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직권남용, 강요 등 총 13가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공범들은 모두 구속된 상태. 일체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증거인멸이 우려되는 범죄의 몸통. 잘못했단 사죄 한 번 없어 정상참작도 불가.
일반인 법 상식으로는 검찰의 '장고'가 되레 기이하다. 피의자 박근혜는 구속될까? "법과 원칙에 맞게 판단하겠다"는 검찰 말을 믿어도 될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봤다.
"피의자 이름에 '박근혜'를 빼고 아무개, 예컨대 '고위공직자 홍길동'이라고 넣으면 100% 구속될 사건이다. 어떤 검사, 어떤 법률가에게 물어봐도 100% 구속될 사건이고, 법원 가면 중형이 내려질 사건이다."
개인 박근혜에게 수의 한 번 입히자고 연인원 1600만 명이 엄동설한 거리를 메우며 지난 5개월을 거쳐 오진 않았을 터. 조 교수는 "낡은 것을 청산하는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정치적 단계, 헌법적 단계를 지나 형법적 단계로 넘어온 지금, '박근혜 구속'은 '낡은 것 청산'과 동의어란 얘기다.
낡은 것의 핵심은 정경유착이다. 재벌들과 대통령이 부당 거래를 했다. 재벌들 숙원 사업을 해결해 준 대가로 대통령은 친구를 통해 '모금'을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돈만 433억 원이다. 이 모금 행위를 뇌물로 볼 것이냐 대통령의 강요로 볼 것이냐에 따라 사건의 본질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강요라고 보면 재벌들은 피해자가 된다.
"재벌 총수들이 사면이건 합병이건 해결하고 싶은 현안들이 있었고, 이에 대한 청탁들이 안종범 전 수석 등을 통해 이뤄졌고, 박 전 대통령 자신은 돈을 안 받았지만 최순실에게 돈을 주라고 했고, 실제로 돈이 주어졌다. 재벌들도 얻어갈 것을 얻어 갔다.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본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와 강요죄를 모두 적용해 기소할 수도 있다. 주된 혐의를 뇌물로 적용하고 강요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적용하면 설령 법원에서 뇌물죄가 무죄로 판단돼도 강요죄로 처벌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이 있다.
"형사소송법적으로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두 가지 판단을 다 할 수 있다. 주위적(主位的) 기소를 뇌물죄로 하고, 직권남용·강요는 예비적 기소로 적으면 된다. 그러면 법원에서 일단 뇌물 부분을 판단하고, 그게 판례에 비추어 맞지 않다 싶으면 강요 부분으로 검토할 수 있다. (…) 만에 하나 재벌들은 빠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박 전 대통령은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이런 사면초가 상황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잡아떼고 있다. "몰랐다", 혹은 "공익을 위한 대통령의 통치행위였다" 등. 한마디로 최순실과 측근들에게 속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나는 몰랐다', '나한테는 돈 한 푼 안 들어왔다'고 하는 게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최순실과 재단을 만들기로 했고(사전 계획),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고(의사 연락), 누구는 재벌 회장들을 만나는 역할을 하고 누구는 실제로 재단을 만들고 운영하고(역할 분담) 이런 게 정확하게 다 들어맞는다. 공범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매를 번다. 태극기 든 지지자들에게만 송구할 뿐, 단 한 번도 제대로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없다.
"패착 중 패착이다. 여전히 '친박이 궐기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런 확신 편향이 심하다 보니 객관적 정보 취합이 안 됐다고 본다. (…) 국민이 용서할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게 본인이 결사 항전을 선언해 버렸고, 사람들은 더 화가 났다.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그 다음에 용서든 사면이든 감형이든 이런 게 있을 수 있는데, 인정도 사과도 안 하고 그런 것을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한 번도 사실 인정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 오판을 할 거라고 본다."
박근혜 처벌보다 어려운 게 개혁이다. 정권교체,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다고 저절로 적폐가 청산되고 개혁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정치권의 적지 않은 세력들은 '개헌이 개혁'이라고 한다.
"지금 시점은 개혁과 적폐 청산을 해야 할 때다. 구 체제 청산 문제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고, 그래서 청산에 집중해야 하는데 개헌 문제를 가져오면 초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심판을 받아야 할 세력이 개헌의 주체가 된다. 그들의 발언권도 살아난다. (…) 거리에서 '헌정 문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개헌을 할 때가 된 것은 맞다. 그런데 개헌은 구 체제를 마저 정리하고 하는 게 맞고, 또 범죄 책임자 일부를 새 체제 만드는 데 끼울 수는 없다."
협치와 연정론도 무성하다. 누가 집권하건 여소야대 상황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와 어떻게가 논란이다.
"물론 자유한국당과도 협치를 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한국당과 합의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냐는 거다. 한국당이 동의하는, 한국당이 수용할 수 있는 개혁만 한다? 그러면 개혁이 '최소주의'가 된다. 다른 당들이 합의해도 한국당이 '노(No)'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건 촛불 민심이 받을 수 없다. 이 국면을 만든 사람들, 주권자인 시민이 동의할 수 없으면 판 자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보수 우위의 한국사회다. 보수와 기득권은 일상을 장악하고 있다. 적폐 청산과 개혁을 해 낼만한 능력과 힘이 진보세력에게 충분한가도 낙관하기 어렵다.
"워낙 우경화된 판이고, 제도권의 국회의원들을 아무리 조합해도 우경화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 판 밑에서 지각 변동이 생겼다. 시민들이 판을 한번 진보 쪽으로 크게 당겼다. 그러니 과거 같으면 더 난리를 쳤을 한국당도 입을 닫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행히도 시민들, 대중의 힘이 받쳐 주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전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라고 본다."
다음은 22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조국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박근혜, 구속이 당연…안 하면 판단 주체 의심해야"
프레시안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상황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서 검토 시간을 빼고 14시간 정도 수사를 받았는데,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 과정을 어떻게 봤나.
조국 : 박 전 대통령의 기본 기조는 과거 '정규재 TV'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과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검찰·특검이 자신을 '엮었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검찰·특검 수사에는 응하지 않다가 파면된 후에는 어쩔 수 없으니 응한 것 같다.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단의 전략은 '최대한 버틴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파면되고 어제 조사를 받고 나서는 갑자기 '경의를 표한다'며 검찰 수사를 칭찬하는 발언을 했다.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변호인단은 아는 것 같다. 범죄 혐의가 매우 높고, 혐의를 입증할 증거·증인이 쌓이고, 공범이 모두 구속된 상황이 객관적인 현실이다.
앞서 헌재의 탄핵심판 시기에는 제대로 몰랐던 상황을 알게 된 것 같은데, 이것은 변화다. 하지만 현실을 파악했더라도 대응 방안은 '전면 부인'이다. 대부분의 혐의를 '몰랐다' 아니면 '아니다' 둘 중 하나로 답했다는 것은 '이 상황과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변호인단에서 검찰을 칭찬한다든지, 검찰이 피의자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영상 녹화를 하지 않았다든지, 이런 것을 보면 검찰의 수사 의지가 의심된다는 지적이 있다.
조국 : 피의자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영상 녹화를 안 했다거나, 검찰청의 한 층 전체를 다 비운 과잉 의전 같은 게 눈에 띄기는 했다. 그러나 검찰의 태도가 최종 결정이 나는 것은 구속영장 청구를 하느냐 안 하느냐다. 물론 '파면된 대통령에게 그 정도 의전이 필요한가' 논란이 있겠지만, 아직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정도 예우를 하더라도 수사만 엄정히 한다면 굳이 심각하게 얘기할 건 없다.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초에 검찰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보고 생각하면 된다.
프레시안 :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보나?
조국 : 해야 한다고 본다. 통상의 사안이라고 치자. 피의자 이름 '박근혜'를 빼고 아무개, 예컨대 '고위공직자 홍길동'이라고 넣으면 100% 구속될 사건이다. 어떤 검사, 어떤 법률가에게 물어봐도 100% 구속 사건이고, 법원 가면 중형이 내려질 사건이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이고 친박·자유한국당이라는 정치 세력이 있는 조건 때문에 판단이 흐려지는 것인데, 검찰이 그런 정무적·정치적 고려는 하지 말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을 때 어떤 정치적 파급이 있을지, 대선에 어떤영향을 미칠지, 어느 정당이 좋아하고 어느 정당이 싫어할지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구속이 되면 누구에게 이득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야권 지지층은 좋아하겠지만, 오히려 친박이 결집할 수 있고, 야권 후보에게 안 좋을 수도 있고, 보수가 결집해서 자유한국당에 좋을 수도 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정치는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고려해 법적 판단을 거기에 맞추면 검찰은 욕을 먹을 것이다. 정치적 판단 없애고, 피의자가 '홍길동'이라고 생각하고 처리해야 한다.
프레시안 : 검찰 조직 논리로 봐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조국 : 검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지 않나. 그래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얘기도 나오는 것이다. 그건 검찰 조직을 반으로 쪼개는 것이니, 검찰로 보면 엄청난 위기다. 공수처 도입 주장은 노무현 정권 때부터 나왔지만 무산됐는데, 지금은 대중의 지지가 높아졌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수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으면 여론이 공수처로 몰릴 것이다. 검찰 조직으로 봐서도,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그런 게 필요할 것이다.
프레시안 : 만약 구속영장 청구를 안 한다면 검찰의 수사 의지와 직결된 문제라고 봐도 될까.
조국 :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영장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검찰이 법리적 판단이 아닌 다른 어떤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건 누가 그런 판단을 했느냐를 따져야 한다. 주임 검사의 판단인지, 검찰총장의 판단인지, 아니면 극단적인 경우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법무부를 통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는지 다 따져봐야 한다. 법리적으로는 당연히 해야 하는데 안 했다면, 왜, 누가, 어떤 계통을 통해 그런 결정을 했는지 따져 봐야 한다.
프레시안 :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13가지 혐의 중 핵심은 역시 뇌물죄다. 대가성 등 입증이 쉽지 않은 문제다.
조국 : 뇌물 문제는 이렇다. 일단 박 전 대통령 자신은 직접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특검 이전의 검찰 수사에서는 뇌물이 아니라 직권남용·강요로 처리한 것이다. 하지만 특검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검찰이나 특검이나 사실관계는 똑같이 봤는데, 그것을 법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거냐에서 갈린 것이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적으로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두 가지 판단을 다 할 수 있다. 주위적(主位的) 기소를 뇌물죄로 하고, 직권남용·강요는 예비적 기소로 적으면 된다. 그러면 법원에서 일단 뇌물 부분을 판단하고, 그게 판례에 비추어 맞지 않다 싶으면 강요 부분으로 검토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둘 다 부인하고 있는 상태에서 뇌물로 혐의를 적게 되면 (입증이) 까다로워지는 부분은 있다고 본다. 첫째, 부정 청탁이 있었느냐, 둘째, 대가성이 있었느냐, 이 2가지가 문제다.
부정한 청탁 부분은 현행 판례상 묵시적인 청탁도 해당된다는 판례가 수도 없이 있다. 이는 각종 증언과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 등의 문서를 통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대가성 부분은 인과관계가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 있고 복잡해서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의 기존 판례는 포괄적 뇌물죄라고 해서, 공무원에 대해서는 대가성을 폭넓게 인정한 판례가 있다. 그러니 검찰에서 뇌물죄 적용을 포기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재벌 총수들이 사면이건 합병이건 해결하고 싶은 현안들이 있었고, 이에 대한 청탁들이 안 전 수석 등을 통해 이뤄졌고, 박 전 대통령 자신은 돈을 안 받았지만 최순실에게 돈을 주라고 했고, 실제로 돈이 주어졌다. 재벌들도 얻어갈 것을 얻어 갔다.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본다.
설사 뇌물죄가 적용이 안 된다고 해도, 박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강요 부분은 벗어날 수가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 주장은, 박 전 대통령을 독대했더니 대통령이 겁을 주더라, 팔을 비틀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는 것 아니냐. 이건 또다른 파렴치범이다. 그래서 직권남용·강요 혐의는 기본적으로 인정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재용 부회장뿐 아니라 재벌총수들은 다 그렇게 진술했다.
프레시안 :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의 공동정범 관계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조국 : 뇌물을 받았다고 하든 강요를 했다고 하든 공범 관계는 성립한다. 특검에서는 '경제적 공동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은 법률적 용어는 아니고, 법적으로는 공범인 것이다. 법률에서 공범은 2가지 요건이 있다. 범죄를 저지를 때의 의사 연락이 있었는지, 역할 분담이 있었는지다.
로스쿨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표본이 되는 사례는 이런 것이다. 은행강도 일당이 있다고 하자. 미리 계획을 짜고 그 계획에 따라 한 사람은 은행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망만 봤고, 다른 사람들이 은행 안에서 총칼을 들이대고 협박해서 강도짓을 했다. 그러면 밖에서 망만 본 사람은? 이 사람은 은행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공범이 된다. 그게 판례이고, 표준적으로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기본이다.
그러니 박 전 대통령이 '나는 몰랐다', '나한테는 돈 한 푼 안 들어왔다'고 하는 게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최순실과 재단을 만들기로 했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누구는 재벌 회장들을 만나는 역할을 하고 누구는 실제로 재단을 만들고 운영하고 이런 게 정확하게 다 들어맞는다. 공범이 아닐 수가 없다.
저는 당연히 박 전 대통령은 뇌물죄의 공범이 된다고 보고, 설령 뇌물 대가성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하면 강요죄의 공범이 되리라 본다. 대가성 부분도 관련자들, 전직 수석비서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물론 재벌들은 다르게 말한다. 자신들은 피해자이고 무죄라고. 헌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을 안 하고 형사재판으로 넘겼다. 만에 하나 재벌들은 빠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박 전 대통령은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
저는 사실 재벌도 피해자가 아니라 뇌물공여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이런 판례가 있다. 공무원이 술집 업주에게 약간 겁박, 협박을 했다. 뇌물을 안 주면 단속이나 이런 데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겁박한 거다. 그러면 업주는 겁을 먹는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한 1000만 원을 경찰관에게 줬다. 그러면 업주는 주고 싶지 않았는데 겁을 먹어서 줬으니 피해자냐? 아니다. 뇌물죄가 된다. 이것과 같다. 국가 기관인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불러서 겁을 주고 '레이저'를 쐈다고 치자. 그래서 삼성이 여기에 겁을 먹고 돈을 줬다. 이게 뇌물공여가 안 되나? 된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본다.
프레시안 : 뇌물죄의 형량이 가장 무겁기 때문에 중요한 혐의가 아니라 재벌이 피해자가 되느냐 공범이 되느냐가 걸린 문제 때문에 뇌물죄 성립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재벌은 강요에 의한 피해자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면,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정경유착으로 보는 촛불 민심과 법리적 판단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클 것 같다.
조국 : 당연하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대해서도 격렬한 논쟁이 있지 않았나. 많은 보수 성향 언론의 사설이나 칼럼이 박근혜는 버리고 재벌은 살리는 쪽으로 갔다. 재벌은 국가 권력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물론 저도 이재용 부회장이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겁을 먹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적 법리를 따져보면 뇌물이 된다. 사건이 너무 크니까 오히려 이상하게 볼 위험이 있는데, 가장 기초적인 법리적 판단으로 돌아가 어느 평범한 공무원과 장사하는 평범한 아저씨 간의 문제라고 놓고 판단하면 된다. 그게 법 앞의 평등 아닌가.
조국 :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영장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검찰이 법리적 판단이 아닌 다른 어떤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건 누가 그런 판단을 했느냐를 따져야 한다. 주임 검사의 판단인지, 검찰총장의 판단인지, 아니면 극단적인 경우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법무부를 통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는지 다 따져봐야 한다. 법리적으로는 당연히 해야 하는데 안 했다면, 왜, 누가, 어떤 계통을 통해 그런 결정을 했는지 따져 봐야 한다.
프레시안 :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13가지 혐의 중 핵심은 역시 뇌물죄다. 대가성 등 입증이 쉽지 않은 문제다.
조국 : 뇌물 문제는 이렇다. 일단 박 전 대통령 자신은 직접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특검 이전의 검찰 수사에서는 뇌물이 아니라 직권남용·강요로 처리한 것이다. 하지만 특검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검찰이나 특검이나 사실관계는 똑같이 봤는데, 그것을 법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거냐에서 갈린 것이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적으로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두 가지 판단을 다 할 수 있다. 주위적(主位的) 기소를 뇌물죄로 하고, 직권남용·강요는 예비적 기소로 적으면 된다. 그러면 법원에서 일단 뇌물 부분을 판단하고, 그게 판례에 비추어 맞지 않다 싶으면 강요 부분으로 검토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둘 다 부인하고 있는 상태에서 뇌물로 혐의를 적게 되면 (입증이) 까다로워지는 부분은 있다고 본다. 첫째, 부정 청탁이 있었느냐, 둘째, 대가성이 있었느냐, 이 2가지가 문제다.
부정한 청탁 부분은 현행 판례상 묵시적인 청탁도 해당된다는 판례가 수도 없이 있다. 이는 각종 증언과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 등의 문서를 통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대가성 부분은 인과관계가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 있고 복잡해서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의 기존 판례는 포괄적 뇌물죄라고 해서, 공무원에 대해서는 대가성을 폭넓게 인정한 판례가 있다. 그러니 검찰에서 뇌물죄 적용을 포기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재벌 총수들이 사면이건 합병이건 해결하고 싶은 현안들이 있었고, 이에 대한 청탁들이 안 전 수석 등을 통해 이뤄졌고, 박 전 대통령 자신은 돈을 안 받았지만 최순실에게 돈을 주라고 했고, 실제로 돈이 주어졌다. 재벌들도 얻어갈 것을 얻어 갔다.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본다.
설사 뇌물죄가 적용이 안 된다고 해도, 박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강요 부분은 벗어날 수가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 주장은, 박 전 대통령을 독대했더니 대통령이 겁을 주더라, 팔을 비틀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는 것 아니냐. 이건 또다른 파렴치범이다. 그래서 직권남용·강요 혐의는 기본적으로 인정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재용 부회장뿐 아니라 재벌총수들은 다 그렇게 진술했다.
프레시안 :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의 공동정범 관계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조국 : 뇌물을 받았다고 하든 강요를 했다고 하든 공범 관계는 성립한다. 특검에서는 '경제적 공동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은 법률적 용어는 아니고, 법적으로는 공범인 것이다. 법률에서 공범은 2가지 요건이 있다. 범죄를 저지를 때의 의사 연락이 있었는지, 역할 분담이 있었는지다.
로스쿨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표본이 되는 사례는 이런 것이다. 은행강도 일당이 있다고 하자. 미리 계획을 짜고 그 계획에 따라 한 사람은 은행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망만 봤고, 다른 사람들이 은행 안에서 총칼을 들이대고 협박해서 강도짓을 했다. 그러면 밖에서 망만 본 사람은? 이 사람은 은행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공범이 된다. 그게 판례이고, 표준적으로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기본이다.
그러니 박 전 대통령이 '나는 몰랐다', '나한테는 돈 한 푼 안 들어왔다'고 하는 게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최순실과 재단을 만들기로 했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누구는 재벌 회장들을 만나는 역할을 하고 누구는 실제로 재단을 만들고 운영하고 이런 게 정확하게 다 들어맞는다. 공범이 아닐 수가 없다.
저는 당연히 박 전 대통령은 뇌물죄의 공범이 된다고 보고, 설령 뇌물 대가성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하면 강요죄의 공범이 되리라 본다. 대가성 부분도 관련자들, 전직 수석비서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물론 재벌들은 다르게 말한다. 자신들은 피해자이고 무죄라고. 헌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을 안 하고 형사재판으로 넘겼다. 만에 하나 재벌들은 빠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박 전 대통령은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
저는 사실 재벌도 피해자가 아니라 뇌물공여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이런 판례가 있다. 공무원이 술집 업주에게 약간 겁박, 협박을 했다. 뇌물을 안 주면 단속이나 이런 데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겁박한 거다. 그러면 업주는 겁을 먹는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한 1000만 원을 경찰관에게 줬다. 그러면 업주는 주고 싶지 않았는데 겁을 먹어서 줬으니 피해자냐? 아니다. 뇌물죄가 된다. 이것과 같다. 국가 기관인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불러서 겁을 주고 '레이저'를 쐈다고 치자. 그래서 삼성이 여기에 겁을 먹고 돈을 줬다. 이게 뇌물공여가 안 되나? 된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본다.
프레시안 : 뇌물죄의 형량이 가장 무겁기 때문에 중요한 혐의가 아니라 재벌이 피해자가 되느냐 공범이 되느냐가 걸린 문제 때문에 뇌물죄 성립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재벌은 강요에 의한 피해자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면,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정경유착으로 보는 촛불 민심과 법리적 판단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클 것 같다.
조국 : 당연하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대해서도 격렬한 논쟁이 있지 않았나. 많은 보수 성향 언론의 사설이나 칼럼이 박근혜는 버리고 재벌은 살리는 쪽으로 갔다. 재벌은 국가 권력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물론 저도 이재용 부회장이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겁을 먹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적 법리를 따져보면 뇌물이 된다. 사건이 너무 크니까 오히려 이상하게 볼 위험이 있는데, 가장 기초적인 법리적 판단으로 돌아가 어느 평범한 공무원과 장사하는 평범한 아저씨 간의 문제라고 놓고 판단하면 된다. 그게 법 앞의 평등 아닌가.
프레시안 : 아직 좀 이른 얘기이지만, 대선 정국이다 보니 벌써부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등의 말도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조국 : 사면은 정치적 타협책으로 언제든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례를 봐도, 그 둘은 기본적으로 실형을 받았고 감옥에서 형을 살았다. 1997년 당시에도 논리는 똑같았다. 국민 화합을 위해 사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는 그 당시에도 반대했는데, 일단 전두환·노태우의 경우나 박근혜의 경우는 사안의 성격은 다르지만 헌정 문란이라는 것은 똑같다. 전두환·노태우는 군사 내란이라는 폭력적 방식으로 헌법을 무너뜨렸고, 박근혜는 총만 안 쐈을 뿐이지 권략 사유화를 통해 헌법을 무너뜨렸다.
그래서 사면을 지금 얘기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보고, 설사 나중에 한다고 해도 사면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유죄 판결이 나와야 하고, 그 후에 본인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이런 것이 없는 상태에서 사면을 하면, 국민 통합이 아니고 분열이 새로 시작될 것이다. 또한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현행법에 따르면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에서 사면 여부를 논의하게 돼 있다. 거기를 통과해야 하는데, 사안의 성격상 위원들이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전체 재판 기간을 한 1년 정도로 예상하는데, 지금의 박 전 대통령의 논리 구조대로라면 끝날 때까지 사과는커녕 혐의 자체를 부인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조국 : 절대 안 하겠죠. 아마 대법원까지 '모른다', '아니다' 두 가지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걸 바꿀 수가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일반적인 피의자 입장에선 상당히 어리석은 전략일 수도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은 왜 이런 선택을 했다고 보나?
조국 : 사실 통상적 사건이라면, 변호인은 피의자에게 '자백하고 (재판부의) 선처를 구하자'고 했어야 할 사건이다. 헌재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박 전 대통령 본인이나 변호인단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정치 투쟁, 이념 투쟁으로 만들었다. 변호인단이 헌재에서 속된 말로 '깽판'을 치지 않았나. 그리고 검찰·특검의 모든 수사에도 응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기본적 책무가 헌법 수호인데, 본인이 법 질서를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패착 중 패착이다. 여전히 '친박이 궐기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런 확신 편향이 심하다 보니 객관적 정보 취합이 안 됐다고 본다. 물론 자존심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 이 사건은, 역시 피의자 이름 '박근혜'를 지우고 '홍길동'이라고 놓고 보면 일단 자백하고 선처를 구해야 이성적이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이 진작부터 그렇게 했으면,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작동해서 불구속 기소를 한다든가, 형량이 좀 깎인다거나 이렇게 될 소지가 있었다. 자백하고 사과하면 시민도 '결국 자백은 했네. 좀 봐 주자'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지 않나. 사실 정무적 판단의 기초는 국민 마음이다. 그런데 국민이 용서할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게 본인이 결사 항전을 선언해 버렸고, 사람들은 더 화가 났다.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그 다음에 용서든 사면이든 감형이든 이런 게 있을 수 있는데, 인정도 사과도 안 하고 그런 것을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한 번도 사실 인정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 오판을 할 거라고 본다.
"촛불 '명예혁명' 이후, 대선의 시대정신은…"
프레시안 : 법적인 다툼과는 별개로, 5개월 가량 이어진 이번 사태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짚어 보자. 촛불로 시작해 탄핵으로 한 과정을 마감한 전체적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조국 : 맨 처음에는 촛불시위에 한 20만 명이 모였다. 그런데 촛불시위 참여 인원이 폭증하게 된 계기가 최순실의 태블릿PC 보도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개헌 제안 등이었다. 사실 제일 처음에는 촛불 시민이든, 정당이든 정치인이든, 시민사회든 언론이든 '탄핵'을 이야기하지는 않았고, 이런 큰 사건이 터졌으니 박근혜 본인은 2선으로 후퇴하고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중립 내각을 만들자, 대통령은 빠져 있어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나서지 말라,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박근혜의 답은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 국회에서의 개헌 제안 등이었다. 자신에 대한 요구를 엎어치려고 했던 것이다.
본인이 빠져 주면 국회에서 중립내각을 꾸리고 대선을 빨리 치르고 이렇게 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화가 난 사람들에게 염장을 지른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 그때부터는 속된 말로 '빡이 쳤다.' 화가 나서 거리로 몰려나왔고, '하야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전체의 1/3 정도다.
하야는 정치적 해법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정치적 해법마저 거부했고, 사람들도 박 전 대통령이 권력에서 물러날 의지가 전혀 없음을 확인하고 '정치적 타결은 불가능하구나', '하야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면 남은 건 법적 해법밖에 없다. 그게 탄핵이었다.
사실 탄핵은 위험 부담이 높았다. 당시에는 과연 탄핵이 될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발의는 될까. 헌재에서는 어떻게 판단할까 불안한 점이 많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모든 정보가 다 나와 있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그때 저도 '탄핵은 최후 수단'이라고 했고, 탄핵 가능성에 대해서도 비관적이었다.
당시 제 생각은, 탄핵은 정치투쟁과는 다른 법률투쟁이어서 증거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하더라도 최후 수단으로 맨 마지막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광장의 요구가 끓어오르고, 수사를 통해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이 2가지 없이 탄핵을 바로 지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에서 뭐가 막 나오기 시작했고, 특검 수사가 시작됐더니 더 많이 나왔다. 이로 인해 시민들 분노가 더 끓어오르면서 광장의 구호가 '하야'에서 '탄핵'으로 확 바뀌었다. 즉 1/3 단계에서는 정치적 해결, 2/3 단계가 헌법적 해결(탄핵심판)이었고, 지금은 3/3 단계, 즉 형법적인 단계로 넘어왔다.
즉 낡은 것을 청산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대선이라는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형법적 마무리는 사실 1년 뒤에 된다. 이것은 지루하지만 그대로 갈 것이다. 저도 법을 전공했지만, 정치가 사법에 의지해서 여차 하면 법원 가고 헌재를 가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정치적 문제를 법으로 푸는 것은 정치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정치가 작동을 안 해서 법이라는 최후 수단을 썼으니, 가부 간에 결단이 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것은 이것대로 정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프레시안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형사적 마무리와는 별개로, 대중들의 개혁 요구를 제도화하는 것은 매우 더디고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어떤 개혁 과제를 강조하고 싶은가?
조국 : 제가 '촛불 명예혁명'이라는 말을 썼다. 혁명의 기본 특성은 파괴와 건설인데, 구 질서를 없애는 작업은 지금 하고 있다. 새로은 질서는 이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어디서 도출할 것인가는, 혁명의 동력이었던 촛불 시민들을 봐야 한다. 시민들이 요구한 박근혜 탄핵, 실현됐다. 박근혜 구속, 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시민들이 외친 게 검찰·재벌·언론 개혁이다. 수많은 개혁 과제가 있지만 이번 국면에서 시민들이 거리에서 외친 것은 이 3가지였다. 재벌 개혁은 단순히 총수 몇 명을 감옥에 넣는 것으로 끝난다고 시민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도 지금 바싹 수사를 잘 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갈 수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종편의 기여가 없지 않았지만 언론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촛불시위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래서 검찰·언론·재벌 개혁은 정권이 바뀌면 꼭 해야 한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을까도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최순실 때문에 터진 것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과 반칙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정유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게 하나하나 나올수록 '나는 상식적으로 열심히 사는데, 나는 내 노동에 기초해서 노동의 대가를 받아서 살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뭐냐' 하는 분노가 커진 것이다. 즉 박근혜-최순실 일당이 부와 권력을 배분하는 방식, 정당한 노동과 공정한 경쟁에 기초하지 않은 재화 분배에 대한 분노가 그 근본에 있다고 본다. 물론 민생, 일자리, 청년실업 등 많은 과제가 있지만, 새로운 정부에 대해 시민들은 정당한 노동, 공정한 경쟁 등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차기 정부는 매우 힘들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이번 '명예혁명'을 통해 엄청난 자신들의 힘을 자각했다. 일단 선거가 끝나면 거리에서는 빠지겠지만, 정부를 지켜보고 내 요구가 실현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그런데 기대치가 엄청 높을 것이다. 이 기대치를, 야권의 범진보·개혁정부가 어떻게 맞출 것이냐? 잘못하면 시민들이 또 격분한다. 재벌·검찰·언론 등 3대 개혁 외에 시민들의 삶의 개선, 즉 직장·일자리·복지,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배치해서 풀어나갈 것인가, 이런 게 차기 정부의 고민이 될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한국사회 전체로 보면 진보·개혁진영이 소수라는 딜레마가 있다. 기득권의 저항을 어떻게 뚫을 것이냐는 문제는 '어떤 정권교체냐'와도 연관된 문제다. 한 쪽에서는 '객관적인 힘의 분포가 이렇기 때문에 현실적 개혁을 하자'는 온건론이 있고, 다른 쪽에서는 '촛불 시민혁명으로 대통령까지 탄핵시킨 열기를 바탕으로 이참에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있다.
조국 :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나온) 연정 논쟁이 그 맥락이다. '시민들의 요구를 제도화하려면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하는데, 현재 국회 상황에서는 자유한국당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니 자유한국당과도 대연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저는 반대한다. 이런 대연정론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물론 자유한국당과도 협치를 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한국당과 합의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냐는 거다. 한국당이 동의하는, 한국당이 수용할 수 있는 개혁만 한다? 그러면 개혁이 '최소주의'가 된다. 다른 당들이 합의해도 한국당이 '노(No)'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건 촛불 민심이 받을 수 없다. 이 국면을 만든 사람들, 주권자인 시민이 동의할 수 없으면 판 자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법률은 법률대로 한국당도 포함해서 국회에서 합의해야 하지만,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도 있다. YS가 금융실명제를 시행했을 때, 그건 법률로 하지 않고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했다. 당시에 그것을 법률로 했다면 안 됐을 확률이 거의 100%였다. 당시 상황은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YS의 금융실명제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러니 국회의 반대도 누그러지면서 법률을 만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오바마케어도 법률이 아닌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시작됐다.
그러니 의회에서의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촛불 민심을 받아 안으려는 정부라면 의회를 우회할 수 있는 합법적 경로가 있다. 우리 헌법을 봐도 대통령 긴급명령권은 살아 있고, 헌법 119조에 경제민주화 근거 조항도 있다.
둘째, 대연정론은 정태적 접근이다. 동태적 접근을 해야 한다. 이번에 정권이 바뀌면 올해 하반기에 정기국회가 열린다. 이때 개혁 법안 통과가 안 될 수 있다. 또 올해까지는 박근혜 정부가 짜놓은 예산안에 기초해서 움직여야 하니, 돈 문제는 추경을 통해야 한다. 새 정부 입장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도 생각해야 한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새 정부가 '최소주의 개혁'으로 후퇴하는 게 맞나? 그 시점에서 계속 논쟁을 해 가면서 '한국당이 무엇을 반대했다. 그래서 무엇을 못 했다'는 것을 밝혀나가야 한다. 그래서 내년에 선거에 의한 심판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법률도 지방선거 쟁점이 될 수 있다. 지자체 선거인만큼, 지방 분권과 자치를 강화하는 법률을 가지고 내년에 한 번 승부를 걸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당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법률을 내걸어야 한다. 지자체에서는 특히 야당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박원순·이재명 시장이 하자고 하는 기본소득이나 청년수당 등을 법률로 내걸 수 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도 '무상급식'이 쟁점이 돼서 뒤집어지지 않았나. 이런 지자체 관련 법안을 만들면 한국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깨질 것이고 동의하면 법을 통과시켜서 개혁이 된다.
이렇게 동태적으로 봐야지, 지금 시점에서 '의석 수가 이렇게 돼 있으니 안 된다. 그러니 한국당과 대연정을 하자'고 하는 것은 일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태적이고, 효과도 최소화될 것이다.
프레시안 : 내년 지방선거 때에는 개헌 국민투표도 하자는 게 지금 대다수 대선 후보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어떤 개헌이냐'라는 알맹이가 빠진 채 진행되는 느낌이다. 개헌을 불가피한 개혁 과제로 보는지, 그렇다면 어떤 개헌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조국 : 촛불 명예혁명 국면 중간중간에 개헌 얘기를 한 분이 많았다. 저는 계속 반대했는데, 개헌을 하게 되면 지금 의회에 존재하는 세력들 모두를 인정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합의해야 개헌이 되고, 그렇게 되면 자유한국당의 지분·이익을 보장해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시점은 개혁과 적폐 청산을 해야 할 때다. 구 체제 청산 문제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고, 그래서 청산에 집중해야 하는데 개헌 문제를 가져오면 초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심판을 받아야 할 세력이 개헌의 주체가 된다. 그들의 발언권도 살아난다. 그래서 촛불집회 국면 중간에 개헌을 시작했으면 탄핵이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본다. 저는 그게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고, 그래서 '반문(反문재인) 연대로 다 모여라' 이런 식이었다고 본다. 의도 자체가 잘못된 거다.
물론 지금 헌법은 1987년에 만든 헌법이니 개정할 때는 됐다. 그런데 헌법은 의원들이 국회에서 주물럭거려서 만드는 게 아니다. 1987년에도 거리의 요구가 있어서 전두환 군사정권을 쳐내고 국회에서 새로 헌법을 만든 것이다. 그것을 30년간 유지해 왔다. 그럼 지금까지는 왜 새 헌법을 못 만들었느냐. 87년 같은 국민들의 요구가 없었다. 물론 광우병 촛불시위 등이 있었지만, 그것은 건강권 등 헌법상 권리의 일부에 대한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은 거리에서 '헌정 문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개헌을 할 때가 된 것은 맞다. 그런데 개헌은 구 체제를 마저 정리하고 하는 게 맞고, 또 범죄 책임자 일부를 새 체제 만드는 데 끼울 수는 없다.
또 시간적으로 후다닥 만들 수도 없다. 헌법은 한 번 만들면 바꾸기 너무 어렵다. 지금 만들어서 내년에 통과되면 앞으로 30년 간다. 그러면 논의를 깊이 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는 없이 무슨 부칙으로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줄이네 마네 이런 생각만 하는 것은 잘못됐다. 지금 사람들은 헌재가 대통령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헌법은 이전까지는 종이쪽에 불과헀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헌법을 공부한다. 너무 좋은 현상이다. 사람들은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헌법의 통제 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 우리 다음 세대에 어떤 헌법을 물려줄 것이냐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렇게 본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볼수는 없지 않나?
조국 : 작년에 안철수 의원이 2018년 개헌을 얘기했고, 많은 분들이 '언제 하는 게 좋다'는 말을 할 때 저는 '2020년에 총선과 함께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2020년을 제안한 것은 좀 더 개헌에 숙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최근에 개헌을 한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처럼, 아래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서, 초등학교에서도 이야기하고, 중고등학교에서도 노동조합에서도 의견을 이야기해서 개헌안이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 전문가 집단, 즉 정치인·헌법학자·법률가들 말고 시민들의 참여 절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대통령제냐 분권형 개헌이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통령 권한은 쪼개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 권한을 국회에 주자는 의견 가운데, 감사원을 의회로 보내자는 것은 동의한다. 사법부 문제도 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그 대법원장이 대법관 전원과 헌법재판관의 1/3을 임명한다. 이런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그러려면 판사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현재 헌법 기관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도 헌법에 넣어야 한다. 프랑스는 최근 개헌에서 헌법 1조를 '프랑스는 민주공화국이다'에서 '프랑스는 지방 분권 공화국이다'로 바꿨다. 이렇게 지방 분권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도 만들어야 한다. 기본권 강화 부분도 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이렇게 헌법은 지식·문화의 총량을 압축하는 것이다. 사회가 가진 모든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딱 하나의 문서로 뽑는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워낙 많이 얘기됐다. 대통령이 가진 사법부 쪽의 권한을 내려놓고 입법부와 협치를 할 조건도 만들어 줘야 한다. 다만 사람마다 구체적인 안은 다를 수 있는데, 저는 내각제는 반대다. 대통령은 내정에 관여하지 않고 국방·외교만 맡는다는 방안도 반대다. 사실 일반 국민들한테는 외치보다 내치가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그건 우리한테 맞지 않고, 여러 이유로 대통령제는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
연정이나 이런 것보다도 저는 차기 대통령이 이런 것을 했으면 좋겠다. 집권 후 조각을 할 때 '국무위원 자리 중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내가 임명하겠다. 그런데 이 부처 저 부처 장관은 국회에서 추천해 달라'고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국회에 추천권을 준 장관 자리 놓고 원내 정당들이 만나서 논의를 할 것 아닌가. 그게 연정이다. 과거 DJP연대는 좀 옛날 방식인데, 지금은 모든 것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국회에서 임명해서 올리면 보기도 좋고 협조도 잘 될 것 아닌가.
만약 민주당이 집권한다는 전제에서라면, 나는 국민의당이나 정의당, 바른정당도 입각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의 이 국면을 이루도록 '촛불'에 도움을 준 정당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든 아니든 관계없이 가능하다고 본다. 현 국면을 만든 시민들과 거기에 기여했던 정당들이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저는 소연정이냐 대연정이냐 이런 게 아니라, 차기 대통령이 어떻게 합법적 권한을 행사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아주 세게 하면 긴급명령 발동도 할 수 있고,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도 정기국회나 그 이전 취임 연설에서라도 이런 부처의 장관 추천은 국회에 해 달라는 요구를 하면 좋겠다. 지금처럼 자꾸 국민의당과 싸우고, 감정 안 좋아지고, 그렇게 하지 말고 이런 제안을 하면, 설사 거절당하더라도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큰 이변이 없는 한 정권 교체는 될 것으로 대부분 인정한다. 다만 정권 담지자가 될 야권 세력이 촛불 시민들이 요구한 개혁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준비돼 있는 상태라고 보나?
조국 : 부족하나마 돼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그 이전보다는 나은 조건이라고 본다. 사실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같은 의제가 대중화된 것이 2012년부터다.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종의 사기를 쳐서 김종인 전 의원을 데려와서 선거에서 이겼다. 지금도 경제민주화 과제가 사라진 게 아니니 범야권의 각 정당이 경제민주화 실행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민주당이든 국민의당이든 보면 2012년 문재인 캠프, 안철수 캠프보다 훨씬 구체화돼 있다. 다만 실제로 할 수 있느냐는 이들이 얼마나 힘을 합하느냐에 달려 있을 텐데, 지금처럼 맨날 싸우면 물론 안 좋겠죠.
프레시안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정희 체제'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을 넘자고들 하지만, 언어는 추상적이고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보수, 기득권의 강력한 힘을 현실로 느낄 수 있다. 개혁의 기회이면서도 어려운 조건에 처한 진보·개혁 진영에 제언을 부탁하며 마무리할까 한다.
조국 :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얘기한다. 기본 틀에 있어서 과잉 우경화된 사회다. 북한이 존재하고 있고, 노조 조직률은 10%도 안 되고, 지역주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 학자들이 '이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만드는 것보다, 실제 변화는 대중의 힘, 대중의 결단과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본다.
이런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4.19가 있었지만 이후 5.16 쿠데타로 박살이 났다. 80년 5.18 광주가 있었지만 군사정권에 의해 무참히 진압됐다. 그러나 1987년에는 넓은 의미에서의 혁명이 있었고 대중의 결단이 있었다. 지금도 광주-87년-촛불로 이어지는 대중적 경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판 자체는 워낙에 우경화된 판이고, 제도권의 국회의원들을 아무리 조합해도 우경화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 판 밑에서 지각 변동이 생겼다. 시민들이 판을 한번 진보 쪽으로 크게 당겼다. 그러니 과거 같으면 더 난리를 쳤을 한국당도 입을 닫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행히도 시민들, 대중의 힘이 받쳐 주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전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라고 본다.
최근에는 저보다 연배가 더 있는, 보수적인 분들이 박 전 대통령을 욕하면서 '애비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결국에는 점점 더 '애비 얼굴에 먹칠'이 아니라, 박정희도 박근혜도 하나의 트랙(track)이라는 생각,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고 본다. 물론 특정 정치 세력은 여전히 박정희를 떠받들겠지만, 한번 바꿀 때가 됐다는 게 시민들 입장에서 이번에 드러났다고 본다.
지금은 오히려 1987년보다도 더 급진적인 요구가 자연스레 나오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촛불시위에 나왔던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모든 시민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써서 이뤘던 이번의 경험을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적 인원 10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긴다. 설사 이제 거리로 나오지 않고 집에서 TV를 본다고 해도 '내가 거리에 나갔기에 이렇게 된 것이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상황을 감시할 것이다.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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