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3년을 끌었던 세월호 인양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된 지 13일 만에 실현됐습니다. 정치적 고려 때문에 인양을 늦춘 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억울할 수 있지만, 이런 의심이 들만도 한 정황들이 적지 않습니다.
김종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참사 7개월 뒤인 2014년 11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수색 중단을 선언하고 세월호 인양을 호소했습니다.
[민동임/세월호 희생자 가족 : 어떠한 선택도 누군가에게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면 저희가 수중수색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인양을 하기로 결정한 건 그다음 해인 2015년 4월.
이 반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세월호 사고 직후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고 김영한 수석의 업무 수첩을 보면 당시 청와대에서는 거의 매일 세월호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이런 지시를 합니다.
사고의 원인은 '선장과 선원, 해경, 유병언'이지 '청와대 보고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
'침묵이 양약이다.' 그러니까 입단속을 시킨 겁니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는 유가족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면서 세월호 사건이 언급되는 걸 막으려 했습니다.
이 시기, 문체부도 행동에 나섭니다.
세월호 시국선언을 한 예술인이나 단체는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정부 지원금을 삭감했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박 전 대통령의 심기가 영향을 주었다고 전직 장관은 털어놓습니다.
[유진룡/전 문체부 장관(탄핵심판 변론) : (피청구인(박근혜 전 대통령)이 막 짜증 내고, 또 화를 내고. 그런 때는 언제쯤부터로 추정되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로 그런 모습을 봤습니다. (세월호 참사) 그것이 하나의 계기나 어떤 동기가 되지 않았나.]
세월호가 언급되는 것만 피했던 것이 아닙니다.
2014년 6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에는 보수 단체를 활용해 유가족에게 적극적으로 맞대응을 하라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이 문건이 나온 직후부터, 단식농성을 벌이던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보수단체들은 "누가 배 타고 놀러 가라고 했냐"고 막말을 했고, 이른바 '폭식 투쟁'까지 등장했습니다.
세월호 진상조사를 위한 특위에 대해서는 이런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김재원/전 정무수석 원내현안대책회의(2015년 1월) : 이 조직(세월호 특조위) 만든다고 구상을 한 분은 아마 공직자가 아니라 세금 도둑이라고 확신합니다.]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은, 당시 정부 분위기가 인양이라는 단어조차 꺼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유승민/바른정당 경선 후보 : 당시에는 청와대나 정부가 세월호 인양문제에 대해서 그 말을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상당히 꺼리고 있었기 때문에.]
인양을 할지 말지를 놓고 허비한 6개월이라는 시간, 그리고 국민이 기억하는 이 장면들.
'인양이 연기된 게 정치적 고려가 아니냐'는 의심을 초래한 건 결국 정부였습니다.
(영상취재 : 서진호, 영상편집 : 이정택, 영상제공 : 미디어몽구)
김종원 기자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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