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수선화가 무리 져 살랑거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의 주택가. 휴대전화에 노트북, 헤드셋과 태블릿PC를 챙겨든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름과 직장을 대며 자기소개를 한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버니 샌더스를 지원하러 모여든 이들이다. 대륙 저편, 뉴햄프셔주와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전화를 거는 자원봉사자들의 폰뱅킹 파티다. 당원도 아니고, 정치활동을 하던 이들도 아니다. 주최자 로리 역시 평범한 중년여성으로 생판 모르는 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샌더스의 홈페이지에는 거주지역 우편번호를 넣으면 반경 1.6~160㎞ 안에서 열리는 폰뱅킹 파티 장소가 나온다. 시간과 개최자의 이름, 전화번호가 있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놀랍게도 장소는 도서관이나 사무실보다 우리집(my home)이 다수였다. 인터넷에 주소를 넣으면 집의 구조와 가격, 거래연도에 골목 풍경까지 나오는 세상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올린 것이다. 이 이야기를 미국인 동료나 지인에게 해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연일 미디어에는 대선주자들의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아직 보통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자주 거론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달궈지지 않은 선거판에 민주당 텃밭이라 개표 때까지 후보자 얼굴 한번 볼 일 없는 캘리포니아의 무심한 중산층 동네에서까지 무엇이 조용한 실천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Enough is enough!” 샌더스가 군중과 함께 수없이 반복하는 합창이다. ‘이제 그만하자, 마이 묵었다’라는 뜻이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는 미국 경제이지만 의료보험이 무서워 치과에도 못 가는 서민들, 제약회사에 몰리는 자본 때문에 10년 넘게 먹던 한 달 약값이 1000달러나 뛰어 어쩔 줄 모르는 노인들이 있다. 시간당 10달러 임금으로는 방세도 내기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줄을 잇는다. 이와 달리 1% 부자의 소득은 나날이 늘어왔고 거기에 의회는 세금 감면까지 해왔기에, 이제 그만 질렸으니 멈추라는 대중의 탄식 어린 명령이다.
미국인들 역시 ‘불안’ 속에 산다. 불안은 두 가지 양상의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 나는 미국을 위해 탐욕스럽게 세계의 부를 긁어모을 것이며, 대통령이 되면 남쪽의 국경 관리비용을 멕시코가 내게 할 것이고, 무슬림들의 입국을 막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주장에 환호하는 무리. 다른 한 무리는 “다수의 월마트 직원들은 푸드스탬프(극빈자 식량지원 프로그램 식권)와 메디케이드(저소득 가정 의료지원 서비스)로 사는데 오너인 월튼 가족은 미국 하위 40%보다 많은 자산을 갖고 있다. 버뮤다로 조세회피를 하는 보잉, 제너럴일렉트릭 등에 정당한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 공립대학 무료, 국민의료보험, 최저시급 15달러, 공적 구조를 재건하자”는 주장에 환호한다.
세계로부터 미국을 고립시키는 트럼프의 주장과 그에 대한 환호는 침묵하는 보수 유권자들을 주춤거리게 한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 대항마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샌더스의 돌직구에 행동을 보인 무리는 힐러리 클린턴의 정책을 좌로 돌리게 했다. 70%의 젊은 유권자들이 샌더스 쪽으로 몰려들자 힐러리 측도 대학교육에 대한 비전, 기후변화 대책을 제시했다. 지난해 6월까지 샌더스보다 3200만달러 앞섰던 힐러리의 유권자 기부금이 1월 말에는 오히려 1500만달러나 뒤처졌다. 게다가 샌더스 쪽 평균 기부액은 27달러이다. 바람을 일으킨 풀뿌리 지지자들의 행동은 힐러리로 하여금 슈퍼팩(무제한 정치자금 모금 법인)과 거리를 두도록 했고, 급기야 정치에서 금융권의 힘을 몰아낼 것이며 자신은 그걸 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라고까지 선언하게 만들었다.
미국 평균 가정의 자산은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39%가 줄었다. 미국의 중간계층은 자신들이 얼마나 쉽게 홈리스가 될 수 있는지 지난 부동산 파동에서 뼈아프게 학습했다. 잘 지내던 이웃이 구조조정으로 해고되고, 병을 앓게 될 경우 여지없이 홈리스가 돼 가족이 흩어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당시 초등학교마다 아이들의 옷차림과 목욕 상태를 관찰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해고 조짐이 보이면 당황하지 말고 직장에서 의료보험 보조가 지원되는 기한 안에 건강 검진부터 받으라는 충고가 방송에 나왔다. 주택 대출금이 두 달 밀리면 쫓겨나고, 의료보험이 없으면 천문학적인 병원비가 개인의 남은 자산마저 순식간에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국의 사회안전망은 부실하다.
샌더스는 가난이라는 패배의식 속에서 스스로 더 노력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달래던 사람들에게 우울의 구조를 보여준다. 불안감에 경쟁으로 치닫던 이들에게는 제도를 정비할 때라는 조직가능한 힘의 터닝포인트를 제시한다. 최고의 부를 이룬 나라가 바라봐야 할 곳은 성장이라는 잡히지 않는 무지개가 아니라 옆과 뒤라고 말한다. 영국, 독일, 북유럽이 이룬 시스템을 미국도 할 수 있다고 독려한다. 기업가가 남보다 열심히 일하여 일궈낸 기업이라 해도 그 회사 차량이 다니는 도로, 하수처리 시설, 안보에 필요한 전투기까지 모두 기업가가 한 것은 아니다. 세금으로 이뤄진 기간망이고, 그 속에서 낸 이윤이다. 지금까지 세금의 혜택을 기업이 성장하고 금융권이 회복하는 데 주었다면, 이제는 국민에게도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대기업 직원들과 세계적 화두인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중견간부는 아직 한국에서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다시 한번 성장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때라 각오하는 듯 보였다. 급속한 성장을 이뤄온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더 달려야 한다는 관성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현저히 낮은 스리랑카도 대학까지 무상교육에 국민의료 보험, 값싼 대중교통비를 유지하는 정책을 한다고 소개하면 “그래서 그 나라는 가난한 것 아니냐”는 되물음이 온다. 불평등은 소득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 차이’의 문제다.
2012년 말 한국의 소득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12%를,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했다. 빈부의 차이가 커질수록 사회는 우울에 빠진다. 통합력이 떨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의 정치 지도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표심을 잡기 위해 야권은 중도를 향해 움직인다. 이슈의 전체 지형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세워 양쪽 의견을 가진 이들의 갈등을 줄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립 의견의 중간지점에서 한쪽에 치중하지 않겠다며 문제의식을 흐린다. 정책 자료집만으로는 여야의 차이마저 모호해지기에 유권자는 나열된 추상적 단어 속에서 진실한 리더 찾기 퀴즈를 푸는 상황에 빠진다.
2011년 9월17일 뉴욕의 심장 맨해튼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시작돼 미국의 모든 도시들로 파급됐다. 하지만 이듬해 대선 때 ‘점령하라’ 정신은 정책이 되어 워싱턴으로 옮겨가지 못했다. 주류 정치인들은 대중의 분노와 산발적인 요구들에 정책으로 화답하지 못했다. 그때 조직된 시민들의 요구는 2016년 샌더스의 정책으로 돌아왔다. 현실을 옥죄는 불안과 경제적 고통으로 통증을 호소하던 대중에게 샌더스는 그 병의 증세를 설명하며 처방전을 들고 왔다. 대중은 이에 소액 기부로, 자원봉사로, 혹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까지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은 시대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머리를 싸맨다. 시대정신은 현장에 있다. 현실의 고통을 진단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면 곪아가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투명인간으로 취급받던 이들에게 사회 속에서 당당히 몫을 찾을 수 있도록 정치인이 정책으로 답을 내놓는다면 대중은 모습을 드러내고 뱃심을 돋워 응답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찾아가 울려야 할 시대적 공명은 바로 그곳에 있다. 재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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