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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13, 2016

[토요경제]"6개월은 공짜로 쓰세요" 乙이 된 빌딩 주인들 불황의 그늘.. 오피스 '공실과의 전쟁'

11일 서울 서초구 테헤란로(서초동) 지하철 2·9호선 강남역 8번 출구 인근의 D빌딩 유리 외벽에 ‘임대료 인하’를 알리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이 빌딩 사무실은 3.3m²당 보증금 45만 원에 월 임대료는 20% 할인된 4만5000원이다. 인근 빌딩의 임대료인 3.3m²당 8만∼9만 원과 비교하면 반값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물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어 건물주가 임대료를 마지못해 낮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오피스빌딩 공급 과잉과 장기화되는 경기 침체로 서울 시내 빌딩 주인들이 ‘공실(空室)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빈 사무실을 채우기 위해 일정 기간 임대료를 받지 않거나 임대료를 깎아주는 다양한 임차인 유인책이 등장했다. 빌딩 주인과 세입자의 관계가 역전됐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올해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빌딩이 속속 들어설 예정이어서 임차인을 모시려는 빌딩 주인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절반 정도로 낮춘 서울 서초구의 한 고층 빌딩(오른쪽). 서울 도심의 빌딩들에 공실이 늘자 건물주들이 임차인을 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임차인 모셔라” 몸 낮춘 건물주들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오피스빌딩의 공실률을 낮추기 위한 ‘렌트프리’가 확산되고 있다. 일정 기간 임대료를 받지 않고 사무실을 빌려주는 것이다. 2, 3개월의 렌트프리는 이미 보편화됐고 최근에는 5, 6개월씩 임대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임대료를 낮추면 투자수익률이 떨어져 향후 건물 매매가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역삼동)의 한 빌딩은 5개월의 렌트프리를 제공하고 이사 비용까지 지원하는 조건을 내걸어 겨우 임차인을 구했다. 이 빌딩 관계자는 “지난해 초 3개 층 공실이 생긴 지 거의 1년째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고육지책으로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오피스빌딩도 5년 이상 임차를 약속한 입주사에 6개월 렌트프리에 인테리어 공사비를 지원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 공실로 고생하는 오피스빌딩 주인들이 주택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세 조건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차인을 위한 휴게시설, 회의실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동자동) ‘트윈시티 남산’은 오피스동의 2층 절반 정도를 ‘테넌트 라운지’와 카페, 미팅룸 등으로 꾸몄다. 라운지에는 스윙체어, 라운지 소파, 마사지 의자, 당구대 등 호텔 라운지와 비슷한 시설을 넣었다. 임차인을 유치하기 위해 임대 공간을 줄여 휴게·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한 것이다. 강남구 테헤란로의 K타워는 입주사 대표들과 정기적으로 식사를 겸한 미팅을 갖고 불편사항을 수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건물주들이 임차인의 수요에 부응하는 시설과 서비스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장진택 리맥스코리아 이사는 “기존 빌딩과의 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 발생하는 손해배상금까지 지원하는 빌딩도 있다”며 “빌딩을 건축하고 소유하는 것만으로 시세차익을 누리던 시절이 끝나고 빌딩의 ‘적자생존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탈(脫)서울 바람… 콧대 꺾인 빌딩
콧대 높던 빌딩 주인들이 이렇게 몸을 낮추게 된 것은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전체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2013년 1분기(1∼3월)만 해도 6.54%였던 서울 지역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지난해 말 8.55%로 올랐다.
최근 몇 년 새 대형 빌딩이 급격하게 증가한 반면 수요는 이를 따르지 못해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의 경우 광화문 일원 재개발 사업으로 2011년부터 D타워, 그랑서울, 광화문 스테이트빌딩, 올레플렉스 등 대형 빌딩이 10여 개나 들어섰다. 최근 준공된 빌딩의 공실률은 20∼3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가 급부상하면서 서울 강남에 자리 잡았던 장기 우량 임차인들이 서울을 벗어나는 것도 서울 도심 빌딩의 공동화를 불러온다. 지하철 강남역 인근 삼성 서초사옥에 있던 삼성 화학 관련 계열사들은 지난해 롯데그룹에 인수되면서 사무실을 비웠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다음 달 판교로 이전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정보기술(IT) 회사들이 판교로 속속 옮겨가고 있지만 이들이 비운 자리를 채울 만한 임차인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기업들의 오피스 수요가 줄어드는 것도 공실률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 증권사 등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등 기업들이 사무실 규모를 줄이고 있다. 여기에다 재택근무까지 늘면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경기 불황에다 오피스 시장이 안정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사무실을 옮기려는 수요가 점차 줄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여기에다 서울 및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도 오피스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기업들은 경기가 안 좋으면 사무실 규모부터 줄이기 때문에 오피스 시장은 내수 경기의 바로미터로 꼽힌다”며 “서울 구로디지털단지나 마곡, 경기 지역의 판교나 용인 의왕 등으로 오피스 분포가 다극화되면서 서울 종로, 강남, 여의도 등 전통적 인기 지역의 빌딩들이 공실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올해도 ‘공급 폭탄’ 비상
올해는 하반기에 프라임급 오피스빌딩(연면적 6만6000㎡ 이상)이 집중적으로 공급될 예정이어서 공급 과잉 현상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올해 신규 공급될 오피스빌딩 면적은 56만9000m²로, 지난해 35만 m²보다 약 6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면적 6만6000m²가 넘는 초대형 빌딩만 올해 4곳이 들어선다. 1분기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의 ‘IT 콤플렉스’(연면적 8만1969m²)를 시작으로 하반기에 삼성동 파르나스타워(21만9105m²), 일원동 삼성생명빌딩(7만6390m²) 등이 입주자를 모집한다. 특히 지상 123층, 연면적 80만7506m²에 이르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타워까지 올해 말 완공되면 임차인을 모으기 위한 건물주들의 출혈경쟁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특히 경쟁력이 약한 일부 빌딩의 경우 임차 수요가 이탈하면서 공실 증가, 실질임대료 하락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장진택 이사는 “경기가 회복 흐름을 탄다 하더라도 사무자동화의 진전으로 과거처럼 사무공간이 큰 폭으로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요를 예측해 공급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만성적인 공급 과잉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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