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정태인, "盧가 한미FTA 추진한 이유는..."
"보수언론이 반미라 공격하자", "미국식으로 모두 바꾸려 해"
2011-11-11 16:45:55
참여정부때 일관되게 한미FTA에 반대한 두사람이 있다. 참여정부 초기때 청와대에 재직했던 이정우 당시 정책실장과 정태인 국민경제비서관이 그들이다.
뒤늦게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바꾼 참여정부 인사나 친노진영과는 달리 어쩌면 '원죄'가 없는 이들만이 한미FTA가 어떻게 추진됐으며 애당초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는가를 가장 객관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잇따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정우 "盧, 보수언론이 반미라고 공격하자 한미FTA 추진"
참여정부 초기에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11일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한미FTA를 추진한 이유에 대해 “당시 불경기와 저성장이 오래 지속됐고,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부를 반미라고 공격했기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방안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등과 함께 반대했지만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에는 장밋빛 환상이 지배했고 미국 경제 체질의 병폐가 알려지지 않았다"며 "우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어 대통령을 설득할 만한 논리로 무장되지 못했다”고 자성하기도 했다.
그러던 노 전 대통령도 퇴임한 후인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미국식 시장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도 상황의 변화를 인정했다. 2008년 11월 한나라당이 협정 비준안을 처리하려 하자, 대통령 자신이 운영하던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협정 체결 뒤 금융위기가 발생해 비준보다는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글을 두 차례 올렸다고 <한겨레>는 지적했다.
정태인 "미국식으로 시스템 바꾸려 했다"
당시 국민비서관이었던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10일자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를 그만둔 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부터 일관되게 한미FTA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한미FTA 반대 전도사'로 유명하다.
정 원장은 참여정부의 한미FTA 졸속 협상 비판에 대해 "급하게 한 건 사실이다. 원래 청와대의 목표가 2006년 말까지 다 끝내려고 했었던 거니까. 실제로 협상은 2005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년 2개월 만에 끝냈다. 다만 미국이 비준하지 않아서 여태까지 미뤄졌던 것"이라며 "번역 오류가 아직도 발견되고 그 오류들이 제대로 다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도 다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니까 (비준동의안 처리 절차 역시)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을 게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당시 목표에 대해선 "정부가 목표로 했던 것은 미국식으로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특히 중국이 제조업에서 빠르게 추격하니까 우리는 서비스 쪽을 발전시켜야 하고,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가 있으니까 그걸 한미 FTA로 한꺼번에 풀겠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구체적 상황에 대해 “당시에 2004년에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나랑 이정우 선생님도 보고서를 썼었다. 당시 양극화가 큰 문제였는데, 2005년 가을에 (양극화 정책과) 동시에 한미 FTA를 추진하는 걸로 청와대에서 결정이 됐다'며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대립적인 정책이다. 한 편으로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건데. 그걸 유일하게 연결시켜 주는 게 수출과 투자가 늘어서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서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그런데 그 전제가 틀렸다. 전체적으로 사회경제 구조는 양극화로 나가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복지나 다른 정책으로 그걸 막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시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두 개를 다 중요시 여겼으니까 단순히 두 개를 엮은 것에 불과했다"며 "재밌는 건, 당시에 청와대에 양극화 문제와 한미 FTA 문제가 동시에 걸려 있었다. 각자 연구를 해서 대통령께 보고서를 올렸는데, 끊임없이 양 쪽에서 서로 상반되는 얘기가 올라오다가 결국에는 양극화가 2006년 여름을 넘어가면서 없어져 버린다. 그게 상징적이었다. 양극화와 한미 FTA 정책이 동시에 올라갔었는데 양극화를 없애버린 것”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민주당이 ISD를 유일한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그렇지 않다. 한미 FTA는 미국식으로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다 바꾸겠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발표한 것만 해도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에 관한 법률 23가지를 바꿔야 한다. ISD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미국식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의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게 하는 것은 ISD가 아니라 한미 FTA 그 자체다. 민주당 내에서 한미 FTA를 통과시키고 싶은 몇몇 사람들이 ISD 폐기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민주당이 ISD외에는 많은 성과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농민들의 반대가 있고, 통과시켜주고 싶은 민주당 쪽에서도 농업 쪽에서 돈이나 많이 뜯어내자, 이런 목적을 세웠기 때문에 대책이 좀 늘긴 늘었다"며 "그런데 계속 참여정부나 지금 이명박 정부나 똑같은데, 대책이라고 발표한 게 옛날에 국민의정부때 우루과이라운드나 기타 농업 개방 대책으로 만들어 놓은 11조원을 계속 포함시켜서 조금씩 추가하는 상태다. 한 번 농업 기반이 궤멸되면 다시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뒤늦게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바꾼 참여정부 인사나 친노진영과는 달리 어쩌면 '원죄'가 없는 이들만이 한미FTA가 어떻게 추진됐으며 애당초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는가를 가장 객관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잇따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정우 "盧, 보수언론이 반미라고 공격하자 한미FTA 추진"
참여정부 초기에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11일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한미FTA를 추진한 이유에 대해 “당시 불경기와 저성장이 오래 지속됐고,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부를 반미라고 공격했기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방안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등과 함께 반대했지만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에는 장밋빛 환상이 지배했고 미국 경제 체질의 병폐가 알려지지 않았다"며 "우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어 대통령을 설득할 만한 논리로 무장되지 못했다”고 자성하기도 했다.
그러던 노 전 대통령도 퇴임한 후인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미국식 시장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도 상황의 변화를 인정했다. 2008년 11월 한나라당이 협정 비준안을 처리하려 하자, 대통령 자신이 운영하던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협정 체결 뒤 금융위기가 발생해 비준보다는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글을 두 차례 올렸다고 <한겨레>는 지적했다.
정태인 "미국식으로 시스템 바꾸려 했다"
당시 국민비서관이었던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10일자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를 그만둔 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부터 일관되게 한미FTA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한미FTA 반대 전도사'로 유명하다.
정 원장은 참여정부의 한미FTA 졸속 협상 비판에 대해 "급하게 한 건 사실이다. 원래 청와대의 목표가 2006년 말까지 다 끝내려고 했었던 거니까. 실제로 협상은 2005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년 2개월 만에 끝냈다. 다만 미국이 비준하지 않아서 여태까지 미뤄졌던 것"이라며 "번역 오류가 아직도 발견되고 그 오류들이 제대로 다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도 다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니까 (비준동의안 처리 절차 역시)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을 게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당시 목표에 대해선 "정부가 목표로 했던 것은 미국식으로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특히 중국이 제조업에서 빠르게 추격하니까 우리는 서비스 쪽을 발전시켜야 하고,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가 있으니까 그걸 한미 FTA로 한꺼번에 풀겠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구체적 상황에 대해 “당시에 2004년에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나랑 이정우 선생님도 보고서를 썼었다. 당시 양극화가 큰 문제였는데, 2005년 가을에 (양극화 정책과) 동시에 한미 FTA를 추진하는 걸로 청와대에서 결정이 됐다'며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대립적인 정책이다. 한 편으로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건데. 그걸 유일하게 연결시켜 주는 게 수출과 투자가 늘어서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서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그런데 그 전제가 틀렸다. 전체적으로 사회경제 구조는 양극화로 나가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복지나 다른 정책으로 그걸 막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시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두 개를 다 중요시 여겼으니까 단순히 두 개를 엮은 것에 불과했다"며 "재밌는 건, 당시에 청와대에 양극화 문제와 한미 FTA 문제가 동시에 걸려 있었다. 각자 연구를 해서 대통령께 보고서를 올렸는데, 끊임없이 양 쪽에서 서로 상반되는 얘기가 올라오다가 결국에는 양극화가 2006년 여름을 넘어가면서 없어져 버린다. 그게 상징적이었다. 양극화와 한미 FTA 정책이 동시에 올라갔었는데 양극화를 없애버린 것”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민주당이 ISD를 유일한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그렇지 않다. 한미 FTA는 미국식으로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다 바꾸겠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발표한 것만 해도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에 관한 법률 23가지를 바꿔야 한다. ISD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미국식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의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게 하는 것은 ISD가 아니라 한미 FTA 그 자체다. 민주당 내에서 한미 FTA를 통과시키고 싶은 몇몇 사람들이 ISD 폐기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민주당이 ISD외에는 많은 성과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농민들의 반대가 있고, 통과시켜주고 싶은 민주당 쪽에서도 농업 쪽에서 돈이나 많이 뜯어내자, 이런 목적을 세웠기 때문에 대책이 좀 늘긴 늘었다"며 "그런데 계속 참여정부나 지금 이명박 정부나 똑같은데, 대책이라고 발표한 게 옛날에 국민의정부때 우루과이라운드나 기타 농업 개방 대책으로 만들어 놓은 11조원을 계속 포함시켜서 조금씩 추가하는 상태다. 한 번 농업 기반이 궤멸되면 다시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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