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상률, 당시 여권의 ‘DJ 비자금 정국’에 발 맞추려 ‘다급’
ㆍ고비 때마다 보수언론에 정보 흘리며 여론 반전카드 활용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9월4일 한상률 국세청장은 돌연 독일로 날아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다. 청와대가 국세청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때라 국세청장이 홀연히 자리를 비운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국세청이 배포한 보도자료는 “한상률 청장은 4일 베를린에서 한·독 국세청장 회의를 가졌다”며 “이번 회의는 조세회피 방지를 위해 국제협력체제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 언론에는 한 청장 취임 후 독일 국세청장의 지속적인 러브콜에 따라 면담이 성사된 것처럼 보도됐다.
하지만 당시 한 청장은 독일 국세청장의 호의에 응대해 한가롭게 해외출장을 갈 상황이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태광실업 세무조사 외에도 한 청장은 온갖 정치적 세무조사 의혹의 한가운데 있었다. 출국 이틀 전인 2008년 9월2일 국회에서도 포털사이트 다음과 KBS 정연주 사장 사퇴 압력과 맞물린 표적 세무조사 의혹과 관련해 야당 의원의 날선 공세가 이어졌다. 한 청장이 이런 상황에서 비서관도 없이 2박3일 동안 독일 국세청장을 만나러 간 것은 뭔가 절박한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기 충분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한 청장이 독일로 급하게 출장을 간 진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독일 정부가 조세회피처인 리히텐슈타인의 비자금 스캔들과 관련해 금융자료를 빼왔는데 한 청장은 그 자료 중 한국인 명단을 달라고 하기 위해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협정이 체결돼 있더라도 증거를 제시해서 협조를 요청할 사항이지 막무가내로 될 일이 아니었다”며 “결국 한 청장은 딱지를 맞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한 전직 고위간부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의 조세회피처에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비자금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한 청장이 DJ 비자금을 찾기 위해 독일 국세청장을 만나고 오겠다고 MB(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청장은 독일 정부가 완강하게 거절해 빈손으로 귀국한 후에도 독일 국세청장에게 편지까지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청장이 독일 출장을 다녀온 후 국내 정치적 상황은 DJ 비자금 정국으로 급변했다. 2008년 10월20일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100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 사본을 꺼내 보이며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신한은행 창업과정에서 수조원이 DJ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을 봤다는 ‘박씨 남매’ 사건도 터졌다. 한 청장 입장에서는 여권이 ‘노무현 비자금’에 이어 ‘DJ 비자금’ 의혹 제기를 준비하는 상황이어서 공조 필요성이 있었던 셈이다.
국세청은 여권이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후 고비마다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를 꺼냈다. 주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뒤 김 전 대통령 측이 고소하자 한 보수언론은 “국세청이 리히텐슈타인의 은행 비밀계좌 정보를 입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국세청의 칼끝이 사실상 DJ 비자금을 겨누고 있다는 보도였다. 12월3일 또 다른 보수언론은 ‘국세청이 리히텐슈타인 등에 자금을 숨긴 것으로 확인된 5개 한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며 국세청 조사가 정치인 비자금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이 보도는 DJ 비자금 의혹의 출처를 내놓지 못해 여권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내몰린 상황에서 나왔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국세청 국제조사과에서 관련 정보를 흘려줬고 기사에서 정치인 비자금을 언급한 것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한 전직 간부는 “당시 이 정도의 언론플레이를 할 사람은 한 청장밖에는 없다”고 했다. 9월4일 한 청장이 급하게 독일로 출국해 독일 국세청장을 만난 진짜 이유가 사실상 드러난 것이다.
탐사
<보도팀 강진구·박주연·정대연기자 kangjk@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11240600035&code=910100&med_id=khan#csidxca2bcf021fe3ba187e199f5aec14eaa
ㆍ고비 때마다 보수언론에 정보 흘리며 여론 반전카드 활용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9월4일 한상률 국세청장은 돌연 독일로 날아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다. 청와대가 국세청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때라 국세청장이 홀연히 자리를 비운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당시 한 청장은 독일 국세청장의 호의에 응대해 한가롭게 해외출장을 갈 상황이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태광실업 세무조사 외에도 한 청장은 온갖 정치적 세무조사 의혹의 한가운데 있었다. 출국 이틀 전인 2008년 9월2일 국회에서도 포털사이트 다음과 KBS 정연주 사장 사퇴 압력과 맞물린 표적 세무조사 의혹과 관련해 야당 의원의 날선 공세가 이어졌다. 한 청장이 이런 상황에서 비서관도 없이 2박3일 동안 독일 국세청장을 만나러 간 것은 뭔가 절박한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기 충분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한 청장이 독일로 급하게 출장을 간 진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독일 정부가 조세회피처인 리히텐슈타인의 비자금 스캔들과 관련해 금융자료를 빼왔는데 한 청장은 그 자료 중 한국인 명단을 달라고 하기 위해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협정이 체결돼 있더라도 증거를 제시해서 협조를 요청할 사항이지 막무가내로 될 일이 아니었다”며 “결국 한 청장은 딱지를 맞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한 전직 고위간부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의 조세회피처에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비자금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한 청장이 DJ 비자금을 찾기 위해 독일 국세청장을 만나고 오겠다고 MB(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청장은 독일 정부가 완강하게 거절해 빈손으로 귀국한 후에도 독일 국세청장에게 편지까지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청장이 독일 출장을 다녀온 후 국내 정치적 상황은 DJ 비자금 정국으로 급변했다. 2008년 10월20일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100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 사본을 꺼내 보이며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신한은행 창업과정에서 수조원이 DJ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을 봤다는 ‘박씨 남매’ 사건도 터졌다. 한 청장 입장에서는 여권이 ‘노무현 비자금’에 이어 ‘DJ 비자금’ 의혹 제기를 준비하는 상황이어서 공조 필요성이 있었던 셈이다.
국세청은 여권이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후 고비마다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를 꺼냈다. 주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뒤 김 전 대통령 측이 고소하자 한 보수언론은 “국세청이 리히텐슈타인의 은행 비밀계좌 정보를 입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국세청의 칼끝이 사실상 DJ 비자금을 겨누고 있다는 보도였다. 12월3일 또 다른 보수언론은 ‘국세청이 리히텐슈타인 등에 자금을 숨긴 것으로 확인된 5개 한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며 국세청 조사가 정치인 비자금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이 보도는 DJ 비자금 의혹의 출처를 내놓지 못해 여권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내몰린 상황에서 나왔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국세청 국제조사과에서 관련 정보를 흘려줬고 기사에서 정치인 비자금을 언급한 것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한 전직 간부는 “당시 이 정도의 언론플레이를 할 사람은 한 청장밖에는 없다”고 했다. 9월4일 한 청장이 급하게 독일로 출국해 독일 국세청장을 만난 진짜 이유가 사실상 드러난 것이다.
탐사
<보도팀 강진구·박주연·정대연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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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11240600035&code=910100&med_id=khan#csidxca2bcf021fe3ba187e199f5aec14e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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