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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18, 2016

"김기춘마저 인사위에서 이재만의 눈치를 봤다"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인연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의 핵심 인물인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대통령의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실제적인 파워맨인 정호성 제1부속실장은 아무런 관직도 없는 최순실에게 굽실거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를 “최 선생님”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도 최순실의 수발을 든 흔적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박근혜 간의 긴 역사를 다시 짚어봤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2012년 12월 말의 어느 날. 박근혜 당선자는 이재만(50), 정호성(47), 안봉근(50) 등 오랜 측근인 보좌진을 부부 동반으로 저녁 모임에 초대했다. 국회 의원회관 ‘방 식구’들끼리 대통령 당선을 자축하는 오붓한 자리였다. 다들 즐거운 기분으로 모였다. 특히 부인들은 당선자와의 비밀 모임에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자는 측근들의 노고를 치하하거나 고마움을 표하는 대신 섬뜩한 경고를 쏟아냈다. “여러분들이 그동안에도 별문제 없이 잘해왔지만,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 청와대에 특별감찰관을 두고 철저하게 감시할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 잘못하면 감옥 갈 수도 있다.” 순식간에 참석자들의 표정은 굳어졌으며,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2013년 2월 말 박근혜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3인방은 섬뜩한 경고를 의식해서인지 나름대로 처신에 신중을 기했다. 이들은 외부인들과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점심과 저녁은 대부분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제1부속실장을 맡은 정호성은 일이 많아서 집에도 2~3일에 한번씩밖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임기 말까지 순장조를 자처했던 문고리 3인방은 결국 중도에 쫓겨나다시피 청와대를 떠났다. 아직까지 개인적 비리는 드러난 게 없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사안인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직접 도운 증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제1부속실장 정호성은 긴급체포돼 구속됐으며, 나머지 2명도 청와대 기록물 반출을 방조했거나(이재만 총무비서관) 최순실의 청와대 출입을 도운 혐의(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로 주요 수사 대상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잘난 사람보다 맑은 사람 찾아”
문고리 권력의 출발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전후해서부터였다. 원래 아버지 박정희가 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경북 문경·예천 지역 보궐선거에 나가기로 돼 있었던 박근혜는 강재섭 등 대구지역 의원들의 요청으로 달성으로 차출됐다.
달성에 아무런 연고가 없던 박근혜를 골목골목으로 이끌었던 이가 안봉근이다. 안봉근은 회사(쌍용그룹) 경영을 위해 사퇴했던 달성 국회의원 김석원의 지역구 비서 겸 운전기사였다. 김석원이 달성을 떠나면서 자신의 후임자에게 사람마저 넘긴 것이다. 안봉근은 선거 때 박근혜 후보 차량을 운전했다.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뒤에는 한동안 의원 운전기사를 겸했다가 나중에는 수행비서 업무와 지역구 관리를 담당했다. 당시 선거를 돕기 위해 달성에 내려와 있던 최순실-정윤회 부부도 이때 안봉근을 처음 만났다.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 채용 방식은 독특했다. 보좌진 면접을 의원이 아니라 최순실과 정윤회가 대신 봤다. 1998년에서 99년까지 4급 보좌관을 했던 양아무개(53)씨는 지난 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보좌관 지원서를 내고 누가 보자고 해서 서울 강남의 약속 장소로 갔더니 어떤 여성이 있었다. 그가 최순실이었다. 최순실은 ‘우리는 잘난 사람이 아니라 맑은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며칠 뒤에는 정윤회에게도 별도 면접을 받았다”고 밝혔다. 양씨는 합격 통보를 받고 여의도 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한 뒤에야 보스인 의원을 처음 만났다.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선거가 끝난 뒤 양씨보다 앞서 채용된 이는 정호성이었다. 고려대 노문학과(1988년 입학)를 졸업한 뒤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마친 정호성은 원래 외무고시를 꿈꾸고 있었다. 학교를 통해 비서관 제안을 받았을 때 진로를 놓고 고민하다가 ‘잠시 그런 경험도 괜찮겠다’는 친구들의 의견에 지원서를 냈다. 이어 강원도의 한 대학에서 아이티(IT) 분야 교수를 하던 이춘상(2012년 대선 직전에 교통사고로 사망)이 양씨보다 몇달 뒤에 들어왔다. 이재만은 이들보다 1년여 뒤인 1999년 하반기쯤에 합류했다. 최순실과 업무상 가끔 부딪치는데다가 보좌관이 적성에 안 맞았던 양씨가 업무 시작 1년 반쯤 뒤에 관두면서 한양대 과 후배인 이재만을 소개했다. 박사학위를 막 딴 이재만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었지만, 일자리를 잡지 못해 고민하던 차였다. 의원실 진입 서열로 보면 안봉근이 가장 먼저이며, 이어 정호성과 이재만 순이다.
최순실·정윤회 부부가 보좌진 면접
출근 뒤에야 박근혜 만나
문서는 초기부터 최가 고쳐
정치자금도 최·정에게 받아

수석들 구내식당 앞 서성이다
정호성에게 보고서 컨펌 받아
안봉근은 검찰 인사 개입 정황
“김수남 눈여겨보고 있다”
‘맑은 사람’을 고른 탓인지 보좌진은 모두 윗사람 말을 잘 듣는 모범생 타입이었다. 정호성과 대학을 함께 다닌 윤아무개씨는 “누구와도 척지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하지도 않은 착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춘상과 지난 대선 때 함께 일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없고 누구에게나 겸손했다”고 평했다. 한양대에서 박사 논문 지도교수였던 예종석 교수는 이재만에 대해 “시키는 일 외에 다른 것을 할 줄 모르는 모범생이었다”고 말했다. 대구대 중문학과를 졸업한 안봉근만 유일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역시 윗사람 지시는 언제나 100% 이행하는 순종파였다.
공격적인 최순실의 브레이크는 정윤회
보좌진을 자기 손으로 고른 최순실-정윤회 부부는 의원실 운영에도 처음부터 깊숙이 개입했다. 보좌진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국회 의정활동이나 지역구 관리 문제 등을 일일이 챙겼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회의는 사안에 따라 최순실이 진행할 때도 있었고, 정윤회가 진행할 때도 있었다. 가끔 의원이 직접 하기도 했다. 회의는 주로 서울 논현동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빌딩 한층을 몽땅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 최순실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윤회는 회관과 강남 사무실을 왔다 갔다 했지만, 최순실은 회관에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의원실에서 공식적인 직책이 없었음에도, 보좌진은 이들을 “최 부장님”과 “비서실장님”으로 불렀다. 정윤회는 박근혜가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총재 비서실장이라는 공개적인 직책을 처음 가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박근혜 의원의 국회 질의서나 연설문 등을 처음부터 손봤다. 양씨는 “야인 시절부터 의원을 돕던 분들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많은 부분에 개입했다. 우리가 쓴 연설문들을 많이 고쳤다. 최씨는 개별 지식이 어떤지는 몰라도 크게 보는 눈은 있었다. 연설문의 문맥을 바로잡기도 하고, 자구를 고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일하는 스타일은 달랐다. 최씨는 공격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앞뒤를 가리지 않는 데 비해 정씨는 이런 최씨에게 브레이크를 걸곤 했다”고 말했다.
최순실 부부는 정책 결정만이 아니라 돈 문제에도 관여했다. 경조사비나 각종 지역구 행사비 등 정치자금이 늘 부족했다. 그때마다 보좌진은 의원이 아니라 최순실 또는 정윤회에게 연락했다. 그러면 바로 돈이 들어왔다고 한다.
의원실의 근무 분위기도 묘했다. 보좌진은 다른 방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보좌관협의회라든지 대학별 동문회 등 국회에 있는 이러저러한 모임에 일체 나가지 않았다. 금지 지침이 있지는 않았지만 방 분위기가 그랬다”고 양씨는 말했다. 3인방에게 최순실과 정윤회는 처음부터 비선 실세였던 셈이다. 보좌진의 좌장이기도 했고, 때로는 보스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3인방은 최씨 부부의 존재에 대해서 함구로 일관했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와 2012년 대선 때 비선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이들은 그런 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2013년 2월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각각 청와대 살림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이재만), 대통령 집무실을 관장하는 제1부속실장(정호성), 대통령 부인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장(안봉근) 등 이른바 문고리 권력을 차지했다. 청와대의 문고리는 모두 최순실에게 통하는 문이기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 정점은 정호성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수석들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대면보고 요청을 제1부속실에 하면 ‘이메일(narelo)로 보내세요’라는 답변만 듣는다. 이걸 몇차례 겪으면 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부속실장에게 이메일로 보고서를 보낸다”고 말했다. 정호성은 이렇게 모인 모든 보고서 등 문건을 이메일 또는 인편으로 최순실에게 보내고 ‘컨펌’(확인)을 받았다. 최순실의 지위는 초기의 ‘최 부장님’에서 이미 ‘최 선생님’으로 격상됐다. 그러한 내막도 모르는 청와대 수석들은 며칠간 기다리다가 답이 없으면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구내식당 앞을 서성거렸다. 정호성이 나타나면 달려가서 “실장님, 그 보고서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컨펌’하기 위해서다. 정호성 등 3인방은 직급은 비서관이었지만, 청와대 직원들은 너나없이 ‘없어 보이는’ “비서관님”보다는 ‘있어 보이는’ “실장님”으로 불렀다.
주군 주파수에만 맞춘 참모
안봉근도 청와대에서 비선 실세를 직접 모시는 일을 주로 했다. 박근혜 정권은 영부인도 없는 제2부속실을 유지하면서 ‘소외계층의 민원 창구’라고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최순실을 뒤치다꺼리하는 일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영선 행정관과 윤전추 행정관이 의상실 샘플실에서 최순실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안봉근은 최순실이 검문도 없이 청와대를 무단으로 드나드는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재만 역시 최순실-박근혜의 비밀 커넥션에 직접 연결됐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그는 청와대의 모든 전산시스템을 총괄하기에 그의 허락 없이는 정호성이 문서를 최순실에게 전달할 수 없다. 게다가 이재만은 2015년 초까지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정식 참석 멤버였다. 이른바 ‘최순실 인사’를 그가 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힘이 셌다는 비서실장인 김기춘마저 인사위에서 이재만의 눈치를 봤다. 김기춘은 이재만에게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고는 했다”고 말했다.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최순실의 심부름이나 대통령의 지시사항만 이행하고 있지는 않았다. 스스로 권력이 돼 움직인 흔적도 많다. 특히 안봉근은 경찰 인사에 깊숙이 개입했다. 안봉근이 경무관급 이상 인사를 다 하고 있다는 현직 경찰관의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뿐 아니다. 그는 검찰 인사에도 개입한 정황이 있다. 검찰총장 인사를 앞둔 지난해 하반기에 안봉근은 정치권 지인을 만났다. 총장 후보로 거론된 인물 중 한명인 김수남(당시 대검 차장)에 대한 인물평이 나왔다. 그 지인이 ‘김수남의 부친(고 김기택 영남대 총장)이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진영을 도왔던 전력을 거론하면서 김수남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얘기하자, 안봉근은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김수남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에 출두하면서 안봉근이 약속된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와서 포토라인을 피한 게 우연이 아닌 셈이다.
정호성도 권력의 단물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그의 조카(누나의 아들)인 이아무개(32)씨가 정권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에 국무총리실에 6급 별정직으로 특혜 채용된 것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입김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파동 수사가 마무리됐을 때 3인방에 대해 “일개 내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말했다. 3인방을 오랫동안 봐온 주변인들도 “이들이 대체로 사심 없이 성실히 일하는 것은 맞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 참모로서 그게 다일까. 20여년 의원 보좌관 생활을 바탕으로 <보좌의 정치학>을 쓴 이진수(김부겸 의원 보좌관)씨는 “주군의 주파수에만 자신을 맞추는 보좌진은 정치 참모라고 할 수 없다. 한발 떨어져서 보스에게 싫은 소리도 하고 때로는 맞서 싸우기도 해야 참모나 정치적 동지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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