사건의 진실을 가리려는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공작이 있었다는 의심이 더 분명해졌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2014년 11월 사이버사의 정치 관여 의혹에 대해 1년 남짓 조사를 벌인 뒤 ‘이태하 전 530 심리전단장의 독단적 범행’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적인 일탈일 뿐 군 수뇌부의 개입은 없었다”는 얘기였다. 김 전 장관도 앞서 2013년 11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댓글 공작 의혹이 제기되자, “사이버사령부는 북한 정권, 북한군, 국외에 있는 적대 세력을 대상으로 작전하는 곳”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뒤 이뤄진 재수사에서 당시 국방부 발표와 김 전 장관의 답변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재수사 결과 국방부 장관의 정치 개입 지시는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의 다음 타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청와대다. 검찰은 이태하 전 단장,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 김관진 전 장관으로 이어지는 ‘보고라인’의 최상부를 청와대로 보고 있다. 그 정점엔 당연히 이 전 대통령이 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에게서 “이 전 대통령에게 사이버사 활동 내용과 인력 증원 등에 대해 보고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이 댓글 활동을 직접 지시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앞으로 검찰에 남겨진 과제다. 수사팀은 김 전 장관 구속영장에 이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에 대한 보강수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원세훈 전 원장, 혼자 안고 갈 수 없을 것”
그러나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연루돼 있음을 보여주는 각종 자료를 확보했다. 2013년 3월10일 사이버사가 작성하고 김 전 장관이 서명한 ‘사이버사령부 관련 비에이치(BH·청와대) 협조 회의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사이버사 군무원 증편은 대통령 지시’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 안에서 시기의 문제일 뿐 이 전 대통령 소환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전 대통령은 원세훈(66) 전 국정원장 때 불거진 국정원의 각종 정치 개입 활동과도 관련돼 있다. 2012년 12월11일 대선 직전 ‘국정원 댓글 요원’ 김하영이 발각되며 국정원의 불법 활동이 드러났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 관여가 금지된 국정원이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한 비난 여론 조성에 동원됐다. 국정원 소속 직원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참여한 사이버 외곽팀(30개팀, 3500명 규모)까지 꾸린 것으로 확인됐다.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받아 이 일을 총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민병주(59)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에게는 외곽팀장 등에게 52억5600만원의 국정원 예산을 지급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도 적용됐다.
민 전 단장-이종명 당시 국정원 3차장-원 전 원장으로 이어지는 보고라인은 이 전 대통령까지 연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다. 이 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폐지됐던 국정원장 독대 보고를 2009년 원 전 원장을 국정원장에 임명하면서 부활시켰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진 이듬해였다.
이후 국정원은 박원순 서울시장 공격,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연예인 방송 퇴출 시도, 방송 장악 시도, 사법부 공격 등의 공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거리에서는 보수단체를 동원해 관제 데모를 벌이고, 인터넷에서는 외곽팀을 동원해 댓글 공작을 벌였다.
원 전 원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에 대해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검찰은 2011년 10월 청와대가 ‘에스엔에스(SNS)를 국정 홍보에 활용하라’는 회의 내용을 전달받아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각종 범죄 사실이 모두 원 전 원장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진술을 바꿀 가능성도 제기된다. 검출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원 전 원장은 국고손실죄만 해도 형량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다른 범죄 사실까지 더해 10년 이상 감옥살이를 할 수도 있다. 아무리 과거 정부에서 혜택을 누렸다고 하더라도 원 전 원장이 제기된 모든 범죄를 혼자 안고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작성해 실행한 것으로 의심받는 ‘문화방송 정상화 전략 추진 방안’(2010년 3월), ‘한국방송 조직 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 방안’(2010년 6월) 문건이 잇따라 공개되기도 했다.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들을 해당 분야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고, 2009년 2월 5개 분야에 걸쳐 82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방송 퇴출을 공작한 의혹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역시 배후에 이 전 대통령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뇌관, MB 다스 실소유주 논란
1987년 설립된 자동차 시트 제작사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은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직접적 의혹으로 검찰 수사의 또 다른 뇌관이다. 2011년 다스가 김경준 BBK투자자문 대표로부터 투자금 140억원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정부기관이 개입했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2007년 17대 대선을 전후로 검찰과 특검이 두 차례 수사하며, ‘BBK투자자문의 2001년 주가조작 사건’에 이 전 대통령이 개입됐는지 규명하려 했던 것과는 초점이 다르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과 무관하게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
이 사건은 당시 주가조작 피해자인 장용훈 옵셔널캐피탈 대표이사가 검찰에 이 전 대통령과 김재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장씨는 ‘김경준 관련 LA 총영사의 검토 요청 사안이란 제목의 공문서’ 등 관련 근거 자료와 함께 “김 전 영사가 총영사 시절 미국 현지에서 다스 관계자들을 불러 투자금 회수 대책회의를 했고, 김경준씨의 스위스 비밀계좌 동결 문제 등을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검토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미국 현지 소송을 통해 김씨로부터 돈을 돌려받기 직전이었던 피해자들이 큰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검찰은 현재 이 사건에 대한 고발인 조사를 마치고, 다스의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미 확보한 자료들로 볼 때 검찰 내부에서는 사건이 군과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 사건보다 이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찾기 쉬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수사에서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정부기관을 동원해 다스의 투자금을 되찾도록 돕겠느냐는 것이다.
다스 투자금 회수에서 ‘행동대장’ 노릇을 한 김 전 영사는 김경준씨와 투자금 회수 문제로 맞붙은 다스의 법률대리인이었다. 미국 영주권자로 총영사 자격이 없지만, 2008년 관련 재판이 열리던 LA 총영사로 임명됐다. 이를 두고 당시에도 무리한 인사라는 말이 많았다. 또 강경호 사장 등 다스 경영진이 대통령 측근들로 채워진 점,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가 본사 전무로 재직 중인 점, 시형씨가 2011년 서울 내곡동 땅을 살 때 다스 자금 6억원이 유입됐다는 의혹 등도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에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공정거래 사건 전문인 한 변호사는 “어떤 회사의 법률적인 주인을 따질 때 지분구조보다는 실질적인 지배자가 누구인지를 봐야 한다”며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지분이 한 주도 없다고 해서 다스와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도 “(다스가) 법률적으로 누구 것인지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100억원대 다스 비자금 의혹 재점화 가능성
또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2008년 ‘BBK 주가조작과 다스 차명 보유’ 의혹을 수사한 정호영 특검팀이 찾아냈던 100억원대 다스 비자금 등 기존에 제기됐던 문제들도 다시 들춰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수사를 이끄는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부장은 당시 특검 파견 검사로 수사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다스 비자금의 존재는 4년 뒤인 2012년 <한겨레>가 이 전 대통령 아들 시형씨가 아버지 퇴임 후 머물 사저 터를 사들이면서 쓴 현금 6억원의 출처 의혹을 제기하면서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은 바뀔 수 있고 추가 증거가 확보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김양진 <한겨레> 사회부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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