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이명박 정부가 국가정보원을 시켜 야당 인사들을 사찰하고 선거에 불법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왔다. 정치개입이 금지된 국정원이 정권에 유리하게 공작정치를 해왔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세계일보가 확보한 청와대 문서를 보면 국정원은 2011년 11월 작성한 A4용지 1장 분량의 ‘우상호, 좌익 진영의 대선 겨냥 물밑 움직임에 촉각’ 보고서에서 당시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 등에 관해 언급한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A4용지 5장짜리 보고서는 “좌파 절대 우위인 트위터의 빈틈을 파고들어 SNS 인프라를 구축하고, 좌파 점유율이 양호한 페이스북을 집중 공략해 여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며 SNS 여론 장악 방안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당시 국정원 직원이 매일 새벽 이런 문서를 청와대 연풍문에 근무하는 경찰관에게 맡기면 정무수석실 행정관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챙겨갔다고 한다. 국정원의 탈·불법이 청와대의 묵인이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발족한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가 이 문건의 작성자와 청와대 전달 경위 등에 관해 조사 방침을 밝혔지만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한 혐의가 뚜렷하므로 검찰이 즉각 수사에 나서야 한다. 특히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보고서는 내용으로 추정컨대 2012년 국정원 댓글부대의 교본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법원이 증거 부족으로 파기환송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지난 9년간 국정원은 정권 유지와 정권 재창출 수단이었다. 댓글사건에서 드러나듯 국정원은 대선 당시 민심과 여론을 조작했고 그 덕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멀쩡한 공무원을 간첩으로 모는 만행을 저질렀고, 극우 단체에 돈을 주고 관제 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하기도 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는 이를 포함해 13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국정원이 시민 신뢰를 얻고 본래의 국가 정보기관으로 바로 서려면 원 전 국정원장은 물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성역 없이 조사하고 범법 행위가 발견되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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