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은 문준용씨에 대한 제보 조작 사건이 이유미씨 개인 일탈이며 당의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제보에 대해 정상적인 검증을 하지 않은 책임은 회피한다.
문준용씨에 대한 국민의당의 제보 조작 사건은 어느 모로 보나 구태 정치다. 역설적으로 그 터무니없는 시대착오가, 오늘날의 한국 정치에 흥미진진한 질문을 던진다. 제보 조작 사건의 궤적을 되짚으면 이 역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선 나흘 전인 지난 5월5일,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 김인원 부단장이 중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의 아들 문준용씨가, 아버지인 문 후보의 권유를 받고 2006년 고용정보원에 원서를 냈다는 제보자 증언을 공개한 것이다. 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취업 과정은 대선 내내 ‘특혜성 취업’ 여부로 공방이 오가던 쟁점이었다.
5월5일 의혹 제기가 중대했던 이유는, 준용씨의 취업 과정에 문 후보가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이 기자회견 이전까지 ‘특혜성 취업’ 주장은 물증보다는 여러 불확실한 정황에 기대고 있었다. 문 후보가 고용정보원을 지목해 원서를 쓰라고 했다는 증언은, 이전까지 나온 정황들을 하나로 꿰어 ‘권력형 취업 알선 사건’을 만들어주는 정보였다.
그러나 이 제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보자의 음성 녹음이라며 안철수 캠프에 건네진 파일은, 사실 국민의당 관계자가 자신의 가족과 짜고 녹음한 역할극이었다. 이 조작 파일을 만든 이유미씨는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 자원봉사자로 일했고,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66일, 안철수와 함께한 희망의 기록>이라는 책을 냈다. 2016년 총선에서는 전남 여수갑 지역구에 국민의당 예비 후보로 등록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패했다. 그녀는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6월29일 구속됐다.
대선 막바지로 갈수록 지지율이 빠지던 안철수 캠프는 준용씨의 특혜성 취업 의혹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유미씨는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과 메신저 등으로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선 선거운동을 했다. 두 사람은 사석에서, 이유미씨의 지인 중에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준용씨도 이 학교를 다녔다) 출신이 있다는 대화를 나눴다.
4월 말쯤,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이유미씨에게 그 지인을 제보자로 확보하자고 요청한다. 이유미씨는 그 지인으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요약해서 메신저로 보냈다. 문재인 후보가 준용씨를 고용정보원에 ‘꽂아넣었고’, 그 사실을 준용씨가 파슨스 디자인스쿨 재학 시절 자랑 삼아 말하고 다녔다는 내용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녹취 등 근거 자료를 요구했다. 5월1일 이유미씨는 지인들과의 대화 캡처라면서 메신저 창 이미지를 보내며 ‘제보’의 수위를 높인다.
5월3일, 이유미씨가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게 한 남성과 통화하는 녹음 파일을 보낸다. 내용은 앞서 보낸 메모와 유사하다. 훗날 이유미씨가 기획한 역할극으로 확인된 그 녹음 파일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유미씨로부터 받은 자료들을 대선 캠프 공명선거추진단으로 넘긴다. 공명선거추진단 김인원 부단장이 이틀 뒤인 5월5일 이 내용을 발표한다. 문재인 캠프는 해당 사안이 허위 사실이라며 검찰에 고발한다.
안철수 후보·박지원 위원장, 어디까지 알았나?
5월7일, 김인원 부단장이 다시 반박 기자회견을 연다. 김 부단장은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다. “국민의당이 한 사람의 증언자를 조작해 가짜 인터뷰를 했다는 주장은 사실관계조차 틀렸다. 민주당은 평소에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있지도 않은 가공인물을 내세워 가짜 인터뷰를 조작하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당은 애초부터 그런 기술이 없다. 국민의당은 한 사람만의 제보를 가지고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무모하지도 않다.” 이날 김 부단장이 정확히 표현한 대로, 5월5일 이후의 공방전은 ‘있지도 않은 가공인물을 내세워 가짜 인터뷰를 조작’한 사건으로 결론 났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당이 ‘그런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김 부단장의 브리핑과 다르다.
검찰은 제보 조작 과정에 국민의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 이 대목이 지금 여론의 핵심 관심사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안철수 대선 후보와 박지원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언제부터, 어느 수준까지 사실을 알고 있었나에 관심이 쏠린다. 언론도 당·캠프 지도부의 개입 여부에 취재를 집중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민의당은 검찰과 언론에 조직적 개입 여부를 추궁당하는 이 구도에서 당의 활로를 발견하려 한다.
“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면 이 당은 해체해야 한다.” 6월28일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이 한 말이다. 당 해체까지 각오하는 단호한 결의처럼 보이지만, 미묘한 맥락이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을 ‘개인 일탈이냐, 조직 차원의 조작이냐’ 구도로 재구성한다. 후자라면 당이 해체해야 한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전자로 결론 날 경우 당과 안철수 대선 후보의 책임은 도의적 차원으로 그친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이 경로, 핵심 전선을 조직적 개입 여부로 재구성한 후에 이유미씨의 개인 일탈로 마무리하는 경로가, 국민의당으로서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가장 버틸 만한 전장까지 최대한 후퇴해 최후 방어선을 친 것이다.
향후 검찰 수사에서 지도부의 조직적 개입 사실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국민의당의 이런 기대가 터무니없지도 않다. 이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여론이 사태를 침소봉대했다며 반전을 꾀할 수도 있다. 국민의당은 2016년 총선 직후 터진 ‘리베이트 사건’으로 휘청했지만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며 기사회생했던 선례도 있다. 조직적 개입 여부에 최후 방어선을 치는 전략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최후 방어선은 정치인이 감당할 기본적인 직업윤리를 무시해야만 성립한다. 반드시 던져져야 하지만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국민의당은 조작된 제보를 검증도 하지 않고 대선 한복판에 던져놓을 수 있었을까. 정당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선거 수행 능력으로, 정당이 띄우는 대선 캠프는 일종의 ‘선거 머신’이다. 진위가 의심스러운 제보를 걸러내는 작업은 선거 머신의 가장 기초적인 기능에 속한다. 이번 제보 조작 사태만큼 선거 머신이 고장 난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여러 대선 캠프가 ‘공명선거추진단’ 등으로 불리는 조직을 둔다. 정치권에서 더 익숙하게 부르는 비공식 명칭은 ‘네거티브팀’이다. 상대 후보의 개인 이력을 공격하고, 상대 캠프가 우리 후보에게 펴는 네거티브 공세를 대응·방어하는 팀이다.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태는, 네거티브팀의 과속을 제어할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시스템 사고였다.
“대책 없이 당한 캠프의 무능이 진정 놀라워”
네거티브팀 업무는 보통 이렇게 작동한다. 대선 캠프에는 상대 후보에 대한 숱한 제보가 들어온다. 소위 ‘깜이 안 되는’ 제보는 접수 단계에서 버려진다. 가능성이 보이는 제보를 중심으로 실체를 맞춰가다보면,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을 만한 ‘물건’이 만들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진짜 관건이다.
네거티브팀 책임자는 ‘물건’을 캠프 내부의 다른 팀 책임자들 앞에 놓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 전략·공보·법률 등 여러 단위가 모여앉아 각자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놓는다. 유효타를 먹일 수 있다고 해도, 법률지원단이 보기에 사실 검증이 부실해 뒷감당이 안 될 수 있다. 공보 라인이 보기에 언론사들이 기사로 쓰기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전략 단위에서 네거티브 공세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네거티브팀이 만든 ‘물건’을 실제로 사용할지는 이처럼 여러 단위의 교차 검증을 거친다.
네거티브팀은 상대 후보 공격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지만 법률지원단은 캠프 방어를, 공보는 확산을, 전략은 유리한 선거 구도 만들기를 목표로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관점과 관심사를 가진 단위들의 교차 검증을 거치면 아이템의 생존율은 뚝 떨어진다. 대선이라는 ‘이기고 보는 싸움’에서도 가혹한 내부 검증 시스템을 설계하는 이유는, 대선이야말로 한 발만 잘못 디뎠다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위태로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네거티브팀은 상대의 도덕성에 치명적 공세를 펼치는 단위인 만큼, 네거티브가 되치기 당했을 때의 피해 역시 치명적이다. 문재인 캠프에서 일종의 별동대로 검증 업무를 했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공명심에 취했든 판단력이 흐려졌든, 부실하고 위험한 폭로거리를 들고 오는 ‘또라이’의 등장은 전혀 놀랍지 않다. 그건 대선에서 흔한 일이다. 오히려 또라이에 대책 없이 당한 캠프의 무능이야말로 이번 사태에서 진정 놀라운 대목이다.”
이번 제보 조작은 고도의 속임수를 부린 것도 아니었으며, 본인 확인을 요구하는 간단한 절차만으로도 검증이 가능했다. 정황을 종합해보면,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가져온 제보를 공식 발표하는 과정에서 실효성 있는 검증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네거티브팀이 과속을 할 때 캠프 차원의 제어도 작동하지 않았다.
조직적 개입을 부인하려면 제보 조작 사건을 온전히 네거티브팀 안에서 일어난 일로, 거기서 다시 이유미씨 개인이 저지른 일로 끊임없이 고립시켜야 한다. 사태 발생 이후 국민의당 주요 정치인들이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이 고립이야말로 시스템 설계 실패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국민의당이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라는 최후 방어선을 지켜내려 하면 할수록, ‘선거 머신’으로서 터무니없는 무능을 고백해야만 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모든 선거는 결국 후보의 선거다. 국민의당 대선 캠프의 최종 결정권자는 안철수 전 후보다. 제보 조작이 확인되고 5일째인 6월30일까지 안 전 후보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쟁점이 ‘조직적 개입이냐 개인 일탈이냐’로 형성될 경우, 안 전 후보는 자신이 직접 개입하지 않은 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 구도에서는, 검찰 수사로 사실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침묵을 지키는 태도도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 에러를 조장하는 캠프의 무능이 문제가 될 때, 안 전 후보는 지금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입장 표명을 피할 수 없는 최종 책임자다.
‘구태 정치’는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고 한국 사회가 믿던 시절이 있었다. 2012년 안철수 현상은 그 결과물이었다. 안 전 후보는 2012년 정치에 뛰어들 때부터 ‘비생산적이고 전문성 없는 여의도 정치’와 ‘생산적·합리적인 민간 전문가’를 대립시키는 화법을 즐겨 구사했다. 하지만 정치라는 직업이 요구하는 특유의 전문성은 분명 존재한다. 대선을 수행하는 초대형 선거 머신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는 그중에서도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과제다. 이렇게 해서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태는 흥미로운 역설을 드러낸다.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는 지도자야말로, 본의와 무관하게 결국 터무니없는 구태 정치에 최적의 그늘을 제공한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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