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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30, 2017

"피고인 박근혜의 이익을 위해"..'국선'들은 집요했다

[토요판] 법정 다큐-수인번호 503
⑬ 피고인보다 나은 변호인
검찰 쪽 증인 허점 찾으려 노력
"비밀누설" 내세워 비공개 요구도
"증언 중 범죄 인지하면 기소해야"
검찰 자극..신문 연기 이끌어 내

오전·오후 재판 '변론 분담'
'사선' 땐 유영하 변호사가 전담
공범들 줄줄이 유죄 선고 중인데
박근혜 피고인은 방문조사도 거부
[한겨레]
국선변호인과의 면담을 거절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월19일부터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열리지 않은 11월27일 재판을 제외하면, 피고인 없는 궐석재판이 8차례 열렸다. 자신의 재판도 거부한 박 전 대통령은 12월26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한 서울중앙지검의 구치소 방문 조사도, 27일 이 부회장 항소심의 증인신문도 응하지 않았다. 공동취재사진
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 모니터에 2015년 10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일정이 떴다.
“증인이 김병수 두산그룹 사장으로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주관해 재단에 출연해야 하는데 6억~7억원을 내야 한다, 어느 계열사가 내면 좋을지 확인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던 때가 2015년 10월 평일이었고 한국시리즈 경기 두산 베어스 응원하러 갔을 때라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는데 그 기억은 명확한가요?”
높지도 낮지도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어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인 박승길(43·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가 물었다. 증인으로 나온 김아무개 두산그룹 기획팀 상무는 다소 긴장됐는지 검사와 변호인 질문에 깊게 생각하느라 답변이 한 박자씩 느렸다. “네.”
“어느 경기장으로 응원하러 갔습니까?”(박 변호사)
“잠실경기장이었습니다.”(김 상무)
“2015년 한국시리즈 두산-삼성 경기 맞죠?”
“잠실은 맞는데 경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시리즈는 1, 2차전은 2015년 10월26일, 27일 대구에서 열렸고 10월29~31일은 잠실에서 열렸습니다. 증인이 한국시리즈 관람을 가서 전화를 받고 잠실야구장이었다면 전화 받은 날은 10월29~31일 같거든요.”
“홈 경기였던 것 같은데요.”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려던 박 변호사를 막고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가 물었다.
“대답을 듣고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잠실에서 평일 경기였다면 10월29~31일로 짐작되는데 어느 날 전화 받은 걸로 기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한국시리즈인지 플레이오프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상대 팀도 기억이 안 납니다. 잠실야구장 1루 측에서 야구 보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며칠인지는 기억이 안 나나요?”
“네.”
그러자 박 변호사는 당시 경기 일정표를, 서면증거를 보여주는 모니터에 띄웠다.
“증인, 보이세요? 2015년 10월26~31일이 한국시리즈예요. 플레이오프면 그 전주인데 18일, 19일, 21일, 22일이 평일 경기인데요 혹시 상대 경기팀이 엔씨(NC)였나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미르재단은 2015년 10월27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설립 허가가 났습니다. 증인이 만약에 한국시리즈를 갔고 10월29~31일 경기를 관람하셨다면, 증인이 (재단법인 출연에) 관여한 시기가 이미 그룹 차원의 출연을 결정해 재단법인 설립 허가에 필요한 출연증서까지 제공한 다음 사후 기부금 집행 때인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저희 쪽에서 얼마를 집행한다는 결정이 나지 않았던 단계 같습니다.”
“김병수 사장 연락을 받고 실제 출연금 집행 과정에만 참여했지 출연 의사 결정 과정에는 참여 안 한 게 맞죠?”
“네.”
박 변호사의 집요한 질문에 좌배석인 조국인 판사도 “야구장에서 전화 받은 게 맞냐”고 재차 확인했다. 김 상무는 두산의 미르재단 기부 과정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이날 법정에 나왔다. 그는 “김 사장에게서 청와대 관심사안이라며 빨리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일반적인 기부 절차와 달리 재단 쪽에서 관련 자료를 받아 검토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증언으로 검찰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변호인 쪽은 프로야구 경기 일정을 내세워 김 상무가 미르재단 기부를 검토한 시점이 재단 설립날과 맞지 않는다며 증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려 한 것이다.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 재판에는 국선변호인 5명 중 박 변호사와 조현권(62·사법연수원 15기) 변호사만 출석했다. 원래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2명의 증인신문이 예정됐지만, 변호인들의 꼼꼼한 변론 때문에 오전 재판은 오후 1시30분에 끝났다.
“직무유기하시렵니까?”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오후 3시에 열린 오후 재판에서는 박 변호사와 조 변호사 대신 남현우(46·사법연수원 34기), 강철구(47·37기), 김혜영(39·37기) 변호사가 변호인석에 앉았다. ‘변론 분담’은 박 전 대통령의 사선 변호인단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증인신문도, 재판 절차 관련 발언도 모두 유영하 변호사가 도맡았기 때문이다. 11월27일 처음 재판에 나왔던 국선변호인단은 “5명이 파트를 나눠 기록을 보고 있고, 사건 기록을 모두 읽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역시 재판 초기까지 “수사기록을 아직 보지 못했다”던 유 변호사와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재판에서는 최순실씨의 청와대 출입과 관련한 청와대 경호처 직원 2명의 증인신문을 둘러싸고 검찰과 국선변호인단이 충돌했다. 두 사람이 이미 도착해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통령의 구체적인 동선은 묻지 않고 출입에 대한 부분만 하겠다”는 검찰과 “공무원은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어 기자들 앞에서 증인신문을 공개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남현우 변호사가 실랑이를 벌였다. 김 부장판사는 “비공개 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공개재판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직무상 기밀 누설 금지 의무가 있다 해도 증언대에서 하는 증언은 정당행위로 인정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법정에 나온 경호관들은 증언을 거부했다. 먼저 증인신문을 하기로 했던 이아무개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으로서 여기서 증언하는 게 너무 힘들다. 아직 공직에 있고 기밀누설, 직무유기 등이 나중에 문제 될 수 있을 것 같아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재판부에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경호원이어서 직무상 취득한 비밀에 대해 비밀준수 의무가 있을 거로 생각되지만 증인으로서의 증언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 법익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정당행위가 된다. 증언거부 사유가 안 된다”며 설득에 나섰다.
변호인들은 이씨의 주장을 거들고 나섰다.
“직무상 비밀 누설도 있고 정권이 바뀐 상태에서 개인적인 입장이 불편할 것 같습니다.”(강현구 변호사)
“그런데 개인 입장 그런 건 증언거부 사유가 안 된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김 부장판사)
“반대신문 과정에서 관저 내부 구조나 출입구가 몇 개인지 같은 민감한 사항이 언급 안 될 수가 없습니다.”(남현우 변호사)
“그런 거 물어보실 건가요?”(김 부장판사)
“안 물어볼 수가 없죠. 본인이 아직 생각 정리가 안 된 것 같으니 추후에 기일을 잡는 게 옳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절차를 빨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권리는 권리대로 보장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강 변호사)
검찰은 이씨가 검찰에서 한 진술서를 보여주며 생각할 시간을 주자고 제안했고 재판부는 허락했다. 이씨가 진술서를 읽는 사이에도 강 변호사가 변호인석에서 마이크 없이 발언을 계속하자 검찰이 발끈했다. “변호인이 직장에서 잘릴 수 있다고 증인 들으라고 말씀하시는데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강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던 남 변호사는 “증인이 민감한 것 같은데 국가기밀 관련 법리적 사항을 논의하고 증언 가능 여부를 상의한 다음에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어떨까 싶다”고 재차 말했다. 이씨도 “당연히 비밀 관련 부분이 많은데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잘 판단이 안 선다”고 주저했다.
검찰은 “헌재 재판 과정에서도 이영선 행정관이 헌재 법정에서 최씨의 청와대 출입에 대해 진술을 거부했지만, 헌법재판관들은 국가기밀과 무관해 증언거부 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며 증인신문 진행을 재판부에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만약에 최씨가 보안 검사 없이 들어왔다고 증인이 말하면, 범죄를 인지한 검찰도 (증인을) 기소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의 문제가 있다”며 검찰을 공격했고, 검찰은 “법정에서 이야기를 삼가달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결국 변호인들의 끈질긴 주장과 당사자들의 우려 속에 재판부는 “형사처벌을 받을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며 증인신문을 연기했다.
오후 6시가 넘어 재판이 끝난 뒤 강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저희 국선변호인들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 재판에 나선 날부터 국선변호인들이 강조한 말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였다. 실제 이날 재판을 포함해 국선변호인들은 법정에서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박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 12월18일 열린 재판에서 조현권 변호사는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과 관련해 강제퇴직을 당했다고 알려진 김용삼 전 문체부 종무실장에게 “문체부에서 청와대 의사와 상관없이 능동적으로 이념 편향적 반정부 성향을 배제한다고 해놓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힘이 약해지자 책임을 전가한 게 아니냐”, “블랙리스트는 증인업무와 관계가 없어 사직서 제출은 이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등의 압박 질문을 던졌다. 같은 날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 발언했다는 실수비(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대수비(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자료가 대통령 지정 기록물일 가능성이 커, 제출된 증거는 모두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주장한 것도 조 변호사였다.
최씨나 박 전 대통령 쪽에서 문제로 삼는 태블릿피시(PC)나 핵심 증거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 대해서도 변호인들은 적극 나섰다. 강철구 변호사는 12월11일 열린 재판에서 이미 증인신문을 마친 안 전 수석의 보좌관 김건훈씨에 대해 “안종범 수첩 제출 경위와 관련해 다시 증인신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태블릿피시도 심사숙고한 결과 증거로 동의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기존 변호인단과 피고인이 주장한 내용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것이 국선변호인들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국선변호인과의 면담을 거절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10월19일부터 여전히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열리지 않은 11월27일 재판을 제외하면, 피고인 없는 궐석재판이 8차례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나오지 않자 서울중앙지법에서 가장 큰 형사대법정도 인기가 없다. 기자를 제외한 방청객이 5~6명에 그쳤던 2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마지막 재판이 열린 한층 아래 형사중법정은 만석이었다. 자신의 재판도 거부한 박 전 대통령은 26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한 서울중앙지검의 구치소 방문 조사도, 27일 이 부회장 항소심의 증인신문도 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재판은 1주일에 2~3번씩 계속됐다. 김세윤 부장판사는 “서울구치소로부터 피고인이 법정 출석을 거부하고 있고 피고인의 법정 인치가 현저히 곤란하다는 보고서가 도착했다. 오늘도 피고인 불출석 상태에서 공판 진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근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 거부하고 교도관 인치도 현저히 곤란해 피고인 출석 없이 공판 절차 그대로 진행하겠다”며 박 전 대통령 없는 재판을 이끌었다. 1월에는 구본무 엘지(LG)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손경식 씨제이(CJ)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지에스(GS) 회장 등 기업 총수들의 증인신문도 대거 예정돼 있다.
‘경이로운 판단’이 내려질까?
국선변호인단의 고군분투에도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혐의를 벗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징역 1년6개월, 장시호씨에게 징역 2년6개월, 차은택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이들 모두 박 전 대통령과 공모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18가지 혐의 중 최소한 4가지는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최다 공범’인 최순실씨에게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은 지난 14일 징역 25년을 구형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받는 혐의는 최씨보다 중하다. 2018년 1월26일 최씨의 1심 선고는 ‘미리 보는 박 전 대통령 선고’로 점쳐진다. “적어도 40년 동안 지켜본 박 대통령님은 저와 공모를 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공모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로 인해 이 재판에 서신 대통령님의 선처를 부탁드리며 재판장님의 경이로운 판단을 기대합니다.”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한 듯한 최씨의 최후진술이 재판부에 얼마나 통할 수 있을까.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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