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의 특별한 승리는 '환상'
[斷想] 사람들은 특수부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영화처럼 극복하고 승리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행여 자신들이 인생의 전장에서 갖가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방면에 월등한 능력을 지닌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줄 거란 믿음은 행복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특수부대에 이어 경찰관, 소방관 같은 안전 수호자로까지 확대된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斷想] 사람들은 특수부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영화처럼 극복하고 승리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행여 자신들이 인생의 전장에서 갖가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방면에 월등한 능력을 지닌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줄 거란 믿음은 행복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특수부대에 이어 경찰관, 소방관 같은 안전 수호자로까지 확대된다.
하지만 영화는 환상이다. 현실에선 최고의 특수부대에 맡긴 임무가 최악의 상황으로 결론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수부대의 역량이 크게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황 자체가 워낙 안 좋기에 원래부터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안타까운 느낌이 가시지 않는, 특수부대와 관련된 사건이 몇 있다. 러시아에서 있었던 두 번의 인질사건이다. 2002년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42명의 체첸출신 전사들이 모스크바의 한 극장을 점거하고 900여 명을 인질로 잡았다. 성질 급한 행동파인 푸틴이 '알파'라고 불리는 최정예 특수부대의 투입을 결정했을 때, 세계인들은 영화 같은 작전 성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129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최악의 진압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2년 뒤엔 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2004년 9월에 러시아의 소도시 베슬란의 한 초등학교에 역시 체첸 반군 32명이 어린 학생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틀간의 대치 끝에 러시아 특수부대가 호기롭게 진압작전을 벌였지만, 그 과정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334명이 숨지고 783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미군도 다름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블랙호크다운'이란 영화에서 미군은 막강한 특수부대 화력을 소말리아 전장에 투입하고도, 작전에 투입된 부대원들이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고, 클린턴 행정부의 소말리아 철수 계기가 됐다.
'특수부대'가 '특수한 능력'으로 '특별한 승리'를 거둘 거란 것은 기대이며 환상이다. 특수 부대원들은 애초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작전에, 자신과 인질의 목숨을 걸고 엄청난 위험과 두려움을 안고 싸우는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를 보면서, 일부 언론과 국민들이 특수부대에 거는 과도한 기대를 소방관에게 걸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소방관들이 좀 더 일찍 2층 유리창을 깨 피해자들을 구해야 했다는 논란이 한창 일고 있다. 이를 포함한 여러 과실 제기에 대한 검증은 차차 이뤄져 잘잘못을 가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연면적이 4,434㎡나 되는 건물에서 사방에 불길이 치솟고, 1층 주차장의 차량 15대가 연쇄적으로 불타고, 대형 LPG 가스통의 폭발까지 염려되며, 벽에 매달린 사람이 떨어질 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선착대 6명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구조대원 4명이 영화처럼 불을 끄고 사람들을 구출해 낼 것이란 기대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취재를 하는 기자들 입장에서 재난현장에 가보면, 어떤 현장이든 허술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걸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꼭 꼬집어 기사를 쓰기는 쉽다. 다시 말해 관찰자의 시각에서 보면 비판할 게 널려있다.
그러나 참여자의 시각, 그 재난을 수습하고 진화하고 있는 사람의 시각, 더욱이 충분한 전력을 가지지 않은 소수의 '특수부대' 입장에서 보면, 긴박하고 더없이 넓은 현장에서 적은 인력으로 어디서 뭘 먼저 해야 할지 극도로 혼란스러울 터이다. 특히 인명이 관련된 재난현장에서 순간적인 판단 착오가 얼마나 큰 비난을 불러올지 생각한다면 오금이 저릴 것이다. 상황을 수습한 뒤 돌이켜보면 세상에 '완벽한 대처'는 없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능력이 뛰어난 이와 못한 이, 훈련이 잘 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의 차이에 대한 평가는 있을지언정, 최선을 다한 부분은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2층 유리창을 좀 더 일찍 깨고 진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충북소방본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답변했다. 바로 "인력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찾았다면, 항간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창문을 깼을 때 갑자기 산소가 유입되면서 화재가 더 크게 번지는 '백드래프트' 현상을 우려해 그랬다고 답변했을 법하다.
특수부대의 인질구출 작전과 소방관의 화재 진압 작전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서로의 두뇌 싸움에 의해 결과예측이 더 어려운 반면, 후자는 충분한 인력과 잘 정비된 시스템만 있으면 대처가 쉽고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사고는 참으로 안타깝다. 소방관들의 실수에 대한 검증은 일단 젖혀두더라도, 충분한 소방인력과 장비지원이 있었다면, 그와 함께 소방차가 잘 진입할 수 있도록 불법주차를 막는 규정과 실효성 있는 소방점검, 화재에 강한 마감재를 의무화하는 조항 등 제도적 시스템이 구축됐더라면 사고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사고를 키운 가장 큰 요인은 어김없이 사람의 잘못이다.
소수의 특수부대가 영화처럼 난관을 극복할 것이란 환상을 버릴 때가 됐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충분한 인력과 좋은 장비를 갖고도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게 특수부대의 임무이다. 임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방법을 실행할 때다.
고철종 기자sbskcj@sbs.co.kr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