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세월호 구조 실패 박근혜 탄핵 시위의 핵심’
-세월호 인양 보도 ‘한국인들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격노하고 있어’
-한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마무리짓기 위한 한 걸음
-세월호 인양 보도 ‘한국인들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격노하고 있어’
-한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마무리짓기 위한 한 걸음
BBC, 도이체벨레, 알자지라, 시카고 트리뷴, 타임, CNN 등 전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일제히 세월호 인양을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도 22일 ‘대부분이 수학여행 길의 십대 청소년이었던 300여 명의 목숨을 앗으며 거의 3년 전 침몰한 한국의 세월호가 목요일 수면 위로 올려졌다’고 인양 사실을 전하며 ‘이는 실종된 아이들을 여전히 찾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감정이 복받치는 순간이었고, 한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를 마무리짓기 위한 한 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South Korea Raises Ferry That Sank in 2014 Disaster-2014년 참사로 가라앉은 세월호 인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가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참사였고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세월호는 안에 갇힌 아이들이, 결코 오지 않았던 도움을 요청하거나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가운데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되짚은 뉴욕타임스는 늦어진 인양작업과 22일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의 모습을 전하며 유족들이 이를 지켜보았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세월호의 침몰과 구조 실패과정을 전하며 특히 “현장에 도착한 첫 해양경비정은, 배안에 갇힌 승객들이 배가 바다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동안 계속 배 창문을 두들겼지만, 탈출하는 승무원들을 구조하는 것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많은 한국인들이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격노하고 있다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대규모 군중이 최근 몇 달 간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을 때 정부의 실패한 구조작업은 박근혜를 향해 터져나온 가장 핵심적인 분노였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의 행동이 그녀를 축출시킬만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의 기록에 가장 큰 오점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2mWQbmW
South Korea Raises Ferry That Sank in 2014 Disaster
2014년 참사로 가라앉은 세월호 인양
By CHOE SANG-HUN
MARCH 22, 2017
MARCH 22, 2017
Workers in South Korea on Thursday raised the ferry Sewol, which capsized and sank in April 2014. More than 300 people died, many of them students. Credit Korea Coast Guard/Yonhap, via Reuters
목요일 한국의 인부들이 2014년 4월 뒤집혀 가라앉은 세월호를 인양하고 있다. 3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학생이었다.
SEOUL, South Korea — A South Korean ferry that sank nearly three years ago, killing more than 300 people — most of them teenagers on a school trip — was raised to the surface on Thursday. It was an emotional moment for families who are still looking for their missing children and a step toward closing one of the most traumatic episodes in South Korea’s history.
한국 서울 – 대부분이 수학여행 길의 십대 청소년이었던 300여 명의 목숨을 앗으며 거의 3년 전 침몰한 한국의 세월호가 목요일 수면 위로 올려졌다. 이는 실종된 아이들을 여전히 찾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감정이 복받치는 순간이었고, 한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를 마무리짓기 위한 한 걸음이었다.
The ferry, the 6,825-ton Sewol, capsized and sank off the southwestern tip of South Korea on April 16, 2014. The accident was the country’s worst catastrophe in decades, and it contributed to the recent ouster of PresidentPark Geun-hye. The ship went under while teenagers trapped inside sent text messages asking for help that never came or saying goodbye to their families.
6,825톤급 여객선인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한국의 서남해역에서 뒤집혀 침몰했다. 그 사고는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참사였고,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세월호는 안에 갇힌 아이들이, 결코 오지 않았던 도움을 요청하거나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가운데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A monthslong underwater search of the ship ended after 295 bodies were recovered. Nine people who were on board remain missing, including four students and two teachers from Danwon High School in Ansan, south of Seoul, the South Korean capital. Of the 324 students from the school on board for a field trip, 250 drowned.
295명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수개월 간 진행되던 세월호 수중 탐색은 중단됐다. 한국의 수도 서울 남쪽에 위치한 안산시의 단원고 학생 4명과 교사 2명을 포함한 승선 인원 9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배를 타고 수학여행 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 324명 중 250명이 익사했다.
Bereaved families have demanded that the ship be salvaged, hoping that the bodies of the missing would be found inside. They also hoped that the wreckage would reveal more clues to what caused the ship to sink. Government investigators have blamed overloading, the ship’s structural imbalance and poor decisions by the crew for the disaster.
유족들은 실종자들의 시신이 선체 내부에서 발견될 것을 기대하며 세월호 인양을 요구해왔다. 그들은 또한 세월호의 잔해를 통해 침몰 원인에 대한 더 많은 단서를 발견하기를 바랬다. 정부측 조사관들은 과적, 배의 구조적 불균형 그리고 선원들의 잘못된 판단 등을 침몰의 이유로 들었다.
In 2015, the government announced plans to raise the ship, contracting a consortium of Chinese and South Korean salvage crews for the $76 million operation. Their work has been painstakingly slow because of strong currents, frequent periods of bad weather, poor underwater visibility and the complicated engineering maneuvers needed to raise the ship, which was lying on its side about 145 feet below the surface.
정부는 지난 2015년 7,600만 달러에 중국과 한국의 인양 업체 컨소시엄과 계약하면서 세월호 인양 계획을 발표했다. 그들의 인양 작업은 거친 조류 및 빈번한 악천후, 수중 시야 확보의 어려움 그리고 수심 44미터에 선체 옆면으로 가라앉은 배를 인양하는 데에 적용되는 복잡한 공법 등의 문제로 극도로 느리게 진행됐다.
Divers spent months placing 33 lifting beams underneath the ferry and tying cables to both ends of them. After days of testing, two salvage barges began pulling up the cables on Wednesday, raising the ship inch by inch.
잠수사들이 세월호 하부에 33개의 인양받침대를 설치하고 그 양쪽 끝에 케이블을 부착시키는 작업에 수개월이 소요됐다. 며칠간의 인양 테스트 이후 수요일, 2대의 인양 바지선이 케이블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면서 배는 조금씩 위로 올려졌다.
By Thursday morning, the ferry’s mud-covered, rusting hull broke through the surface, and workers began fastening the ferry to the barges.
목요일 아침 진흙으로 뒤덮이고 녹슨 세월호의 선체가 수면위로 나오기 시작했고, 인부들은 세월호를 바지선에 고정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Family members of the victims watched the operation overnight from a government ship.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정부 측 배에서 인양 작업을 밤새도록 지켜봤다.
In the next couple of weeks, the ferry will be transferred to a semi-submersible vessel, which will lift it out of the water completely and carry it to Mokpo, a port 55 miles away. There, officials will conduct a thorough search.
다음 몇 주에 걸쳐 세월호는 반잠수식 시추선으로 옮겨진 후, 물 밖으로 완전히 나오게 한 후 55마일 떨어진 목포항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그곳에서 선체조사위원회가 세월호를 정밀 조사할 것이다.
The investigation of the sinking has exposed numerous loopholes in safety standards in South Korea.
세월호 침몰 수사는 한국의 안전기준에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The Sewol’s operator, Chonghaejin Marine, routinely overloaded the ship with poorly secured cargo, including on the ferry’s final voyage. Inspectors colluded in the practice by giving the Sewol and other ships just a cursory check from the pier, or none at all. When the Sewol capsized, its crew members were among the first to flee, after repeatedly telling passengers to stay in their cabins.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 해운은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채로 화물을 과적하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안전조사관들은 세월호와 다른 배들을 부두에서 대충 점검하거나 혹은 아예 점검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관행에 공모했다. 세월호가 뒤집히자 세월호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는 선실에 머물러 있으라는 지시만 되풀이해서 내린 후 제일 먼저 빠져 나왔다.
The first Coast Guard boat that arrived at the scene did little more than pick up the fleeing crew members, while passengers trapped inside the ferry banged on the windows as the ship slowly disappeared beneath the waves.
현장에 도착한 첫 해양경비정은, 배안에 갇힌 승객들이 배가 바다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동안 계속 배 창문을 두들겼지만, 탈출하는 승무원들을 구조하는 것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The captain of the ferry, Lee Jun-seok, was sentenced to life in prison after being convicted of murder through willful negligence. Fourteen other crew members received prison sentences of 18 months to 12 years. Dozens of ferry company officials, safety inspectors and Coast Guard officials have also been jailed or convicted on various criminal charges related to the sinking.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미필적 고의 살인죄로 기소된 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14명의 승무원들은 18개월에서 12년 징역을 선고 받았다. 수십 명의 세월호 회사 관계자들과 안전검사관들 및 해안경비 관계자들도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여러 범죄 혐의로 구속되거나 기소되었다.
Many South Koreans remain outraged by the disaster. Some of the bereaved family members and sympathetic activists have camped out in Seoul and kept watch on the salvage operation from islands near the site, calling for a more thorough investigation into the government’s response.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격노하고 있다. 유족들과 유족들에 공감하는 활동가들이 정부의 구조대책에 대한 보다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며 서울 거리의 천막에서 생활했고 사고 현장 근처 섬에서 인양작업을 계속 감시했다.
When huge crowds of people rallied in central Seoul in recent months to demand that Ms. Park be removed, the government’s botched rescue operation was a central grievance voiced against the president. When lawmakers in the National Assembly voted to impeach her on Dec. 9, they accused her of negligence in the handling of the disaster.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며 대규모 군중이 최근 몇 달 간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을 때 정부의 실패한 구조작업은 박근혜를 향해 터져나온 가장 핵심적인 분노였다. 국회에서 지난 12월 9일 탄핵안이 가결되었을 당시 세월호 참사의 처리에 있어 박근혜의 과실이 근거가 되었다.
When the Constitutional Court formally removed Ms. Park from office on March 10, it said she had stayed in her residence, not in her office, for seven hours after she first heard of the sinking. But the court said her actions in that case were not grounds to oust her. Instead, the court voted to remove Ms. Park based on other charges, including corruption and abuse of power.
헌법재판소가 3월 10일 박근혜 파면을 공식적으로 판결했을 때 헌재는 박근혜가 처음 침몰 소식을 접한 후 7시간 동안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재는 박근혜의 행동이 그녀를 축출시킬 만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신에 헌재는 부패와 권한남용을 포함한 다른 혐의들을 근거로 박근혜를 파면했다.
Despite the court’s ruling, the disaster was the biggest blot on Ms. Park’s record as president. Many South Koreans saw her failure to take charge of the emergency as emblematic of what they considered her aloofness as leader.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의 기록에 가장 큰 오점을 남겼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녀가 비상상황에서 대처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지도자로서 박근혜의 무관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았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