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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30, 2017

노무현 죽음 이후...진보언론들의 비겁한 변명

<노무현 전 대통령께> 박상주 논설위원 시평(미디어오늘, 2009..0414))

"그렇다면 술꾼들이 나눴던 나머지 이야기를 전해드리지요. 도대체 노통(님을 이렇게 칭하는 건 알고 계시지요?)이 잘한 게 뭐야? 입에 달고 살던 도덕성, 청렴성은 완전한 위선이고 사기였잖아. 그러고 보니 MB 당선시키고, 강남 집값 몇 배로 올려놓고, 사설학원들 재벌 만들어준 일 빼놓고는 노통이 한 일이 없잖아. 왼쪽 깜빡이 넣고 우회전이나 하고, 사회 양극화도 최고조에 달했고….

님은 이런 정도만으로도 유구무언이어야 합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라는 변명은 일개 필부의 입에 올리기에도 부끄러운 말입니다... 억울해서 못 참겠다고요? 지금 ‘노무현 패밀리’ 때문에 국민들이 받고 있는 분노와 스트레스, 충격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 하십시오. 다 까발리고, 다 털어놓으시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죽을 때 죽더라도 하찮은 하이에나 떼에 물려 죽지 마시고, 지도자답게 산화하십시오. 당신이 죽어야 이 땅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가 부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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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시앵레짐의 잔혹한 보복> 박상주 논설위원 시평(미디어오늘, 2009..05.26)

"그들의 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불온세력쯤으로 보였던 걸까? 그들은 5년 내내 진저리 쳐질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을 물어뜯고 할퀴었다...(중략)...

이런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 노 전 대통령은 탈권위주의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기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 핵심을 죽이는 작업이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으로 시작됐다. 국세청은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태광실업을 상대로 4개월 동안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국세청 세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노 전 대통령 주변을 먼지 털듯 털었다. 국정원에서는 억대 명품시계 선물 이야기를 흘렸다. 국가의 전 권력기관이 동원된 ‘노무현 죽이기’였다.

죽은 권력을 사냥하는 곳에 하이에나 언론들이 빠질 리 없다. 노 전 대통령이라면 이를 갈던 보수언론들은 검찰, 국세청, 국정원이 흘리는 피의사실들을 대서특필했다. 신문 지상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이미 파렴치한 부패 정치인이요 부도덕한 위선자로 낙인을 찍히고 있었다. 하이에나 언론들의 신명난 잔치판이었다...(중략)...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자들아, 아직 축배는 이르다. 죽은 노 전 대통령이 산 너희들을 무너트릴 것이다. ‘바보 노무현’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확산시키는 밀알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빈소 앞으로 해일처럼 밀려드는 조문객들을 보라.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이미 부활하기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이 보이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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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노무현> 이대근 칼럼(경향신문, 2009.04.16)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그는 민주화 운동의 인적·정신적 자원을 다 소진했다. 민주화 운동의 원로부터 386까지 모조리 발언권을 잃었다. 그를 위해 일한 지식인들은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노무현이 함부로 쓰다 버리는 바람에 그런 것들은 이제 흘러간 유행가처럼 되었다. 낡고 따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이름으로는 다시 시민들의 열정을 불러 모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노무현이 다 태워버린 재 속에는 불씨조차 남은 게 없다.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다음 5년은 물론, 또 다음 5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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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의 초혼> 이대근 칼럼(경향신문, 2009.05.28)

"그의 실패에 깊이 절망해 본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그의 고뇌, 그의 슬픔에 닿을 수 있다. 그를 정당하게 비판했던 자만이 그의 죽음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를 올바로 미워한 자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의 돈 많은 친구나 한 자리씩 차지했던 고위관료, 그의 은혜를 입은 지인들이 진정 노무현의 가치를 사랑했을 것 같은가. 그들이 이 거리에 감도는 특별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가. ‘빽’ 없고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야말로 진실로 노무현을 사랑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정작 그가 죽어서야 그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우리가 이 길로 들어섰던 것일까. 이 ‘살인(殺人)의 권력’ 앞에 이렇게 초라하고 무기력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직 순수와 정의의 뜨거움으로 달리던 그 많던 노무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시대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던 열정들은 어디로 갔나. 국가는 다시 압제의 도구로 변했고, 정치는 작동하지 않고 시민사회는 죽어가고 있다. 하나의 노무현이 죽어 수만, 아니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는 대반전을 맞이하자. 그래서 피 끓는 청춘의 시대로 돌아가자. 오, 정녕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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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마지막 선물> 이대근 칼럼(경향신문, 2009.06.15)

"노무현이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자 모두 어리둥절해 한다. 참여정부에 좌절하고 그 실패가 불러들인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또 다시 절망하고, 이제는 삶의 위기로까지 내몰린 서민들로서는 혼란스럽다.....(중략)...

이제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지 더 이상 묻지 말자. 민주주의를 살려내려는 우리의 열정 또한 그를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역설이자 당대의 비극이다. 그러나 그 역설은 그의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순간 희망의 싹이 자라면서 끝났다. 죽음으로써 그는 서민의 벗으로 돌아왔고, 500만명의 노무현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전차에 치인 듯 비틀거리던 야당을 일으켜세우고,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정치적으로 무장하게 했다.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과거를 제거하거나 혹은 실패에 성공의 옷을 입혀 새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허구로 구축한, 실재하지 않는 노무현으로 기념물 혹은 신화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금박 입힌 노무현은 현실의 가랑잎 한 잎도 흔들 수 없는 의식(儀式) 그 자체로 남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 박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부의 과도한 미화는 그를 살리는 게 아니라 다시 죽이는 일이다. 지금 그를 기념할 때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때이다. 그는 한국 정치, 사회에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 그의 고뇌, 그의 이루지 못한 꿈과 가치가 소중한 것처럼 실패 역시 그의 위대한 일부를 구성한다. 그 모두 우리에게 올바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노무현이 이 세상에 남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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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이냐, 고통이냐> 김종구 칼럼(한겨레, 2009.04.30)

"조금 매정하게 말하면, 노 전 대통령의 앞에는 비굴이냐, 고통이냐의 두 갈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프고 괴롭겠지만 지금의 운명을 긍정하고 고통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봉하마을 집 주변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고 ‘위리안치’되는 신세나, 옥중에 갇히는 생활이나 오십보백보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 그가 한때 탐독했던 책이 마침 <칼의 노래>가 아니던가. ‘사즉생’을 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부활을 뜻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수사 받으러 간 날, 경향신문에 올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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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석’의 묘비명> 김종구 칼럼(한겨레, 2009.05.29)

"죽음은 소멸이다. 화장은 그 소멸을 더욱 극대화한다. 육신은 연기와 함께 한 줌의 재로 남고, 육체로 산 모든 것들은 무(無)로 환원된다...(중략)...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어떤 묘비명이 어울릴까.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분향소 주변의 대자보판, 또는 인터넷 등에 올리는 글들 하나하나가 모두 묘비명으로 써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어찌 보면, 노 전 대통령의 묘비명은 사람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이미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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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 칼의 힘> 김종구 칼럼(한겨레, 2009.06.04)

"사무실 책상 앞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전문을 신문에서 오려 붙여 놓았다. 눈길이 갈 때마다 읽고 또 읽어 본다... 노 전 대통령은 언어의 힘을 신뢰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어를 통해 이 세상을 설명하고, 사람들을 설득해내고, 궁극적으로는 말로 이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같았다...(중략)...

그의 언어 앞에 놓인 절벽은 높았고, 골은 깊었다. 이미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하는 세상 앞에서는 아무리 장강대하처럼 긴 글도 무용지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끝내 말로 납득되지 않는 현실의 벽을 확인시켜준 서글픈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패배만은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동시에 언어의 힘을 부활시켰다. 정처를 잃고 떠돌던 말은 다시 소통의 단비를 맞으며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은 이 척박한 토양에 ‘말과 희망’이라는 새로운 씨앗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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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의 있고 없음’에 대해> 김종구 칼럼(한겨레, 2009.06.22)

"이런 글을 애초 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한번 쓴 글에 대해 다시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붙이기 싫어서다. 그런데 최근 다른 신문이 필자의 이름까지 직접 거명하며 <한겨레>를 공격하고 나섰으니 가만히 있기도 어렵게 됐다.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를 떠나 몸담고 있는 신문사 조직에 누를 끼치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언론 보도 문제를 짚은 지난 6일치 사설 ‘석고대죄에서 정치적 타살로 돌변한 좌파매체’에서, 한겨레와 경향에 대해 “정말 ‘당신들이나 잘하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빈정거렸다. 그러면서 필자의 칼럼 ‘비굴이냐 고통이냐’를 예로 들었다. 이 글이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촉구한 게 아니냐는 일부 누리꾼들의 분노에 슬며시 편승한 것이다. 동아일보 고위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자살방조 논설위원”이라는 말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눈물짓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로서는 칼럼에 나오는 ‘사즉생’ ‘고통’ ‘마지막 승부수’ 등의 표현에 울컥한 나머지 곡해해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본업인 기자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속이 들여다보인다. ‘사즉생’이라는 말이 ‘삶과 죽음은 한가지다’ ‘죽는 게 영원히 사는 것이다’라는 따위의 뜻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모를 기자는 없다. 그 말의 쓰임새는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면 오히려 살길이 생긴다’는 의미로 분발과 노력을 촉구할 때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고통’이란 말 역시, 죽음 앞에서는 ‘고통을 내려놓는다’고 말하지 ‘고통의 길을 걸어가라’고 하지 않는다.

‘마지막 승부수’도 마찬가지다. 이 표현은 홈페이지 폐쇄 등 노 전 대통령 쪽의 대응에 조·중·동 등이 여러 차례 “검찰 수사를 앞둔 마지막 승부수” 운운한 것을 염두에 둔 패러디일 뿐이다. 모든 것을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승부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발상 자체가 너무 천박하다. 앞뒤 사정이 이런데도 동아일보는 글의 전체 메시지를 왜곡해 반대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언론에 여러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그것은 딱히 외부의 거센 비판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좀더 근원적으로 성찰할 문제들과 맞닥뜨렸다는 뜻이다. 기사쓰기의 관행과 메커니즘의 변화, 비리 추적과 인권 보호의 경계선 등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수없이 얽히고설켜 있다. 한겨레도, 그동안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이런 현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공개적으로 반성도 했다. 위에 예로 든 칼럼도 개인적으로는 회한이 없는 게 아니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잘못한 게 뭐 있느냐’며 종주먹을 들이대는 한 변화와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 거기에 의도적인 왜곡까지 더해지면 절망적이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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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핑계대는 남편들> 2009.05.04일자 유인화 칼럼(경향신문)

"여자: 당신, 구속안되겠지? 다른 대통령들은 2000억원 넘게 챙기던데. 우린 80억원도 안되잖아요. 고생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돈 좀 보낸 건데. 지들은 자식없나. 지들은 돈 안받았어!

남자: 내가 판사출신 대통령이야! 고시보느라 당신에게 가족생계 떠맡긴 죄밖에 없다고. 15년 전 내가 쓴 책 에 고생담이 나오잖소.

여자: 그래요. 당신 대통령될 때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로 동정표 좀 얻었잖아. 이번에도 내가 총대멜게요. 우리 그 돈 어디다 썼는지 끝까지 말하지 맙시다. 우리가 말 안해도 국민들이 다 알텐데 뭘….

남자: 걱정마. 내가 막무가내로 떼쓰는 초딩화법의 달인이잖아. 초지일관 당신이 돈 받아서 쓴 걸 몰랐다고 할테니까. 소나기만 피하자고. 국민들, 금방 잊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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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화의 '아침을 열며' 칼럼이 2009년 3월 16일까지만 올려져 있고, 그 이후 칼럼들은 죄다 삭제해버렸더군요. 구린 과거가 들통날까봐 흔적도 없이 삭제.은폐하는 꼬라지가 박모 씨 판박입니다. 왜 이리들 더티하고 구차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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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나 찾으러 가자!> 김건중 신부(경향신문, 2009.05.23)

"나는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정권을 뿌리째 부정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현 정권의 시도인지 아닌지, 보통사람들이 모르는 정치적 이득을 달성하기 위해 현 정권이 벌이는 치밀한 기획인지 아닌지, 현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기 위해 벌이는 교묘한 정치적 보복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역대 어느 대통령과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받은 액수가 적어 고민이라는 얘기만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중략)...

다가오는 방학 때는 고생해서 몇 십만원 벌려는 아르바이트 걱정을 하지 말고 애들에게 봉하마을 논둑길에 버렸다는 시계나 찾으러 가자고 했다. 1억짜리가 2개나 되니 요행히 찾으면 횡재 아니냐고 했다. 또한 역사적 가치와 시대적 가치를 담아 대단한 경매 프리미엄이 붙지 않겠냐고도 했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일, 경향신문에 올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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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문제다!> 김건중 신부(경향신문, 2009.06.27)

"인간들은 소통을 통해 상호간에 생각이나 의견, 혹은 주의·주장을 교환하고, 정보를 전달하며, 느낌이나 감정을 나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나 의견, 내가 취했던 정보, 내가 만져보고 느낀 감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생각과 의견, 정보와 느낌으로 남을 수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인격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전제가 앞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이 아닌 불통이 야기된다. 소통이 아니면서도 소통인 것처럼 오가는 것들은 상호 적대감, 압박, 투쟁(鬪爭), 항쟁(抗爭), 정쟁(政爭)일 뿐이다. ‘쟁(爭)’자 돌림의 내용들은 말 그대로 싸움이고 전쟁이다.

싸움에는 결사항전의 결연한 각오와 무기, 방패, 투구가 준비되어야 하고, 그 결과로 욕설과 비판, 협박과 회유, 피비린내 나는 상처와 너저분한 쓰레기, 울분과 통곡, 복수심과 응어리, 미움과 삐침, 한(恨)을 가슴에 남긴다. 소통을 주장해야만 하는 편은 으레 약자이고 비주류이며 비기득권층에 속하기 때문에 이른바 강자에게, 주류에게, 기득권층에게 자신을 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급함에, 또는 막막함 때문에 ‘쟁’자 돌림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유혹이다.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인내하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설득의 논리를 치밀하게 개발해야 하며, 지금은 어렵더라도 역사와 시간 속에서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꾸준히 선(善)의 판례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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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네요.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 관련글 :노무현에게 죽음 강요한 진보언론들, 그때의 기록



- 어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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