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한국방송(KBS) 사장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방송>(KBS) 이사진들이 업무추진비(법인카드)를 동호회 회식비나 유흥주점 경비 등 사적인 용도로 부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개인적인 일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지만 영수증 제출 등 소명하지 않은 금액도 7400여만원에 이르렀다.
감사원은 24일 ‘한국방송 이사진 업무추진비 집행 감사’ 보고서에서 이런 내용을 공개하고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이인호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10명(퇴직 이사 1명 제외)에 대해 비위의 경중을 고려해 해임 건의 등 인사조치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방통위가 이인호 이사장 등 옛 여권 추천 이사를 해임 제청할 경우 한국방송 이사회가 재편되면서 ‘한국방송 정상화’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현재 한국방송 이사진이 꾸려진 2015년 9월 이후 이인호 이사장을 비롯해 10명의 한국방송 이사진이 쓴 업무추진비 1898건 중 87%에 해당하는 집행에서 영수증이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약 2억8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가운데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쓰는 ‘부당사용’ 문제는 모든 이사들에게 해당됐다. 다만, 금액 규모는 옛 여권 추천 이사들이 훨씬 컸다. 이인호 이사장은 선물비, 휴일 식사비, 물품 구입비 등 2825만원을 부당 집행하거나, 용처를 소명하지 못했다. 이원일 이사는 1685만원을 식사비·동호회비 등으로 쓰거나 용처를 밝히지 않았다. 강규형 이사는 1381만원의 사용처를 증빙하지 못했고, 327만원을 애견 동호회 등에 사적으로 썼다. 차기환 이사는 휴대폰과 태블릿피시 구입, 개인 식비 등 직무 관련성이 없는 곳에 449만원을 지출했고, 487만원의 용처를 입증하지 못했다. 권태선 이사(121만원)와 전영일 이사(26만원) 등 옛 야권 추천 이사들도 업무추진비 일부의 용처를 소명하지 못하거나 개인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은 채 “업무추진비의 사적 사용 규모 등 비위의 경중을 고려해 해임건의 또는 이사 연임 추천 배제 등 적정한 인사 조치 방안을 마련하라”고 방통위에 권고하면서 이제 공은 방통위로 넘어갔다. 한국방송 이사 임면권은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달리 방통위가 아닌 청와대에 있다. 만약 방통위가 감사원 감사를 토대로 특정 이사에 대해 해임 조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방통위는 전체회의에서 해임 제청 의결을 해야 한다. 현재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은 김석진 위원 한명뿐이어서 표결에 부칠 경우 이사 해임 제청안이 의결될 가능성이 높다. 방통위가 해임 제청을 의결하면 최종 해임 결정권은 청와대로 넘어간다. 2008년 방통위는 신태섭 당시 한국방송 이사 해임을 대통령에게 제청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받아들인 바 있다. 현재 한국방송 이사회는 옛 여권 추천 이사가 6명, 옛 야권 추천 이사가 5명이다. 만약 방통위가 옛 여권 추천 이사 중 최소 1명을 해임 제청한다면 여야 비율이 역전된다. 80여일간의 파업에도 여전히 교착상태인 한국방송 사태에 돌파구가 열리는 셈이다.
일단 방통위는 신중한 분위기다. 국민의당이 추천한 표철수 방통위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방송이 비정상인 걸 정상화해야 하는 건 대원칙”이라면서도 “이렇게 공영방송 이사 전원을 감사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면밀하게 사안을 검토해서 신중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김효실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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