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美 뉴햄프셔주>=연합뉴스) 노효동 김세진 특파원 = "버니(샌더스 후보의 애칭)! 버니! 버니!", "이제는 정치혁명에 나설 때다"
프라이머리를 하루 앞둔 8일(현지시간) 낮 1시께 뉴햄프셔 맨체스터 도심에 위치한 팰리스 극장.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무려 1천 명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극장을 가득 메운 채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단순히 열성지지자들로 알려진 대학생과 젊은이들만은 아니었다.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샌더스 후보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하고 환호했다. 샌더스가 대학 무상교육을 공약하는 대목에서는 한 대학생이 일어나 "1억 5천만 원이나 빚을 졌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취재진을 안내하는 자원 봉사자인 샌디 코널(62)은 "힐러리(클린턴 후보 지칭)로는 도저히 기업들이 주무르는 정치를 개혁할 수 없다"며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고 목청을 높였다. 뉴햄프셔 전역을 휘감은 한파를 녹일 수 있을 만큼의 '샌더스 열풍'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같은 '아웃사이더 돌풍'은 민주당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역시 '바꿔 열풍'에 힘입어 두자릿수가 넘는 지지율로 2위 그룹을 앞서고 있다. 맨체스터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마이크 댄(60)은 "마르코 루비오나 테드 크루즈도 좋지만, 트럼프가 하는 말이 모두 맞고 뭔가 일을 해낼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게 지역 주민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후보는 이날 아침부터 맨체스터와 살렘, 런던데리 일대를 돌며 타운홀 미팅을 가지면서 워싱턴의 주류 정치에 대항하는 주자로서의 이미지를 연신 강조했다.
뉴햄프셔에서 부는 이 같은 바람은 미국 정치적으로 매우 주목되는 현상이다. 미국 일반인들의 여론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만난 뉴햄프셔 유권자들의 '정치적 자부심'은 매우 대단했다. 이날 오전 맨체스터 공항에 도착한 뒤 안내소에서 일하는 60대 여성직원이 지도책을 꺼내주며 "미국 정치의 홈타운에 오신 것을 환영하다"고 말했다. 의례적인 인사치레이겠거니 했지만 이후 유세현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낀 뉴햄프셔 유권자들의 정치참여 의식은 혹한의 날씨를 녹일 정도로 높았다.
이날 낮의 뉴햄프셔 주는 마치 눈폭풍의 한복판에 들어선 듯했다. '노리스터'(Nor'easter)라는 북동부의 해안성 눈폭풍이 북상하면서 만들어진 강풍과 눈보라가 하루종일 주 전역에 휘몰아쳤다.
자동차 계기판은 화씨 19도(영하 7℃가량)였지만, 차문을 열면 단 몇초만에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체감온도가 극도로 낮았다. 이런 상태로는 정상적인 대선 캠페인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면서 뉴햄프셔를 휘감은 대선의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길가 화단 곳곳을 수놓은 각 캠프의 피켓들이 각 지에서 프라이머리를 보러온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느낌이었고, 일반 주택가에서조차 '힐러리'나 '트럼프'를 써 붙인 입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도심 번화가에 들어서자 육중한 느낌을 주는 버라이존 빌딩 앞 전광판에는 'TRUMP'라는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어 코너를 돌며 바라본 7층짜리 건물 상단부에는 젭 부시 후보의 "워싱턴 정치는 고장났다. 너무 크고 너무 썩었다"는 발언이 대자보로 나붙어 있었다. 거리 어느 곳을 가도 각 후보를 지지하는 간판이나 광고가 마치 구역을 표시하는 '야드사인'처럼 서 있었다.
대선 후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스라엘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유대인 랍비들이 한파 속에서도 피켓팅을 벌였고, 정치개혁과 부패청산을 요구하는 단체 회원들은 행인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열기 속에서 9일 유권자들의 프라이머리 참여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특히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2008년의 60.2%를 웃돌 수도 있다고 현지 유권자들은 말했다.
다만, 투표 당일 한파와 눈보라가 계속되는 것이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과연 뉴햄프셔 주가 '정치적 고향'이라는 자부심에 걸맞은 높은 경선 투표율을 기록할지 주목된다.
r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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